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 버블론 vs AI 대세론, 월가 거장들의 투자 포트폴리오

    입력 : 2025.12.29 17: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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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시장 대화는 묘하게 두 겹이다. 낮에는 “AI가 바꿀 건 결국 다 바꾼다”라는 확신이 주가를 끌어올리고, 밤에는 “그 확신이 가격에 이미 다 들어간 것 아니냐?”라는 불안이 잠을 깨운다. 연말로 갈수록 이 이중음이 더 커졌다. 금리 인하 시점이 흔들릴 때마다 성장주가 먼저 출렁이고, AI 가치사슬이 조금만 삐끗해도 ‘거품’이라는 단어가 헤드라인으로 튀어나온다. 실제로 연말 변동성의 촉매로 “AI 밸류에이션 부담”과 “대규모 투자 대비 수익화 지연”이 반복해서 지목됐다. 미 연준의 금리 인하 속도조절론이 수면 위로 오른 이후 매크로 환경까지 성장주 투자 리스크 노이즈가 커지고 있다.

    이럴 때 투자자들에게 실용적인 질문 중 하나는 투자 거장들의 선택지를 다시 찾아보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워런 버핏은 AI를 칭찬하지도 비난하지도 않으면서 현금과 국채로 시간을 산다.

    그랜섬(GMO)은 “전형적인 버블”이라는 말과 함께, AI에 덜 의존하는 자산배분으로 시선을 돌린다. 버리는 더 직설적이다. AI 붐의 상징인 엔비디아와 팔란티어를 겨냥해 풋옵션을 쥐고, 동시에 다른 구역에 롱(매수)포지션을 깔아둔다.

    반대로 ‘AI 대세론’ 진영도 분명하다. “버블이 아니라, 생산성과 실적의 전조”라는 주장 아래 AI 노출을 줄이기 보다 ‘이기는 쪽’에 집중한다.

    워런 버핏 “AI 평가보다, 가격부터 의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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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퇴를 앞둔 월가의 전설 워런 버핏은 버크셔 해서웨이를 60년 가까이 이끈 가치투자의 상징이다.

    기술을 ‘모른다’기보다, 스스로 이해할 수 있는 사업과 가격 규율을 우선한다. 요즘 그의 신호는 한마디로 ‘기다릴 힘’이다. 버핏의 포트폴리오를 AI 찬반으로 나누는 건 사실 어색하다. 그는 특정 기술을 “좋다/나쁘다”로 재단하기보다, 가격이 ‘주식의 가치가 저평가 범위’에 있는지를 먼저 본다. 그래서 지금 버핏의 계좌를 읽는 키워드는 AI가 아니라 유동성이다.

    가장 상징적인 숫자는 버크셔의 현금성 자산이다. 버크셔는 2025년 3분기 실적에서 현금이 사상 최고 수준으로 불어났다는 평가를 받았다. 주식시장이 뜨거울수록 버핏은 “지금 당장 무언가를 해야 한다”라는 강박과 반대로 움직인다.

    흥미로운 건, ‘빅테크를 싫어해서’가 아니라 ‘조건이 맞을 때만’이라는 방식으로 기술 노출을 조정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버크셔는 2025년 3분기 기준 애플을 더 줄이는 한편, 구글 모회사 알파벳을 새로 담았다는 공시가 나왔다. 즉 “AI를 피한다”가 아니라, 비싸 보이는 구간에서는 비중을 줄이고, 다른 가격대에서는 다시 들어간다는 전형적인 버핏식 리밸런싱이다.

    그랜섬 “버블을 피하는 법은 의존도를 낮추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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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레미 그랜섬은 GMO 공동창업자로, 닷컴버블·주택버블 등 과열 국면에서 경고음을 크게 낸 인물이다. ‘버블’이라는 단어를 아끼지 않지만, 늘 대안(대체자산·가치주)을 함께 제시한다.

