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코망도 부러워할 장맛 아닌가요…죽염으로 전통장 빚는 김인석 삼보식품 대표

    입력 : 2012.07.09 16:2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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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단내가 나네. 이게 몇 년 만인가.” 변산 해수욕장에서 외변산 쌍선봉 쪽으로 향하는 길목 양지바른 언덕에 줄지어 늘어선 수백 개 장독이 풍기는 운치에 끌려 들어간 곳에선 장 익는 냄새가 물씬 풍겼다. 그 중 씨장이 담긴 오래 묵은 장항아리를 열자 보통 간장의 짠 냄새 대신 부드러운 단내가 코끝을 간질였다. 어렸을 적 시골 장독에서 나던 그 냄새였다. 그 자체로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우게 할 만큼 향수를 실어 주는 향이었다. 그리움에 끌려 다시 전라북도 부안을 찾았다.

    김인석 삼보식품·죽염 대표는 “천일염 대신 죽염을 넣어 전통 방식으로 만드는 게 단맛 나는 장의 비결”이라고 소개했다.

    김 대표는 장을 담그기에 앞서 메주부터 직접 만든다며 먼저 커다란 가마솥 9개가 걸린 부엌으로 안내했다.

    “우리는 100% 국산 콩만 사용한다. 미리 계약한 전북 부안·고창 일대 농가에서 사온 콩을 전통 방식대로 재래식 가마솥에 삶아 메주를 만든다. 삶은 콩으로 메주 모양을 만들어 황토방에서 2~3일을 건조한 뒤, 건조실로 옮겨 볏짚으로 매달아 45~60일간을 더 건조한다. 이후 다시 황토 숙성실에서 10~15일간 2차 숙성을 한다.”

    이를 위해 김 대표는 직접 벽돌을 찍어 황토방을 지었고 볏짚도 특별히 계약한 농가에서 농약을 사용하지 않은 것을 구해 쓴다는 것. 특히 지하 100m에서 뽑아 올리는 천연암반수는 약알칼리성을 띠고 있어 장 담그기에 더없이 좋다고 했다.

    삼보는 천일염 대신 비싼 죽염으로 장을 담근다. 죽염을 직접 만들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김 대표는 무형문화재 죽염제조장인 효산 스님(전 개암사 주지)으로부터 비법을 전수받은 수제자이기도 하다.“세 번 구운 죽염과 아홉 번 구운 죽염으로 장을 담그고 있다. 일반 가정에선 계란을 띄워 소금물 농도를 측정하지만 여기선 염도계로 정확히 맞춘다. 계란으로 대충 맞출 경우 염도가 20%까지 차이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큰 탱크에 천연암반수를 받아놓은 뒤 죽염으로 농도를 맞춘 소금물은 밸브만 열면 항아리로 쏟아져 들어간다. 여기에 메주와 숯 등을 넣으면 전통 장 담그기가 끝난다. 항아리마다 장 담근 날과 몇 번 구운 죽염을 사용했는지 등 이력을 관리하는 카드가 붙어 있다. 카드엔 쓰지 않았지만 항아리마다 오래된 씨장을 조금씩 섞어 더 진한 맛이 난다. 삼보식품 장독대엔 그런 항아리들이 즐비하다. 항아리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햇빛을 받는다. 장이 잘 익을 수밖에….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다. 숙성이 끝나기까지 또 사람들의 손길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매일 뚜껑 여닫기를 반복한다는 것. 자연히 뒷산 울창한 송림에서 뿜어져 나오는 음이온과 꽃가루 등이 장에 스며들게 된다. 장맛이 깊은 게 당연한 것 같다. 항아리가 많다보니 방심은 금물이다. 자칫 지나가는 비라도 뿌리면 난리가 난다. 그래서 하루 종일 사람이 대기하며 관리해야 한다. 이렇게 6개월 이상 자연 숙성을 거치면 상품으로 출하할 수 있으나 이곳에는 2년 이상 된 장도 수두룩하다. “장은 오래될수록 증발해 양이 줄어든다. 오크통에서 위스키가 줄어드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도 그는 장이 제대로 숙성되기를 기다린다. 깊은 맛이 나는 장을 내놓으려는 것이다. 그가 “간장은 달이지 않은 게 훨씬 낫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것도 그래서다. 그만큼 장의 좋은 성분이 풍부하단다. 김 대표는 “죽염장은 유해 세균의 번식을 억제하고 좋은 미생물만 살게 하지만 숙성기간이 오래간다. 대신 맛은 깊어진다”고 소개했다.

    된장도 간장과 마찬가지로 오래 묵을수록 향이 나고 맛이 진하다. 오죽했으면 “5년 묵은 된장은 화장품이다”라고 말할까. 그런데 오래 묵은 된장일수록 진한 갈색을 띠게 된다. 묘향산에서 맛본 토장국처럼….

