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 말리는 긴장의 24시간…외환딜러의 세계

    입력 : 2012.01.26 15:0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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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처럼 연휴를 만끽하자며 늦잠을 잔 뒤 일어난 그들은 휴대폰에 들어온 문자메시지를 확인하고는 경악했다. 뉴욕 금융시장에서 달러당 원화값이 마지노선이라 불리던 1200원선마저 돌파 당했던 것이다. 외환딜러들은 3년 전 그때쯤 일어난 비극을 반추할 수밖에 없었다. 3년전 악몽이… 지난 2011년 10월3일 개천절. 이날은 마침 월요일인데다 날씨는 쾌청했다. 전국 도로는 가을 황금연휴를 맞은 행락 인파로 그득했다. 그러나 모든 이들이 연휴를 즐기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당시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원화값을 놓고 거래하는 외환딜러들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갔다. 원화값 폭락을 이끌었던 국제 금융시장 흐름이 2008년 리만 브라더스 사태 당시와 너무나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개천절 무렵 그리스 재정위기의 여파로 이탈리아를 비롯한 과다 채무국들의 신용등급 강등이 이어지고 해당국들의 국가부도 우려가 절정에 달했다. 2008년 이맘때도 마찬가지였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부실화에서 출발한 세계 금융위기는 세계적 투자은행 리만 브라더스의 파산으로 이어졌다. ‘대마불사’의 신화가 무너진 것이다.

    2008년 9월15일 리만 브라더스가 파산한 뒤 일어난 일들은 아직도 외환딜러들의 기억에 생생했다. 리만 브라더스 파산 선언 직후 국제 금융시장은 혼란에 빠졌다. 우리나라도 그 혼란이 일으킨 후폭풍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국제 금융자본이 잇달아 한국 금융시장에서 탈출하며 달러를 사재기하자 달러당 원화값인 1200원선이 무너졌다. 마지막 저항선이던 1200원선이 힘없이 무너지자 금융시장에서 원화값은 1600원 가량을 쥐어 줘야 1달러를 줄 정도로 폭락했고 코스피는 900선마저 붕괴됐다.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2008년 4분기 -4.6%를 기록하며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던 외환위기 이후 첫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원화값 폭락에 따른 혼란을 방어하기 위해 외환 당국은 서울외환시장에서 달러를 아낌없이 풀었다. 그러자 2007년 말 2622억 달러에 달했던 한국의 외환보유고는 2008년 말에는 2012억 달러로 급격히 감소했다. 외환보유고가 다 떨어져 국제사회의 내정간섭을 굴욕적으로 수용하며 달러를 꾸러 다니던 IMF 외환위기의 악몽을 떠올리던 순간이다. 달러당 원화값 1200원선이 지니는 의미는 이래서 중요했다.

    다행히 IMF 구제금융과 리만 브라더스 사태라는 두 번의 금융위기를 경험했기에 외환 당국의 수읽기도 강해졌다. 보유외환을 털어 원화값을 방어하는 임시방편보다는 통화스왑이라는 보다 현명한 수단을 선택했다. 우리 정부는 지난 10월19일에는 한·일 통화스왑을, 10월26일에는 한국과 중국이 통화스왑을 체결했다. 서울 외환시장은 한숨을 돌리며 달러당 원화값 1200원선을 지켜냈다.

    그러나 그리스 재정위기를 시발점으로 유럽 각국의 신용등급이 강등당하며 유럽재정위기가 지속되고 있다. 이 탓에 서울 외환시장의 외환딜러들은 ‘전쟁 상황’이다. 국제 금융자본의 ‘총알’이 빗발치고 있는 ‘전장의 병사’인 외환딜러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호통소리는 지켜야 할 에티켓 지난 12월 9일은 유럽정상회담 결과를 앞두고 외환시장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던 날이다. 서울의 이날 최저기온은 영하 6도로 겨울 들어 가장 추웠다. 하지만 이날 찾은 신한은행 금융공학센터 딜링룸 내부는 외부와는 딴판으로 텁텁하고 후끈한 공기로 가득 차 있었다. 딜링룸 사방은 모니터가 가득 메우고 있었다. 아무리 적게 봐도 일인당 서너 개씩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숱한 모니터가 내뿜는 열기 탓에 실내는 한여름과 다를 바 없었다.

    그 속에서 모니터를 주시하는 외환딜러가 주는 인상은 냉랭하기 그지없다. 모니터를 쳐다보는 시선들은 하도 집요해서 눈알이 빠져나오지 않을까 걱정된다. 한참 동안 기자를 잡상인 대하듯 세워뒀던 딜러가 급작스레 의자에 몸을 파묻으며 기지개를 편다.

    “밖이 많이 춥죠? 여기는 아마 더울 겁니다.”

