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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변신… 또 변신 박용만의 리더십
입력 : 2012.10.05 17:5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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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회장은 채용설명회에서 “두산의 변신은 불과 10여년 만에 일어난 두산의 업종 변화를 일컫는다”며 “과거 OB맥주 등 음료·주류사업(F&B)으로 대변되던 두산이 발전·담수·건설장비 등 인프라지원사업(ISB)으로 완전히 탈바꿈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올해로 창업 116년을 맞은 국내 최장수 기업 두산이 최근 10여년 만에 지난 100년보다 더 큰 변신을 통해 급격한 성장을 이루었으니 두산의 미래도 이 변신을 바탕으로 전개될 것이라는 게 그의 신념이다.
또 박 회장 자신이 M&A를 진두지휘한 주인공이기에 그 누구보다도 두산의 변신에 대한 애착이 크다.
박 회장의 M&A 결과 두산은 급격한 매출 신장, 글로벌 영업망 확대, 세계 1위 제품 다수 보유 등 대성공을 누리게 됐다. 국내 소비재 1위 그룹에서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명실상부한 세계적인 중공업 그룹으로 성장한 것이다.
위기에서 찾은 기회 사실 두산의 변신은 위기에서 비롯됐다.
과거 소주·맥주·청주·포도주 등 각종 주류 시장에서 부동의 1위를 고수하던 두산이 1990년대 들어 국내외 경쟁업체로부터 강력한 도전을 받자 시장 점유율이 내리막길을 걷게 됐다. 여기에 1980년대 차입금을 통해 무리하게 시설투자를 늘린 것이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박 회장은 “1995년 회사의 재무구조를 보면 거의 부도 직전이나 다름없었다. 위기에 대한 대응이 절실할 때였다”고 당시를 회상한 바 있다.
이에 박 회장을 포함한 두산의 톱팀(최고경영층)은 가업인 주류사업을 과감히 접기로 하고 1996년부터 자산매각과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덕분에 1997년 초반 현금흐름을 흑자로 전환시키고 그해 가을에 찾아온 외환위기를 쉽게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두산의 숙제는 남아 있었다. 주류를 대신할 신사업을 찾아야 했다.
고민 끝에 신사업 결정을 위한 원칙으로 △매출 조원 수준의 대형 사업 △글로벌 시장의 존재 △미래비전형 제조업 등 3가지를 톱팀이 합의했다. 이 원칙에 따라 박 회장이 이끄는 M&A팀이 백방으로 연구 조사한 결과 나온 신사업이 ISB였다.
ISB 사업은 도로·철도·항만·공항 등 기존의 사회간접시설뿐만 아니라 에너지·국방·생산설비물류와 운송설비까지 망라해 세계시장 규모가 연간 수천조원에 달하는 거대 시장이었다.
박 회장은 “ISB는 도시화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전기 발전 원자력 건설 기계 등 모두 도시를 짓게 되면 필요로 하는 사업이다”며 “당시 조사 결과 앞으로 도시화 전망은 너무나도 좋았다”고 말했다.
화려한 M&A 시즌 ISB사업을 선택한 두산은 무려 42건이라는 사상 초유의 대규모 M&A의 막을 올린다. 그 중심에 박 회장이 있었다. 모든 M&A가 그의 손을 거친 것이다. 박 회장은 ISB로의 업종 전환을 위해 속전속결로 필요한 기업을 인수하고 불필요한 사업은 과감히 털어냈다.
두산은 1997년 음료사업부문을 미국 코크사에 매각하는 것을 필두로 OB맥주를 1998년, 2001년 두 차례에 걸쳐 벨기에 인베브에 팔았다.
당시 그룹의 핵심 사업이었던 OB맥주의 매각은 시장에 큰 충격을 줬다. 하지만 이는 M&A의 시작에 불과했다. 1998년엔 서울 을지로 본사 사옥도 매각했다. 다음해엔 전분당 사업을 처분했다.
핵심 사업의 매각으로 넉넉한 실탄을 마련한 두산은 2001년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 인수로 한국의 M&A 역사를 완전히 새로 쓰기 시작했다.
두산은 2003년 고려산업개발(현 두산건설)과 2005년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를 인수하며 소비재 기업에서 중공업기업으로의 외관을 갖췄다. 대우종합기계 인수 직후 두산의 사업구조는 5년 만에 신사업이 전체의 3분의 2를 차지할 정도로 급격한 변화를 거치게 됐다.
인수의 원칙은 ISB사업의 경쟁력 있는 종합적 포트폴리오를 갖추는 것이었기에 2005년 이후에도 크고 작은 기업의 인수가 줄을 이었다. 특히 필요한 원천기술이 없는 경우 이를 보유한 기업을 인수하는 게 핵심 원칙이었다. 두산이 2006년 영국 미쓰이밥콕(현 두산밥콕)을 인수한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박 회장은 “두산중공업이 인수 당시 독자기술을 많이 가지고 있었지만 발전소와 관련한 보일러, 터빈 등 핵심 요소 기술은 없었다. 기술 관련 라이선스를 해외 업체가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손발이 묶인 것과 다름없었다. 결국 보일러 기술을 보유하기 위해 밥콕을 사게 됐다”고 설명했다.
