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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는 2026 소비자 심리 ‘불확실성’이 만들어낸 5가지 키워드
입력 : 2025.12.04 10:0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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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서점 매대에는 항상 다음해 트렌드 예측서가 있다. 서울대 소비자학과 김난도 교수의 <트렌드코리아>, 박현영 생활변화관측소 소장의 <트렌드노트>, 김용섭 소장의 <라이프트렌드>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이 말하는 트렌드는 일시적 유행이 아니다. 사회를 추동하는 요인에는 길항이 있다. 작용과 반작용처럼, 하나가 뜨면 다른 하나가 진다. AI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인간이 대체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의 반대급부로, 소비자들은 자기돌봄과 유대, 아날로그적 감성으로 회귀하는 경향을 보인다.
박현영 소장은 이를 “흔들리는 시대에 실체성을 찾는 소비자들”이라고 설명했다. 실체성이란 경험, 정체성, 건강으로 압축된다. 김난도 교수는 AI가 합리의 대명사라면 그 대척점에 있는 인간의 기분이 소비 동인이라며 ‘필코노미(기분+경제)’ ‘건강지능(HQ)’ ‘1.5가구’ 등을 주요 키워드로 제시했다. 김용섭 소장 역시 ‘인간 증명’ ‘경험사치’ 등 유사한 개념을 제안했다. 이들은 소셜미디어 키워드 분석, 빅데이터, 전문가 인터뷰 등을 통해 트렌드를 도출한다. 트렌드코리아는 소비자 직접 조사와 빅데이터 분석을, 생활변화관측소는 최소 1년 이상 지속되는 키워드 패턴을 추적한다. 3종의 서적을 종합하면 2026년 소비 시장은 5가지 키워드로 압축된다.
1.레디 코어(Ready-core): 불확실한 미래 대비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해 삶을 미리 계획하고 준비하는 태도를 말한다. 트렌드코리아는 “코로나19가 무너뜨린 일상의 혼돈 속에서 젊은이들이 ‘갓생’과 ‘루틴’에 열광했다”며, 이제는 사전계획, 인생 예행, 선제적 학습으로 요약되는 레디 코어가 등장했다고 설명했다.
철저한 현실주의로 ‘인생의 변수와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자신의 삶에 대한 주도권을 완벽하게 확보하려는’ 경향이다. 노션, 엑셀 같은 도구로 체크리스트를 만들고 템플릿을 디지털 상품으로 거래하기도 한다. 실제 노션은 한국을 미국 다음으로 중요한 시장으로 본다. 개인 사용자 뿐만 아니라 GS건설, 당근, 쏘카 등 다양한 기업이 노션을 활용하기 때문이다.
트렌드코리아는 “기업은 제품 판매를 넘어 소비자의 계획을 지원하는 인생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상조업계의 ‘토탈 라이프케어’나 KB국민은행의 ‘비대면 상속설계 체험 서비스’가 좋은 예다.
AI 대체 우려는 자기계발로 이어진다. 정년 후를 넘어 현재 직업을 얼마나 유지할 수 있을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휴넷 조사에서 직장인 절반가량이 고용불안을 느낀다고 답했고, 경기 불확실성과 AI 확산을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트렌드노트는 자기계발의 가치가 사회적 성공에서 개인적 성장으로 이동했다고 진단했다. 지난 10년간 ‘자기계발’ 연관어 중 ‘업무’ ‘직장’ ‘취업’ 같은 단어는 하락하고 ‘성장’ ‘하루’ ‘운동’ 등이 상승했다.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사람들은 더 작고 구체적이며 통제 가능한 영역에서 자기계발을 찾는다”는 것이다.
2.컨디션 이코노미(Condition Economy): 몸·기분 관리 투자자기계발과 미래 우려는 건강관리로 이어진다. 트렌드코리아는 건강지능(HQ)을 제시했다. 건강 관리는 막연히 ‘몸에 좋은 것’ 챙기기를 넘어 과학적 데이터 기반의 지능적 활동으로 진화했다. 필요시 의약품과 시술의 도움을 받고, 신체·생활·환경 등 라이프스타일 전반에서 건강을 고려한다.
박현영 소장은 ‘일상화된 건강관리’를 말하며, 사람들이 통제 가능한 ‘내 몸’으로 시선을 돌린다고 설명했다. 특히 2022년 이후 ‘돌보다’의 연관 대상 중 ‘자신’ ‘혼자’ ‘스스로’가 상승하고 ‘아기’ ‘남편’ ‘친구’는 하락했다. 타인보다 자기 돌봄에 집중하는 경향이다. ‘저속노화’ 트렌드나 혈당 패치로 혈당 스파이크를 체크하는 행위가 대표적이다.
글로벌 트렌드도 비슷하다. AI 빅데이터 컨설팅 기업 버나드 마 앤드 컴퍼니 CEO는 2026년 소비자 기술 트렌드로 웰니스테크를 꼽았다. 심박수와 심리 상태를 측정하는 스마트 거울, 수면 자세와 호흡을 분석하는 매트리스 등 건강 관리 기기와 서비스가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3.소프트커넥션(Soft-connection): 느슨한 연결신체적 건강만큼 정신적 건강 관심이 높아지면서 인간관계 스트레스를 피하는 경향도 확인됐다. 대신 AI와 소통하거나 느슨한 공동체를 선호한다.
트렌드노트는 지난 3년간 ‘챗GPT’ 연관 감성어를 분석했다. 2025년에는 ‘재밌다’ ‘웃기다’ ‘귀엽다’ 등 생명체에게 느낄 법한 감성어가 상위권에 올랐다. “AI와 상호작용하며 반려성을 느낀다”는 해석이다.
