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현권의 뒤땅 담화] 골프장 티잉 구역에 서양 잔디가 사라졌다

    입력 : 2025.11.24 16:4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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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잉 구역(Teeing area)에 오르면 늘 불안과 설렘이 공존한다. 학창시절 100m 달리기 출발선에서 신호를 알리는 총소리를 기다리는 느낌이다. 예민한 감각이 총동원돼 긴장감이 흐른다. 그 날 승부가 이 한순간에 걸렸다는 각오로 임한다. 그만큼 티잉 구역은 골퍼로선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가다듬는 성지(聖地)와도 같다.

    골프장에 자주 나가면서 언제부턴가 티잉 구역 상태를 골프장 수준을 평가하는 중요한 요소로 올려놓았다. 무더위에 잔디가 녹아내려 맨땅을 드러내거나 홀마다 매트가 설치돼 있으면 여간 거북하지 않다.

    특히 근래 몇 년간 서양 잔디가 깔린 티잉 구역은 계속된 폭염과 폭우로 황폐하기 그지없다. 맨땅을 피해 티를 꽂으려면 평평한 곳을 찾기 힘들 정도이다. 어떤 때 한쪽 구석에 티를 꽂고 치려고 하면 겨냥(에이밍)하기가 무척 불편하다. 공이 한 쪽으로 쏠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스윙 밸런스가 무너진다.

    매트에서 치자니 일단 어드레스 자세가 불편하다. 발바닥이 지면에 딱 달라붙지 않고 스윙 도중 꼭 미끄러질 것 같은 불안이 감돈다. 매트에선 티 높이를 맞추기도 쉽지 않다. 조금이라도 낮추려고 하면 딱딱해서 잘 들어가지 않아 낑낑댄다. 순서를 기다리는 동반자를 의식하면 리듬도 흐트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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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 수 없이 원하는 지점이 아닌 매트 중간 길게 팬 홈에 티를 꽂는데 어째 느낌이 좋지 않다.

    불안한 예감 그대로 영락없이 슬라이스(Slice)나 훅(Hook) 아니면 토핑(Topping)이다.

    계속된 이런 경험이 티잉 구역 중요성을 새삼 일깨운다.

    우선 티잉 구역이 말끔하면 느낌부터 좋다.

    마치 새 차를 뽑아 처음 모는 기분이다.

    다른 골퍼들처럼 필자도 개인적으로 한국 잔디로 조성된 티잉 구역을 선호한다. 서양 잔디보다 잘 미끄러지지 않기 때문이다. 지면과 밀착된 착지 덕분에 안정적으로 풀스윙을 한다. 발에 전해지는 탄성감이 경쾌하다. 잔디를 통해 바로 지면을 뚫고 들어가기에 원하는 지점에 원하는 높이로 티를 수월하게 꽂는다.

    이에 따라 폭염이 기승을 부린 지난해부터 골프장마다 티잉 구역을 한국 잔디로 교체하기 시작했다. 누적된 발바닥 압력(답압)에 쉽게 허물어지는 서양 잔디는 골프장으로선 사실 관리하기도 어렵다.

    누렇게 맨땅을 드러내거나 이리저리 실밥 풀린 매트를 깔아놓은 티잉 구역을 보면 마음이 무겁다. 동반자들 대부분 한국 잔디를 환영한다. 골퍼들도 티잉 구역 관리에 협조할 필요도 있다. 한번 골프로 끝나지 않고 결국 당사자나 동반자들이 다시 찾아와 이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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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순서에 따라 한 명씩 티잉 구역에 올라가야 잔디에 가해지는 압력을 줄인다. 보통 순서를 기다리지 못하고 동반자 대부분이 티 샷을 준비하는 주인공 옆이나 뒤에 우르르 포진한다.

    티잉 구역 아래에서 기다리자니 답답한 측면도 있다. 하지만 한 명이 올라갈 곳에 4명이 한꺼번에 올라서면 잔디가 받는 압력은 4배로 불어난다.

