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MM 인수전 ‘막후 전쟁’ 시작, 선장 출신 김재철 vs 철강 공룡 포스코

    입력 : 2026.01.29 16:08:22

  • 김재철 동원 명예회장, “HMM 인수는 내 꿈의 정점” 재도전
    포스코, 물류비 절감·해운 내재화 노리고 인수 타진
    3세경영 본격화 HD현대·한화도 ‘계산기’ 두들겨
    몸값 8조~10조 달해..부산 이전·노조 이슈는 변수
    스페인 알헤시라스 터미널(TTIA)에 기항하는 2만 4000 TEU급 컨테이너선 ‘HMM 알헤시라스호’
    스페인 알헤시라스 터미널(TTIA)에 기항하는 2만 4000 TEU급 컨테이너선 ‘HMM 알헤시라스호’

    “HMM을 품는 것은 내 꿈의 정점이다.”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의 이 한마디가 다시 해운업계를 뒤흔들고 있다. 2023년 1차 매각 당시 하림에 밀려 ‘2등 입찰자’로 끝났던 설움을 씻기 위해 동원그룹이 다시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최대 10조원까지 자금 조달 시나리오를 검토하면서 ‘HMM 인수전 2라운드’가 본격화되고 있다.

    해운·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해 8월 산업은행(KDB)·한국해양진흥공사(KOBC) 등이 보유한 HMM 지분 약 70%를 단계적으로 민간에 넘기는 방안을 검토해 왔다. 두 기관이 보유하던 전환사채·영구채를 잇따라 주식으로 바꾸면서, 과거 57.9%였던 합산 지분율은 70% 안팎까지 높아진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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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HMM 시가총액에 경영권 프리미엄과 ‘공적자금 회수’ 명분을 더하면, 시장에선 예상 매각가를 최소 8조원에서 최대 10조원 수준으로 추산하고 있다. 2023년 첫 민영화 시도 실패 이후 1년여 만에 다시 재개된 ‘HMM 되팔기’에 동원·포스코·한화·HD현대 등 굵직한 대기업들이 서로 다른 셈법으로 저울질에 나선 형국이다.

    동원 “이번엔 다르다”…10조 베팅 각오

    동원그룹은 2023년 1차 입찰 당시 약 4조원대 인수가를 제시했지만 정부 기대치(6조~7조원)에 미치지 못해 고배를 마셨다. 당시 정부는 매각 작업을 접고 자사주 매입·소각으로 지분 구조를 손보는 쪽으로 선회했다. 그럼에도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은 HMM에 대한 미련을 거두지 않았다. 선원 출신으로 직접 배를 몰았던 김 회장은 ‘한 번 마음먹은 바는 끝까지 간다’는 스타일로 알려져 있다.

    1958년 23세 나이에 한국 최초의 원양어선 ‘지남호’ 실습 항해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이후 원양어선 선장을 거쳐 1969년 직원 3명, 자본금 1000만원으로 동원산업을 세운 ‘바다 출신 창업가’다. 김 회장은 2023년 한양대 명예공학박사 학위 수여식에서 “HMM 인수는 내 꿈의 정점”이라며 “평생 바다에서 일하며 키운 동원그룹이기 때문에, 누구보다 HMM을 잘 운영할 자신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지난해 12월 동원그룹이 다시 HMM 인수 전담 TF를 가동하고 내부적으로 최대 10조원 규모 자금 조달 시나리오까지 검토 중인 것도 이 같은 ‘특명’에 따른 움직임으로 전해진다.

    동원은 그룹 내부 현금과 동원산업·동원F&B 등 계열사 지분 활용, 금융권 차입, 필요시 재무적·전략적 투자자 유치 등 ‘복합 구조’로 인수 자금을 마련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원 측 고위 관계자는 “선박과 생산시설 자산가치를 보수적으로 평가해온 탓에 재무제표 상의 장부가보다 실제 가치가 높다”며 “재평가를 거치면 시장 예상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자금 조달이 가능하다”고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김 회장이 HMM을 노리는 배경에는 ‘콜드체인 왕국’ 구상이 자리잡고 있다. 그는 2024년 12월 인터뷰에서 “HMM을 인수하는 것은 내 꿈의 정점”이라며 “참치·냉동식품 등 글로벌 물류망을 가진 동원에 해운사가 더해지면 완전한 콜드체인(냉동·냉장 물류망)을 구축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동원은 이미 원양어선·냉동 운반선 등 냉동·냉장 중심의 선대를 보유하고 있는데, 여기에 HMM의 글로벌 컨테이너선 네트워크까지 더하면 ‘원양어업–식품 가공–글로벌 물류–소매’로 이어지는 일괄 체인을 완성할 수 있다는 그림이다.