    그랜섬 진영의 핵심은 “AI는 거품이다.” 같은 단정이 아니다. 더 실전적인 메시지는 “거품일 수도 있는 자산에 계좌 전체를 맡기지 말라”에 가깝다. GMO가 흥미로운 지점은, AI를 비관하면서도 포트폴리오를 ‘현금으로만’ 만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비관론의 결론이 ‘올스톱’이 아니라 “다른 곳에도 기회가 있다”로 이어진다. GMO의 분기 레터에서 공동 자산배분 책임자인 벤 인커는 AI 관련 주식흐름을 두고 “매우 높은 밸류에이션과 투기 징후가 보인다”라는 취지로 경고했다. 이 문장은 단순한 비판이 아니라, 자산배분의 방향을 정하는 기준이 된다. AI 자체를 부정하기보다, AI 프리미엄이 과도하게 붙은 구간을 피하고 ‘정상 가격’에 있는 자산군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그래서 GMO식 ‘축소판 포트폴리오’는 의외로 담백하다. AI 테마를 0으로 만들지 않는다. 대신 계좌의 엔진을 AI 한 축에서 가치·배당·비(非)미국 소형가치주는 다른 엔진으로 분산한다. AI가 더 오르든, 꺼지든, 계좌 전체가 한 번에 무너지는 구조를 피하는 방식이다.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이에 대해 “GMO는 AI가 버블 단계에 있는 것으로 판단하며, 투자자에게는 ‘AI에 덜 의존하는 포트폴리오’로 옮겨갈 선택지가 충분하다고 조언한 셈”이라고 평가했다.

    마이클 버리 “버블에 베팅하되 계좌는 생존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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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클 버리는 2008년 서브프라임 위기를 예견한 투자자로 알려졌다. 스키온(Scion)으로 운용하며 ‘역발상’과 ‘리스크 지적’을 즐겨한다. 다만 그의 포지션은 언제나 단일하지 않고, 헤지와 분산이 함께 붙는다.

    최근 운영하던 펀드를 청산하고 패밀리오피스를 통해 개인투자에 나선 버리는 ‘AI 버블론’을 가장 공격적으로 구현한 인물로 거론된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포지션과 생각을 유료 SNS 가입자에게 밝히며 AI버블론 진영의 대표주자로 떠올랐다. 대표적으로 엔비디아·팔란티어 같은 AI 상징 종목에 풋옵션을 잡았다는 대목. 하지만 진짜 포인트는 그다음이다. 풋옵션은 ‘마음’이 아니라 ‘도구’다. 헤지펀드의 옵션 포지션은 공매도 선언일 수도 있고, 다른 롱 포지션을 방어하기 위한 헤지일 수도 있다. 그래서 버리의 행동을 해석할 때는 “버리는 AI를 싫어한다”가 아니라, “AI 붐의 취약한 지점을 특정해 가격 리스크에 보험을 들었다”가 더 정확하다.

    그가 특히 문제 삼는 건 ‘수익화가 아니라 회계와 투자 지속성’ 같은, 붐의 바닥을 받치는 구조다.

    로이터는 이에 대해 “버리가 대형 클라우드 기업들의 AI 인프라 지출과 회계 처리에 대해 의심을 드러냈다”라고 전했다” 쉽게 말해 돈을 쓰는 속도가 돈을 버는 속도보다 빠를 때, 그리고 그 간극을 회계가 가려줄 때 거품은 더 오래 부풀 수 있지만, 터질 때도 더 크게 흔들린다는 주장이다.

    개인 투자자에게 버리가 남긴 메시지는 “풋옵션을 사라”가 아니다.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 내 계좌가 AI 상승 하나로만 이익이 나는 구조라면 방어막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 둘 째, 방어막은 ‘예언’이 아니라 ‘구조’로 만든다는 점이다. AI가 꺾이는 순간을 맞히려 하기보다, AI가 꺾여도 계좌가 버티는 구성(현금·단기채·가치·실물자산·분산)을 먼저 깔아두는 쪽이다.

