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혁수 LG이노텍 대표] ‘가치(Value)중심 경영’과 ‘피벗(Pivot·전환)이 핵심 철학 카메라모듈 세계 1위… 글로벌 LG 첨병

    입력 : 2025.11.27 14:09:00

  • 문혁수 LG이노텍 대표
    문혁수 LG이노텍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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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 대표는 카이스트 학·석·박사를 졸업하고 1998년 LG에 입사해 개발과 사업을 두루 거치며 기술 트렌드에 대한 통찰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3년 광학솔루션 개발실장에 이어 연구소장, 사업부장 등 요직을 두루 역임했다. 전문성과 사업성과를 바탕으로 2022년 12월 CSO를 맡아 지속성장을 위한 신사업 발굴 및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을 주도한 뒤, 2023년 12월부터 LG이노텍을 이끌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기술 혁신을 주도하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새로운 기술의 S커브(기술이 급성장 후 일상화를 거쳐 도태되는 일련의 변화 과정)를 만드는 고객과 시장이 어디인지 빠르게 센싱하는 것입니다. 고객과 함께 새로운 S커브를 타야만 지속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죠.”

    2023년 말 LG그룹 최초의 70년대생 CEO로 LG이노텍의 조타수를 맡은 문혁수 대표의 고민도 같은 맥락에 놓여 있었다. 글로벌 경쟁 심화로, 이미 만들어진 제품을 여러 고객사에 제안해 수주 받는 기존 방식의 사업모델이 지속적인 미래 경쟁력을 이어갈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우리가 가진 기술적 가치를 차별화하는 것이 급변하는 시장에서 승기를 놓치지 않은 길이라 생각했어요. 고객 수요를 먼저 포착하고, 최적의 솔루션을 한 발 앞서 제안하는 가치(Value) 중심의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으로 문 대표가 내세운 핵심모토는 이른바 ‘피벗(Pivot·전환) 철학’이다. “피벗 철학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한 분야에만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영역으로 전문성을 확대해 나가며, 개인 또는 조직이 갖고 있는 역량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일을 뜻합니다. 차별적 고객가치 실현은 세상에 없던 것을 가장 먼저 만들어내는 혁신성이 시장성을 입증했을 때 비로소 가능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시장 트렌드의 빠른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피벗 역량’을 키우고 새로운 사업 기회를 지속적으로 탐색해야 하죠.”

    문 대표는 구체적으로 새로운 사업포트폴리오 구축을 전략 과제로 삼았다. ‘모바일을 넘어 모빌리티, 로보틱스, 우주·항공’ 등 회사가 보유한 원천기술의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을 전면에 내세우고, 현재 80% 이상 매출 비중을 차지하는 주력 사업을 안정되게 유지하면서 2030년 신사업 부문 8조원(매출의 25% 이상)이라는 도전적인 목표를 제시한 것.

    실제 LG이노텍은 ▲반도체용 부품 ▲AD(자율주행)/ADAS(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 부품 ▲로봇 부품으로 사업 포트폴리오 고도화에 적극 나섰다.

    그 일환으로 올 초 차량용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모듈(AP 모듈) 시장에 출사표를 던지며, 기존 전장부품사업을 차량용 반도체 분야로 본격 확대했다. 고부가 반도체 기판인 FC-BGA(FC-BGA·Flip-Chip Ball Grid Array)도 지난해 말 빅테크들에 공급을 시작하면서 본격 궤도에 올랐다. 문 대표는 2030년까지 반도체용 부품 사업을 연 매출 3조원 이상 규모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반도체용 부품·전장·로봇으로 새사업 확장

    자율주행 부품 사업 역시 역량을 쏟아 붓고 있는 분야다. 고부가 차량 카메라뿐만 아니라 라이다·레이더 사업을 집중 육성, 모빌리티 센싱 선도 기업을 목표하고 있다. 지난 7월에는 라이다 분야에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는 미국 아에바(Aeva)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 관련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로봇용 부품 사업에서도 의미 있는 성과를 내고 있다. 지난 5월 로보틱스 분야에서 기술력을 자랑하는 보스턴 다이내믹스와 로봇용 부품 개발을 위한 협력을 시작했다. 11월 27일 4차 발사된 누리호에는 LG이노텍의 카메라 모듈이 탑재됐다.