    업계에서는 선장 출신 창업자 특유의 성향도 변수로 본다. 김 회장은 과거 강연에서 “바다는 거짓이 통하지 않는 곳이고,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는 배를 꽉 채워 돌아올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한 해운업계 관계자는 “김재철 회장은 ‘실패한 M&A가 없다’는 자부심이 강하고, 노년기에 접어든 지금 HMM 인수를 마지막 대형 승부로 보는 분위기”라며 “8조에서 10조원 사이 가격대라면 어느 정도 인수가 상향도 감수하고 들어올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포스코, “물류비 줄이자”지만 잇단 투자·규제 장벽에 ‘머뭇’

    동원과 함께 HMM 인수 후보로 거론되는 포스코그룹은 겉으로는 ‘철강+해운 시너지’ 명분이 분명하지만, 실제론 한발 물러선 듯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철강·이차전지 소재를 전 세계로 수출하는 과정에서 연간 수조원대 물류비를 쓰는 만큼, HMM을 품으면 운임을 내재화해 원가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계산 자체는 분명하다.

    포스코는 지난해 9월께부터 HMM 인수 타당성 검토에 착수해, 철강·소재 수출 물량의 일부를 자체 선복으로 돌릴 경우 어떤 비용 절감 효과가 나는지 내부 시뮬레이션을 돌린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투자 여력’이 아니라 ‘투자 우선순위’다. 포스코는 이미 호주·아르헨티나 리튬 광산 지분 인수, 북미·유럽 양극재 공장 증설, 미국 제철소 지분 투자 등 이차전지·해외 제강 사업에 굵직한 투자를 잇달아 추진 중이다. 여기에 수조원대 HMM까지 떠안으면 재무부담과 경영 복잡성이 한꺼번에 불어나는 만큼, 내부에선 “지금은 본업과 2차전지에 집중해야 할 때 아니냐”는 신중론이 만만치 않다는 전언이다.

    규제 장벽도 변수다. 포스코가 HMM을 인수하려면 현행 해운법·공공기관 관련 규정 손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업은행·해양진흥공사가 보유한 공적 지분을 제조 대기업에 넘기는 구조인 만큼, ‘산업 자본의 해운업 진출’을 둘러싼 법적·정책적 논란이 불가피하다. 실제로 국내 해운업계 일부에서는 “국가 기간 해운사까지 제조 대기업이 가져가면 시장 집중도가 과도해지고, 중소 선사 생태계가 더 위축될 수 있다”며 공개적으로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포스코는 물류비 절감과 공급망 안정이라는 전략적 명분은 충분하지만, 이미 리튬·해외 제철소 등 대규모 투자를 진행 중이고, 법·노조·정책 리스크까지 감안해야 하는 입장”이라며 “동원이 ‘인생 승부수’에 가깝게 돌진하는 것과 달리, 포스코는 당분간 시나리오만 검토하며 한발 떨어져 판세를 보는 쪽에 가까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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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D현대·한화는 “셈법부터” 3세 경영·새 먹거리 고민 속 ‘저울질’

