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현덕의 탈각의 순간들] 성수동 | ① 위대한 조연, 성수를 개벽하다

    입력 : 2026.02.02 10:30:28

  • ▶ 손현덕의 <탈각(脫殼)의 순간들>
    이번 글은 기업이 아닌 지방자치단체의 이야기입니다. 성수의 개벽을 이끈 정원오 성동구청장의 행정이 혁신을 이끈 기업가의 경영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담대한 변신으로 위대한 성공을 이끈 행정가의 여정. 마치 뱀이나 매미가 껍질을 벗듯, 탈각(脫殼) 이전의 성수와 이후의 성수는 전혀 다릅니다.
    정원오 성동구청장
    정원오 성동구청장
    12월 4일 첫눈 왔을 때 성동구 도로

    그날따라 저녁 약속을 강남으로 잡은 게 실수라면 실수였다. 패션 선글라스로 유명한 젠틀몬스터의 최대 주주인 오재욱 이사가 모처럼 지인과 저녁 식사를 한 건 작년 12월 4일. 서울 시내에 첫눈이 내린 날이었다. 기상청에 따르면 늦은 오후부터 약간의 눈이 내릴 것으로 예보는 돼 있었다. 그러나 웬걸, 공교롭게도 퇴근 시간인 6시경부터 쏟아지던 눈은 약 2시간 가까이 서울 시내 교통을 일시에 마비시키는 폭설(?)로 변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선 시간은 9시. 눈은 그쳤지만 차들은 도로 위를 엉금엉금 기어다녔다. 식당에서 집(금호삼성 래미안)까지는 7km가 채 안 되는 거리. 아무리 길이 막히더라도 통상 30분 정도면 충분했다. 그러나 이날은 갑자기 눈이 내린 특수상황이니 좀 더 걸리겠거니 생각하고 움직였다. 그래봐야 1시간 남짓. 가족에게 그렇게 연락을 취했다.

    그러나 교통상황은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약간의 오르막에도 꼼짝 못하는 차들이 생기면서 도로는 엉키기 시작했다. 내비게이션이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도착 예정 시간은 갈수록 늘어났다. 그는 살짝 걱정이 됐다. 집 앞이 가파른 언덕인데 강남이 이 정도면 거기는 아예 통제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든 중간에 차를 두고 귀가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동호대교까지 오는 데만 2시간이 넘게 걸렸다. 정말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진 건 동호대교를 넘어서자마자였다. 갑자기 차의 흐름이 원활해졌다. 도로는 완벽하게 제설 작업이 돼 있었다. 집 앞 가파른 언덕도 문제없었다.

    “어떻게 강남과 성동이 이렇게 다르지. 여기는 눈이 덜왔나?”

    오 이사는 이 차이가 지방자치단체의 행정을 책임지는 최고경영자(CEO)의 실력에서 비롯된 것임을 정원오 성동구청장을 통해 알게 된다. 정 구청장의 설명을 듣고 나서 오 이사는 무릎을 쳤다.

    “제설 작업은 눈 오기 전에 하는 것과, 눈 오는 중간에 하는 것, 그리고 눈 온 다음 하는 것 이렇게 3단계가 있는데 눈 오기 전에 하는 게 가장 중요하죠. 염화칼슘을 뿌려 눈 올 때 눈이 녹게 하는 게 1단계인데 이건 예측력의 싸움입니다. 타이밍을 잡는 것과 얼마큼 눈이 오는지를 가늠하는 게 중요합니다. 단순히 눈 온다는 예보만 믿고 염화칼슘을 뿌린다면 그거야 누구든 다 하죠. 예상보다 눈이 덜 오면 엄청난 낭비입니다. 환경오염도 심하고요. 도로도 망가지죠. 그렇게 할 수는 없고 반대로 적게 뿌렸는데 눈이 많이 와버리면 낭패죠. 타이밍 놓쳐 뒤늦게 뿌려도 문제입니다. 한두 시간 전에 뿌려야 하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이걸 어떻게 하느냐. 나름의 노하우를 찾은 것입니다.”

    그 노하우라는 것이 알고 보면 대단한 것도 아니다.

    “보통 겨울에 북서풍이 불고 그에 따라 눈이 서쪽부터 오는데 영종도와 강화도를 보면 알아요. 여기에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일단 양이 예측이 됩니다. 그날은 예보보다 많더라고요. 그리고 이 눈은 대략 1시간 30분에서 2시간 후면 서울에 도착합니다. 이게 감으로 하는게 아닙니다. 수많은 사례를 수집해 데이터화해 놓은 것입니다. 그 결과 패턴을 알게 된 것이고 여기에 행정이 따라가는 겁니다. 일단 예보대로 염화칼슘을 뿌립니다. 우리는 그날 2시부터 뿌렸습니다. 그러나 그 양은 많지 않습니다. 일종의 보험을 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러다가 영종도 눈을 보고 4시경 대량으로 염화칼슘을 살포했습니다.”

