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자의 기술] 김석규 GS자산운용 대표, “투자 성공은 인간 본성에 반(反)한다. 내가 틀렸을 때를 대비하라”

    입력 : 2011.09.15 16:5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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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실은 비교적 어두웠다. 창가 블라인드도 내려져 있었다. 여의도 대하빌딩 6층 GS자산운용 대표이사실의 분위기는 환한 형광 빛이 가득 차 있는 사무실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꽤 낯선 것이었다. 그러나 노타이 차림의 김석규 GS자산운용 대표의 밝고 포근한 첫인상은 어두운 사무실 분위기를 상쇄시켰다. 김 대표의 책상과 그 주위에는 자료들이 빼곡히 쌓여 있었다. 김 대표가 늘 공부하고 연구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화려한 경력에 안정적인 직장, 대표이사라는 직함까지 갖고 있는 사람이 새로운 직장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새로운 직장이 신생 기업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짊어져야 할 책임감과 사명감의 무게가 다르기 때문이다.

    서울대 국제경제학과 학사·석사에 미 오리건대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한국투자신탁 주식운용 펀드매니저, 리젠트자산운용 상무이사, B&F투자자문 대표, 교보투신자산운용 대표이사 사장을 지낸 김 대표는 2008년 GS자산운용 대표로 자리를 옮겼다. 김 대표는 “사실 굉장히 어려운 결정이었다”며 “내 철학과 그림대로 운용해보기 위해서였다”고 털어놨다.

    자리에 앉자마자 2분기 큰 폭으로 조정 받은 증시에 대해 먼저 물었다. 많은 전문가들이 조정을 예상하긴 했지만 그 폭이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김 대표 역시 2분기 조정, 하반기 상승을 예상한 전문가 중 한 명이다.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뭐라도 한마디 들어야 할 판이다.

    2분기 증시가 너무 크게 조정 받았다. 이 때문에 투자자들의 심리가 굉장히 위축돼 있다. ‘2분기 조정 후 하반기 상승’을 예측한 바 있는데 여전히 유효한가. 하반기 국내 주식시장을 바라보는 핵심은 수출에 있다. 한국의 경기, 기업 실적, 주가의 열쇠는 수출이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내수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내수는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 수출이 잘 돼야 내수도 좋아지고 수출이 안 되면 내수도 나빠지는 구조를 갖고 있다. 우리나라의 수출은 두 가지에 좌우된다. 하나는 글로벌 경기 트렌드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이다. 한국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은 굉장히 좋다.

    그렇다면 문제는 결국 글로벌 경기 트렌드라는 것인가. 그렇다. 그중에서도 G2(미국, 중국)가 가장 중요하고 또 그중에서도 중국의 영향이 더 크다.

    중국을 먼저 들여다봐야 할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중국의 인플레이션을 우려하고 있다. 인플레 때문에 긴축정책을 펼 수밖에 없고, 이것이 경기 둔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근본 원인인 중국 인플레가 꺾여야 다른 것들이 해결될 것 같은데 언제쯤 잡힐 것으로 예상하나. 최근 그 조짐이 보이고 있다. 중국의 통화 증가율이 감소하고 있는데 이는 물가가 잡힐 것이란 증거 중 하나다.

    중국 물가는 전년 대비 고공행진이지만 전월 대비로는 모멘텀이 꺾이고 있다. 중국의 농산물 가격도 하향 안정세다. 돼지고기값이 여전히 고공행진 중이지만 다른 것들은 안정되는 추세다. 부동산 가격도 두어 달 전부터 잡히고 있다. 특히 중국 정부는 올해 공공주택을 많이 공급하려 하고 있다. 이런 것들을 봤을 때 인플레는 곧 잡힐 것으로 예상한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레 긴축이 완화되고 경기가 살아날 것이다. 중국의 긴축정책도 그리 크게 우려할 바는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더 큰 도약을 위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중국 정부 입장에서 긴축을 통해 경제성장률을 8% 이하로 떨어뜨리는 것은 절대 정치적 옵션이 될 수 없다. 중국 정부는 운명적으로 계속 고용을 창출할 수밖에 없다. 경제성장률이 8% 이하로 떨어지면 실업자가 양산되고 중국의 정치적 생명은 위협받을 것이다.