    함태규 과장이 활짝 웃으며 악수를 청한다. 급박하게 돌아가던 서울 외환시장이 다소 소강상태로 접어든 모양이다. 긴장이 풀린 모습은 차가운 외환딜러가 아니라 따뜻한 사람의 모습이었다.

    “6.5 보트 350만 불이요!”

    갑자기 칸막이 너머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잠시 풀어진 모습을 보이던 함 과장은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외친다. “던!”

    외침과 동시에 손으로는 분주하게 주문용 키패드를 조작한다. 프로게이머 못지않은 민첩한 손놀림이 이어지자 모니터에서는 전자오락기에서 나올 법한 ‘뿅’ 소리가 몇 번 난다. 기묘한 ‘암호’가 오가자 어리둥절해 하는 표정을 읽고 함 과장이 설명한다.

    “6.5는 1146.5원에서 앞자리를 생략한 표현이고 보트(bought)는 은행이 달러를 샀다, 즉 고객이 달러를 팔았다는 거예요. 물론 350만 불은 고객이 판 달러가 350만 달러라는 뜻이죠. 던은 영어로 ‘done’, 거래가 체결됐다는 말입니다.”

    그는 이어 “아까 들으신 뿅 소리는 제가 받은 고객 주문을 은행 간 시장에서 처리하는 과정에서 제 주문이 체결될 때 나는 소리입니다”고 설명을 덧붙인다. 함 과장은 김장욱 차장과 더불어 서울 외환시장에서 신한은행 ‘대표선수’로 활약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서울 외환시장 거래량 1위 기관으로 시장점유율만 12%에 달한다.

    시장의 달러 매매 주문은 은행 간 시장에서 소화된다. 은행 간 시장에서 달러가 필요한 A은행과 달러가 남는 B은행이 만난다. 김 차장과 함 과장은 이 같은 은행 간 시장에서 외환을 거래하는 딜러다. 이들은 서울외국환중개와 한국자금중개가 제공하는 전자중개시스템을 이용해 키패드로 주문을 낸다. 두 사람이 두드리던 키패드에서 나온 주문들이 호가를 이루고 이 호가들이 체결되면 바로 시장 환율이 된다.

    이들이 시장에서 처리해야 할 달러 물량은 신한은행의 고객인 수많은 기업에서 나온 주문이다. 주문은 대고객 딜러에게 집중되고 대고객 딜러는 고객과 은행 간 딜러 사이에서 사자팔자 호가를 중개하는 방식이다.

    장군이 휘하 병사들을 지휘하듯 큰 소리가 나는 이유가 이해된다. 은행 간 시장에서 환율이 빠르게 움직이고 큰돈이 오가고 있어 잘못 전달될 경우 책임져야 할 위험이 너무 큰 것이다. 일반 사무실에서 큰소리를 내면 호되게 혼나겠지만 이곳 딜링룸에서는 호통소리가 지켜야 할 ‘에티켓’인 셈이다.

    정보를 놓치면 돈이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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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차장과 함 과장이 주시하고 있던 모니터를 잠시 들여다봤다. 모니터별로 표시되는 내용들은 제각각이었다. 초단위로 깜빡이는 숫자들이 화면 가득 빼곡한 모니터가 있는가 하면 차트로 가득 메워진 모니터도 있다. 다른 모니터에서는 영문으로 된 뉴스가 쏟아져 나오기도 한다. “우리 금융시장이 국제 금융시장 움직임에 민감하잖아요. 원화값도 국제 금융시장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유로화 같은 다른 통화 움직임도 봐야 하고 국내 금융시장에서 외국인 자금 이동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도 봐야 합니다. 유럽 재정위기가 최근 금융시장의 화두라 관련 외신을 눈여겨보는 것은 당연히 중요하고요.”

    수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가치 있는 정보를 놓치면 큰돈을 손해 보게 된다는 설명이다. 딜링룸을 찾은 기자를 본체만체하던 그들의 행동이 이해가 되는 순간이다.

    “언제 오셨어요? 한참 고생하다 겨우 살아났네. 앞으로 자주 오셔야겠어요. 덕분에 오늘 매매가 좀 되는 것 같습니다”

    돌부처 저리가라 할 정도로 말없이 자리에 붙박여 시장에 열중하던 김 차장이 이제야 말을 걸어왔다. 드디어 ‘폭풍 매매’를 일단락 지은 모양이다. 김 차장은 최근 매일 20~30억 달러 가량을 매매했다고 한다. 원화로 환산하면 3조원 남짓한 어마어마한 금액을 매일 거래했다는 얘기다. 거래량만이 전부가 아니다.

