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의 스타 CEO]⑪ 리옌훙(李彦宏) 바이두(百度) 회장 | 구글도 몰아냈다… 바이두의 독주 이제 시작

    입력 : 2013.09.03 09: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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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인터넷 검색 시장에서 70% 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바이두는 올해 들어 성장세가 주춤하는 듯했으나 이내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바이두는 지난 1분기에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0% 증가한 59억7000만위안(약 1조900억원) 매출을 올렸다. 순이익은 8.5% 증가한 20억4000만위안(약 3700억원)을 기록했다. 실적 증가율이 시장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면서 성장성에 한계가 온 것이 아니냐는 평가가 뒤따랐다. 시장 전문가들은 바이두의 실적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2분기에는 보란 듯이 시장 예상치를 뛰어넘는 실적을 보이면서 다시 안정된 궤도로 올라섰다.

    2분기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39% 증가한 75억6000만위안, 순이익은 전년에 비해 4.5% 감소한 26억4000만위안을 기록했다. 매출액과 순이익 증가율이 지난해보다 둔화되긴 했지만 중국 경제가 약화되는 상황에서도 선전을 펼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앱스토어 인수 모바일로 세력 확장 한때 수백 여 검색사이트가 난립했던 중국 인터넷 시장을 단번에 장악한 데 이어 ‘글로벌 자이언트’ 구글까지 중국 시장에서 몰아낸 바이두의 저력이 발휘된 순간이다.

    바이두를 따라잡기 위해 중국 검색사이트 2, 3위 업체가 추진하던 합병 계획이 무산되면서 바이두에 대한 견제는 앞으로 더욱 어려울 전망이다. 업계 2위인 치후360은 3위 소후닷컴의 검색서비스 ‘소우거우’를 인수하려고 했지만 소후닷컴의 반대로 실현되지 못했다. 두 회사의 검색시장 점유율이 각각 15%와 9%로 힘을 합치면 24%에 달하므로 바이두에 당당히 맞설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됐지만 당분간 바이두의 독주를 견제하기는 어렵게 됐다.

    반면에 바이두는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모바일 시장에서도 세력을 빠르게 확장해 나가고 있다. 지난 2분기 매출액이 시장 기대치를 넘어선 것도 스마트폰 보급 확대에 힘입어 모바일 광고 수입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모바일의 가능성을 확인한 바이두의 발걸음도 빨라졌다. 바이두는 홍콩 증시에 상장된 앱스토어 개발운영업체인 ‘91와이어리스’를 인수하기로 했다. 전문가들은 바이두의 3분기 매출액은 2분기보다 더 늘어난 87억위안을 훌쩍 넘어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런 바이두를 이끌고 있는 인물이 바로 리옌훙(李彦宏) 회장이다. 그는 지난해 미국 포브스가 선정한 ‘중국 최고 기업인’에 뽑혔다. 중국판 포브스인 후룬리서치는 그의 재산을 510억위안(약 9조3000억원)으로 평가하고 중국 내 3위 자리에 올렸다. 미국에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이 있다면 중국엔 리 회장이 있는 셈이다. 리 회장은 중국 최고경영자(CEO)의 한 뿌리를 이루고 있는 해외 유학파의 대표주자다. 1969년에 산시(山西)성 양취안시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공부를 잘해 베이징대 정보관리학과에 들어갔다. 졸업한 뒤에는 중국 내에서 취직이 보장됐음에도 더 큰 꿈을 안고 곧바로 미국 버펄로 뉴욕주립대학 컴퓨터공학과 대학원에 들어갔다. 그의 나이 23세 때의 일이다.

    여기서 석사 과정을 밟으면서 그는 인터넷 검색 엔진의 미래를 발견했다. 이제 막 인터넷 검색 엔진이라는 개념이 보급되기 시작하던 때였다. 석사 학위 취득과 함께 그는 인터넷의 본고장인 미국 실리콘밸리로 향했다.