    HMM 인수전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또 다른 잠재 후보는 HD현대와 한화그룹이다. HD현대는 조선·해양플랜트·엔진을 아우르는 ‘해양 생태계’ 기업으로, HMM을 품으면 ‘조선–해운’ 수직계열화를 완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략적 명분은 분명하다. 실제로 HD현대중공업은 지난해 11월 HMM으로부터 1조 6000억원 규모 컨테이너선 8척을 수주하는 등 긴밀한 협력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한화그룹 역시 방산·에너지·건설·금융 등으로 포트폴리오를 넓힌 상황에서, 해운업 진출 시 글로벌 물류망까지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점에서 잠재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특히 두 그룹 모두 3세 경영 체제로 전환하는 시점이라, ‘오너 3세 체제’의 존재감을 보여줄 새 성장동력 확보가 절실하다는 점도 인수전 참여 명분으로 거론된다. IB(투자은행) 시장에선 “오너 3세가 HMM 인수를 위해 이미 움직이고 있다”는 말까지 돌고 있다. 다만 실제 인수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한화는 대형 방산 프로젝트와 에너지 사업 확장에 공격적으로 자본을 투입하고 있고, HD현대 역시 조선·엔진·오일·수소 등 기존 투자만으로도 부담이 적지 않은 상황이다. 서울에 본사를 둔 대기업 입장에선 핵심 조직의 분산, 추가 인력·설비 비용, 의사결정 효율 저하 등을 감수해야 한다. 해운업계 일부에선 “부산 이전을 전제로 한 딜에 제조·방산 대기업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나설지 의문”이라는 시각도 나온다. 노조 리스크도 만만치 않다. HMM 노조는 지난해 12월 “민영화, 부산 이전 추진 시 총파업도 불사하겠다”며 강경한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노조는 “공적자금으로 살린 회사를 민간에 헐값에 넘기는 것은 국민 배신”이라며, 정부가 일정 지분을 계속 보유해 공공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구조조정 가능성을 우려하는 노조와 지역 정치권의 반발은 인수 이후 통합 작업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이다. 한 대기업 임원은 “HD현대나 한화 모두 3세 경영 체제에서 새 먹거리가 필요한 건 사실이지만, 당장은 동원·포스코의 움직임을 주시하면서 판이 어떻게 짜이는지 살피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2023년 첫 매각 당시 “HMM은 내 꿈의 정점”이라고 외쳤던 김재철 동원 회장이 다시 링에 올랐다. 이번엔 10조원까지 베팅할 각오를 다지며 ‘인생 승부수’를 준비 중이다. 맞은편 코너에선 포스코가 “물류 내재화로 철강 경쟁력을 끌어올리겠다”며 전략적 시너지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링 밖에는 HD현대와 한화가 팔짱을 끼고 상황을 지켜보는 모양새다. 조선–해운 수직계열화, 글로벌 물류망 확보라는 ‘명분’은 있지만, 8조~10조원으로 거론되는 몸값과 부산 이전, 노조 파업 경고 등 변수가 겹치면서 선뜻 손을 뻗기 어려운 상황이다.

    하림·SM도 복병 꼽혀
    정부, ‘하팍로이드’ 모델 카드 꺼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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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에 1차 매각 당시 막판까지 이름이 오르내렸던 하림과 SM그룹도 ‘복병 카드’로 거론된다. 해운·중견선사 인수 경험이 있는 만큼, 판세에 따라 언제든 다시 테이블에 복귀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정부의 매각 방식에 따라 그림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도 변수다. 일각에선 한국해양진흥공사(KOBC) 지분은 그대로 두고 산업은행 지분만 우선 매각해, 공공과 민간이 함께 지배하는 ‘하팍로이드(독일 Hapag-Lloyd)식 혼합 소유 구조’를 택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 경우 완전 민영화보다는 ‘공공성+시장성’을 절충하는 모델이어서, 해운업계와 정치권 반발을 어느 정도 누그러뜨리는 대신 인수 가격을 조정하는 카드로 활용될 수 있다.

    결국 승부는 누가 정부 기대치를 넘는 인수가를 제시하면서도, 노조·정치권·지역 여론을 설득할 수 있는 ‘전략적 명분’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내놓느냐에 달려 있다. 1차 매각에서 쓴맛을 본 김재철 회장이 이번엔 ‘꿈의 정점’을 손에 쥘지, 포스코가 ‘물류 혁명’ 카드로 판을 뒤집을지, 아니면 하림·SM 같은 복병이 막판에 끼어들어 판도를 바꿀지, HMM 인수전의 향배에 해운업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정지성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85호 (2026년 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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