    간혹 쇼트 홀(파3) 티잉 구역에 가면 앞 팀 소행인지 티 잔해나 꽁초가 널부러져 있어 미간을 찌푸리게 된다. 그대로 꽂혔거나 머리 부문이 잘려 나간 티, 시체처럼 나뒹구는 티가 뒤섞여 있다.

    색깔도 빨강 노랑 파랑 주황 하양 검정 등 총천연색이다. 여기 저기 꼿꼿이 서서 누가 좀 뽑아 주길 하염없이 기다리는 모양새다. 잘 쳤는지 공만 쳐다보지 말고 자기가 사용한 티만이라도 수거하는 것도 매너이다.

    연습 스윙 도중 습관적으로 디벗(Divot) 자국을 내는 골퍼도 있다. 실제 스윙에서는 아예 디벗 자국을 내지 않거나 오히려 토핑(Topping)을 일삼아 아리송하다. 본 스윙에서 하향 타격(다운 블로)으로 디벗을 내는 경우는 물론 허용된다.

    티잉 구역과 관련한 명칭과 룰을 종종 오해하기도 한다. 티샷을 날리는 장소는 티 박스가 아니고 티잉 구역이 올바른 용어이다.

    티잉 구역에서 골프 시작을 알리는 시점은 티업(Tee up)이 아닌 티오프(Tee off)가 맞다. 티업은 티잉 구역에서 티 위에 공을 올려놓는 행위를 말한다.

    티오프는 샷으로 티에서 공이 떨어져 나가는 상태를 말한다. 티업 대신 티오프가 몇 시냐고 물어야 바른 표현이다. 오전 10시가 티오프 시간이라면 골프장에 도착해 옷 갈아 입고 몸을 푼 다음 첫 번째 골퍼가 티 샷을 하는 시간이 10시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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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혹 양쪽 티 마커 연결선 밖으로 벗어나 티를 꽂는데 이를 두고 “배꼽 나왔다”는 표현을 쓰는데 이 경우 2벌타를 당한다. 연결선 후방으로 두 클럽 직사각형 면적 안에서 티 샷을 한다. 티를 이 사각형 안에 꽂아 놓고 두 발이 밖에 놓여도 상관없다. 간혹 에이밍을 하는 과정에서 이런 경우가 나온다.

    티 마커를 일부러 옮기거나 움직여도 2벌타이다. 티 마커는 플레이할 모든 골퍼들에게 동일한 위치에 있어야 한다. 티 마커에 걸려 넘어져 위치가 바뀔 때 제자리에 갔다 놓으면 벌타를 먹지 않는다.

    티잉 구역에서 공을 올려놓은 티 위치가 마음에 걸리면 위치를 바꿔도 된다. 티업한 볼이 스트로크 직전 티에서 떨어지면 벌타 없이 티잉 구역 안에서 다시 티업해도 된다.

    실제 스윙을 했는데 공이 맞지 않고 그대로 있다면 어떻게 될까. 정답은 벌타는 없지만 샷을 한 것으로 보고 두 번째 샷을 쳐야 한다. 만약 티잉 구역 안에 공이 떨어져 있다면 티잉 구역 어디에나 티업을 다시 해도 된다. 연습 스윙 도중 의도하지 않게 공이 그대로 티 위에 있거나 떨어지면 벌타 없이 새로 티샷을 한다.

    티잉 구역에서 거슬리는 흙, 모래, 풀, 잡초, 물 등을 제거해도 된다. 지면이 고르지 않아 발이나 클럽으로 파도 벌타가 없다. 심지어 클럽으로 찍어 흙과 잔디를 북돋아 공을 올려 놓고 쳐도 된다.

    거구의 장타자 로라 데이비스(62)가 즐겨하는 방식이다. 2018년 US시니어여자오픈에서 웨지로 티잉 구역을 쩍찍은 뒤 불룩 올라온 잔디와 흙으로 만든 티에 공을 올려놓고 티 샷을 한 장면이 화제였다.

    정현권 골프 칼럼니스트

    매일경제신문에서 스포츠레저부장으로 근무하며 골프와 연을 맺었다. <주말골퍼 10타 줄이기>를 펴내 많은 호응을 얻었다. 매경LUXMEN과 매일경제 프리미엄 뉴스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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