    포트폴리오 고도화와 함께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수익성 강화에도 주력하고 있다. 글로벌 생산지 재편 및 AX(AI Transformation)를 활용한 원가 경쟁력 제고 활동을 지속하고, 고객에 선행기술 선(先)제안 확대 및 핵심기술 경쟁 우위를 강화하며 수익성을 개선해 나가고 있다.

    AI 전환 통한 경쟁력 제고

    LG이노텍은 지난 3분기 증설을 마치고 본격 가동에 들어간 베트남 하이퐁 V3 신공장을 기반으로 고객사의 대규모 카메라 모듈 물량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글로벌 생산망 구축을 완성했다. 베트남 생산법인은 국내와의 생산지 이원화 전략에 따라 범용 카메라 모듈의 주요 생산거점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이를 통해 광학솔루션 사업 원가 경쟁력 제고에 속도를 낸다는 방침이다.

    또한 인공지능(AI)기술을 생산 공정에 적극 도입, 제조 경쟁력을 한층 높여오고 있다. 올 4월 미디어에 공개한 구미 ‘드림 팩토리’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곳에 구축된 AI 비전검사 시스템을 통해 리드타임(주문에서 납품까지 걸리는 시간)을 최대 90% 단축하고, 샘플링 검사에 투입되던 인원도 대폭 감축했다. 이 밖에도 LG이노텍은 ‘디지털 트윈(Digital Twin, 잠깐용어 참조)’ 기술을 전 공정으로 확대 적용하고 있다. 차량 커넥티비티, 센싱 등 자율주행 부품을 비롯한 전 제품군의 개발과 생산공정으로 이 기술을 본격 확대해 나가고 있다.

    이러한 시도와 노력은 호실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모바일용 카메라 모듈 시장의 경쟁 심화에도 불구하고 LG이노텍은 올 3분기 2037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 전년 동기 대비 56.2% 증가했다. 기판소재 사업의 경우, 같은 기간 영업이익이 144% 나 늘어났고, 전장부품 역시 191% 영업이익 증가율을 기록했다. 광학솔루션사업부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15.3% 증가했다. 글로벌 1위 사업인 스마트폰 카메라 모듈에 이은 또 다른 성공 방정식을 써나가고 있는 셈.

    “베트남 및 멕시코 신공장 증설을 바탕으로 전략적 글로벌 생산지 운영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AX(AI Transformation) 도입 확대, 핵심 부품 내재화 등을 통해 수익성 중심 사업구조를 구축해 나갈 예정입니다. 특히 AX를 통한 제조혁신은 차별적 고객가치를 제공할 수 있도록 경쟁력을 강화하는 핵심요소예요. 이를 통해 2030년까지 자기자본이익률(ROE) 15% 이상을 달성코자 합니다.”

    <잠깐용어> 디지털 트윈(Digital Twin)
    가상공간에 사물을 똑같이 복재해, 현실에서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컴퓨터로 시물레이션해 예측하는 기술. 가상 환경에서 설계 검증을 진행하고,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실제 실험 횟수와 시간을 최소화할 수 있다.
    사진설명

    Q 엔지니어에서 최고경영자로 전문성을 확장해오셨습니다. 공학도 출신 경영자로 회사를 이끌고 계십니다.

    A 엔지니어 경력에 마침표를 찍고 경영자 커리어라는 완전히 새로운 길을 택한 것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만, 엔지니어에서 경영자로 성장하는 과정은 이음표의 연속이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매 순간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제 역량을 극대화할 수 있는 분야로 ‘피벗’을 이어온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엔지니어 때부터 제품을 고객에게 제대로 팔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엔지니어 시절부터 고객 관점에서 사고하며 키워온 문제 해결력은 경영자로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우리 회사 엔지니어들에게도 고객들을 만나 프로모션하는 과정에 참여하는 것을 적극 장려하고 있습니다.

