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nglish]조기 영어교육 100만원짜리 학원 효과는?

    입력 : 2013.04.08 15: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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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 아들은 어디 다녀? 우리 딸은 OO영어유치원 2년차야.” “우리 아들도 이번에 그 유치원 입학했어. 원어민 선생님이 믿을 만 해서 다행이야.”

    여기서 잠깐, 국내에 영어유치원이란 곳이 과연 존재하고 있을까? 법적으로 영어유치원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엄연히 존재한다. 그러니 영어유치원이란 표기는 당연히 불법이다. 교육과학기술부 관계자의 말을 빌면 “영어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과정에 포함되기 때문에 영어유치원이란 단어는 쓸 수 없고 유아영어학원이 맞는 표현”이다. 지난해 3월 개정된 유아교육법에는 ‘이 법에 의해 설립된 유치원이 아닌 기관이 유치원 또는 그와 유사한 명칭을 사용할 경우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그럼에도 아이를 둔 학부모들 사이에는 영어유치원이란 단어가 일반적이다. 이른바 영어사교육이다.

    국책연구기관인 육아정책연구소의 ‘영유아 보육·교육 비용 추정 및 대응방안 연구’(지난 7월부터 전국 125개 지역, 영·유아 3392명을 대상)를 살펴보면 특별활동과 영어 놀이학원, 문화센터, 학습지 등에 들인 영유아 사교육비는 연간 약 2조7000억원이나 됐다. GDP의 0.22% 수준이다. 지난해 고교생 사교육비 총 규모가 5조1679억원이었으니 절반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영아를 키우는 부모의 41.9%, 유아를 키우는 부모의 86.8%가 유치원과 어린이집 정규 비용 외에도 사교육·보육비를 지출한다고 답했다. 나이별로 집계해보면 영아(36개월 미만)는 5500억원, 유아(36~72개월)는 2조1700억원을 사교육비로 지출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발표한 지난해 사교육비 총 규모는 19조원, 3년째 감소추세라지만 취학 전 영유아에 대한 사교육비는 제외된 수치다.

    사교육 중 유아영어학원으로 포커스를 맞추면 벌어진 입이 닫히질 않는다. 지난해 10월 교육과학기술부가 국회교육과학기술위원회 김태원 의원에게 제출한 ‘전국 유아영어학원 현황’(2012년 현재)을 살펴보면, 유아영어학원은 전국에 총 225곳이 성업 중이다. 좀 더 세분화하면 서울(96곳)과 경기도(54곳)에 집중됐고, 부산 16곳, 인천 15곳, 대전 13곳, 경남 8곳, 충남에 5곳이 운영되고 있었다. 서울의 경우 강동지역이 가장 많은 21곳, 강남지역은 가장 많은 1424명의 어린이가 학원에 다니고 있다.

    평균 학원비(교습비+급식비+피복비+차량비+기타 재료비 등)가 가장 비싼 지역은 서울 강동지역으로 128만원, 서울 강남지역은 평균 학원비가 118만원으로 조금 낮았지만 교습비만 놓고 보면 102만원으로 가장 비쌌다.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아야 할 것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현실은 실로 독하다. 영어사교육에 매달리는 학부모들의 세태는 종종 TV드라마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최근에 방영된 KBS의 드라마 연작 시리즈에도 교육열이 치열한 대한민국 엄마들의 현실이 반영됐다. 이른바 강남엄마들의 이면이 드러난 드라마에는 워킹맘이 아이의 인생에 올인하기로 결심하고 전업주부가 되는 과정이 담겨있다. 우여곡절 끝에 강남 초호화 유치원에 입학했으나 교복, 교재, 재료비 등을 포함한 원비가 200만원. 결국 에듀푸어로 전락한 주인공의 삶에 시청자의 공감이 녹아들었다.

