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orld Economy] 세계 경제, 침체 회오리에 또 말려드나

    입력 : 2012.02.27 13:5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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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판 헬리콥터 벤을 요구하는 것인가, 아니면 세계금융의 헤게모니 싸움인가.’ 지난 1월12일 유럽중앙은행(ECB)이 기준금리를 1%로 유지한다고 발표하자마자 S&P는 그런 결정을 기다렸다는 듯 이튿날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여러 나라의 신용등급을 일제히 끌어내렸다.

    S&P는 AAA이던 프랑스의 신용등급을 AA+로 한 등급 내리고, 또 포르투갈과 키프로스의 신용등급은 아예 투기등급으로 떨어뜨렸다.

    S&P는 이번에 등급을 내린 이유로 유럽 지도자들이 지난해 12월9일 회동에서 지역의 채무위기를 풀기 위해 결정적으로 개입하는 데 실패했던 것을 들었다. 그러나 유럽 지도자들의 회동과 S&P의 이번 결정 사이에 한 달 이상의 기간이 있었고 ECB가 금리를 동결하자마자 등급을 내렸다는 점에서 그런 설명은 변명처럼 보인다.

    실제로 유럽 지도자들은 이번 결정이 구조조정을 차근차근 추진하려는 ECB나 유럽 각국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 됐다고 비난하고 있다. 당장 각국의 채무부담이 늘어나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을 통해 구조조정을 추진하려는 계획에 차질을 빚게 생겼기 때문이다. S&P가 며칠 뒤 EFSF의 신용등급마저 깎아내려 자금 조달을 어렵게 만든 점도 그런 비난을 사기에 충분하다.

    신용등급 강등은 가뜩이나 재정난에 허덕이는 해당국과 구조조정을 지원할 EFSF의 차입을 어렵게 만들 뿐 아니라 조달비용을 늘려 구조조정을 방해하는 효과가 있다.

    유럽연합의 올리 렌 부통령은 “유로존에선 이미 위기에 대응해 다방면의 결정적 정책들을 취하고 있는데 S&P가 몇몇 회원국의 신용등급을 내린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고 반박했다.

    돈을 찍어내라고… S&P의 이번 조치는 근본적으로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부자나라들이 ECB를 움직여 돈을 찍어내라는 무언의 압력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 S&P는 이번에 등급을 내리면서 “오직 재정긴축 한 축에만 의존한 개혁 프로세스는 스스로 파국에 이를 위험이 있다”고 경고해 간접적으로 유연한 통화정책이 필요함을 시사했다.

    미국의 경우 벤 버냉키 의장이 이끄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주도로 엄청난 자금을 푼 덕분에 경제가 일단은 위기에서 벗어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연준은 특히 이렇게 푼 자금으로 각 금융기관의 채권을 싸게 샀다가 비싸게 팔아 2010년에 793억 달러, 지난해 769억 달러를 미국 재무부 금고에 넣었다. 당시 버냉키 의장은 경제를 살리기 위해 헬리콥터로 뿌리듯 돈을 풀었기 때문에 미국에선 그에게 ‘헬리콥터 벤’이란 별명까지 붙여줬다. 유럽에도 그런 정책이 필요하다는 게 S&P의 생각이다.

    신용경색이 나타날 때 대부분의 금융기관들은 대출을 회수하거나 동결하는 등으로 대응해 경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경제가 이런 상황으로 가지 않도록 하려면 일반 금융기관이 안심할 정도로 중앙은행이 돈을 풀어야 한다는 게 금융 전문가들의 최근 논리이고 버냉키 의장은 이를 실행에 옮긴 것이다.

    그러나 1차 대전 이후 극도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을 경험한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은 인플레이션 위험의 심각성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중앙은행이 돈을 푸는 데 거의 병적인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다. EU 전체의 부채부담은 미국에 비해 가벼운데도 이번에 위기에 휘말린 것은 이런 사연이 있기 때문이다.

    EU의 해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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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쨌든 유럽 지도자들은 일차적으로 EFSF의 몸집을 키워 현재 나타난 재정위기에 대처하고 중장기적으로 5000억 달러 규모의 기금을 갖춘 유럽안정기구(ESM, The European Stability Mechanism)를 오는 7월께 출범시켜 영구적으로 위기관리를 맡게 한다는 구상으로 작업을 추진해왔다. 또 그때까지는 EFSF가 확실한 소방수 구실을 할 수 있도록 우선 차입과 해외펀딩 등으로 기금을 대폭 확충해줄 계획이었다. ESM은 EFSF와는 달리 회원국에 일정 부분 강제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에 EU의 재정·정치적 결합을 강화하는 효과가 있다. 악화조짐 보이는 글로벌 경제 그러나 시장은 유럽 정치지도자들의 이런 생각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금융이 불안해지면서 경제가 갈수록 위기에 노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능성을 예상한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지난 연말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이 2.8% 정도에 머물고 2013년엔 2.7% 정도로 더 저조해질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또 유로존에 대해선 성장률이 -0.8%로 경제가 정체도 아니고 아예 퇴보할 것이며, 중국 역시 부동산 가격이 급락해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BOA메릴린치도 심각성은 다소 덜하더라도 전반적인 기조는 루비니 교수와 비슷한 전망을 최근에 내놨다. 이에 따르면 글로벌 경제의 성장률은 지난해보다 조금 저조한 3.6% 정도에 머물고, 유럽지역 경제는 0.6% 정도 퇴보할 것이며 미국 경제는 2.1% 정도 성장해 역시 저조한 국면을 이어갈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세계 주요국의 경제를 전반적으로 지난해보다 어둡게 보는 것은 유럽 재정위기가 쉽사리 풀리지 않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미국 경제가 엄청난 소비시장 덕에 독자적으로 성장할 수는 있지만 그래도 유럽 침체의 영향을 50% 정도는 받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실제로 유럽계 신용평가사인 피치는 미국 기업들의 성장이 정체되거나 더블딥에 직면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이런 상황을 잘 아는 많은 이코노미스트들이 ECB가 조금은 공격적으로 돈을 풀 것으로 내다봤다. BOA메릴린치는 ECB가 기준금리를 연초에 0.25%포인트 내리는 등 올해 중에 0.5%포인트 정도는 내릴 것으로 예상했다.

    [정진건 기자 borane@mk.co.kr]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17호(2012년 0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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