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현덕의 탈각의 순간들] 성수동 | ② 붉은 벽돌, 과거와 미래가 만나다

    입력 : 2026.02.02 11:50:39

  • 아이아이컴바인드가 과거를 해석하듯이 사실 오늘날 성수동의 개벽도 과거에 대한 해석에서 시작한다. 그게 이른바 ‘붉은 벽돌’이다. 성수동은 기본적으로 소비의 무대가 아니라 생산의 현장이었다.

    마포에 본거지를 두고 있었던 문구 기업 모나미가 1963년 성수동에 공장을 세웠다. 4년 뒤 1967년 구두 기업 금강제화가 금호동으로 옮겨오면서 성수동에 구두와 가죽 관련 업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동차 정비 등 기계 금속공장이 터를 잡고 있었다. 회색 시멘트 먼지와 기름 냄새가 뒤섞인 거리, 저녁이면 공장 기계 소음이 꺼지지 않고 낡은 셔터만 남는 동네. 구청장은 “성수의 정체성은 오랫동안 생산과 노동의 공간이었다”라고 말한다. 김경민 서울대학교 도시계획학과 교수는 정원오 구청장이 직접 쓴 <성수동>이란 책자의 추천사에 “2013년 이전 성수동은 자동차 수리를 제외하고는 강남 주민들의 방문이 거의 없던 지역”이라고 서술했다.

    그 안을 채운 건축재료가 붉은 벽돌이었다. 가장 저렴하면서도 튼튼한, 그래서 가장 흔했던 재료. 3~4층짜리 저층 벽돌집. 성수동은 그렇게 주거와 산업이 섞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당시 1980년대 붉은 벽돌 주택은 사실 성수동뿐만은 아니었다. 당시 서울 전역의 저층 주택과 작업장은 대부분 붉은 벽돌로 마감했다. 누구도 아름답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특별하다고 여기지도 않았던, 필요에 의해 선택돼 도시의 가난한 골목을 지탱했던 붉은 벽돌. 그 붉은 벽돌이 성수동에서 일을 냈다.

    서울숲 북측 아틀리에길 일대 ‘붉은벽돌 건축물 지원사업’
    서울숲 북측 아틀리에길 일대 ‘붉은벽돌 건축물 지원사업’

    우연한 기회였다고 한다. 정원오가 제37대 성동구청장으로 당선된 이듬해인 2015년, 성수동 도시재생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무렵이었다. 정 구청장은 한국 패션계의 대모인 지춘희 디자이너를 만난다. ‘미스지콜렉션’을 운영하는 그녀는 쇼룸은 강남 청담동에 두고 있지만 생산공장은 성수에서 운영하고 있었는데 그녀가 제안한 핵심 키워드가 ‘붉은 벽돌’이었다.

    정 구청장은 지춘희 디자이너로부터 이런 조언을 듣는다.

    “성수동을 둘러보면 붉은 벽돌이 강렬하게 들어옵니다. 붉은 벽돌은 건축의 뿌리 같은 소재입니다. 튀지 않지만 정직하고 따뜻하죠. 성수동의 분위기와 딱 맞는 재료죠. 붉은 벽돌과 오래된 건축물을 무작정 허무는 대신, 이를 보전하면서 성수동만의 브랜드와 스토리를 만들어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지춘희 씨의 조언이 잠재돼 있던 정 구청장의 감수성을 깨웠다. 정 구청장은 “동네 곳곳에 남아있는 붉은 벽돌 건물을 보면 뭔가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이곤 했다”라고 술회했다. 그는 “지춘희 씨의 제언이 성수동 도시재생의 중요한 방향 설정에 큰 영향을 주었다”라며 “개발보다 맥락과 기억을 남기는 방식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계기였다”라고 말한다.

    대림창고
    대림창고

    그가 구청장이 된 다음해 성수동이 세간의 주목을 끄는 하나의 사건(?)이 발생했는데 그것이 대림창고였다. 1970년대 정미소와 창고로 쓰였던 건물을 활용해 카페로 만든 것. 벽을 헐어내지도 않고 색을 칠하지도 않은 날 것 그대로의 붉은 벽돌 건물. 그 공간을 정리하지 않고 그냥 여백으로 남겼다. 그 속으로 사람들이 들어와 다과를 즐기면서 전시회를 열고, 책을 읽고, 공연을 한다. 홍동희 대표의 아이디어였다. 구청장에게 “성수동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분이 누구냐”고 물으면 바로 이분이란 답이 나온다.