    중국에 관한 한 안심해도 된다는 것인가. 한 가지 우려스러운 점이 있기는 하다. 또 다른 측면에서의 인플레다. 즉 임금 상승에 따른 물가 상승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을 간과하고 있다. 과거와 달리 최근 2년 간 중국의 임금상승률은 매우 높았다. 생산성이 아무리 높아도 임금 상승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이는 곧 전 세계의 값싼 물건의 공급지였던 중국이 조만간 전 세계의 비싼 물건의 공급지로 바뀐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 정부 역시 국부론 대신 민부론을 호언하고 있다. 백성들을 부유하게 한다는 것, 다시 말해 임금을 올리겠다는 것이다. 또 역사적으로 보건대 소득 4000달러를 달성하는 때쯤 노동의식이 강화돼 왔다. 현재 중국이 딱 그 시기다. 실제로 파업, 자살 등 노동의식이 강화됐다는 증거들이 중국 내에서 심심찮게 나타나고 있다. 중국 노동자들이 과거처럼 마냥 저임금으로 살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임금 상승에 따른 중국발 인플레이션은 향후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올해는 아니지만 내년부터는 문제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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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분기 투자심리가 위축된 까닭 중 하나가 미국의 2차 양적완화(QE2) 종료와 더블딥 우려다. 미국의 2차 양적완화 종료는 문제가 안 된다. 다시 말해 유동성에는 문제가 없다는 얘기다. 금융위기 이후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미국 정부가 채택한 것은 재정 확장과 통화 확장인데 엄밀히 말해 금융위기를 극복한 요인은 재정 확장에 따른 것이었다. 통화 확장 부분을 들여다보면 연방정부가 푼 돈이 개인에게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연방정부는 돈을 개인이 아니라 은행에 풀었다. 그런데 은행에서는 개인들을 위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중앙에서 아무리 돈을 풀어도 은행에서 개인에게 돈을 풀지 않으면 의미 없는 것이다. 은행에서 돈을 푸는 것이 관건인데 최근 그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다. 민간 수요가 살아날 것이다.

    미국의 민간 수요가 살아나는지 어떻게 확신하나. 먼저 2008년 금융위기를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2008년 금융위기는 그 이전의 전형적인 금융위기와 성격이 전혀 다르다. 원래 금융위기라는 것은 단순히 금융 부문에 의해서만 오는 것이 아니다. 산업 사이클과 신용 사이클이 겹치고 증폭되면서 오는 것이다. 경기가 좋을 때 기업들은 밀려드는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설비를 늘린다. 공장을 지을 돈을 은행에서 빌린다. 그렇게 해서 설비를 늘려놨는데 갑작스레 경기가 무척 나빠지면 늘려 놓은 설비에 대한 부담은 엄청나다. 대부분 망한다. 기업이 망하면 돈을 빌려준 은행도 쓰러진다. 주가도 확 빠지고 개인과 기업, 은행이 다 망가진다. 그것을 우리는 이미 경험한 바 있다. 외환위기가 그것이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는 다르다. 기업이 빠져 있는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는 주택시장을 매개로 한 가계와 금융기관의 관계에서 나타난 것이다. 서브프라임모기지가 그것 아닌가. 2008년 금융위기 때 거대 기업들이 엄청나게 설비투자해서 망했다는 소식 들어봤나? 이것은 지금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금융위기 이후 기업들은 상당히 몸을 사렸다. 투자를 거의 하지 않고 돈만 쌓아두었다. 금융위기가 터졌는데 캐시플로가 역사상 최고였다. 원래 금융위기가 터지면 기업들이 어렵거나 망하는 것이 보통인데 반대로 캐시플로가 최고라는 것은 이제 투자할 것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미국 기업들이 투자하기 시작했고, 고용이 늘고 있다. 따라서 하반기 우리나라 주식시장은 좋을 것이다.

    코스피지수로 예상한다면. 2400 정도가 되지 않을까 한다.

    올해까지는 국내 주식이 가장 좋다고 보는 것인가. 사실 내가 답변할 자격은 없다. 모든 방면에 전문가는 아니기 때문이다. 주식 전문가 입장에서 보면 한국 주식이 가장 좋아 보인다.