    그렇다면 영유아, 심지어 태아 때부터 시작된다는 조기 영어교육은 제대로 효과가 있는 것일까. 한달에 100만원 이상의 원비를 내고 입학시킬 만한 가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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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치동 아이들 코스가 있다? 서울 강남의 한 유명 유아영어학원에 근무하는 A교사는 “PSA, 게이트, 랜퍼스 등이 이른바 대치동 엄마들이 꼽는 영어유치원”이라며 “5세에서 7세까지의 어린이들이 길게는 3년간 영어를 공부한다”고 전했다. 만 3~6세의 아이들이다. 3곳 중 1곳은 영재테스트를 통과해야 입학할 수 있었다. 각각 학원비는 약 120만~130만원. 평균 10~15명이 한 반으로 구성돼 원어민 담임교사와 한국어 담임교사의 지도, 생활 도우미 선생님의 도움을 받고 있다. 매해 경쟁률은 모집인원에 따라 다르지만 선착순으로 진행되는 곳은 모집 전날부터 줄서서 기다리는 풍경이 연출되기도 한다.

    유아영어학원은 보통 하루 4교시 수업이 진행되고 매달 견학이나 소풍 등 이벤트를 갖는다. 공통으로 진행되는 수업은 Phonics(발음), Math(수학), Art(미술), Science(과학), Gym(체육) 등이다. 유아영어학원이 유치원에 해당한다면 5세 미만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영어어린이집도 존재할까.

    A교사는 “유아영어학원에 입학하긴 전 애플트리, 리틀소시에, 위즈아일랜드, 위버지니어스 등의 영어놀이학교를 마치고 오는 아이들이 많다”며 “각 유치원마다 좌뇌, 우뇌 발달사항, IQ 등 아이들의 성향을 파악해 테스트를 거쳐 우열반이 아닌 성향에 따른 반이 배치된다”고 이야기했다. 강남지역 관인 유치원의 한 관계자는 “강남엄마들의 네트워크는 이 시기부터 본격화된다”며 “집안 환경과 경제수준이 비슷한 엄마들이 삼삼오오 아이들의 진학코스를 관리하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강남엄마들이 선호하는 진학코스는 무엇일까. 이 관계자는 “유명 영어유치원을 졸업하고 영어수업이 자유로운 유명 사립초등학교로 진학한다”며 “국제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쳐 SKY 혹은 외국 유학으로 방향을 정한다”고 전했다.

    영어유치원을 졸업한 후 사립초등학교에 떨어진 아이는 영어 개인교사를 두고 지속적인 사교육이 이뤄지기도 한다. A교사는 “실제로 엄마들 중에는 영어유치원을 졸업한 후 원어민 교사나 유학을 다녀온 한국인 교사를 아이의 개인교사로 둬 매일 교습을 진행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과연 유아영어학원에서 조기 영어교육을 받은 아이들의 수준은 어떨까. 실제 A교사가 전한 유아영어학원 졸업생들 중 실력이 뛰어난 아이는 국내 중학생 저학년 수준. A교사는 “유아영어학원(영어유치원)은 다닐 때보다 졸업한 이후가 중요하다”며 “아이들이 익힌 수준을 잊지 않고 유지하려면 개인교습이나 영어학원, 어학연수 등 사교육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했다.

    이병민 서울대 영어교육과 교수는 “단기간에 걸친 조기 영어교육은 별반 효과가 없다”며 “4~6세보다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이 확실한 나이의 조기 영어교육이 효과적이며 영어를 접할 수 있는 환경이 지속적으로 유지돼야 성공할 수 있다”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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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EO와 셀러브리티의 자녀는 동기동창? 배우 김희선과 방송인 설수현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김희선의 딸과 설수현의 막내아들은 서울 서초동의 M유아영어학원 학부모다. 부모가 영어에 서툴면 아이를 입학시킬 수 없는 이곳은 이른바 ‘부모 면접’으로 유명한 곳이다. 한 달 원비만 140만~150만원이다. 황신혜, 김희애 등도 B유아영어학원 학부모란 공통분모가 알려지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영어유치원의 다음 행보는 사립초등학교. 강남 엄마들은 수업이 영어로 진행되는 영훈초등학교를 선호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아들이 재학 중인 이곳은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대표의 손녀, 두산그룹 손자들이 재학하며 유명세를 탔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과 배우 차승원은 둘다숭의초등학교 학부모였다. 이 학교에는 김희애 아들, 故 최진실의 아들과 딸, 박주미, 윤유선 등 배우들의 자녀도 다니고 있다. 가수 윤도현과 차인표·신애라 부부·이재룡·유호정 부부는 세종초등학교 학부모로 알려져 있다.

    [안재형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1호(2013년 04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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