덕질과 팬덤 문화도 확대됐다. 공통 관심사로 모인 느슨한 공동체가 형성되는 것이다. 특히 실시간성과 현장성을 즐길 수 있는 야구장, 페스티벌 언급량이 2023년부터 꾸준히 상승 중이다. 이런 덕질 문화는 굿즈 소비로 이어진다. 감정소모 위험이 있는 연애보다 덕질을, 강력한 소속감보다 느슨한 연대를 지향한다는 해석이다.
트렌드코리아는 ‘1.5가구’ 개념을 제시했다. “개인의 자율적 삶(1)을 기반으로 경제적·심리적·육체적 부담을 덜기 위해 유연한 연결감(0.5)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세부적으로는 혼자 살며 외부 지원을 받는 ‘지원의존형’, 2~4인 가구가 각자 독립적 삶을 사는 ‘독립지향형’, 커뮤니티 시설을 활용하는 ‘시설 활용형’으로 나뉜다.
필요에 따라 자유롭게 연결되길 바라는 심리에 따라 커뮤니티도 가볍게 드나드는 구조를 선호한다. ‘픽셀라이프’도 이를 설명한다. 픽셀처럼 작고 빠르게 소비하는 트렌드다. 소비자들은 짧고 빈번한 경험을 즐긴 뒤 빠르게 다른 경험으로 이동한다.
4.로테크 무드(Low-tech mood): 아날로그 감성과 실제 체험김용섭 소장은 “디지털이 보편화될수록 귀한 가치는 오프라인과 아날로그에 존재한다”고 강조한다. 또 부자일수록 오프라인에서 더 많이 여가를 보내고, 2030 여성들이 서울국제 도서전, 야구 직관 등에 많이 투자한다고 설명했다. AI가 발전할수록 인간 가치에 대한 고민이 철학으로 넘어가고 인간적 경험에 더 많이 투자한다는 것이다.
그는 ‘경험 사치’ 키워드를 제안했다. 비싼 물건 소유보다 여행 같은 경험에 투자하는 경향이다. LVMH, 케링 그룹 등 명품 기업들도 호텔, 여행 사업에 관심을 보인다. LVMH 계열 벨몽드는 럭셔리 기차여행 상품을 판매하고, 에르메스, 디올, 루이비통은 카페와 레스토랑을 열었다. 명품 브랜드가 소비재 판매를 넘어 명품 문화를 체험시키며 충성도를 강화하는 전략이다.
생활변화관측소는 “장소는 경험의 시대에 가장 중요한 소비재”라고 설명한다. ‘가고 싶다’ 연관 장소로 디저트·빵집, 다이소·올리브영, 도서관·박물관, 야구장 등이 나타났다. 각각 감각적,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장소들이다. 디지털 고자극에 지친 사람들이 손에 잡히는 물건과 감각적 경험으로 만족감을 느낀다.
김난도 교수는 ‘근본이즘’ 키워드를 제시했다. “전통이 재조명받고, 원조를 숭상하며, 클래식을 선호하고, 아날로그의 낭만을 추구하는 것”이다. 단순 복고(레트로)와 달리 원조를 그대로 ‘재현’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5.핏밸류(fit-value): 나에게 맞는 제품과 가격트렌드코리아의 ‘프라이스 디코딩’은 소비자가 가격을 맹목적으로 수용하지 않고 실용성과 합리성을 극대화하는 경향이다. 가격(Price)의 암호(Code)를 풀어낸다(Decoding)는 의미다. 소비자들은 매우 분석적, 초합리적으로 상품 가치와 브랜드 가치를 구분한다. 브랜드는 없지만 비슷한 성능을 내는 듀프(Dupe) 제품도 기꺼이 쓴다.
이전 ‘가성비’와 다른 점은 무작정 싼 제품이 아니라 합리적 가격에 품질이 탁월한 제품을 찾는다는 것이다.
김난도 교수는 브랜딩 중심 기업도 제품력에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동시에 장기적으로 살아남으려면 브랜드 파워가 필요하다며 “빨리 가고 싶으면 상품 혼자 가라, 멀리 가고 싶으면 브랜드와 함께 가라”고 덧붙였다. 라이프트렌드의 ‘피펫 소비’도 유사하다.
과학실험 도구 피펫처럼 필요한 만큼만 덜어 소량 구매하는 것이다. 주류를 한잔 단위로 시음 후 구매하는 ‘탭샵바’, 샴푸·세제를 필요량만 담는 리필스테이션 등이 예시다. 과거 환경보호 목적과 달리 최근엔 가격을 아끼고 합리적으로 소비하려는 심리를 반영한다.
2026년 트렌드에 대비하는 기업 전략2026년 트렌드의 핵심은 ‘불확실성 속 통제 가능한 영역 찾기’다. 소비자들은 AI가 바꿀 미래를 두려워하는 대신 자신의 몸과 기분, 관계, 경험을 적극 관리하며 주도권을 확보한다.
이는 단순한 방어가 아니라 변화에 맞서는 능동적 적응 전략이다. 기업은 이를 양면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내부는 AI로 업무 효율화와 데이터 분석을 강화하되, 고객 접점에서는 진정성 있는 경험과 인간적 감성을 더해야 한다.
알고리즘 추천보다 브랜드 스토리와 원조의 가치가, 화려한 마케팅보다 투명한 가격 정책과 제품력이 더 중요해졌다. 결국 AI 기술을 먼저 도입한 기업이 아니라, 기술 너머 인간의 본질적 욕구를 정확히 읽어낸 기업이 시장을 주도할 것이다.
[박수빈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83호 (2025년 12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