    캐시 우드 “버블이 아닌 ‘승자독식’ 앞당기는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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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시 우드는 ARK 인베스트 창업자이자 성장주·혁신 테마의 대표 아이콘이다. 변동성을 감수하고서라도 ‘미래의 승자’를 초기에 담는 전략을 고수한다. AI를 위험이 아니라 기회로 해석하는 쪽에 가깝다.

    AI 대세론 진영을 상징하는 얼굴을 꼽는다면 캐시 우드가 빠지기 어렵다. 그녀의 주장에는 한 가지 전제가 깔려 있다. “AI는 결국 실적으로 연결된다. 다만 그 과정에서 승자와 패자가 갈릴 뿐이다.” 그래서 대세론의 계좌는 ‘AI를 피하는’ 대신 ‘AI로 구조적 이득을 보는 기업을 선별’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우드의 발언도 흥미롭다. 그녀는 “AI가 버블이라고 보지 않는다”라는 취지로 말하면서도, 기업 현장에서의 도입 속도는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덧붙인다. 즉 “버블은 아니다”와 “단기적으로 과속구간은 있다”를 동시에 들고 간다. 이 태도는 포트폴리오에서도 드러난다. ARK 혁신 ETF(ARKK)의 상위 보유 종목은 테슬라를 비롯해 코인베이스, 로쿠 등 변동성이 큰 성장주 비중이 높다. ‘AI를 믿는’ 캐시우드의 머릿속에서는 이런 구성이 나온다.

    다만 대세론 포트폴리오도 무작정 낙관으로만 굴러가진 않는다. ARK가 테슬라 비중을 유지하면서도 일정 구간에서 일부 차익 실현을 했다는 보도처럼, ‘확신’과 ‘리밸런싱’이 가, 급락이 왔을 때 추가 매수할 현금/단기채가 남아 있는가, AI 말고도 버틸 수 있는 가치·배당·원자재·리츠 같은 완충재가 있는가. 국내 증권가에서도 비슷한 경고가 반복된다. “AI가 진짜 혁신이더라도, 투자와 자금조달 구조가 과속하면 시장은 먼저 흔들린다”라는 메시지다. 실제로 국내 증권사 코멘트들은 ‘AI의 미래’보다 ‘AI 자본의 속도’에 더 예민하게 반응한다. 기대가 실적을 앞지르는 구간에선, 좋은 뉴스가 나오더라도 주가는 오히려 불안해지고, 작은 실망이 큰 변동성을 부르는 구조가 되기 때문이다. KB증권은 최근 리포트를 통해 기술주 약세의 배경을 설명하며 “시장이 ‘AI 서사’가 아니라 ‘AI 비용(투자)’에 반응하고 있다”라고 짚었다. 즉, AI의 장기 성장성을 부정하지 않더라도 단기적으로는 투자 과열·수익화 속도·자금조달 여건이 함께 흔들리면, 시장은 먼저 위치를 줄이고 ‘현금흐름이 확인되는 쪽’으로 이동한다는 해석이다.

    토스증권 역시 2026년 전망 보고서 질문 자체를 “AI는 버블인가요?”로 잡고 “여기서 말하는 버블이 ‘비싸다’ 또는 ‘실체가 없다’의 의미라면, AI는 버블이 아니라고 판단합니다”라고 못 박는다. 다만 이 결론은 “그러니 안심하고 몰빵하라”가 아니라, 가격·투자 속도·수익화 타이밍을 분리해 보라는 쪽에 가깝다. 보고서는 M7의 밸류에이션, 프리미엄 변화, 빅테크 CAPEX 확대와 클라우드 매출 연결 등을 근거로 ‘실체’는 확인되지만, 그 과정에서 단기 충격이 반복될 수 있음을 전제로 깔고 있다. 결국 이들이 던지는 경고의 핵심은 단순하다. AI가 대세냐 거품이냐의 논쟁을 떠나, 시장 변동성은 “기술의 진실”이 아니라 “돈의 속도”에서 먼저 온다는 것. AI가 맞는 이야기일수록, 계좌에서는 ‘비중’과 ‘완충장치’가 먼저라는 얘기다.

    [박지훈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84호 (2026년 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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