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동산·신약… 사업마다 대박 통 큰 M&A ‘중국의 워런버핏’…궈광창(郭廣昌) 푸싱그룹 회장
입력 : 2013.12.12 14:24:47
-
푸싱그룹은 지난 5월 프랑스 악사보험 산하 사모펀드(PEF)와 공동으로 클럽메드 경영권을 인수했다. 총 인수대금은 당시 주가에 30% 가까이 프리미엄을 얹은 5억4130만유로(약 7700억원)에 달했다. 앞서 클럽메드 주식 9.96%를 보유하고 있던 푸싱그룹의 지분율은 46%로 높아졌다. 유럽 재정위기 여파로 지난 2008년 이후 실적 부진에 신음하던 클럽메드가 중국 민영기업 인수 덕분에 새로운 발전의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클럽메드는 이미 중국에서 2개의 리조트를 운영하고 있다. 헤이룽장성 하얼빈에서 남동쪽으로 200㎞ 떨어진 야부리에 스키 리조트가 있고, 광시좡족자치구 구이린(桂林)에도 올해 새 리조트가 문을 열었다. 클럽메드는 중국 내에서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민영기업 중 가장 성공한 기업 푸싱그룹은 최근 ‘동양의 하와이’로 불리는 중국 하이난도에, 두바이에 있는 것과 똑같은 7성급 리조트를 건설하기로 해 관심을 끌기도 했다. 세계적인 호텔그룹 커즈너와 총 16억달러(약 1조7000억원)를 들여 하이난도 싼야시 하이탕만에 7성급 아틀란티스호텔을 짓기로 했다.
아틀란티스호텔은 커즈너그룹이 운영하는 호텔 체인으로 전 세계에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와 중미 카리브해 바하마 2곳에만 있는 초호화 7성급 리조트다. 호텔 투자 개발과 건설은 푸싱그룹이 맡고, 호텔 운영은 커즈너가 맡는다. 이 호텔이 2016년 완공되면 객실 수 1300개, 직원 수 3500명의 초호화 호텔이 중국에 탄생하게 된다.
푸싱그룹은 이제 부동산 분야 큰손으로 통한다. 지난 10월 뉴욕 맨해튼에 있는 고층 빌딩 ‘원 체이스 맨해튼 플라자’를 JP모건체이스로부터 7억2500만달러(약 7700억원)에 인수했다. 1960년대 완공된 이 60층짜리 빌딩은 뉴욕 월스트리트를 상징하는 건물이다. 푸싱 측은 “건물의 입지가 워낙 좋은 데다 인근 교통환승센터 개보수 작업이 이뤄지고 있어 건물 자산가격이 계속 상승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이쯤 되면 푸싱그룹이 도대체 어떤 기업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푸싱그룹은 주로 국유기업이 대기업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중국에서 민영기업 가운데 가장 성공한 기업으로 꼽힌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중국의 워런버핏’으로 유명한 궈광창(郭廣昌·46) 푸싱그룹 회장이 있다. 아무런 배경도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중국 최고의 민영기업가로 성공한 그의 인생 스토리는 많은 중국인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지난 1967년 저장성 둥양 시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난 궈 회장은 어려서부터 공부를 잘해 상하이 명문 푸단대 철학과에 입학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 곧바로 경영대학원(MBA)에 들어가 석사 학위를 따낸 그는 다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미국 유학을 준비했다. 유학을 가기위해 비자 수속 절차를 밟던 중 그의 인생 항로를 바꾸는 ‘운명적’ 사건이 일어났다. 바로 덩샤오핑의 남순강화(南巡講話)였다.
남순강화는 덩샤오핑이 1989년의 톈안먼(天安門) 사태 후 중국 지도부의 보수적 분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1992년 1월 말부터 2월 초까지 한 달여 간 상하이와 광둥성 선전 시, 주하이 시 등 남부 경제특구를 순시하면서 개혁과 개방에 매진할 것을 역설한 담화를 말한다. 시진핑 국가주석도 개혁개방을 강조할 때면 당시 담화 내용 중 일부를 자주 인용할 정도로 남순강화는 중국의 개혁개방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일대 사건이다.