    미친 상상력 젠틀몬스터

    오 이사는 정 구청장과 수시로 만나면서 아이디어를 교환할 정도로 친분이 깊다. 첫눈이 온 12월 첫째 주만 해도 두 번이나 만났다고 한다. 지방자치단체장과 첨단 패션업계의 오너와의 인연은 작년 9월 성수동 한가운데 그야말로 ‘미친 상상력’으로 충만한 젠틀몬스터의 건물이 들어서면서부터 시작됐다.

    구청장은 “젠틀몬스터는 안경 매장이란 고정관념을 완전히 깨고 매장 공간을 하나의 몰입형 예술 전시관으로 재해석했다”라면서 “이 건물이 들어오면서 성수동의 문화 지형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라고 평가한다.

    이 건물이 ‘하우스 노웨어 서울(HAUS NOWHERE SEOUL)’. 굳이 해석하자면, 서울 어디에도 없는 집이라? 젠틀몬스터가 수년간 구축해 온 세계를 한데 모은 복합 공간이다. 이곳엔 총 5개의 브랜드가 있다. 글로벌 패션 안경 브랜드 젠틀몬스터 매장이 2층에 자리 잡았고 3층에 3개의 브랜드가 더 있다. 향수를 핵심으로 하는 화장품 브랜드 탬버린즈(TAMBURINS), 이 동네에선 ‘헤드웨어’라고 표현하는 모자 브랜드 어티슈(ATIISSU), 다이닝. 식기 등 테이블웨어 브랜드인 누플랏(NUFLAAT). 그리고 한 층을 더 올라가면 일반인들이 차와 디저트를 즐길 수 있는 누데이크(NUDAKE) 티하우스. 이로써 5개의 브랜드를 완성한다.

    젠틀몬스터 사옥
    젠틀몬스터 사옥

    오 이사가 마지막 아이템인 티하우스에서 차를 마시면서 묻는다. “이 5개의 브랜드에 혹시 어떤 공통점을 발견했나”라고. 짐작조차 하기 어려웠다. 패션일 것 같은데 그러면 티는 거기서 빠져야 할 것 같았다.

    “공통점이 두 개 있습니다. 첫째 5개 모두 레드오션입니다. 경쟁자들이 엄청 많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공통점은 확실한 1등이 없는 시장입니다. 향수 1등 회사가 어딘지 아세요? 차는요? 머리 속에 금방 떠오르지 않죠?”

    그렇다면 아이아이컴바인드의 목표, 또는 비전은?

    이 레드오션에서 1등을 하는 것. 단 패션을 선도하고 힙(hip)한 제품으로. 젠틀몬스터는 이미 목표를 달성한 듯하다. 나머지 4개도 그렇게 해보겠다는 것. 그는 “새로운 생각과 끊임없는 도전을 통해, 세상에 없던 아름다움과 예측 불가능한 행보를 보여주는 브랜드를 전개한다”며 “이게 우리 회사의 성장을 이끄는 동력”이라고 말한다.

    사실 이 회사의 정식 이름은 젠틀몬스터가 아니다. 젠틀몬스터는 그냥 5개 브랜드 중 하나. 진짜 이름은 아이아이컴바인드다. 필자도 오 이사를 만나 이 건물을 투어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오 이사가 다시 묻는다. “아이(I), 아이(I)가 콤바인한(결합된) 것인데 두 개의 아이(I)가 뭔지 알고 있느냐”라고. 아이아이컴바인드도 몰랐는데 그걸 알 턱이 있나. 답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설명한다. 첫 번째 아이는 미래를 위한 상상력(Imagination for the Future), 두 번째 아이는 과거의 해석(Interpretation of the Past).

    5층 티하우스에서 그와 마신 차도 그런 것 같았다. 내가 고른 차는 블루 몽크(BLUE MONK). 오 이사는 “마치 푸른 로브를 걸친 티베트의 수도승이 새벽에 일어나 먼 산을 바라보면서 마시는 차”라고 설명한다. 차를 만들고 이름을 지은 것이 아니라 콘셉트를 잡고 이름을 먼저 정한 다음 그에 맞는 차를 주문해 만드는 것. 보이차를 베이스로 하고 청량한 스피어민트로 고요한 산속 분위기를 자아낸다. 오 이사는 “새로운 판타지를 만든다는 차원에서 고안한 브랜드”라며 “패션과 아트의 접목으로 소비자들에게 단순한 F&B 경험 그 이상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다”라고 설명한다.

    차를 마시면서 명상에 잠기는 것은 과거. 빨간색 타원형 테이블과 외계인이 앉는 것 같은 뾰족한 의자, 높은 천장과 벽면에 큰 거울, 느릿하게 움직이는 조명은 미래. 과거로 되돌아간 것 같기도 하고 미래를 여행하는 것 같기도 하다. 몽환적이다.

    (다음 회차에서 이어집니다.)

    [손현덕 주필]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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