두산이 2009년 체코 스코다파워를 인수한 것 역시 터빈 원천기술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이어 2010년 인도 첸나이웍스와 2011년 독일 렌체스를 인수하며 글로벌 생산과 현지 사업소를 갖추었다.
이 같은 화려한 M&A는 그 과정과 결과 모두 대성공이었다. 두산중공업의 경우 2001년 인수 후 예상을 크게 웃도는 실적을 내는 덕분에 2005년 두산인프라코어를 인수할 때까지 인수에 들인 비용을 거의 회수할 정도였다. 두산인프라코어의 실적도 마찬가지였다.
덕분에 그룹 전체 매출은 구조조정을 진행하던 1998년 3조4000억원에서 2011년 26조3000억원으로 무려 8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 기간 해외매출 비중은 12%에서 42%로, 외국인 임직원 비율은 0%에서 50%로 늘어나며 진정한 글로벌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시장에서 두산의 위상도 크게 올라갔다. 두산중공업의 해수담수화설비의 2001~2011년 10년간 누적 세계시장 점유율은 압도적 1위다. 두산인프라코어의 주요 수출품인 굴착기의 중국 누적 시장점유율 역시 1위다.
박 회장의 M&A 철학
첫째, 인수의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 목적이 분명해야 인수한 회사를 경영해서 가치를 증대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떤 회사를 인수해서 150원짜리를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이 들면 120원에 사서 30원의 가치증대를 한다는 설명이다.
둘째, 정당한 가격으로 시장에서 산다. 시장에서 정당한 가격으로 거래가 된다는 것은 시장이 인정하는 가치 내에서 산다는 것을 뜻한다. 즉 거래의 쌍방이 모두 이익을 보는 거래가 된다.
마지막으로 구조적 스피드를 높여야 한다.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아무리 기술을 개발하더라도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할 만한 수준으로 올라가기 위한 시간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는 것. 일례로 두산중공업이 보일러와 터빈 기술을 자체적으로 개발하려면 약 30년이 걸리겠지만 지난 2006년 밥콕(보일러 원천기술), 2009년 스코다파워(터빈 원천기술) 인수를 통해 10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박 회장은 지난 4월 그룹 회장으로 오른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나와 우리 팀이 지금까지 다룬 42건의 M&A 실적은 우리나라 M&A 역사상 가장 많은 기록일 것”이라며 “우리는 M&A를 통해 기업 가치를 크게 상승시키고 경영의 구조적 스피드를 높여왔다”고 말했다.
한편 박 회장의 M&A 철학은 두산의 깊은 인재경영과 맥이 닿아 있기도 하다. 경영의 3대 요소로 △자본 △기술 △사람이 꼽히는데 한국의 경우 사람이 최고의 자산이라는 것이 그의 경영철학이다. 특히 중공업으로 업종을 전환하고 미국 GE나 독일 지멘스 같은 쟁쟁한 글로벌 기업과 경쟁하면서 인재에 대한 그의 철학이 M&A로 나타났다.
그가 자주 하는 비유는 이른바 ‘계단 간격 메우기’다. 두산과 해외 경쟁업체가 모두 30층 도달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가정한다. 현재 자본과 기술의 수준으로 보면 해외 경쟁업체는 20층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두산은 자본과 기술의 부족으로 15층에서 시작하는 꼴이다. 계단 5개 층이 차이가 나는데 이를 M&A를 통해 대등하게 맞추어 주면 근면 성실한 한국 사람이 결국 이길 수 있다는 논리다.
박 회장은 “기업을 인수해서 우리 인재를 최소 18층이나 19층에 갖다놓고 뛰자고 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훨씬 더 잘 뛰어 간다. 계단 층수를 대등하게 올려주는 것이 최고경영층의 의무다. 이것이 경영의 스피드를 올리는 길이다”고 말했다.
미래의 M&A 비전
또 최근 글로벌 경기침체가 박 회장의 M&A 식욕을 떨어트렸다.
박 회장은 올 9월 대졸신입사원 채용설명회에서 “두산은 2020년 포천 200대 기업 달성을 목표로 한다”고 전제한 뒤 “이 200대 순위에 들어있던 잠재적 경쟁자들이 최근 글로벌 경기침체로 인해 성장을 멈춰버렸다. 우리가 애초에 30%의 신규 사업을 해야 목표를 달성할 것으로 믿었으나 안 해도 거의 달성할 것 같다”고 말했다.
새로운 사업 개척을 위한 M&A의 필요성이 없어졌다는 설명이다. 두산은 지난해 포천 글로벌 기업 중 488위를 기록했다.
물론 박 회장은 지금도 끊임없이 M&A 리스트를 지켜보고 있다. 여기에는 두 가지 리스트가 있다. 현재 영유하는 사업 강화를 위한 기업인수와 성장을 위해 확보해야 하는 새로운 분야의 기업인수 두 가지다.
사업 강화는 두산중공업이나 두산인프라코어 등 계열사 차원에서 우선 분석된다. 새로운 사업을 추가하는 경우에는 그룹차원의 접근이 이뤄진다. 또 각 계열사와의 논의도 무시할 수 없어서 톱팀이 모여 1년에 4번씩 점검 회의를 하고 있다.
[윤원섭 매일경제 산업부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창간 제25호(2012년 10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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