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광섭 특파원의 차이나 프리즘] 다카이치 발언에 中·日 관계 급경색 ‘한(限)일령’ 발동 일본 열도 노심초사
입력 : 2025.12.16 10:46:06
-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10월 31일 경주에서 굳은 표정으로 인사를 주고받고 30분간 회담했다. <사진 연합뉴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대만 유사시 개입’ 발언 이후 중국과 일본 관계가 급격히 경색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연일 발언 철회를 촉구하며 비판 수위를 높여오다 결국 자국민에게 일본 여행과 유학을 자제하라고 권고했다. 다카이치 총리가 발언을 철회할 생각이 없다고 선을 그은 만큼 양국 갈등이 당분간 격화할 전망이다. 아울러 중국 측의 추가 보복 조치 여부에도 관심이 쏠린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11월 7일 중의원에서 대만 유사시에 대해 “전함을 사용해 무력 행사를 수반한다면 존립 위기 사태가 될 수 있는 경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3일 뒤인 11월 10일에는 기존 발언을 철회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존립 위기 사태는 일본이 직접 공격받지 않아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 나라나 지역이 공격받아 일본이 위기에 처할 수 있는 상황을 뜻한다. 즉, 존립 위기 사태라고 판단되면 집단 자위권을 행사한다는 의미다. 일본 현직 총리가 공개적으로 이러한 발언을 한 것은 처음이다.
中, 일본 여행·유학 자제 권고중국 외교부는 지난 11월 14일 쑨웨이둥 중국 외교부 부부장(차관)이 전날 가나스기 겐지 주중 일본대사를 초치해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에 대해 강한 불만과 단호한 반대를 표명하고 엄중히 항의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일본 측에 대만 문제는 중국의 핵심 이익 중의 핵심이며 건드릴 수 없는 레드라인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덧붙였다.
린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11월 13일 “(일본 측은) 중국이 엄정한 교섭과 강력한 항의를 표한 후에도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철회를 거부했다”며 “대만 문제에서 불장난을 해선 안 된다. 불장난을 하는 자는 스스로 불에 타죽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중국 정부는 일본 여행과 유행을 사실상 금지하는 보복 조치를 꺼냈다. 중국 문화여유부(문화관광부)와 교육부는 지난 16일 각각 공지를 내고 일본 여행과 유학을 자제할 것을 권고했다. 특히 “최근 일본 지도자가 대만 관련 도발적 발언을 공개적으로 해중·일 간 인적 교류 분위기를 심각하게 악화시키고 일본 내 중국인들의 신체·생명 안전의 큰 위험을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이러한 조치의 원인이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에 있음을 분명히했다. 중국 항공사들도 동참하고 있다. 국영 항공사인 에어차이나와 동방항공, 남방항공을 비롯해 하이난항공, 쓰촨항공, 샤먼항공 등은 일본 노선의 항공권을 무료로 환불 및 변경할 수 있다고 자사 고객들에게 안내 중이다. 또 같은 날 중국 교육부는 “일본에서 중국인 대상 불법 범죄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으니 일본 유학 계획을 신중히 수립할 것을 권한다”며 일본 유학 경보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11월 17일 정례브리핑에서 “이번 발언은 중·일 관계의 정치적 기초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인적 교류 분위기도 심각히 악화시켰다”며 일본 측의 발언 철회를 다시 한 번 촉구했다.
“대만 문제는 핵심이익 중 핵심 … 첫번째 레드라인”중국이 인식하는 대만 문제는 외교에서 핵심 이익 중의 핵심이며 ‘첫 번째 레드라인(금지선)’이다. 중국에게 있어 대만 문제는 단순한 외교·안보 사안을 넘어 국가 주권 및 안전, 중국공산당의 정통성의 근본과 직결된 사안이다. 즉, 대만 독립을 중국의 영토를 분리하는 행위이자 외부 세력의 중국 영토 침해 행위인 셈이다.
베이징의 한 신문 가판대에서 한 남자가 일본 총리 사나에 다카이치의 대만 관련 최근 발언을 보도하는 현지 신문을 읽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역사적인 문제도 있다. 과거 자국의 일부분인 대만을 일본에 잠시 빼앗겼다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반환했다는게 중국 측의 인식이다. 따라서 지금의 양안(중국과 대만) 관계를 만든 주범인 일본이 대만 문제에 개입하면 안된다고 보고 있다. 일례로 2023년 4월 윤석열 대통령이 로이터통신과 인터뷰에서 대만 문제를 언급했을 때도 중국 외교부는 “대만 문제에서 불장난을 하는 자는 반드시 스스로 불에 타 죽을 것”이라며 강도 높게 비난했다. 이 사건 이후 한·중 관계는 급격히 경색되기도 했다.
또 대만 통일은 중국공산당 통치의 핵심 명분이기도 하다. 시 주석은 그동안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자주 강조해왔다. 이를 완성하기 위해선 대만과의 통일이 불가피하다. 군사적으로도 대만이 미국의 전진 배치 기지가 되는 것을 경계할 수밖에 없다.
중국 관영 매체들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지난 11월 14일 사설을 내고 “(일본 총리의) 발언은 황당하기 짝이 없고 악질적이고 매우 위험한 의도”라며 “이는 국제 정의를 짓밟는 것일 뿐 아니라 국제 질서에 대한 도전이자 중·일 관계에 대한 중대한 파괴행위”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잘못된 발언은 이미 양국 관계와 지역 평화에 충격을 줬고 최근 중일 관계가 급속히 악화된 근원”이라며 “일본 총리는 지속적으로 대만 독립 세력에 잘못된 신호를 보내고 있는데 이는 중국 내정에 대한 난폭한 간섭이자 동아시아 지역 안보를 위협한 일”이라고 꼬집었다.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지난 11월 17일 사설 격인 ‘종성’ 칼럼에서 “일본 우익세력의 지극히 잘못되고 위험한 역사관·질서관·전략관을 충분히 드러낸다”면서 “군국주의를 위한 초혼과 같다”고 주장했다. 또 차이나데일리는 일본의 아픈 손가락인 오키나와를 건드리며 역사적으로 볼 때 중국이 오키나와에 대한 종주권을 일본에 강제적으로 뺏겼고 일본은 독립 왕국인 류큐를 강제로 병합해 오키나와로 개명시켰다고 보도했다.
희토류 수출통제 가능성양국 관계가 급격히 악화하자 가나이 일본 외무성 아시아 대양주 국장은 지난 11월 17일 류진쑹 외교부 아시아 국장을 만나기 위해 베이징을 찾았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가나이 국장이 양국 간 대립의 진정을 모색할 것”이라고 전했다. 교도통신도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이 기존 일본 정부의 입장을 바꾼 것은 아니라고 재차 설명하며 사태 진정을 도모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럼에도 양국 간 갈등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이와 함께 중국 측의 추가적인 보복 조치에 상당한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일본 기업에 대한 제재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일본 기업에 대한 반독점 조사를 강화한다거나 일본산 자동차나 전자제품 등에 대해 비공식 구매 금지 지침을 정부 및 산하 기관에 내릴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일본산 불매운동 여론을 조성할 수도 있다. 2010년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 당시 큰 효과를 봤던 희토류 수출 통제 카드도 있다.
[송광섭 특파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83호 (2025년 12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