궈 회장은 이 남순강화에 감명을 받아 유학을 포기하고 창업의 길을 선택했다. 유학 자금으로 마련해두었던 3만8000위안(약 660만원)이 종자돈이었다. 그는 푸단대 졸업 동기생 4명을 규합해 그 해 ‘광신과학기술발전유한공사’를 설립했다. 시장 조사와 컨설팅 업무를 내세운 이 회사 설립에는 궈 회장과 함께 푸단대 동기생 4명이 참여했다. 량신쥔(梁信軍)과 왕췬빈(汪群斌), 판웨이(范偉), 탄젠(談劍)이다. 궈 회장을 포함한 5명의 창업 동기생들은 지금도 핵심 경영진으로 푸싱그룹을 지키고 있다.
궈 회장은 이미 학교 재학시절부터 교내 시찰단을 이끌고 전국 각지를 돌아본 경험이 많았다. 그 때 경험을 바탕으로 시장조사와 컨설팅에 나서자 회사는 초기부터 많은 고객을 확보할 수 있었다. 창업한 지 10개월 만에 100만위안(약 1억7000만원)의 수익을 올렸다. 놀라운 결과였다. 그가 만약 여기에 만족했다면 지금의 푸싱그룹이 탄생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는 컨설팅사업에 뛰어든 회사가 늘어나는 것을 보고 경쟁 심화로 계속 큰 수익을 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신에 그가 눈여겨본 시장이 있었으니 바로 부동산이다.
개혁개방 초기를 맞아 당시 상하이는 자고나면 새로운 아파트와 빌딩이 들어설 정도로 건설 붐이 일고 있었다. 이에 착안해 컨설팅으로 벌어들인 100만위안을 초기 자본금으로 부동산 회사를 차렸다.
당시만 해도 부동산 개발업자가 건물을 지으면 한 채를 통째로 기업 등 큰손에 판매하는 것이 전형적인 분양 방식이었다. 그러나 궈 회장은 신흥 부자들이 속속 탄생하고 있는 점을 감안해 아파트나 건물을 가구 혹은 단위별로 개인과 기업에 분할해 분양하는 방법을 도입했다. 신문과 잡지 등에 건물 분양 광고를 내고, 잠재 고객들에게 홍보 우편물도 발송했다. 지금은 일상적인 방법이지만 당시로는 어떤 업체도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마케팅 기법이었다.
이런 분양 방식은 당시 중국인들의 소득 증가 추세와 맞물려 대성공을 거두었다. 부동산업에 진출한 뒤 그는 순식간에 1000만위안(약 17억원) 이익을 손에 넣었다. 초기 투자금을 1년 남짓한 기간에 10배로 불린 것이다.
다시 새로운 분야 진출을 모색하던 궈 회장은 이번엔 생물의약 분야를 선택했다.
그는 1993년 자신의 모교인 푸단대 생명대학원에 모종의 제안을 했다. 돈은 푸싱이 대고, 기술은 푸단대가 제공하는 합작을 추진한 것. 푸싱은 DNA 진단과 검사설비 등을 지원하고, 푸단대는 기술인력을 제공하는 협력을 통해 새로운 개념의 B형 간염 진단시약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개발 성공과 동시에 1994년 푸싱제약으로 회사 이름을 바꾸고 본격적인 의약기업으로서 새 출발을 했다.
