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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수환 칼럼] 순혈주의 깨야 선진국 간다
입력 : 2025.11.26 11:2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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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센진 차별은 못 견디면서
짱개라는 혐오는 안될말
다원적 포용국가 안되면
소득5만弗 선진국 못간다
채수환 월간국장 매경LUXMEN 편집인 “한국에 일하러 온 주제에 커피를 다 마시네”(한국 고등학생) “내 돈으로 사 먹는데 왜 시비냐. 부산에 살면 부산 사람이다”(동남아 근로자)
2013년 개봉했던 영화 ‘국제시장’의 한 장면이다.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배타적 사고를 보여주는 이 장면이 유독 기억에 남았다. 10년이 훌쩍 더 지난 지금도 과연 이런 풍조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장담할 수 있나. 국내 체류 외국인 숫자가 300만 명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지만 외국인을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겠다는 국민들의 설문조사 응답은 여전히 절반 정도에 그친다.
미국의 금융 수도 뉴욕은 30대 초반의 인도계 무슬림 조란 맘다니에게 시정을 맡기는 파격적인 선택을 했다.
일본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아깝게 탈락한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부인(타키가와 크리스텔)은 부친이 프랑스인이고 자신의 고향도 파리다. 일본인들은 사상 첫 혼혈 영부인을 보게 될 날도 멀지 않았다.
우리나라도 연줄보다는 능력이 우선시되는 기업 일선과 스포츠 현장이 선두에 섰다. 현대차그룹은 그룹 공채를 폐지한 이후 벤 다이어친 CTO(최고기술책임자), 루크 둥거볼케 COO(최고혁신책임자), 호세 뮤뇨스 CEO(최고경영책임자)를 차례로 영입했다. 이들의 국적은 네덜란드, 포르투갈, 스페인이다. 스포츠는 훨씬 앞서 23년 전 거스 히딩크를 국가대표 축구팀 사령탑으로 초빙해 월드컵 4강 신화를 썼다. 외국 용병 선수들은 이제 자연스럽게 야구, 농구, 축구, 배구팀에 녹아들고 있다. 인구소멸에 위기감을 느낀 지자체와 지방대학도 앞다퉈 이민자 수용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전체 인구 중 외국인 비중은 아직도 4.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5.0%)의 3분의 1도 안된다. 이민정책도 법무부, 고용노동부, 행정안전부, 교육부 등 각 부처에 분산돼 있어 속도감 있는 대응 전략이나 일원화된 로드맵을 구축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가 야심차게 추진했던 필리핀 가사도우미 사업도 최저임금 논란 속에 본사업이 1년간 더 보류됐다. 싱가포르의 경우 외국인 비중이 무려 40%로 사실상 투자이민, 두뇌유치로 국가를 운영 중이고, 캐나다도 25%, 독일도 14%에 달한다. 이민정책을 단순히 사회통합차원이 아니라 생존전략으로 간주하고 쳬계적인 정책 지원을 아끼지 않은 나라들이다.
예일대 교수인 에이미 추아는 저서 ‘제국의 미래’에서 페르시아, 로마, 몽골, 영국, 미국 등 시대별 초강대국의 공통점을 제시했다. 그것은 인종과 종교에 집착하지 않고 인재를 포용한 다원적 체제였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오늘날 트럼프2.0시대 미국은 초강대국의 지위를 스스로 걷어차는 길을 가고 있다.
최근 우리 국회는 특정국가나 민족을 향한 혐오 발언을 처벌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범죄라는 주장에 동의한다. ‘조센진’이라는 인종 차별은 못 견디면서 다른 민족을 ‘짱개’로 폄하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더구나 우리는 Made in Korea 수출품목을 사주고 K-컬처, K-푸드를 좋아하는 수십억명 외국인들 때문에 먹고 사는 나라다. 폐쇄적인 순혈주의를 못 깨면 1인당 국민소득 5만달러 선진국은 공염불이다. 단일 민족을 상징하는 ‘백의 민족 국가’는 삼국시대 얘기다.
[채수환 월간국장 매경LUXMEN 편집인]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83호 (2025년 12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