    정 구청장은 “홍 대표는 초창기 성수동 문화의 싹을 틔운 분”이라며 “공장으로만 인식되던 공간을 문화와 사람이 머무는 장소로 바꾸고 성수동을 단순한 산업지역이 아니라 새로운 실험이 가능한 동네라는 인식을 만들어줬다”라고 말한다. 그는 “당시에는 쉽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그 시도가 이후 성수동 전반의 변화로 이어지는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다”라고 평가한다.

    1997년 외환위기가 성수동에서 제조업을 몰아냈다. 빈 점포가 늘어나고 사람들의 발길은 닿지 않는 황량한 도시가 됐다. 이 빈 자리를 채운 새로운 부류가 등장했는데 그게 아티스트, 디자이너, 작가 같은 부류였다. 세계적인 도시사회학자인 리처드 플로리다 캐나다 토론토대 로트먼 경영대학원 교수가 말하는 창조적 계급(Creative Class)이다. 정 구청장이 도시재생의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바로 그 책, <창조계급의 부상>의 저자가 플로리다 교수다.

    성수동의 창조계급은 청년이었다. 그들은 정형화된 상업 공간이나 기존의 브랜드가 주는 피로감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실험했다. 성수동은 그런 청년들에게 무대를 제공했다. 지우기가 아닌 덧칠하기로.

    2017년, 붉은 벽돌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닌 도시의 정체성을 담은 문화자산으로 격상한다. 그게 ‘서울특별시 성동구 붉은벽돌 건축물 보전 및 지원 조례’. 이 조례명의 방점은 ‘보존’이 아닌 ‘보전’이다. 정 구청장의 말.

    “보존은 통상 문화재처럼 변경 없이 유지해야 하는 대상을 다루는 개념입니다. 이에 반해 보전은 변화 가능성을 열어두면서 핵심적인 맥락과 가치를 유지하려는 접근법이지요. 무조건적 보존은 교조적입니다. 보전은 실용에 기반을 둔 개념입니다. 기존의 붉은 벽돌을 형태 그대로 절대적으로 보존하는 것이 아닙니다. 붉은 벽돌의 특성을 유지하면서 성수의 독특한 차별성을 이뤄내기 위한 새로운 기능과 창의성을 펼쳐나갈 수 있게한 것입니다. 그래서 지원 조례입니다. 강제하지 않기. 권장하고 도와주기. 자율성 지켜주기. 그렇게 성수의 브랜드가 된 것입니다.”

    이런 붉은 벽돌 건물이 성수에 총 131개가 있다. 이 중 45개는 구청에서 조례에 따라 지원한 것이고 나머지 86개는 자발적으로 붉은 벽돌을 채용한 것이다. 대림창고를 활용한 무신사 스토어를 비롯해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이 건물주인 키스 편집숍, 라테로 유명한 블루보틀 카페, 웹툰 제작 회사인 키다리스튜디오…. 모두 붉은 벽돌 콘셉트로 건물을 디자인했다.

    정 구청장은 주민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성수를 “과거를 품고 미래를 창조한 희망의 도시”라고 썼다. “어제에서 찾은 오늘”이라고. 도시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그는 과거의 흔적을 지우지 않았다. 새롭게 입주하는 기업들이 이 고전적인 붉은 벽돌을 따라 한 것이다. 키스 편집숍을 들여온 박철규 현대백화점 전 대표는 “키스 건물도 붉은 벽돌로 디자인하고 보니 묘한 인문학적 감성이 묻어나는 것을 느꼈다”라고 한다. 성수동 바로 동쪽에 인접한 동네가 화양동이다. 1950년대 이곳에 시인이자 수필가인 모윤숙 여사가 살고 있었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1909년 함경도에서 태어나 월남한 그녀는 종종 문단의 거목들을 초청해 문학모임을 갖곤 했다. 어느 날 구상 시인이 그 모임에 갔다가 후줄근한 차림의 중년 사나이가 윗목에 조용히 앉아 문인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있는 걸 발견하고 모 여사에게 “저분이 누구입니까”라고 물었다. 모 여사가 싱긋 웃으며 “저 아래 초입에서 자동차 수리공장을 하는 정주영이란 분이에요. 문인 선생님들께 문학과 인생에 대해 배우고 싶다더군요. 그 뜻이 가상해 참석을 허락했지요”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구 시인이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시인학교를 찾아다니던 영원한 문학청년’이라고 쓴 추모글에 나와 있는 내용이다. 정확하진 않지만 저 아래 초입 자동차 수리공장이 바로 성수 근처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성수동은 공학과 인문학이 묘하게 융합하는 DNA가 있는 곳이었나보다.