    Q LG이노텍을 광학솔루션 분야의 글로벌 선두기업으로 성장시켜 오셨는데, 회사 만의 R&D 문화를 소개해 주신다면.

    A 올 초 뉴 비전을 선포하면서 임직원들에게 ‘고객이 느끼는 차별적 가치를 창출하며 고객의 비전을 함께 실현하는 신뢰받는 기술 파트너가 되자’고 여러 번 강조했습니다. 이를 위해 LG이노텍은 고객에게 새로운 기술 개발을 선제안해 고객과 함께 공동개발에 나서는 고객 맞춤형 PoC(Proof of Concept) 과제를 기반으로 R&D 전략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전체 시장의 흐름을 읽고, 고객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지, 고객이 어떤 것 때문에 불편함을 겪고 있는지 등을 세밀하게 파악하고 이를 해결할 방법을 고객보다 먼저 찾아내는 것, 이를 통해 ‘고객의 비전을 함께 실현하는 신뢰받는 기술 파트너’로 포지셔닝하는 것이 LG이노텍이 지향하는 길입니다.

    Q 평소 직원들에게 자주 강조하시는 점은 무엇인지요.

    A LG이노텍은 부품소재 B2B기업이지만, 가치 중심 사업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고객에게 가치를 주지 못하면 결국 시장에서 외면 받게 됩니다. 저는 차별적 고객 가치 창출을 전략, 제품 생산, 조직운영 등 모든 판단의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임직원들에게 네 가지 핵심가치를 자주 강조하는데요. 첫번째가 ‘Outside-in’입니다. 차별적 고객가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에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고객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센싱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내가 어떤 것을 할 수 있을지 판단하고 실행에 옮겨 최적의 결과물을 도출해 내는 것이 고객가치를 실현하는 첫번째 길입니다. 다음으로 ‘Move Proactively’입니다. 가치를 최대한 인정받으려면 고객이 요구할 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요구하기 전에 먼저 알아서 제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단순 ‘Reactive’한 자세는 부족합니다. ‘Proactive’하게 움직여야 합니다. 세번째로 강조하는 핵심가치는 ‘Open-Minded’입니다. 외부의 고객이 원하는 가치를 고객이 원하기 전에 제공하는 일은 결코 혼자 할 수 없어요. 함께 고민하고 새로운 의견을 받아들이며 좋은 아이디어는 서로 공유하여 전사적 실행으로 이어가는 활동을 우리는 ‘Open-Minded’라고 부릅니다. 마지막으로 ‘End to End’입니다. 회사에서는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과제를 완벽하게 해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부분 최적화’가 아닌 ‘전체 최적화’ 관점에서 서로 협업하며 업무의 완결성을 높여야 합니다.

    Q 후배 엔지니어들과 공학도들이 대표님을 보고 최고 경영자를 꿈꿀 텐데, 이들에게 하시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A 정해진 길을 가지 않으면 성공에서 멀어진다는 인식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나만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필요에 따라 과감하게 ‘피벗’할 수 있는 유연한 사고가 중요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더불어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저 역시 제자리에서 버티고, 부딪히고 배우며 성장해 왔기 때문입니다. 끝까지 해보겠다는 마음이 결국 여러분을 어디든 데려다 줄 거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또한, 기술이든 비즈니스든, 결국 중요한 것은 사람입니다. 혼자 잘하는 것보다 함께 해내는 경험을 축적하는 사람이 더 멀리 갑니다. 마지막으로 고객이 느끼는 가치가 곧 경쟁력입니다. 내가 개발한 혁신기술이 세상을 바꾸는 기술로 거듭나려면, 결국 고객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시장성’을 입증해야 합니다. 이 때문에 엔지니어라도 ‘서비스 정신’을 갖고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김병수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83호 (2025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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