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이 남긴 디지털 기록, 삭제해 드릴까요?

    입력 : 2013.12.12 14:2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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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이 주신 최고의 선물은 ‘망각’이다.” 사람들이 갖고 있는 기억은 언제나 둘로 나뉘게 된다. 미소를 띠게 하는 좋은 기억은 ‘추억’이란 이름으로 포장되고, 슬프고 화나는 기억은 ‘상처’란 말로 덮어진다. 즐거웠던 추억은 오랜 기간 동안 기억하고 싶지만, 아픈 상처는 언제나 빨리 잊고 싶기 마련이다. 그래서 ‘망각’을 신이 주신 최고의 선물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자신의 기억이 아닌 인터넷에 남긴 기억(데이터)은 절대로 지워지지 않는다. 정보의 바다인 인터넷은 한번 기록되면 완벽한 삭제가 불가능하다.

    빅데이터 및 클라우드 시스템의 발달로 인터넷에 기록을 올리는 순간, 전 세계의 검색엔진과 서버들이 기억하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매일경제 주최 세계지식포럼에 참석했던 영국 옥스퍼드대 빅토르 마이어 쇤베르거 교수도 바로 이런 점을 근거로 디지털 정보의 소멸 필요성을 주장했다. 그는 “빅데이터는 인간의 삶을 감시할 뿐 아니라 용서의 미덕도 말살할 수 있다”며 인터넷에 남겼던 과거의 데이터가 현실에서의 삶을 위협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모든 정보를 기록하고 보관하는 인터넷에도 스스로의 데이터를 지울 수 있는 망각 기능이 필요하다고 밝힌 것이다. ‘잊혀질 권리(Right to be Forgotten)’가 바로 그것이다.

    온라인 기록 삭제 대행 서비스 ‘잊혀질 권리’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9년부터다.

    쇤베르거 교수가 2009년 발표한 자신의 저서 를 통해 사라지지 않는 디지털 정보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기업들이 인사관리 분야에 빅데이터가 활용되면서 개인들이 남긴 인터넷 기록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승진심사와 입사 과정에서 심사대상이 작성했던 과거 인터넷 기록들이 검토항목에 포함돼서다.

    다시 말해 과거에 남긴 기록이 현재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이에 따라 인터넷 기록을 지워주는 ‘잊혀질 권리’ 비즈니스가 주목받고 있다. 인터넷에 퍼진 사생활 정보를 일일이 찾아 삭제해주는 것이다.

    사실 개인이 과거에 남겼던 게시물 모두를 찾아서 해당업체들에게 일일이 삭제요청을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여기에 SNS를 통해 작성했던 글들의 경우, 작성과 동시에 무한 배포돼 막는데도 한계가 있다. ‘게시물 삭제 대행 서비스’는 바로 이 일을 대신해 준다.

    대표적인 업체가 산타크루즈캐스팅컴퍼니(이하 산타크루즈)다. 연예인·모델 에이전시로 출발한 산타크루즈는 소속 연예인의 평판관리 차원에서 이 서비스를 개발했다. 하지만 이 사업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면서 최근에는 악성댓글 삭제는 물론, 사후 디지털 기록(디지털 유산), 평판관리에 이르기까지 잊혀질 권리에 대한 대부분의 내용을 모두 다루고 있다.

    김호진 산타크루즈 대표는 “빅데이터 기술을 활용해 자체 개발한 솔루션에 의뢰인의 이름을 입력하면 관련기사, 블로그, SNS 게시물 등이 모두 등장한다”며 “의뢰인의 위임장을 받아 해당 운영업체에 삭제를 요청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고 밝혔다. 산타크루즈는 현재 40명 이상 연예인을 비롯해 25여 곳 기업체 사이트의 삭제대행을 맡고 있다.

    맥신코리아 역시 이와 비슷하다. 다만 고객이 정치인들을 대상으로 평판관리를 한다는 점이 차이가 있을 뿐이다. 맥신코리아측 관계자는 “정당 공천을 받거나 주민의 표를 받는데 온라인 평판이 상당히 중요해졌다”며 “나쁜 평판을 제거하고 좋은 평판으로 대체하는 것은 물론, 삭제가 안 될 경우 좋은 글을 올려 ‘밀어내기’를 한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아예 시간이 흐르면 자동으로 삭제되는 서비스가 등장했다. 미국에서 무서운 기세로 성장하고 있는 SNS ‘스냅챕(Snap Chat)’이 그것이다. 스냅챕을 이용하면 1~10초 이내에 메시지가 사라진다. 이밖에도 페이스북의 ‘Poke’, 트위터의 ‘Spirit Foe Twitter’, 마이피플의 5초메시지 등은 물론 ‘톡히’ ‘샤틀리’ ‘비밀톡’ 등 유사한 기능을 갖춘 SNS 앱들도 등장하고 있다.

    디지털 기록, 완전 삭제 어려워 문제는 한번 작성된 디지털 기록은 완전한 삭제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빅데이터 및 클라우드 시스템이 발전하면서 인터넷 기록이 동시다발적으로 세계 곳곳에 퍼져나가기 때문이다.

    특히 계정을 삭제해도 글은 다른 서버에 남을 수 있다는 점에서 어려움이 따른다. 대선 개입 의혹을 받고 있는 국정원 직원들의 트위터 계정들이 삭제된 후에도 드러난 이유다.

    관련 법안에 대한 발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이미 지난 9월 미성년자에 한해 ‘잊혀질 권리’를 보장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국내에서도 지난 6월 새누리당 이노근 의원이 ‘사용자가 인터넷에 게시한 정보(저작물)의 삭제를 서비스 제공자에게 요구하면 즉시 이행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정보통신망법과 저작권법 개정안을 상정해 국회에 계류 중이다.

    LG경제연구원 성낙환 책임연구원은 “잊혀질 권리와 관련해 모든 것을 법규로 규제하기는 어려우며, 또 다른 부작용을 만들 수도 있다”며 “논란이 많은 사안에 대해서는 발생 가능한 부작용을 충분히 고려해야 하며, 신기술 및 새로운 서비스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전했다.

    [서종열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9호(2013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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