    소셜벤처의 성지가 되다
    소녀방앗간
    소녀방앗간

    우리가 흔히 성수동이라고 하면 연무장길을 말한다. 그러나 붉은 벽돌 투어는 여기서 2km 정도 떨어진 아틀리에 거리에서 시작해야 한다. 겨울철인데도 잔잔하게 내리쬐는 햇빛이 추위를 잊게 하는 날이었다. 뭔가 새로운 것들을 만날 것 같은 흥분감을 갖고 아기자기한 골목길로 들어선다. 맨먼저 마주치는 가게, ‘소녀방앗간’이었다. 친근한 상호에 끌려 매장을 기웃거리게 된다. 가이드를 맡은 성동지역 경제혁신센터의 박장선 센터장 설명이 친절하다.

    “성수동에 밥집을 만들겠다는 생각에 24살 대학생 김민영 씨가 시작한 사회적 기업입니다. 시골 산골에서 어르신이 재배한 나물과 직접 담근 된장 고추장 같은 장류, 그리고 참기름 들기름 등 식재료를 서울로 가져와 부담 없는 가격에 저염식으로 맛있게 만들어 서울 사람들에게 팔겠다는 콘셉트였습니다. 지금은 케이터링, 도시락 서비스와 명절 선물까지 사업 영역을 확장했습니다.”

    2014년 성수에 터를 잡은 소녀방앗간은 10년이 지나 다시 임대차 계약을 갱신하고 또 다른 10년을 준비 중이다. 박 센터장은 “정 구청장이 취임한 2014년경부터 성수동에는 이런 소셜벤처, 사회적 기업 들이 터를 잡기 시작했다”라면서 “누군가 위에서 ‘벤처 단지 만듭시다’라고 해서 설계한 게 아니라 사회적 문제점을 해결하려는 청년 혁신기업가들이 하나둘씩 모여들면서 형성된 풀뿌리 혁신 생태계였다”라고 말한다.

    성수동 연무장길
    성수동 연무장길

    이 가운데는 2024년 회계법인 EY한영이 주관하는 올해의 기업가상 사회적 기업 부문 수상자인 노순호 동구밭 대표도 있다. 그는 2013년 대학 시절 사회적 기업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발달장애인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시골 출신 노 대표가 선택한 아이템은 도시 농업. 주말농장에 나가 텃밭을 가꾸던 노 대표의 눈에 발달장애 청년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들과 대학 자원봉사자들을 한 팀으로 묶어 정식으로 텃밭을 가꿔보면 어떨까?”