    “아까 고객이 350만 달러 판다고 했을 때 전자거래시스템 호가창 보셨는지요. 은행 간 시장에서 6.5 사자 물량은 저희 신한밖에 없었어요. 그 다음 호가가 6.1 사자였고요. 고객들에게 좋은 가격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역량이 신한에 있는 셈이죠.”

    은행 간 시장에서 통상 사자-팔자 사이의 간격이 0.1원인 점을 감안하면 0.4원은 무척 큰 차이다. 다른 은행보다 0.4원 우수한 호가를 제시할 배짱과 능력을 갖췄기에 엄청난 거래량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야, 함 과장. 여기서 왜 무리하게 팔고 있어!”

    김 차장이 갑자기 큰 목소리를 냈다. 돌발 상황이다. “네, 조심하겠습니다.” 반사적으로 답하며 함 과장은 미리 팔았던 달러 물량을 서둘러 거둬들였다. 곧바로 은행 간 시장에서 다른 은행들의 달러 매수 주문이 쏟아지며 원화값이 하락하기 시작했다.

    순간 함 과장이 쥐고 있던 달러 매도 수량은 대략 1억 달러 규모였다. 원화값이 2원만 빠져도 그가 입어야 할 손실은 자그마치 2억원 가량 된다. 시장 분위기가 달러 팔자로 쏠린 상황에서 분위기가 급작스레 바뀌었다. 큰 손실을 입었을 상황에서 선임인 김 차장의 본능적인 직감이 맞아 떨어진 셈이다. 미국 아이비리그 명문인 코넬대를 졸업한 수재인 함 과장도 김 차장 앞에서는 어린애 취급을 당하기 일쑤다.

    김 차장은 “마냥 제가 꾸짖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동생처럼 사랑하는 친구”라며 “심혈을 기울여 노하우를 가르치고 있고 실제로 실력도 출중하다”고 귀띔했다. 그는 “누군가가 벌면 누군가가 잃어야하는 제로섬(Zero Sum) 시장인 외환시장에서 함 과장 혼자 국내 기관 중 5위 거래량 상당을 매매하면서도 꾸준히 이익을 내고 있다”고 소개했다.

    잠을 자도 꿈속에서 “Done” 외환딜러의 양성과정은 철저한 도제 시스템이다. 외환시장에서 벌어지는 온갖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은 ‘이론보다 실제’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소수의 선택받은 사람들만이 은행 간 시장에서 외환딜러로 활동할 수 있다.

    학벌, 능력이 문제가 아니다. 김 차장은 “제아무리 능력이 출중한 사람이더라도 기회가 닿지 않으면 외환딜러가 될 수 없습니다. 게다가 기회가 닿고 타고난 능력이 있으신 분들도 ‘지뢰밭’ 한 번 잘못 밟아 큰 손실을 입으면 바로 중도 탈락입니다”고 설명한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자기 판단 하에 원화값 방향 매매를 적극적으로 하는 외환딜러는 약 50~60명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쯤 되면 “10년째 시장에서 살아남은 저는 아마 전생에 나라를 구했을 것입니다”는 김 차장의 이야기가 농담으로 들리지 않는다.

    어느덧 서울 외환시장 폐장 시간인 오후 3시가 됐다. 한숨 돌릴 법도 한데 여전히 딜링룸은 여기저기서 시끄러운 목소리들로 가득하다. 함 과장은 “외환시장은 주말 빼고는 24시간 돌아가는 시장이에요. 서울 시장이 끝났지만 여전히 역외차액결제선물환(NDF) 시장에서 원화가 매매되고 있고 고객들의 주문도 끊임없이 나온다”고 말했다.그는 “퇴근하더라도 해외에서 NDF 시세가 문자메시지로 날아오고 잠을 자도 꿈속에서 매매를 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늘 긴장하는 생활 때문인지 함 과장은 만성 위염을 앓고 있다고 했다. 그는 “점심시간이라고 시장은 봐주지 않는다”며 “덕분에 도시락을 허겁지겁 먹거나 굶어야 할 상황도 종종 있다”고 말했다.

    많은 직장인들이 주말을 맞이할 생각으로 즐거운 금요일 밤이다. 그러나 이날은 유럽 정상회담이 개최되는 날. 아마 김 차장과 함 과장은 밤늦게까지 유럽 정상회담 관련 뉴스를 챙겨보며 쉬지 못할 것이다.

    외환딜러가 ‘3D 업종’이라는 시장 참여자들의 푸념이 괜한 소리가 아닌 듯했다. 누구나 동경하고 왠지 멋있고 화려할 것 같아 보이는 외환딜러의 세계이건만 긴장과 탄식, 안도가 계속 교차하는 그들의 세계가 마냥 화려하지만은 않아 보이는 모습이었다.

    [한우람 / 매일경제 금융부 기자 lamus@mk.co.kr│사진 = 박상선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16호(2012년 0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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