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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훼손과 표현의 자유 그 경계를 다시 생각한다
입력 : 2013.12.12 14:2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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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는 개인의 정체성이나 자긍심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상호신뢰의 바탕이 되고 경제적으로는 정보탐색이나 거래비용을 크게 줄여주는 기능을 한다. 그러한 사회경제적 기능으로 인해서 명예를 법적으로 보호하고 명예훼손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묻는 제도가 발전되어 온 것이다.
뉴욕 명예의 전당에 있는 워싱턴 대통령의 흉상을 보면 젊은이들이 훌륭한 지도자가 되겠다는 꿈을 갖게 할 것이고, 플로리다 골프명예의 전당에 있는 박세리 선수를 보면 우리나라 젊은 선수들이 세계무대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열정을 품게 될 것이다.
돈과 명예가 같은 것은 아니지만, 명예에 돈이 따르는 경우가 많고 명예를 상업화하는 경우도 많다. 광고 산업의 대부분은 유명인사의 명예를 상업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다양한 종류에 의존하고 있다. 명예를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 영화배우 제임스 딘이나 가수 마이클 잭슨과 같은 유명인사는 사망한 후에도 지속적으로 엄청난 수익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명예란 무엇인가? 흔히 정치인이나 운동선수 또는 연예인 등 저명인사의 명성을 많이 연상하게 된다. 평소 나쁜 짓 안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평가에 이르기까지, 명예는 다양한 뉘앙스를 갖고 있다. 일상생활에서의 명예는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지만 법률상의 명예는 보다 제한된 의미로 파악된다. 특정인의 기분이나 감정이 상처 입었다고 법이 나서서 명예감정을 모두 보호해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사실의 왜곡에 의해서 개인이나 단체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훼손하는 경우에는 법이 개입하게 된다.
사회적 평가는 주위 사람들 또는 일반대중의 신뢰를 반영하고, 바로 그러한 평가와 신뢰를 토대로 사람사이 또는 기업 간 소통과 거래가 이루어지게 된다. 따라서 명예라는 이름으로 법이 보호하고자 하는 것은 개인이나 단체에 대한 ‘객관적이고 사회적인 평가’ 그 자체이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객관적인 사실과 정보 그리고 다양한 아이디어는 민주주의와 과학기술 발전의 토대가 되는 밑거름이다. 바로 이러한 ‘정보와 아이디어의 시장(Market of Ideas)’에서 명예의 보호와 표현의 자유는 서로 긴장관계에 있다고 하는데 문제의 어려움이 시작된다. 한편으로는 명예의 보호가 중요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기 때문에, 어떠한 범위에서 어떠한 요건 하에 명예훼손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 판단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아주 어려운 문제로 남는다.
명예의 보호와 표현의 자유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 형법은 한편으로 명예훼손에 관한 처벌규정을 두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경우에는 처벌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우리 대법원은 ‘공공의 이익’의 범위를 비교적 넓게 해석해서 정치인이나 연예인처럼 공적인 인물에 관한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은 명예훼손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또한 특정 사회집단이나 그 구성원 전체의 관심에 관한 것도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경우에 해당된다고 본다. 예컨대 어느 기독교 교단의 목사들이 교단 내 목회자들에게 보낸 유인물에서 다른 목사의 목사안수를 비난한 것이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 해당되기 때문에 명예훼손죄의 위법성이 없다고 해서 무죄판결을 내린 바 있다.
대법원은 명예훼손의 처벌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서 ‘진실성’의 범위를 비교적 넓게 해석한다.
MBC을 담당한 PD와 진행자들이 광우병보도를 통해 관련 공직자 및 수입판매업자의 명예를 훼손했는지 여부가 문제된 사건에서 담당 법원은 표현의 자유를 중시해 진실성의 범위를 비교적 넓게 해석했다. 명예훼손은 어느 매체를 통해서 이루어지는지에 따라서 그 효과가 상당히 다르다. 따라서 고전적인 종이매체에 대하여는 광범위한 표현의 자유가 허용되어 온데 반해 라디오나 TV와 같이 침투성이 강하고 제한된 주파수 자원을 사용하는 매체에 대하여는 명예훼손의 책임을 더 엄중하게 묻게 된다.
다른 한편으로 인터넷은 쌍방향성을 특징으로 하는 매체이므로 일방적인 통신에 해당되는 라디오나 TV보다 더 많은 표현의 자유가 허용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특히 토론방과 같은 인터넷 공간에서는 반론과 오류수정의 충분한 기회가 보장되기 때문에 그러한 인터넷 공간에서는 허위의 사실로 명예훼손을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명예훼손의 인정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인터넷은 라디오나 TV보다 더 강한 전파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단 인터넷상에서 명예훼손이 발생했다고 판단되면 보다 더 높은 형량과 많은 금액의 손해배상 등 엄중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수년 전 인터넷상의 명예훼손으로 유명연예인 최진실이 자살한 충격적인 사건이 아직도 우리 기억에 생생하다. 인터넷 악성 댓글의 폐해를 해결하고 예방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안이 논의되었다. 그 당시 정부는 한 가지 해결방안으로 ‘사이버 모욕죄’를 신설하는 법안을 마련한 바 있고, 소위 최진실법이라는 별명을 달고 뜨거운 찬반논란의 대상이 됐다.
그러나 사이버 모욕죄의 신설은 최진실의 사망을 핑계 삼아 정부가 비판적, 반정부적 여론 주도자들을 신속하게 색출해 처벌하려는 것이라는 민주당의 반대에 부딪혀 좌절되었다. 인터넷상의 명예훼손 등 위법행위를 억제하기 위해 실명이 확인된 이용자만 게시판 등을 이용할 수 있도록 제한한 소위 ‘인터넷 실명제’도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헌법재판소는 인터넷 실명제 시행 이후 불법 게시물이 의미있게 감소하지 않았고 오히려 이용자들이 해외 사이트로 도피했다는 점, 국내외 사업자 간 역차별 문제가 발생했다는 점 등을 들면서 인터넷실명제가 헌법에 위반된다고 결정했다. 명예훼손은 엄벌해야 하지만, 인터넷실명제는 명예훼손 방지의 효과도 극히 미미한 가운데 오히려 자유로운 의사의 표현을 위축시키는 부작용만을 초래한 것으로 평가된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체면과 명예를 중시하는 사람들도 드물다. 명예를 법적으로 보호해주는 것은 우리가 한 일을 스스로 떳떳하게 여길 수 있는 자긍심을 보호해주는 것이고 그러한 명예의 법적 보호는 우리가 맡은 바 각자의 소임과 열정을 다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을 마련해준다. 그러나 다른 한편 우리 사회경제가 선진화되면서 사실과 정보, 아이디어의 가치가 커졌기 때문에 정보의 자유로운 유통과 표현의 자유가 중요해졌다. 따라서 명예를 보호하고, 표현의 자유 사이에 균형점을 찾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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