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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홍석의 클릭 차이나]⑪ 의미없는 태자당·공청단 편가르기
입력 : 2012.12.28 14: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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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이런 식의 추측은 식후 여담으로 흥미가 있을지는 몰라도 중국 정치를 이해하는 데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선 해외 반체제 인사들과 홍콩 일부 언론들을 통해 도입된 ‘태자당’이나 ‘공청단파’식의 구분 방식이 중국의 정치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 지도층 내에 서로 다른 파벌이나 심지어 약간씩 다른 정치적 성향이 있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가정 출신이나 근무 경력의 특정적인 지위를 잣대로 정치성향의 편가르기를 한다는 것은 중국 정치의 내부 상황과 역사를 아는 사람이라면 동감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혁명원로의 출신자녀 여부를 기준으로 사람을 정치성향이 비슷한 ‘태자당’으로 분류하는 방식은 만약 중국에서 ‘문화대혁명’을 대표로 하는 치열한 당내 정치투쟁 역사가 없었더라면 어느 정도 맞을 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가정과 사회 교육환경(1960년대 초까지 중국에서 혁명원로들의 자녀는 보통 특수한 소학교나 중학교, 심지어 특수한 대학에서 함께 교육받는 경우가 많았다)이 비슷하면 정치성향이 비슷할 수 있고 서로 간에 통혼을 포함해 친밀한 ‘관시’를 형성할 가능성도 큰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중국에서 혁명원로들과 그들 자녀의 정치사회적 진로는 역대의 잔혹한 당내 투쟁 때문에 크게 다를 수밖에 없었다.
마오쩌둥과 그에 의해 억울한 죽음을 당했던 전 국가주석 류사오치의 자녀들이 서로 동일한 정치적 성향과 친밀한 관시를 유지할 수 있을까? 또 개혁개방 이후 많은 혁명원로의 자녀들이 정치 무대를 떠나 비즈니스에 참여하고 그 과정에서 이해관계가 서로 엇갈리는 문제들이 있기 마련인데 과연 출신 자체만으로 현재 한 사람의 정치적 성향을 단정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공청단파’식의 분류는 더욱 문제가 많다. 우선 중국 공청단은 연령이나 자격에서 아직 공산당에 가입할 조건이 되지 못한 청년들을 육성하는 정치조직이기 때문에 중국공산당의 ‘예비군’ 성격이 짙다. 역사적으로 중국공산당 지도부는 공청단 조직에 대한 배려와 관리를 매우 중시해 왔는데 청년 조직의 성격을 고려해 상대적으로 나이가 젊은 공산당 간부들을 각급 공청단 조직의 지도자로 파견해 왔다.
즉 중국에서 공청단 간부의 선발은 각급 공산당 지도부에서 결정할 일이며 공청단 지방 조직은 주로 그 지방 공산당 지도부의 지도와 감독을 받기로 되어 있다. 따라서 공청단 중앙조직이 각 지방 공청단 조직의 인사나 활동을 직접 관장할 권한이 없다. 결국 각 지방 공산당 조직기구와 별도로 공청단 조직의 간부들이 하나의 정치적 파벌이나 친밀한 ‘관시’를 형성할 여건이 전혀 구비되어 있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중국에서 엘리트들이 같은 연령대의 간부 후보군에 속해 있거나 동일한 지역 혹은 조직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서로 간에 치열한 경쟁관계가 존재하는데, 개혁 이후 중국에서는 실적을 기준으로 후계자를 선발 평가하는 제도가 ‘백락(伯樂)이 천리마를 알아보기’ 제도 이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명기할 필요가 있다. 물론 시진핑 지도부 구성원들이 철판처럼 일치한 정책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보장이 없고 장쩌민이나 후진타오 전 총서기들과의 개인적인 유대감이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를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전임 지도층의 개인 이익(혹은 자녀의 이익 보장) 등을 기준으로 ‘심복’을 골라 균형을 맞추었다는 식의 분석은 동의하기 힘들다. 중국에서 최고 지도층에 있다가 명예롭게 은퇴한 사람들에 대해 노후가 보장되어 있다는 점은 이번 18차 당대회에 리펑, 차오스, 주룽지 등 정치적 원로들이 대거 모습을 드러낸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새로운 지도부가 원로 자녀들의 위법행위마저 보장해 줄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마오쩌둥 시대에 명망이 있던 주더(朱德) 전인대 위원장의 손자가 1980년대에 법을 위반하자 결국 사형 당했던 전례가 있다.
한걸음 물러서서 설사 시진핑 지도부 내에 서로 다른 파벌이 존재한다고 가정해도 과연 그들 사이에 무엇이 다르며, 특히 중요한 개혁과제에 대해 어떤 다른 태도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단순한 편가르기로 설명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태자당’이니 ‘공청단’이니 하면서 편을 가르는 분석이 과연 의미가 있는지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중국에서 농민들을 중심으로 한 일반 저소득 계층이 시진핑 지도부에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은 새 지도부의 경력상 특징과 상당한 관계가 있다. 우선 1940년대 후반부터 1950년대 초에 출생한 이들 7명 중 6명은 청년시절 모두 농촌에서 농민들과 함께 고락을 함께 했던 경험이 있다. 농민이 대다수인 중국에서 개혁은 결국 가난한 농민들의 처지를 개선하는 것이 최우선인데 이는 덩샤오핑 시대의 개혁성공 경험에서 잘 나타난다.
또 시진핑 지도부가 개혁개방 이후의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학술 분위기 속에서 대학 본과, 심지어 박사 학력까지 취득하고 그중 6명이 문과 출신이라는 것도 주목할 점이다.
이는 지난 후진타오 지도부의 대다수가 농촌 생활을 겪어 보지 못했으며 모두 공과 출신으로서 계획경제 시대의 기술 관료의 경험을 가지고 있었던 것과 크게 대조적이다.
후진타오 집권 전반기인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중국 경제는 역사상 가장 빠르고 안정적인 경제 성장을 해 왔는데 중공업화와 도시화가 크게 진전되어 이미 미국 다음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했다. 이는 장쩌민 시대에 재정 분세제와 국유기업 개혁 등 중요한 개혁을 통해 이미 경제 고도성장의 기초를 마련했고, 또 WTO 가입을 실현해 ‘세계공장’의 국제적 환경을 정비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나 후진타오 지도부는 순리로운 경제 환경 속에서 마땅히 추진해야 할 근본적인 개혁을 소홀히 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집권 2기인 2008년부터는 미국발 국제 금융위기와 유럽 채무위기의 영향 때문에 안정적인 경제성장 확보에만 몰두하다 보니 기득권의 반발을 가져오기 쉬운 개혁 추진이 더 어려워진 것도 사실이다. 결국 후진타오 지도부는 개혁을 통해 경제 활력을 회복시키고 빈부격차, 부정부패 등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할 막중한 과제를 시진핑 지도부에게 물려준 셈이다. 최근 18차 당대회가 끝나기 바쁘게 시진핑이 국민들에게 ‘중국의 꿈’과 반부패 문제를 역설하고 리커창이 ‘개혁배당(改革紅利)’의 중요성을 특별히 강조하는 것은 바로 시진핑 지도부가 향후 헤쳐 나가야 할 길이 순탄치 않다는 것을 예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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