    김 대표는 “된장이 숙성되면 갈변현상이 생기는데 이는 순수한 된장이라는 반증이다. 아미노산과 콩단백질이 합성돼 색이 변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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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코망도 탐냈던 죽염 그렇다면 그는 왜 비싸고 손도 많이 가는 죽염으로 장을 담그려는 것일까.

    김 대표는 한때 일본 기코망이 그가 만드는 죽염을 모두 사가려고 했던 적이 있다는 얘기로 이유를 설명했다.

    “2000년대 초 기코망이 죽염을 사가려고 몇 번 왔다. 그런데 가격을 깎으려고 해서 팔지 않겠다고 거절했다.” 그만큼 죽염의 맛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실제 그가 내민 죽염을 맛보니 그리 짜지 않으면서 계란 노른자 냄새가 살짝 풍겼다.

    김 대표는 자신이 직접 죽염을 체험했고 효능을 알기에 죽염사업을 시작했다고 소개했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장이 불편했는데 죽염을 드리니 편안해하셨다. 나 역시 제대 직후 위궤양이 극심했는데 죽염을 복용한 뒤 나았다. 죽염을 체험한 후 내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유통부터 시작했다.”

    마침 선배가 하는 회사의 광주전남지사를 맡아 5년여 간 죽염 유통을 했다. 그러다가 마케팅이나 품질 모두 자신이 직접 하는 게 낫겠다는 판단이 들어 독립을 했는데 그때 마침 개암사 주지를 마친 뒤 사가에 머물던 효산 스님이 그를 돕겠다고 나섰다. 효산 스님은 일제 강점기에 출가해 주봉 스님과 현응 스님으로부터 죽염 만드는 법을 배운 유형문화재 죽염제조장이다. 격암유록에 스님들이 상비약으로 썼다는 그 죽염을 만들게 된 것이다.

    “효산 스님은 죽염의 정신적 부분을 강조하신다. 대나무도 신선한 것만 쓰라고 하신다. 그래서 서해안에서 해풍을 맞고 자란 3~5년차 왕대나무를 선별해 베어다 쓰는데 신선함을 유지하기 위해 베어온 지 1~2개월이 된 것만 쓴다. 마른 대로는 죽염이 되지 않는다. 굵기도 직경 7~8cm 정도를 골라 쓰는데 더 크면 수액이 없어서 안 된다. 수령과 신선도, 굵기가 생명이다. 소금도 신의가 있는 곳에서 생산한 최고의 것을 대놓고 쓴다.”

    대통에 천일염을 넣어 구운 뒤 가루를 내어 다시 대통에 넣어 굽기를 반복하는데 세 번 또는 아홉 번을 굽는다. 아홉 번째는 소금이 녹아내리도록 1500도 이상으로 가열한다. 이렇게 해서 얻은 죽염은 자수정처럼 자색을 띄어 자죽염이라고 한다.

    “죽염은 미네랄의 보고이다. 대나무의 미네랄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여기에 황토의 기운인 원적외선이 가해져 세균 번식이 어렵기 때문에 음식을 만들면 신선도가 오래 간다. 그만큼 항산화 항암효과가 있다.” 유통을 제대로 익힌 그는 당시 이봉걸 씨를 광고모델로 기용하는 등으로 상당한 성과를 올렸다. 영업현장을 뛸 때 인연을 맺은 곡성 태안사의 청학 스님은 ‘삼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고, 상좌였던 보영 스님은 삼보가 저렴한 비용으로 광고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기도 했다. 김 대표가 평소에 사람들을 어떻게 대했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맛있는 장 보편화가 꿈 죽염으로 기반을 닦은 그는 2000년대 초부터 소금을 이용해 할 수 있는 사업을 구상하다 2005년 삼보식품을 설립하고 전통 장류 제조를 시작했다. 삼보는 지금 간장, 된장, 청국장 등을 생산하고 있다. 장인정신으로 만든 제품이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것은 물론이다. 삼보의 제품들은 전주국제발효식품엑스포에서 해마다 우수상을 타고 있다. 그러다 보니 같은 도에 있는 전북은행은 물론이고 멀리 부산은행에서도 전 임원이 맛을 평가하고 5000여 세트를 사갔을 정도다. 입소문이 나면서 여러 금융기관이 삼보의 고객이 됐고, 주요 백화점에 입점한 것은 물론 일부 특급호텔에서 납품을 요청해 올 정도가 됐다. 김 대표가 한때 죽염을 사려고 했던 기코망과 맛을 비교해 보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이유다.

    맛의 자신감을 얻은 그는 지금 양질의 된장과 간장을 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많은 사람들이 맛볼 수 있는 날을 꿈꾸고 있다. 김 대표는 현재 프로바이오텍 균주를 이용해 숙성기간을 단축하는 기술을 개발해 특허를 냈고 올 하반기부터 본격 생산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했다. 기코망이 하듯 여기에 전통 방식으로 만든 장으로 섞어 내면 생산량이 대폭 늘어나고 가격도 서민들이 쉽게 살 수 있을 정도가 될 것이라고 했다.

    [정진건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22호(2012년 0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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