    사업은 그렇게 시작했다. 텃밭은 20개를 넘어섰고 장애 청년 수도 100명으로 늘어나 사업이 확장됐으나 경영은 오히려 한계에 부닥쳤다. 이들이 받는 참가비와 지방자치단체 지원금만으로는 사업 지속이 어려웠다. 이런 판단이 들자 함께하던 동료들마저 한두명씩 떠나기 시작했다. 결단의 시점이 왔다고 느낀 노 대표는 직접 장애인을 고용해 수익성 있는 비즈니스를 시작하겠다고 생각하고 아이템을 찾았다. 그게 수제 비누였다. 발달장애인들도 쉽게 만들 수 있으며 초기 자본이 적게 들고 텃밭 농작물보다 유통기한도 길었다. 시장이 있느냐가 관건. 사회적 기업의 핵심은 지속 성장이 가능한가에 있기 때문이다. 노 대표는 대기업 고급 수제 비누가 3만원대인데 이보다 가격 경쟁력이 있는 착한 비누라면 건강과 환경을 생각하고 구매하는 소비자들이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초기에 노 대표의 사업을 도와준 지원군들이 있었다. 소셜벤처 투자자인 소풍벤처스와 같은 소셜벤처업체인 베어베터의 김정호·김진희 대표. 10년이 지난 지금 동구밭에는 희망의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성수’라는 환경이 없었다면 아마 오래전에 좌절했을지 모른다. 노 대표는 “작년엔 170억원 매출에 15억원 이상의 흑자가 났다”라면서 “아모레퍼시픽 등 국내 대표 화장품 회사와 워커힐 등 유명 호텔에도 납품하고 있다”고 말한다.

    성수동에 소셜벤처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 있다. 공교롭게도 재벌 3세이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손자인 정경선 현대해상 부사장. 2012년 사회혁신 플랫폼이라고 할 수 있는 ‘루트임팩트’를 창업한 그는 “사회문제를 해결하려고 뛰어든 청년들이 안정적으로 일하고 서로 연결될 수 있는 커뮤니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라며 “내가 이런 일을 해봐야지 하는 결심이 섰다”라고 말한다. 장소를 물색하기 위해 신림동, 창동, 명륜동 등을 돌아보던 그는 최적의 장소를 발견했는데 그게 성수동이었다.

    정 구청장은 “초창기 성수동의 중요한 축이 된 게 소셜벤처 생태계”라며 “이에 대해 정경선 대표에게 깊은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라고 말한다.

    “정 대표는 성수동에서 소셜벤처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또 지역 기업과 어떻게 공존하며 성장할 수 있는지에 대해 함께 고민해 주셨고, 행정 방향에 대해서도 매우 진지하고 현실적인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그 과정에서 성수동은 단순히 ‘힙한 동네’가 아니라, 사회적 가치와 산업이 함께 가는 지역으로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갖추게 되었다고 봅니다.”

    아시아 최대 ESG 플랫폼 ‘언더스탠드애비뉴’
    아시아 최대 ESG 플랫폼 ‘언더스탠드애비뉴’
    아시아 최대 ESG 플랫폼 ‘언더스탠드애비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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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셜벤처의 요람 아틀리에길을 벗어나면 만나게 되는게 서울숲이다. 2005년 6월에 개장한 서울숲은 120만㎡(36만 평) 규모의 면적에 생태숲, 수변공원, 예술 공연장, 체험학습원 등의 테마 공간으로 조성된 도심의 쉼터. 정 구청장은 이 무한의 가치를 지닌 서울숲을 성수동과 연계할 아이디어를 찾고자 했다. 장애물이 있었다. 현재 SM엔터테인먼트와 현대글로비스가 입주한 오피스 빌딩과 고급 주상복합주택이 들어선 이곳에서 성수동을 잇는 지역이 늪지 형태로 방치돼 있었다. 보행의 흐름은 여기서 끊긴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이곳에 모든 시설이 들어서면 이 공공용지는 대형 오피스와 주상복합 입주민들의 사유지처럼 사용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면 성수동과는 영원한 단절.

    정 구청장의 이런 고민을 해결할 명품이 탄생했는데 그게 언더스탠드애비뉴의 조성이었다. 2016년 4월이었다. 성수 도시재생의 신호탄을 쏜 것이나 다름없는 이 언더스탠드애비뉴는 낮은(Under) 자세로 서로를 이해(Understand)하고 자립(Stand)을 돕는다는 의미로 사회적 약자의 끼와 잠재능력을 발굴하는 혁신적 창조공간인 동시에 사회활동가, 예술가는 물론 주민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재활용 컨테이너 116개를 3층 높이로 쌓아 올리고 가운데 통로를 만들어 성수동과 잇는 거리를 만들었다. 박장선 센터장은 “서울숲에 놀러 온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성수동으로 끌어들이는 징검다리”라고 말한다.

    (다음 회차에서 이어집니다.)

    [손현덕 주필]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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