    다른 것은 없나. 굳이 꼽으라면 이머징마켓의 내수 소비와 관련된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 될지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는 힘들다. 그것과 관련된 회사일 수도, 주식일 수도, 펀드일 수도 있다. 다만 규모면에서 가장 성장성 있는 것은 이머징마켓의 내수 소비와 관련된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김 대표와 GS자산운용의 투자철학은 뭔가. 가치투자를 지향한다. 많은 사람과 회사들이 가치투자를 지향한다고 하는데 실제로 잘 지켜지지 않는 것 같다. 우리는 그것을 끝까지 관철시킨다는 의지를 갖고 만든 회사다.

    김 대표가 말하는 가치투자란 어떤 것인가. 가장 중요한 점은 ‘장기적 관점’이다. 누구나 다 이야기해서 식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왜 장기적 관점이냐는 이유가 중요하다. 워런 버핏이 ‘투자는 합리성의 게임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투자란 본래 인간 본성에 반하는 것이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비합리적이다. 투자에 성공하려면 이 본성을 이겨내야 한다. 즉 합리성을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합리성은 장기적인 관점을 취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누구나 다 좋다고 얘기하고 스스로도 좋다고 생각한다면 그 주식을 팔아야 하나? 당연히 팔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은 팔고야 만다. 비합리적이란 얘기다. 장기적인 관점을 가졌을 때는 이를 극복할 수 있다. 가치투자에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바텀업(Bottom-Up)이다. 범위를 좁히고 투자 기업에 집중하자는 것이다. 그러면 성공할 확률이 더 높아진다. 바텀업을 하면 투자 회사가 40~50개를 절대 넘어설 수 없다.

    얼핏 들으면 집중투자인 것 같은데. 맞다. 하지만 일부러 집중투자를 하려고 한 게 아니라 투자철학을 지키다보니 집중투자가 된 것이다. 최근 유행하는 랩 같은 집중투자와는 다르다.

    일반인들이 주식 직접 투자로 성공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방법이 있기는 하다. 자기가 종사하고 있는 분야를 눈여겨보고 투자하는 것이다. 가령 자신이 조선업에 종사하고 있다면 업계와 현장 분위기를 훨씬 빨리 알 수 있을 것 아닌가. 세계적인 펀드매니저인 피터 린치는 ‘생활 속에서 투자의 모티브를 찾아라’라고 말한 바 있다. 그것이 진리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이 좋다.

    투자철학과 더 나은 운용을 위해 따로 공부하는 분야가 있나. 매크로, 스트레티지 리포트를 많이 본다. 개인적으로는 책을 많이 본다. 최근에는 심리학, 철학 관련 책을 주로 봤다. 물리학도 관심이 간다.

    그런 것들이 실제로 도움이 되나. 꽤 도움이 된다. 물론 투자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나중에 보면 결과적으로 도움이 됐다는 것을 절감한다. 내가 직원들에게 훌륭한 펀드매니저가 되기 위해 강조하는 것도 이 부분이다. 리포트는 나만 보는 게 아니라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보는 것이다. 따라서 지식의 양과 실력, 정보에는 그다지 차이가 없다. 그러면 결국 어디서 차이가 나는가. 사고의 프레임을 얼마나 늘리고, 그러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달려 있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풍부한 이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확장해야 한다. 그런 것들이 축적되면 똑같은 정보를 접했을 때 남과 다른 해석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일반 투자자들에게 꼭 조언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What If I’m Wrong?’이라는 질문을 스스로 하라는 것이다. 내가 틀렸을 때 대비돼 있는가. 비록 내가 틀렸어도 이만큼 대비는 돼 있다는 것을 갖춰놔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안 돼 있으면 두 번 다시 기회가 없다는 것을 명심해 달라. 또 자기 본성을 이겨내라는 것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투자 성공의 길은 인간 본성에 반하는 것이다. 훌륭한 투자자가 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 본성을 전부 이겨내야 하기 때문이다.

    [임형도 기자 hdlim@mk.co.kr│사진 = 정기택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10호(2011년 0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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