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율촌 공동기획 Business Law&Case] ④ 미안하다·사랑한다·어쩔 수 없다

    입력 : 2012.01.26 15: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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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업자의 입장에서는 다른 어떤 세금보다 부가가치세법을 모르면 정말로 낭패를 보는 경우가 생긴다. 다른 세금은 도중에 어떠한 거래가 있든, 그래서 1년에 한 번씩 세금이 얼마나 될 지를 따지고 그 결과에 맞추어 세금을 내면 된다. 거래가 있을 때마다 세금을 내는 것이 아니라 한 해의 성과를 결산해서 번 돈이 있으면 세금을 내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부가가치세는 당장 내가 받아야 할 돈과 주어야 할 돈이 얼마인지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세금계산서를 주고받을 때도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 미안하다 번거롭게 해서 통신사업자 K는 두 개의 마케팅 부문(A, B)을 두고 있는데 각각의 부문이 관리하는 수입이 달랐다. 부가가치세의 경우 사업장을 단위로 과세하는 체제이므로 K는 각 마케팅 부문별로 별개의 사업자등록을 했고 그 등록된 사업자 명의에 맞춰 각각의 수입과 지출에 대한 세금계산서를 주고받았다. 각 수입을 관리하는 부문별로 별개의 사업자등록을 한 까닭에 각각의 매출처별 합계표와 매입처별 합계표를 구별해 정리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고(부가가치세는 각 기별로 예정신고와 확정 신고를 해야 하는 까닭에 K의 관점에서는 그러한 수고를 1년에 네 번씩 하는 셈이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들었을 것이다.

    다만 실제 세금을 낼 때에는 A부문과 B부문을 포함한 주사업장 총괄납부에 대해 승인을 받은 터이고 A부문과 B부문 사업장의 납부세액을 통산해 조정한 부가가치세만을 한 번에 납부했다. 미안하다. 번거롭게 해서….

    사랑한다 세금 잘 내줘서 K는 성실한 납세자였다. 매출 규모도 크지만 국가적으로 인지도가 있는 대기업인 까닭에 허위세금계산서 따위로 장난을 칠 이유도 없다. A부문과 B부문을 별개의 사업자로 등록했지만 주소도 똑같고 주사업장 총괄납부를 하는 터이므로 관할 세무서 입장에선 여간 고마운 납세자가 아니다. 사랑한다, 세금 잘 내줘서….

    그러던 중 K는 조직을 개편하면서 A가 관리하던 일부 수익을 B사업장에서 관리하기로 했고 실제 개편을 한 이후에는 그러한 수익과 관련한 세금계산서도 B사업장이 작성·교부했다. 그런데 미안하고 또 한편으로 사랑스러운 납세자라고 하더라도 결국은 사람이 하는 일인지라 실수가 있을 수밖에 없다.

    전산시스템을 조직개편에 맞추어 전환하는 과정에서 담당 직원의 실수로 위 수입을 여전히 A사업장이 관리하는 수입으로 남겨두고 말았던 것이다. 물론 이러한 시스템 오류는 몇 달 뒤에 정정됐지만 부가가치세 신고를 하는 과정에서는 여전히 그 오류가 바로 잡히지 않았다. A사업장은 실제보다 부가가치세 과세표준을 과다하게, 반대로 B사업장은 실제보다 부가가치세 과세표준을 과소하게 신고하고 말았다. 그렇지만 뭐 어떠랴? 어차피 내는 세금은 똑같은데.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가산세는 내야지 K가 내야 하는 부가가치세가 달라질 것이 없다는 것은 맞다. 사업장별로 세금계산서가 별개로 수수되기는 했지만 총괄 납부를 하는 마당에 K로서는 내야 할 부가가치세를 적게 낸 것도 아니고, 또 많게 낸 것도 아니다. 세금계산서가 조금 엉켰다고 해서 K가 내야 할 부가가치세가 달라질 수는 없다. 그렇지만 그토록 사랑받았던(?) K였지만 그 단순한 실수 때문에 결국 20억원에 이르는 가산세 부과처분을 받고 말았다. 전산시스템이 수정되기 전의 신고분과 관련해 ‘신고불성실가산세’를 부과 받은 것이다.

    “말해 봐요, 나한테 왜 그랬어요?”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주인공 이병헌과 그의 보스 김영철이 마지막 장면에서 나누던 대화. 이병헌은 보스 김영철을 위해 살신성인했지만 보스의 여자에게 연정을 품었다는 이유만으로 죽을 뻔 한다. 이병헌은 “말해 봐요, 나한테 왜 그랬어요?”라고 묻고 보스는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라고 답한다. 억울하다고 소명해도 듣지 않았고, 한때의 좋았던 시절을 떠올려 보라고 해도 방법이 없다. 법정에서도 호소해 보았지만 결국 패소했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납세자는 억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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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가가치세는 소비에 대한 세금이기도 하고, 부자와 가난한 자의 차별이 없는 세금이며, 전체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제일 높다. 하지만 매우 기술적인 세금이고, 동시에 과세행정의 편의를 위한 다단계 세금이다. 다단계 세금이라는 것이 왜 과세행정의 편의를 위한 것일까. 어차피 최종 소비단계에서 한 번에 거두면 될 것을 왜, 거래 단계별로 매출세액에서 매입세액을 빼도록 하고 납부와 환급이라는 번거로운 절차를 거치도록 불편하게 만들어 놓았을까.