클럽메드
푸싱제약은 지금도 그룹의 주력 회사로 성장을 지속해 나가고 있다. 지난 2011년 푸싱제약의 매출액은 73억4000만위안(약 1조2700억원)에 달했다. 현재 중국 제약업계 톱5 기업으로 성장했다. 전체 매출의 65%를 차지하는 의약 제조 분야 이외에 의약품 유통과 진단시약 제조, 헬스케어 등 4개 사업분야를 주력으로 영위하고 있다. 푸싱제약의 자회사 시노팜이 맡고 있는 의약품 유통분야도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해나가고 있다. 현재 30개 지방에서 50개의 유통센터를 운영하는 중국 최대 의약품 유통업체가 됐다. 중국 전체 병원에 74%비중의 의약품을 공급하고 있을 정도다.
최근 들어서는 헬스케어 서비스에 새롭게 눈을 떴다. 소득 상위 3% 부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중국의 첫 프리미엄 서비스 병원도 개설했다. 푸싱 산하에는 현재 제약업체만 20여 개에 달한다. 대부분 M&A 방식으로 사들인 기업이다.
푸싱은 2000년대 들어 전통 제조업으로도 눈을 돌렸다. 2002년 철강업체인 탕산젠룽 주식 30%를 사들인 것을 신호탄으로 2003년에는 장쑤성 난징에서 가장 큰 업체로 통하는 난징철강을 18억달러에 인수했다. 2007년에는 하이난광업도 사들였다. 새로운 성장의 활력소가 필요할 때마다 M&A로 사세를 불려나갔다.
2000년대 후반 들어서는 여행업과 금융업, 자산관리업 등 주로 서비스업에 새롭게 도전했다. 촹푸투자와 싱하오자본, 싱이자본, 푸싱프루덴셜신용기금, 푸싱카이레이기금, 즈잉자본, 궁잉자본 등 연달아 설립한 자산관리회사의 총 기금 규모가 160억위안(약 2조8000억원)을 넘어섰다. 이 과정에서 푸르덴셜이나 칼라일 같은 미국의 유명 금융업체들과 합작을 했다. 2007년에는 실적 악화에 시달리던 융안보험에 투자했고 지금은 융안보험이 짭짤한 이익을 내는 알짜회사로 변모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그를 중국의 워런버핏이라고 치켜세운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궈 회장 스스로도 “푸싱그룹을 워런버핏이 운영하는 버크셔 해서웨이처럼 키우고 싶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다. 그는 앞으로 10년 이내에 산업과 투자, 보험 등을 결합한 새로운 사업모델을 완성한다는 계획이다.
지난 2011년에는 M&A를 통한 투자를 대폭 강화하기 위해 존 스노 전 미국 재무장관을 이사회에 영입하기도 했다. 이후 그리스 명품업체 폴리폴리 지분을 인수했다.
궈 회장이 중국의 워런버핏으로 불리는 가장 큰 이유는 그가 가치투자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가치에 비해 저평가돼 있는 기업을 발굴해 오랫동안 묻어두는 방식이다. 그는 “최소 5년에서 길게는 20년 정도 내다보고 투자한다”고 말했다.
궈 회장은 또한 투자한 이후에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대상을 좋아한다. “투자 이후 아무런 관리를 하지 않아도 되는 기업이 실질적인 수익률은 가장 높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투자 후 관리를 해야 한다면 원가가 들어간다. 꼭 돈이 아니더라도 개인의 시간을 투입해야 한다면 비용이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같은 수익률을 낼 수 있는 투자 대상이라면 사후 관리가 필요 없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궈 회장은 요즘 태극권에 푹 빠져 있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 권유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어느새 태극권 예찬론자가 됐다. 사회공익사업에도 열심이다. 중국광차기금회, 여우청기업가기금회, YBC청년창업기금회 등의 부이사장을 맡고 있다. 지금까지 사회에 기부한 돈이 6억위안(약 1000억원)을 넘는다. 그는 현재 중국 부호 순위에서 178억4000만위안(약 3조1000억원)으로 26위를 차지하고 있다.
[정혁훈 매일경제 베이징 특파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9호(2013년 12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