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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투자 빙하기 해답은 시장에 있다
입력 : 2012.09.07 17:4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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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가 틀리는 세상
어찌됐든 시장 전문가들을 믿고 따라갔던 투자자들은 손해를 보았거나 좋은 투자기회를 날려버렸다. 일반 투자자만이 아니라 기관투자가들도 대부분 대동소이한 결과를 냈다.
이는 펀드자금의 흐름에서도 나타난다. 연초 104조원대에 달했던 국내 주식형수익증권 잔고는 5월 21일 90조원까지 줄었다가 이후 조금씩 회복되는 추세다. 상반기 주가가 저조할 것으로 예상해 물량을 던졌던 펀드나 자문형 랩 중엔 주가가 치솟자 뒤늦게 따라붙었다가 대규모 손실을 낸 곳도 속출했다. 특히 자문형 랩은 70% 이상이 지난 상반기에 코스피 수익률을 훨씬 밑도는 저조한 기록을 냈다.
기관들마저 흔들리니 투자자들은 주식을 떠나 확정금리 상품으로 달음질치고 있다. 2007년 12월 42.8%까지 치솟았던 국내 펀드자금 중 주식형 펀드 비중은 현재 30% 수준을 맴돌고 있다. 특히 저축은행 사태로 감독당국이 대출통제까지 강화하자 시중자금은 정기예금이나 채권으로 몰리고 있다. 지난 연말 44조8000억원대였던 채권형 펀드 잔고는 8월 10일 47조5000억원대로 늘었다. 단기자금이 몰리면서 머니마켓펀드(MMF) 잔고는 이 기간 동안 53조원대에서 80조원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급증했다. 시중자금이 갈 곳을 찾지 못하고 떠도는 단기부동화 현상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좋은 펀드는 그래도 수익을 냈다 시장이 크게 흔들렸지만 소신을 갖고 투자한 펀드들은 대부분 좋은 결과를 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연말까지 설정된 자산 10억원 이상인 1336개 주식형 펀드 가운데 764개가 연초부터 7월 말까지 플러스 수익률을 유지했다. 이 기간 중 3% 이상 수익률을 유지한 주식형 펀드는 350개에 달했다.
채권형 펀드는 같은 기간 중 183개 가운데 네 개만 빼고 모두가 플러스 수익률을 기록했다. 3% 이상 수익을 낸 채권형 펀드는 102개로 전체 펀드의 56% 정도가 금융기관 예금에 비해 훨씬 양호한 수익률을 가져다줬다.
주식형 펀드 중 7월 말까지 좋은 성적을 낸 것은 KB자산운용의 중소형포커스펀드와 IBK자산운용의 집중선택20 펀드 등이었다. 이외 상위펀드의 대부분은 운용사에 관계없이 삼성그룹주펀드가 차지했다. 반면에 인덱스펀드들은 이 기간에 대부분 저조한 성과를 냈다. 코스피가 연초 이후 7월 말까지 소폭 상승했는 데도 인덱스 펀드 성적이 저조했다는 것은 그만큼 운용능력이 떨어지는 펀드가 많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저평가 우량주 급반등
그런데 유행의 바람을 타던 차화정이나 그 뒤를 이은 IT주도 아닌 종목 중에 최근 눈을 번쩍 뜨게 하는 게 있다. 증시 전문가들조차 거들떠보지도 않던 종목들이 꾸준히 상승하고 있는 것이다.
유럽 위기로 코스피가 급락해 1700선 언저리에서 등락을 거듭하던 지난해 9월 말 주가 3만원이 깨졌던 한국가스공사 주가는 지난 8월 14일 5만1600원까지 상승했다. 배당을 빼더라도 이 기간 동안 70% 이상의 수익률을 냈다. 개인들이 던지는 물량을 외국인과 기관들이 꾸준히 사들이면서 주가가 급등했다. E1이나 SK가스 등은 같은 기간 중 상승-조정-재상승을 거치며 역시 주가가 크게 오른 종목 대열에 끼었다.
이들 종목은 평소엔 기관은 물론이고 해당 업종 애널리스트조차 관심을 주지 않았으나 주가는 가치를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투자를 어떻게 해야 할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신용경색이 심화되면서 급락했던 은행주도 최근 가스주와 비슷한 경로를 걷고 있다. 다만 7월 하순 바닥을 치고 상승하고 있지만 아직은 가치를 한참 밑도는 수준이다. 8월 14일 기준 27조원대의 자본총계를 갖고 있는 신한지주의 시가총액이 17조원대, 23조원대의 자본총계를 갖고 있는 KB금융의 시가총액은 14조원대에 불과했다. 20조원대의 하나금융지주는 시가총액이 9조원대에 머물렀다.
이처럼 주식시장에선 유행에서 소외됐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제 가치를 찾는 종목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대가들이 긍정적 시각을 유지하라는 이유다.
긍정에 투자하라 루치르 샤르마 모건스탠리투신운용 신흥시장 총괄대표는 “비관론이 판치다 보니 시장 전망이 과도하게 낮아진 상태”라며 “지나친 비관론이 오히려 호재로 작용해 조그만 서프라이즈에도 시장은 긍정적으로 반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샤르마 대표는 주식이 죽어가고 있다는 빌 그로스의 견해에 대해서도 “시장이 바닥에 있거나 투자심리가 불안할 때 항상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현재 주식 밸류에이션은 투자하기에 괜찮은 수준이다. 올해 들어 전 세계 경기가 지지부진하지만 다우와 나스닥지수는 오히려 7.2%와 13.9% 올랐다”는 얘기로 긍정적 측면을 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최근 채권수익률이 급락하면서 외국인들은 주식, 특히 배당주 쪽으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즈에 따르면 S&P 500기업의 배당수익률은 평균 2.6%로 1.54% 수준인 10년 만기 미국 국채 수익률보다 1% 포인트 이상 높다. 영국의 FTSE 100 편입종목의 85%가 10년 만기 영국 국채 수익률보다 높은 배당수익률을 유지하고 있고 MSCI유럽종합지수 편입종목의 평균 배당수익률은 4% 수준으로 이 지역 A등급 이상 회사채 수익률보다 1% 포인트 정도 높게 나오고 있다.
선진국 연기금 배당주 ‘사자’
그렇다면 현재 투자할 만한 대상은 무엇이 있을까.
이윤규 사학연금 기금운용관리단장은 “금리가 너무 낮아졌기 때문에 리스크 자산을 선택해야 수익률을 맞출 수 있다. 주식과 지수에 연동한 원금보장형 ELS나 크레디트 채권(신용도를 감안해 투자할 채권) 등을 주목하라”고 조언했다.
이 단장은 “최근 동부그룹 채권은 6~7%선에 거래되고 있다. 개별기업 채권은 리스크가 있지만 한화 동부 등 그룹주 채권은 관심을 둘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ELS투자와 관련해 이 단장은 “낙인(knock-In)이 안된 개별기업 ELS는 손실 가능성이 있으니 지수연계 원금보장형 ELS에 한해 관심을 두라”고 했다.
다만 금융기관들이 과도하게 움츠리고 있다는 점은 여전히 경계할 대상이다. 저금리로 돈이 풀린 상태에서도 신용경색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 그만큼 현금이 있다면 급매물을 싸게 쓸어담을 수 있다는 얘기이나 반대로 시장이 잠깐 반짝한다고 추격매수를 하지는 말라는 뜻이기도 하다. 아직은 철저히 싼(가치에 비해) 대상을 공략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정진건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24호(2012년 0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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