    이는 국민경제의 투입과 산출의 과정을 살펴보면 해답이 나온다. 최종 소비단계에 위치한 사업자는 중간 단계의 사업자보다 훨씬 많고 그들의 실제 매출액을 과세관청이 일일이 좇아가며 알아내기도 힘들다. 때문에 거래 단계별로 다단계 방식으로 세금을 걷으면 마지막 최종 소매 단계에서 세수를 일부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부가가치가 큰 앞 단계에서 대부분 만회할 수 있다. 단계별 세금이 훨씬 효율적이라고 판단되는 이상, 관리를 함에 있어서도 납세자의 조력이 잘 유지되어야 한다. 국가 입장에서는 재화와 용역이 거래되는 단계와 구조를 잘 알고 있어야 하며 각 단계별 거래를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으면 누가 세금을 안 냈는지도 쉽게 알 수 있다. 그 핵심에 세금계산서가 있다.

    납세자의 조력이 필수적이라는 얘기는 한편, 그 조력이 충분하지 않았을 때 국가가 어떠한 형식으로든 제재를 가한다는 말과도 이어진다. 물론 어느 한 사업자가 매출처 또는 매입처별세금계산서합계표를 불성실하게 기재했더라도 그 전후의 다른 사업자들이 모두 정확하게 기재했다면 이를 대조함으로써 그 불성실한 기재사항을 쉽게 알 수 있고 정확한 부가가치세를 매기는 데도 무리가 없을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사업자들이 거래 상대방만을 믿고 자신의 신고를 대충대충 처리한다면 부가가치세는 그 뿌리부터 흔들릴 수 있다. 때문에 납부한 부가가치세 자체는 정확하더라도 그 신고에 있어서 불성실한 부분이 있다면 국가는 행정상의 제재로 ‘가산세’를 부과하게 된다. 가산세는 그 이름만 보면 세금이지만 사실은 세금의 탈을 쓴 행정 벌에 더 가깝다. (예컨대 헌법재판소 2005년 10월27일 선고 2004헌가21 결정 등)

    한때 미안했고 한때 사랑했더라도 ‘한 번의 실수조차 용서받지 못한다’는 게 부가가치세의 세계다. 물론 영화에서처럼은 아니겠지만 국가로서는 나중에 사업자들의 세금계산서를 순서대로 맞추어보다가 불성실하게 신고한 사업자를 발견하게 되면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들킬 일이라면서.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납세자로서는 무언가 억울할 수밖에 없다. 부가가치세는 실제 사업으로 인한 소득이 아니라 사업의 외형에 따르게 되므로 세액도 크다. 과세편의라는 것도 과세하는 측의 편의이지 이를 납부하는 사람의 편의도 아니다. 사안의 납세자의 경우 어차피 세금계산서의 발행처도 모두 K의 사업장들이고 이들에 대한 관할 세무서장도 모두 똑같다. K가 내는 세금이 달라진 것도 아니다. 세금계산서 발행 명의에 따른 정리만 조금 틀렸을 뿐이다. 관할세무서의 부가가치세 행정에 큰 혼란을 줬다고 보기도 어렵다. 가산세라는 것은 결국 행정상의 제재인데 20억이나 내야 할 만큼 큰 잘못이 대체 무엇이란 말인지! 사소한 실수로 꼼짝없이 20억원을 내야 한다면 ‘내가 세금을 내는 곳에서 나는 존재하지 않고 내가 존재하는 곳에서 나는 세금을 내기 싫다’라는 존재론적인 회의도 나올 법하다. (세금과는 전혀 무관한 철학자이나 의사인 자끄 라깡(Jaques Lacan. 1901~1981)의 “내가 생각하는 곳에서 나는 존재하지 않고, 내가 존재하는 곳에서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라는 말의 무의미한 패러디)

    이에 최근 학계에서 조금씩 논의되고 있는 이른바 ‘조세법상의 형평면제처분제도’라는 것이 도입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독일 국세기본법에서는 과세관청이 그 징수가 개별적 상황에 비추어 형평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그 전부 또는 일부를 면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를 ‘형평면제처분’이라고 부른다. 이미 100여 년 전 입법된 이후 현재까지 많은 사례가 누적되면서 조세법률 관계의 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고, 특히 최근에는 새로운 거래유형을 과세의 영역으로 포섭하기 위한 각종 ‘포괄주의’ 규정들의 대척점에서 조세법률 관계의 균형을 맞추어주는 역할을 톡톡하게 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우리 법상 이와 견줄 수 있는 제도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헌법 제107조 제2항은 법원이 처분의 위헌 여부를 직접 심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고 그 처분에 당연히 과세처분도 포함된다. 그런데 국민의 대표자가 만든 세법에 근거를 두고 이루어진 과세 처분이라면 그 법률 자체의 위헌 여부를 별론으로 하면서 단지 그 처분이 초래한 위헌적 결과만을 두고 위법하다고 할 수 있을지 여전히 이론적으로 난점이 많다. 아직 이에 대한 사례도 거의 없는 실정이다.

    툭하면 불거지는 세금 관련 특혜시비 또는 그 반대의 경직된 과세행정의 교차점에서 독일 국세기본법상의 ‘형평면제처분’의 논의가 더욱 활발해졌으면 좋겠다.

    김동수 변호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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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 법대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육군 법무관을 거쳐 법무법인 율촌에 합류했다. 율촌 재직 중 미국 플로리다 대학에서 법학석사과정을 밟고 국세조세연구과정을 수료하기도 했다. 조세분야에 전문성을 지닌 법무법인 율촌에서 약 15년간 조세업무의 스페셜리스트로 활동한 것은 물론 현재 중부지방국세청 고문변호사로 공익업무에도 힘쓰고 있다. 이외에도 국세청 과세품질 혁신위원회 심의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2008년과 2009년 Aisa Law&Practice에서 선정하는 조세분야 ‘Leading Lawers’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김동수 /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dskim@yulchon.com]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16호(2012년 0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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