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arketing] 논란을 만들어내는 광고하기

    입력 : 2011.09.30 14: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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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녘의 한기가 느껴지는 바닷가. 누군가는 담요로 온몸을 감싸고, 다른 누군가는 웃옷을 풀어헤친 채 바닷바람을 맞으며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미국의 시인이자 단편소설가인 찰스 부코프스키(Charles Bukowski)의 “The Laughing Heart(비웃는 심장)”이란 시가 걸걸한 목소리로 낭송되어 흐른다. ”너의 인생은 너의 것 / 얻어터지며 굴종의 시궁창에 처박히게 하지 마라(Your life is your life / Don’t let it be clubbed into dank submission)”라는 첫 구절이 마치 운동가요처럼 마음을 울리며 낭송되는 시를 배경으로 시위에 나서는 청바지를 입은 젊은이들의 무리가 나타난다. 곧 거리가 연기에 휩싸인다. 경찰이 쏜 최루탄 연기 같다. 시위대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나무들을 가져다 불을 피운다.

    젊은이들은 거리에만 있지 않다. 숲속에서 소리를 지르고, 클럽에서 불이 훨훨 타오르는 기타를 연주하는 데 열광하기도 하고, 청바지를 입은 채로 수영장 풀 속으로 뛰어 들어가 사랑을 나누기도 한다. 한 젊은이가 진압경찰들 무리 앞으로 두 팔을 벌리며 겁도 없이 나아간다. 부코프스키의 시는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계속 배경으로 흐른다. “너의 인생은 너의 것 / 살아 있을 때 그것을 깨달아야 한다 / 너는 멋지다 / 구경하는 신들이 즐거움을 느끼리라 (Your life is your life / Know it while you have it / You are marvelous / Gods wait to delight in you ).”

    이 광고는 2009년 여름에 시작된 리바이스(Levi's) 청바지의 ‘앞으로(Go forth)’라는 광고 캠페인의 가장 최신판으로 만들어졌다. 리바이스의 ‘유산(Legacy)’캠페인이라고도 불린다. 개인적으로 지난 20년간 리바이스가 한 광고 캠페인 중 리바이스의 역사적 자산을 현대에 되살린 최고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작품이 논란에 휩싸였다. 리바이스는 8월 9일 페이스북에 60초짜리 이 광고물을 올렸다. 그리고 12일부터 세계 24개국에서 TV나 극장 등을 통해 방영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다른 곳보다 영국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8월 초 약탈 행위로 이어진 젊은이들의 폭동으로 혼이 난 영국에서 리바이스 광고가 젊은이들에게 폭동에 참여하도록 선동하는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가디언' 지가 보도하면서 논란이 본격적으로 불거졌다.

    리바이스의 대변인은 바로 “이 광고는 특정 상황이나 정치적 문제와는 관련이 없으며 긍정적인 행동과 개척자 정신을 다루고 있는 것”이라며 불순한 의도가 없었음을 강조햇다. 그러나 “영국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의 심각성을 감안해 광고의 영국 내 극장 및 페이스북 방영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애써 준비한 광고를 틀지 않겠다는데도 별로 마음 아픈 것 같이 보이지 않았다.

    광고로서 올려야 할 효과는 이번의 광고를 둘러 싼 논란으로 거의 다 올렸기 때문이다. 단순한 페이스북이나 유튜브 등을 통하여 광고를 본 사람들을 제외하고도, 리바이스가 이 광고 캠페인을 통하여 의도한 전통이 있지만, 젊은 정신을 갖춘 리바이스의 브랜드를 제대로 알렸다고 할 수 있다.

    화제가 되는 광고를 만들어달란 얘기를 많이 듣는다. 실제로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를 떠나서 논란이 되고 사람들의 화제로 오르내렸으면 그만큼 알려졌단 얘기이니 좋은 일 아니겠냐는 생각을 많이들 한다. 정확하게 따질 수는 없지만, 알린다는 측면에서는 논란을 일으키는 것이 긍정적인 측면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런 논란은 어떻게 일으켜야 하는지, 두 가지 대표적인 유형을 소개해 보겠다.

