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VER STORY]월지급식 상품의 함정

    입력 : 2012.07.25 15:5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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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지급식 상품은 대개 얼마를 넣으면 매달 얼마씩을 지급한다고 한다. 구체적 사례를 보자.

    ‘하나UBS 실버 오토시스템 월분배식 주식혼합형 펀드’는 연금 개념을 펀드에 도입한 상품으로 투자자는 펀드 가입 후 매월 투자금액의 0.5%를 분배금으로 지급받는다. 해지 시 잔여 원금과 이익(손실)금을 상환 받는다.

    ‘한국투자 노블월지급식 연속분할매매 주식혼합형펀드’는 투자자가 약정한 만큼의 분배금을 매월 연금처럼 지급해준다. 투자자는 거치식으로 펀드 가입 후, 익월부터 매월 20일에 투자금액의 0.7% 이내 범위에서 정한만큼의 분배금을 현금으로 받을 수 있다.



    이 내용만 보면 당장 펀드에 가입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3억원을 넣으면 앞의 펀드는 매달 150만원, 뒤 펀드는 매달 210만원을 준다. 여기에 국민연금을 더하면 웬만한 하급 공무원 월급보다 많다. 노후가 완벽히 보장될 것 같다. 그러나 여기서 ‘분배금’이라는 단어에 함정이 있다. 다치바나 아키라는 이렇게 설명한다.



    월지급식 펀드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그보다 더 많은 분배금(예를 들면 연이율 5%)을 마법처럼 창출하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사람들은 먹잇감이 될 것인지 아닌지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먹잇감이 될 사람들은 “진짜야? 대단한데. 어디서 파는지 당장 알려줘!”라며 감탄할 것이다. 하지만 좀 더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분배금 어떻게 지급되는데?라고 의문을 품을 것이다. 채권이자보다 더 높은 분배금을 지급하려면 채권 본체를 매각할 수밖에 없다.

    -다치바나 아키라 저 <겁쟁이를 위한 주식투자>에서

    분배금은 이익금이 아니라 ‘원금+이익금’에서 나눠주는 것이다. 그런데 펀드가입 초기엔 이익금이 없는 게 대부분이다. 실제 원금에서 먼저 떼어주고 나머지 자산을 운용해 원금을 회복하는 게 월지급식 펀드의 기본성격이다. 이 경우 원금을 지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는 원금에서 사업비를 먼저 떼어낸 연금보험 수익률이 저조한 데서 쉽게 눈치 챌 수 있다. 금융소비자연맹은 올해 초 변액연금보험 60개 상품 가운데 54개의 연평균 실효수익률이 지난 10년(2002~2011년) 동안 평균 물가상승률(3.19%)에도 미치지 못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수익률이 이처럼 저조해도 금융기관들은 수수료는 꼬박꼬박 뗀다. 특히 수수료를 운용이익 기준으로 떼는 게 아니라 자산총액 기준(보험은 납입액 기준)으로 떼므로 장기적으로 보면 엄청난 규모다.

    이와는 별도로 맡긴 돈의 수익률 이상으로 분배금을 준다면 필요 이상으로 세금을 내는 문제도 나온다. 먼저 일본의 경우를 보자.



    연금 대신에 5만엔의 분배금(연이율 5%)을 받으면 이자는 2만엔 밖에 없으므로 나머지 3만엔은 원금에서 나가게 된다. 이 경우 2만엔의 이자에는 20%의 세금이 부과되지만 3만엔의 원금은 세금 없이 인출된다. 당연하다. 장롱에 숨겨둔 돈을 자기 지갑에 넣은 것과 마찬가지니까. 그런데 펀드 분배금에 대해서는 일률적으로 10%의 세금이 붙게 되어 있다. 앞에서 나온 예를 보면 이자 2만엔 뿐 아니라 원금을 인출한 3만엔에도 세금이 부과된다. 마치 내 돈을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옮겼을 뿐인데 나라에 세금을 납부하는 격이다.

    -다치바나 아키라 저 <겁쟁이를 위한 주식투자>에서

    한국의 펀드도 마찬가지다. 국내 자산운용사가 운용하는 월지급식 펀드의 투자설명서에도 분배금 지급과 관련한 위험이 언급돼 있다.