    이곳에서 그는 인터넷 검색 엔진 산업의 발전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세계적인 인터넷 기업 인포시크(Infoseek)의 베테랑 엔지니어로 활약했다. 그가 다우존스 고문으로 있으면서 디자인한 실시간 금융시스템은 지금도 월스트리트에 있는 대기업들이 광범위하게 활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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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있는 검색으로 생활을 바꾼다 그는 실리콘밸리에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1999년 <실리콘밸리 비즈니스 전쟁>이라는 책을 저술했다. 리 회장은 이 책에서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어떤 실패도 허용하는 문화와 모든 것을 제로 베이스에서 시작하는 관행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실리콘밸리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비즈니스 전쟁을 목격하면서 정보 경제의 발전 속도를 감안할 때 나도 비즈니스 전쟁에 뛰어들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적었다.

    리 회장은 자신이 책에서 밝힌 대로 그해 말 ‘과학기술을 통해 인간의 생활을 바꿔보겠다’는 꿈을 안고 중국으로 돌아왔다. 중국을 떠난 지 8년 만의 귀환이었다. 그는 주저 없이 투자금 120만달러를 모아 친구인 쉬융과 함께 바이두를 창업했다.

    창업 6개월 만에 그는 중국 실정에 가장 잘 들어맞는 검색 엔진 개발에 성공했다. 바이두라는 이름은 송나라 시인 신기질(辛棄疾)의 시구에서 따왔다. ‘무리 속에서 그를 수백 수천 번 찾았는데, 무심코 뒤를 돌아보니 등불 아래 그가 있더라’는 시구 중 ‘수백번(百度)’이라는 말에서 따온 것이다. 필요한 것을 찾는다는 검색사이트의 이미지를 잘 살린 회사명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가 바이두를 창업했을 때 모토는 ‘살아있는 검색으로 생활을 바꾼다’는 것이었다. 인터넷 이용자들이 가장 많이 사용할 서비스가 바로 검색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일찍이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가 다른 엔지니어들과 차별화됐던 것은 기술 개발보다 비즈니스 전쟁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꿰뚫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실리콘밸리에서 활동하던 시절 월스트리트저널(WSJ)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신문을 통해 마이크로소프트(MS)가 어떻게 IBM에 대항하고 있는지, 또 썬 마이크로시스템즈(SUN)에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등 비즈니스 전략을 읽을 수 있었다. 리 회장은 뒷날 “기술은 결정적 요소가 아니다. 비즈니스 전쟁에서는 전략을 어떻게 구사하는지가 승부를 결정하는 진정한 요소다”라고 말했다.

    그가 바이두를 창업하던 당시는 미국에서도 검색 엔진 회사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던 때였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면서 “나는 어릴 때부터 강한 승부욕이 있었다. 사람들이 안 된다고 하는 일에 더욱 성공하고 싶은 욕구가 강했다”고 기억했다.

    주변 사람들은 그를 볼 때마다 ‘예지(叡智·지혜로우면서도 감각적인 능력)’라는 단어를 떠올린다고 한다. 그의 파트너인 쉬융은 “리 회장은 기술이 있을 뿐만 아니라 예리한 감각과 뛰어난 판단력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임원은 “리 회장이 비록 기술에 관련된 일을 하고 있었지만 그의 비즈니스 능력과 시장을 보는 시야는 남달랐다”며 “검색 산업에서도 다른 비즈니스와 마찬가지로 경쟁의 규칙과 규율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바이두가 처음부터 지금의 모습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바이두는 창업 초기에 다른 인터넷 사이트에 검색 엔진을 제공하는 일종의 소프트웨어 회사였다. 바이두의 운명을 결정지은 것은 검색 엔진 제공 업체에서 검색사이트로 변신한 일이었다. 그러나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 36호에서 계속... [정혁훈 매일경제 베이징특파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6호(2013년 0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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