    사회·정치적 트렌드를 찾아라
    논란으로 효과를 톡톡히 본 두 광고 : 리바이스(왼쪽), 롬 초코바(오른쪽)
    논란으로 효과를 톡톡히 본 두 광고 : 리바이스(왼쪽), 롬 초코바(오른쪽)
    위에서 소개한 리바이스 광고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상황과 본의 아니게 제대로 일치한 광고물이었다. 유튜브에 실린 리바이스 광고를 본 어느 친구가 남긴 코멘트처럼 ‘너무나 지나치다(too accurate)’싶을 정도였다. 이렇게 특정 시기에 일어날 일을 미리 예측해 그에 맞춘 광고를 제작하는 것은 너무 힘들다. 그보다는 보다 호흡이 긴 사회적 트렌드를 보고, 그를 활용한 광고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올해 칸 광고제의 최고 작품으로 필자가 자신 있게 꼽는 루마니아의 초코바 광고가 대표적이다. 1964년에 모습을 나타낸 루마니아 국기를 사용한 포장과 바로 루마니아를 연상시키는 ‘ROM(롬)’이란 상표를 가진 초코바가 있다. 루마니아와 결부된 것이면 모두 촌스럽고 오래 된 것으로 결부시키는 루마니아 젊은이들에게 당연히 롬 초코바는 인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이전 동구 공산권 국가들 모두에서 자기 국가의 생산품들을 경멸하고, 나아가 국가 자체를 조롱거리로 삼는 경향은 흔하게 발견할 수 있다. 개방의 물결이 늦게 들이닥치고, 그 전의 독재 정권의 통제가 훨씬 심한 편이었던 루마니아의 경우는 그에 대한 반발로 초코바를 포함하여 루마니아와 연계된 것에 대한 반발이 더욱 심했던 것 같다.

    초코바 롬에서 루마니아의 젊은 소비자들에게 가장 문제가 됐던 부분은 바로 포장에서 드러나는 루마니아 국기였다. 당연히 젊은 소비자들은 포장에 쓰인 루마니아 국기를 전혀 쿨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제품 자체의 품질도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단정하며 비아냥거리는 식이었다. 포장을 변화시키는 것이 필요했다. 그런데 롬은 생각한 이상으로 과감하게 포장을 바꿨다.

    롬은 포장의 배경을 미국 성조기로 바꿔 버렸다. 그리고 광고에 ‘쿨한 맛(The taste of coolness)’이란 영어 표현을 그대로 영어로 가져다 썼다. TV광고에서도 건방진 표정과 제스처를 쓰는 인사가 나와서 미국식 영어로 “너희들이 싫어해서 아예 미국 성조기로 멋지게 포장을 했어”하며 말을 하고 루마니아어 자막을 사용했다.

    문자 그대로 루마니아 전체에 난리가 났다고 한다. 루마니아에 대한 모독이라면서 원래 루마니아 국기를 사용하도록 촉구하는 움직임이 강력하게 일었다. 루마니아 소비자들은 스스로 팬카페를 만들고, 청원운동과 플래시몹 등으로 인터넷 시대에 맞는 일종의 소비자운동을 벌였다. 결국 롬은 일주일 만에 원래의 포장으로 돌아갔고, 루마니아 국민들의 자부심은 한껏 고취됐다. 그와 함께 당연히 롬 초코바에 대한 소비자들이 전에 느끼지 못했던 충성심과 사랑이 자연스럽게 일어났다.

    이렇게 논란을 몰고 올 행동을 실천에 옮겼던 용기에 대하여 큰 점수를 주고 싶다. 한국에서 우리가 이와 비슷한 캠페인을 전개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도 한국의 정치 지형과 논쟁에서 극심한 타격만을 입지 않았을까? 그 전에 그런 논란의 당사자로서 부담을 느껴 의사결정과정에서 기각됐을 것이다.

    한국의 기업인들은 아무리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좋다고 하더라도 정치적, 사회적인 논란과 결부되는 것은 극단적으로 싫어한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가장 크게 관심을 가지고 있고, 화제로 삼을만한 것들은 바로 그런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이슈이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섹스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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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편할 거라면 입지 않겠다”라는 도발적인 카피에 더욱 도발적인 사진이 실린 인쇄광고가 8월 중순 공개됐다. 한국 연예계의 대표적인 8등신 미녀로 꼽힌다는 여배우가 양복 재킷만을 걸친 모습에 주요 부분을 위와 같은 카피가 실린 띠로 가리고 나타났다. 어느 속옷 회사의 광고였다. 사실 품목 자체의 성격상 속옷 회사의 광고는 도발적인 충격을 주기가 힘들다. 속옷 회사의 광고에 대한 노출 기준이 다른 제품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회 전체로 과거에 비해 노출이 심해진 현 상황에서 그런 일차원적인 노출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세계적인 속옷 기업인 빅토리아 시크릿은 여성단체의 줄기찬 항의에도 불구하고, 늘씬한 여성들을 앞세운 광고들을 꾸준히 만들어 방영하고 있다. 빅토리아 시크릿의 패션쇼를 인터넷을 통해 방영한다. 슈퍼볼 본경기 전에 빅토리아 시크릿 속옷만 입은 여성들의 란제리 미식축구 경기를 진행하는 등 새로운 시도도 계속하고 있다. 그런 시도를 할 때마다 전 세계로부터의 호응도 뜨겁다. 빅토리아 시크릿의 일련의 성공요인은 노출의 정도보다는 프로그램의 신선함과 출연하는 여성 모델들의 압도적인 질과 양에서 나온다. 최정상급의 모델들이 집단으로 출연하여 다른 경쟁사들과 질과 양에서 차이를 내면서 그 자체로 화제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런데 역대 가장 뜨거운 호응을 불러일으킨 빅토리아 시크릿의 광고는 그런 질과 양과 심지어 노출의 정도에서도 떨어지는 작품이었다.