    주식시장 및 시중 실세금리에 연동되어 수익이 변동되는 투자신탁의 특성상 분배금이 집합투자재산의 운용에 따라 발생한 이익금을 초과할 수도 있으며, 이 경우 분배금 지급으로 인한 투자원금액이 감소될 수 있습니다. 또한 정기적으로 분배금을 지급함으로써 세금의 이연효과가 발생하지 않아 복리 운용의 효과 면에서 다른 투자신탁에 비해 불리할 수 있고, 보유종목에 대하여 부도발생 또는 현저한 거래부진 등의 사유가 발생하는 경우에는 분배금 지급이 중단될 위험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선 분배금을 먼저 지급해 복리운용 효과가 떨어진다고만 했을 뿐 세금을 더 낼 수도 있다는 것은 언급하지 않았다. 외국계 자산운용사는 이 부분에서 보다 솔직하다.



    매월 분배금을 지급함으로써 분배금을 지급받는 매월 과세이익에 대한 세금이 원천징수되므로 월분배금을 지급하지 않고 1년에 한번 분배금을 지급하여 1년에 한번 과세이익이 산정되어 세금이 원천징수되는 일반 투자신탁과 비교하여 과세 측면에서 불리할 수 있습니다.

    기준가격이 상승함에 따라 월 분배금이 반드시 증가하는 것은 아닙니다. 과표기준가를 기준으로 과세되므로 기준가격과 함께 과표기준가격이 상승되는 경우에는 과세효과로 인해 실제 최종 투자자가 받는 월 분배금액이 줄어드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분배금 지급은 이처럼 이중으로 펀드의 안정성을 해치고 있다. 그래서 투자자가 생각지 못한 지급정지 상태를 초래할 수도 있다. 실제 앞에서 거론한 외국계 자산운용사는 ‘분배금 지급이 경제적으로 효율적이지 않다고 판단하는 경우 운용사의 결정에 따라 공시 등을 통해 분배율을 조정하거나 분배금을 지급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밝히고 있다.

    고수익 추구 펀드 선택은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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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고 월지급식 상품이 무조건 애물단지란 얘기는 아니다. 한 보험사의 재무설계사는 이런 얘기를 했다. “그런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객들에게 상품을 권한다. 또 시간이 지나면 고객들 역시 그렇게 상품을 권유한 것을 고마워한다. 그렇게라도 들지 않았더라면 그 돈마저 써 버리고 말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노후설계를 위한 목돈마련에는 어느 정도 강제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해지가 쉽지 않은 금융상품은 그런 면에서 언제든 수요가 있고 또 권유해도 좋다.

    또 인출 서비스의 편리성을 강조한 상품보다는 수익의 안정성을 강조하는 상품이 투자자에겐 더 적합할 수 있다. 목돈이 있다면 매달 꺼내 쓰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금융기관들은 투자자들에게 보다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되지도 않을 상품을 감언이설로 팔지 말고 ‘장기적으로 저금리가 이어지고 당신은 생각보다 오래 살 수도 있으니 약간의 리스크를 안더라도 수익률을 높일 상품을 고려해보라’고 설득하라는 것이다.

    김동엽 미래에셋 은퇴교육센터장은 “투자자들도 앞으로 투자 리스크가 바뀌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고령사회는 돈 없이 오래 살아야 되는 위험을 맞을 수도 있다. 노후자산의 일부를 위험자산에 투자해야 한다는 얘기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를 위해선 투자자도 리스크나 환율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일본 월지급식 펀드 가입자의 상당수는 자기 펀드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른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대표적인 게 ELS다. ELS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해외 투자는 금리변동성은 낮으나 환율변동성이 크다는 점도 알아야 한다.”

    어쨌든 지금 월지급식 펀드나 서비스는 전 금융기관의 보편적 상품으로 확장돼 가는 추세다. 거의 모든 펀드에 월지급 옵션이 붙어 있는 일본의 사례나 기존 펀드에 월지급 서비스를 추가하고 있는 미국의 예를 보더라도 이는 거스를 수 없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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