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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나 국립중앙박물관 관장 | 한류, 모두가 주목하는 지금 우리것 알릴 해외전시 절실
입력 : 2013.12.12 14:2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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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고 김재원 박사의 셋째 딸인 그녀는 2011년 취임 당시 대를 이은 부녀 관장으로 화제가 된 인물이다. 큰 언니는 불교조각 연구의 권위자인 김리나 홍익대 명예교수. 2007년엔 자매가 나란히 문화재위원으로 위촉되며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제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는 이미 국립중앙박물관장이셨어요. 그 땐 덕수궁 석조전이 박물관이었는데, 덕수궁 연못에 스케이트를 타러 가서 들여다보면 전시 준비에 바빠 제가 온 걸 모르시곤 했어요.”
함흥에서 태어난 김재원 박사는 일제강점기에 독일 뮌헨대에서 고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고국에 돌아와 1945년부터 1970년까지 25년간 국립중앙박물관장으로 재직하며 광복과 6·25 전쟁 등 열악한 시대에 유물을 지키고 키워냈다. 박물관이 뭐하는 곳인지 무지한 이들이 수두룩할 때였다.
취임 당시 “아버지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이란 말로 영광과 부담을 대신했던 김 관장은 그 동안 ‘재미있고 살아있는 박물관’ ‘다시 찾고 싶은 박물관’이란 콘셉트로 전시에 힘을 쏟았다. 최근엔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의 <황금의 나라, 신라> 전시회를 추진하며 화제와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국보 83호 반가사유상의 국외 반출 논란 때문에 차질이 예상됐던 <황금의 나라, 신라>전은 우려와 달리 승승장구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기원전 약 57년부터 서기 935년까지 한반도를 지배한 신라는 세계에서 가장 오랜 왕조 중 하나”라며 전 세계에 신라의 등장을 알렸고, 월스트리트저널은 금동반가사유상에 대해 “앉아 있지만 정적이지 않고 팽팽한 긴장감을 나타낸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다. 김 관장은 “한류가 확산된 지금이 가장 좋은 시기”라며 “한국이 문화의 나라라는 걸 전 세계에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터뷰는 <황금의 나라, 신라>전이 열리기 열흘 전에 진행됐다. 당시 김 관장은 국립나주박물관 개관 준비로 짧은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평일인데도 관람객이 꾸준합니다. 직장인 단체관람도 가능합니까. 물론 직장인들도 많이 찾습니다. 단체관람도 물론 가능하죠. 국립중앙박물관 고객지원팀에 연락하면 모든 편의를 마련해줍니다. 수요일에 야간개장을 하는데, 버스가 한 대 있어서 오라는 곳으로 모시러 갑니다.
관장 취임 후 전시에 많은 공을 들였다는 평입니다. 전시와 디스플레이 부분은 많이 달라졌어요. 예를 들면 금관, 불교조각, 반가사유상이 있는 곳은 네덜란드의 뮤지엄 디스플레이 전문업체가 디자인했습니다. 물론 돈이 드는 일이죠. 공무원 입장에서 가장 어렵고 안타까운 부분이 조달청 입찰인데, 가격이 싼 곳을 우선시하기 때문에 좋은 디자인이 나올 수 없었어요. 그래서 이 특별한 방만은 박물관후원회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후원회에서 3억원을 지원해준 덕에 마음껏 해볼 수 있었지요.
후원회원들이 궁금한데요.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이 후원회장이세요. 회장은 매번 바뀌지만 소장가이자 후원회원들은 꾸준합니다. 후원회 안에 YFM(Young Friends of Museum)이라고 40대 젊은 기업인들이 주축인 모임이 있는데, 허명수 전 GS건설 사장이 회장이고 윤석민 SBS미디어홀딩스 부회장, 홍정욱 헤럴드 회장 등이 후원해주고 있어요. 개인 소장품도 기증하고 대신 유물을 구입해 기증해주기도 합니다. 앞서 3억원은 YFM에서 지원해줬어요.
그리고 보니 국립중앙박물관의 유물구입비가 도마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올해는 28억원이었습니다. 어감은 억 소리 나지만 그 돈으로는 좋은 도자기 한 점도 제대로 살 수가 없어요. 늘 그 부분이 문제인데,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은 우리보다 15배나 많습니다. 유물구입비가 너무 많다는 인식이 있는 것도 같지만 실제로 유물의 가격은 점점 오르고 있어요. 그 점에서 투자의 한 방법이 될 수도 있겠지요. 일례로 경제상황이 좋지 않은 일본의 유물들이 상대적으로 가격이 싼 데, 내놓은 게 많아 구입해야 하는 시기거든요. 그런데 돈이 없습니다. 늘리려고 노력은 하고 있는데….
유물 환수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해외에서 환수하자는 말들이 많은데, 지금 일본엔 개인소장가들이 내놓은 한국유물들이 꽤 많아요. 실제로 여러 점 구입하기도 했습니다. 사와야죠. 하지만 당장 급한 게 아니니 자꾸 뒤로 밀리는 것 같습니다.
김 관장은 “유물을 구입해야한다”고 반복하며 국립중앙박물관의 현실을 토로했다. 설립이후 발굴이 우선이던 국립중앙박물관은 현재 소장품 중 반 이상이 발굴품이다. 자연스레 유물구입은 뒷전이었다. 덕분에 발굴할 수 없는 그림분야가 취약점으로 꼽힌다. 김 관장은 그런 이유로 국립중앙박물관에는 고려불화가 한 점도 없고 삼성미술관 리움에 몇 점이 있는 걸로 안다며 안타까워했다.
학문적으로 국제화의 지름길을 꼽는다면. 서양미술사와 한국근현대미술사를 공부하며 느낀 건 외국에서 공부한 서양미술사 전공자들은 영어로 논문이 가능하다는 거예요. 하지만 한국근현대미술사는 국내에서 공부하기에 영어논문이 쉽지 않습니다. 제자들에겐 돈 주고 번역을 하더라고 써야 한다고 말합니다.
지금의 학문은 국내에서만 머물러선 안 됩니다. 영어 논문을 발표하고 자꾸 해외에 나가 한국에도 이 분야의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는 걸 알려야죠. 우리끼리 경쟁해야 할 시기는 지나갔습니다.
그런 점에서 동아시아 3국을 비교한다면 어떻습니까. 중국과 일본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죠. 문화나 학술적인 면에서 중국은 아직 멀었습니다. 그들이 해외에서 발표하는 걸보면 느낄 수 있어요. 하지만 중국의 장점은 역시 사람이죠. 연구하는 이들이 많다는 게 가장 큰 강점입니다. 일본도 그 점은 같아요. 예를 들어 미술사를 전공하는 이들이 우리의 수십 배나 됩니다.
창조경제가 화두인 시기에 가장 근접한 문화가 박물관일 것 같습니다. 박물관의 역할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는데요. 한국은 서울과 지방의 문화차이가 아직은 분명합니다. 유럽이나 일본의 경우 그 차이가 거의 없거든요. 이른바 선진국의 조건 중 하나인데, 그래서 우린 자꾸 서울로 향하는 것 같습니다. 그 격차를 좁히는 게 박물관의 역할이겠죠.
새로운 전시회 준비도 한창이라고 들었습니다. 12월 중순에 <한국의 도교전>을 준비하고 있어요. 타이틀을 ‘행복으로 가는 길’이라 정했습니다. 내년 여름에는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서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 작품에 대한 전시가 있을 예정이고 또 하나, 국립중앙박물관에선 처음으로 ‘청화백자전’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직장인들의 많은 참여를 기대해도 되겠죠.(웃음) [안재형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9호(2013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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