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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릉을 강남의 센트럴파크로
입력 : 2013.12.20 14: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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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세금을 낮추고 금융을 완화하여 수요를 확대하는 정책이 우선돼야겠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부동산의 가치를 높이는 정책도 필요하다. 부동산 시장의 인프라가 가장 유리하게 활용되는, ‘최유효이용(Highest and best use)’이 되도록 하여 부동산시장 전체에 활기를 불어 넣어주고 매력을 높이는 노력도 필요하다.
어떠한 토지라도 나름대로 가치가 있다. 큰 바람이나 산사태를 막아주는 보안용 토지, 도시인에게 한 겨울에도 신선한 야채를 공급해주는 비닐하우스 토지가 있다. 도심지 토지는 상가, 오피스 또는 대중이 이용하는 문화시설로 써야 제 몫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하듯 모든 부동산은 나름대로 최고, 최선으로 사용돼야 한다.
부동산은 자동차, 냉장고 같은 공산품과 다르다. 토지는 간척사업을 제외하고는 인간이 만드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용을 할 뿐이다. 이러한 부동산이 최유효이용이 안 되면 소유주의 경제적 이익을 해칠 뿐 아니라 그 부동산은 지역사회에 책임을 다 못하는 결과가 된다.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효용을 극대화하지 못해 부동산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더 나아가서는 공공의 이익에도 반(反)하는 경우가 많다. 몇 가지 사례를 보자.
첫째 사례로는 강남 테헤란로에 인접한 선릉을 꼽을 수 있다. 선릉은 조선 왕조 성종과 중종을 모신 묘역이다. 약 20만㎡(6만평)나 되는 넓은 묘역이다. 1960년대 강남 개발 당시 아마도 두 분 임금님의 묘역이 상당 거리를 서로 떨어져서 위치하였기 때문에 도시설계자가 넓게 보전지역을 구획하였을 것으로 추측이 된다.
강남의 최고 요지에 자리 잡고 있는데도 입장객은 그리 많은 것 같지 않다. 직사각형 형태로 반듯한 토지이며 철책으로 담이 처져있고 안에 들어가 봐야 특별한 휴식시설도 없이 단지 나지막한 경사진 언덕만 있을 뿐이다. 너무나 효용 극대화와는 거리가 먼 상태이다. 두 분 임금님 능이 있는 곳 약 3만~7만㎡(1만~2만평) 정도만 원래 형태로 보전하고 나머지는 평지화해서 접근성을 높여 강남의 센트럴파크로 재탄생시켜야 한다.
조선왕조 역사교육관도 만들고 인공호수, 야외극장, 운동시설 등을 조성하여 토지가 최유효이용이 되도록 해야 한다. 필요한 예산은 민자(民資)를 동원해 BTL(완공 후 임대조건)방법 등으로 운영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는 너무나 아까운 땅을 보전만 하고 있다. 공공을 위해 의미 있게 활용한다면 누워계신 두 분 임금님께서도 환영 하실 것이다.
두 번째로, 서울 도심에 큰 터로 자리 잡고 있는 경복궁, 덕수궁, 창덕궁은 높은 담장으로 갇혀 있다. 근세의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고궁을 그대로 보전해 온 것은 매우 다행이고 자랑스러운 일이다. 우리나라 고궁에는 일본이나 영국과 달리 왕족이 거주하고 있지 않다. 그러함에도 고궁은 높은 담에 둘러싸여 있다. 아름다운 고궁의 건물들과 정원의 모습을 외부에서도 볼 수 있게 고궁의 담을 리모델링한다면 시민들과 관광객들의 접근성을 높이고, 도시 미관도 업그레이드될 것이다.
고궁의 담을 전부 헐자는 것은 아니고 약 50∼60% 정도만 모양 있게 리모델링하는 방법이다. 헐어내는 부분에는 유리로 만든 투명한 담을 설치하여 도심을 걸으면서 고궁의 아름다운 곡선을 감상할 수 있다면 상상만 해도 즐거운 일이다. 외국관광객은 물론 시민들에게 큰 선물이 되는 최유효이용의 대표적 사례가 될 것이다.
셋째로 지하공간의 비효율적 이용이다. 강남 역삼동의 대지가 서로 붙어있는 대형건물인 GS타워나 SI타워는 각자 나름대로 지하공간을 상가, 음식점 등으로 개발했으나 두 건물을 서로 연결하는 통로조차 없다. 우리나라는 도심의 지하공간을 도쿄나 홍콩 같이 옆 건물, 지하철역과 연결해서 개발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건물주에게도 경제적 효용을 떨어뜨리고 통행하는 시민들에게도 불편을 주고 있다.
하루빨리 지하공간의 효율적 이용을 위한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 앞으로 상업용 건물이 지하공간을 개발할 때는 반드시 옆 건물이나 인근 지하철역과 연결하도록 법제화해야 한다. 또한 이미 개발이 완료된 도심의 지하공간도 점차적으로 옆 건물과 연결통로를 만들도록 재산세 등 세제면에서 인센티브를 줄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초등학교 운동장의 활용이다. 한국의 초등학교 운동장은 매우 넓다. 학교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략 3000~5000㎡(1000~1500평) 이상 되는 것 같다. 아마도 미국, 일본을 제외하고는 어느 선진국보다 넓다.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한 사람들에게는 헬스장이 되고 때로는 예비군, 민방위 소집 장소 등으로 용도가 다양하다. 일 년 내내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바쁘게 사용되는 친숙한 공간이다.
서울 같은 대도시 중심에 위치한 초등학교 운동장을 경제적 가치로 따져보면 엄청나다. 그러나 그 비싼 땅에 설치된 시설은 너무나 빈약하다. 단지 1970년대 수준의 허름한 어린이용 체육시설과 화장실이 있을 뿐이다. 토지의 가치와 이용하는 사람들의 용도를 고려할 때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운동장의 절반 정도에 천연잔디를 조성하면 어떨까. 여기에 필요한 자금은 사친회 또는 지역주민들이 부담하는 정도로 가능할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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