    2008년 슈퍼볼의 본 경기 중에 방영된 광고이다. 빅토리아 시크릿 제품임에 분명한 란제리만 입은 모델 아드리아나 리마가 유혹하는 표정과 몸짓으로 미식축구 볼을 장난을 치듯이 다루고 있다. 그리고 자막이 나타난다. “This game will soon be over(이 미식축구 경기는 -비록 슈퍼볼일지라도- 금방 끝날 거야).” 볼을 던져 버리고 이제 됐다는 듯한 요염하면서도 득의만면한 미소를 지으며 일어나는 아드리아나. 그리고 다시 자막이 뜬다. “Let the real games begin (자 이제 진짜 본게임을 시작하자고요).”

    이 광고의 아드리아나보다 더 노출이 심하게 하고 나타난 모델들이 나타난 빅토리아 시크릿의 광고가 숱하게 많다. 어느 광고평론가의 말대로 이 광고는 미식축구 경기 중에 무시를 당하고 있는 듯한 여성의 심리를 소름 끼칠 정도로 잘 잡아냈다. 그리고 미식축구 경기를 복기할 틈도 없이 진짜 게임으로 돌입하려는 여성! 모델인 아드리아나의 표정연기도 압권이었다. 아마도 아드리아나가 미식축구 따위에는 관심이 없는 진짜 축구의 제왕 국가인 브라질 출신이기에 더욱 미식축구 경기 자체가 지겹고, 이후의 ‘real game(진짜 본게임)’이란 말이 와 닿았다고 생각하면 상상력이 지나친 것일까?

    사실 광고에서 섹스어필의 힘은 노출의 정도보다는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정도에 달려 있다. 논란을 일으키는 것도 노출을 얼마나 심하게 했는가 보다는 무엇을 연상시킨다는 데서 주로 나온다. 그래서 카피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의도적으로 성적인 의미를 담아서 만든 것도 있고, 전혀 의도하지 않았는데 엉뚱하게 성적으로 해석이 된 경우도 있다. 법적으로도 그렇고 사회 통념상으로도 성을 소재로 한 직접적인 표현이 억압됐던 2000년대 이전에 다음과 같은 카피들이 성과 연관돼 사람들에게 회자됐다.



    줘도 못 먹나? (여배우가 군인들을 대상으로 아이스크림을 쥐고 하는 말)
    본능적으로 강한 게 좋아요. 강한 걸로 넣어 주세요. (미국 여배우 샤론 스톤이 출연한 휘발유 광고에서 주유원에게 하는 말)
    구석구석 빨아줘요, 봉이니까 (세탁기)
    벗겨도 벗겨도 변함없고, 먹어도 먹어도 깊은 그 맛 (양파 스낵)


    앞서 얘기한대로 전혀 의도한 바와 다르게 해석한 것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대체로 상당히 직접적인 표현으로 표피적인 상상에 그쳐버린 아쉬움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극적, 수동적인 여성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 면에서 필자는 성적인 카피의 대표로 브룩 쉴즈가 출연한 캘빈클라인 청바지의 전설적인 광고를 꼽는다.



    “You wanna know what comes between me and my Calvin's? Nothing. (나와 캘빈 청바지 사이에는 아무 것도 없다)”

    이 광고가 나왔을 때 사람들은 어리둥절했다. 처음에는 캘빈 청바지와의 사이에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파악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속옷을 입지 않았다는 것이 청바지와 어떤 관련이 있냐는 말이 나왔다. 곁들여 당시 미성년자였던 브룩 쉴즈의 나이까지 구설수에 올랐다. 이 모든 논란이 섹시함을 추구하는 젊은이들의 청바지로 캘빈클라인이 자리를 잡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서두에 나온 리바이스 브랜드를 노후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리바이스는 행동하는 젊은이들의 패션으로 새롭게 자기의 영역을 잡으려 노력하고 있는데, 이번과 같은 논란이 큰 효과를 발휘할 것으로 본다.

    사회·정치적인 돌발사건을 우리가 족집게처럼 예측해 그에 맞는 광고를 만들 수는 없다. 그러나 일정 기간 이상의 트렌드를 살핀다면 사회적 이슈에 맞는 논란을 일으킬 소재를 충분히 찾을 수 있다. 광고에서의 섹스어필에 치우쳐 얘기를 했지만, 무엇이든 직접적인 표현보다는 상상력을 자극해야 더욱 효과가 크다. 직접적인 표현보다는 호기심을 자극하고, 광고를 접한 사람들이 스스로 뭔가 연결시켜 창조하게 하는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

    [박재항 / 이노션 마케팅본부장 jaehang@hotmail.com]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12호(2011년 0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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