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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r My Walking] 충북 충주시 악어봉 전망대 | 충주호 가을 정취에 빠져든 악어떼
입력 : 2025.11.24 15:5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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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 숲을 지나서 가자~ 엉금엉금 기어서 가자~ 늪지대가 나타나면은 악어떼가 나올라 악어떼!”
커다란 악어 모양의 육교 앞에 선 두 남매의 동요 합창이 정겹다. 연두색으로 색칠한 악어가 신기했는지 뾰족한 송곳니 개수부터 짧은 앞다리의 발가락 수까지 꼼꼼히 손가락으로 짚어 세어본다.
“누나! 아까 누나가 악어 앞다리는 발가락이 5개라고 했는데 저건 3개밖에 없어. 너무 급하게 만드느라 빼먹은 건가?”
옆에 있던 누나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알은체한다.
“이건 진짜 악어가 아니잖아. 사람이 만든 거니까 발가락이 몇 개라도 상관없어. 대신 입이 저렇게 크니 먹고 사는 덴 문제 없겠다.”
“아냐. 입이 저렇게 큰데 발가락까지 모자라니까 먹고 살기 힘들 거야.”
동생이 입을 삐죽이며 맞받았다. 심드렁하던 아빠 뒤에 있던 생면부지의 아저씨가 한마디 거들었다.
“악어 입으로 사람들이 수도 없이 왔다갔다 하니 먹고 사는 덴 별 문제 없을 걸. 저 옆에서 봐봐. 악어 입으로 사람들이 거저 걸어 갈거야.”
잽싸게 뛰어간 아이가 소리친다.
“우와 배부르겠어. 아빠! 악어는 배부를 거야. 우리까지 악어 입으로 갈 필요는 없겠어. 악어 봤으니 우린 그냥 가자. 저 위로 올라가는 건 아무래도 너무 힘들거 같아.”
악어봉 전망대 초입의 악어육교 아이가 악어 육교 앞에서 짐작했던 것처럼 악어봉 전망대에 이르는 길은 힘들다. 요즘 가장 힙한 사진 명소로 떠올랐다지만 자연을 즐기며 이동하는 트레킹이 아니라 정상에 오르는 등산이 어울리는 말이다. 그럼에도 악어 입을 통과하는 이들 대부분은 운동화 차림이다. 심지어 반질반질한 구두도 눈에 띈다. 이들 모두 나무 계단을 지나 산길이 시작되면 절로 곡소리를 낸다. 이 모든 건 어쩌면 SNS 때문인데, 정상에 올라 악어봉 전망대의 탁 트인 풍경만 소개한 영상에는 그 지난한 과정이 생략돼 있다. 게다가 고작 0.9㎞, 아무 늦어도 왕복 1시간 30분이면 뚝딱이란 소개가 마음을 가볍게 한 탓이다. 이쯤 되면 어린 아이에게 악어 보여주겠다며 나들이에 나선 가족도 낭패요, 주말 데이트 장소로 악어봉을 택한 연인도 고생길이다. 그만큼 쉽게 보면 큰 코 다친다는 의미다.
하나부터 열까지 철저히 준비하고 나서야
당연히 등산 장비가 우선이다. 미끄럽지 않은 등산화와 물 한 병은 기본, 등산 스틱은 선택이다. 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신당리에 자리한 악어봉은 작은 악어봉(448m)과 큰 악어봉(559m)으로 나뉘어 앉아 있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충주호의 풍광이 일품인데, 마치 악어 떼가 물속으로 기어 들어가는 모습을 닮아 악어섬이라 부른다. 원래는 야생생물보호구역으로 개방되지 않았던 길은 충주시가 환경청, 월악산국립공원과 협의해 지난해 9월 작은 악어봉을 개방했다.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길은 꽤 가파르고 습하다. 그만큼 숲이 깊고 높다. 체감상 30° 이상의 경사 구간도 여럿인데, 촘촘한 바위 길에 이끼가 푸릇해 미끄러지기 십상이다. 그러니 이 길은 천천히 숨을 머금고 가는 길이다. 자기 숨에 맞는 보폭으로 무리하지 않고 다리를 뻗어야 악어 떼를 감상할 수 있다.
주말이면 오르고 내려오는 사람이 서로 엉켜 복잡한 상황도 연출되는데, 이럴 땐 양보가 우선이다. 등산하면 마음이 편해지고 느긋해진다는 말, 괜한 말이 아니다. 산속에서 빨리빨리만큼 필요없는 말이 또 있을까. 그래서인지 길이 좁고 험해도 부딪치거나 싸우는 일은 없다. 산악회 모임이 많아 오르는 내내 심심하지 않은 것도 어떤 면에선 장점인데, 앞서거니 뒤서거니 산행에 나선 어르신들의 인생살이 수다에 이 정도 등산은 결코 고행이 아니라 레저랄까.
탁 트인 하늘, 가을 빛 머금은 악어섬
악어봉 전망대 주변에서 “언제쯤 도착하는 거냐”는 말이 나올 때쯤 악어봉 전망대가 눈에 들어온다. 생각보다 아담한 이 공간엔 딱 두 부류의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사진을 찍는 사람과 포즈를 취하는 사람이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충주호는 이곳이 한국일까 싶을 만큼 이국적이다. 한눈에도 여러 마리의 악어가 뭍에서 물로 몸을 들락날락하고 있다. 무엇보다 충주호를 둘러싼 월악산 자락에 가을 정취가 그득하다. 높은 하늘, 차가워진 바람에 식어가는 땀줄기가 뿌듯한 건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이건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성취감인데, 직접 확인해보시길….
악어봉 주변 관광명소악어봉 전망대는 월악산국립공원에 속해 있다. 악어봉으로 가려면 ‘게으른악어’란 카페 앞에 마련된 주차장을 이용해야 한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충주호도 풍광이 일품이다. 전망대에 오른 후 들릴 수 있는 주변 명소도 빼놓을 수 없는 관광코스다.
송계계곡 | 월악산 자락이 병품처럼 둘러싼 송계계곡은 월악계곡, 달천계곡이라고도 불린다. 충주시와 문경시 경계에 있는 포암산(962m)에서 시작되는 달천(達川)이 월악산을 끼고 흐르면서 만든 계곡으로 길이어 7~8㎞에 이른다. 계곡물이 얼음처럼 차가워 여름엔 더위를 피하려는 피서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043)653-3250(월악산국립공원 관리사무소)
종댕이길 | 충주호가 한눈에 들어오는 마즈막재 주차장에서 오솔길을 따라 내려가면 아담한 생태연못이 나오는데, 여기부터 종댕이길이 시작된다. 곳곳에 마련된 쉼터와 정자, 조망대에서 충주호의 풍광을 즐길 수 있다.
충주커피박물관 | 2015년에 개장한 커피박물관은 카페, 체험관, 전망대, 글램핑장, 방갈로 등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커피를 사랑하는 박물관장 부부가 수집한 커피 관련 유물과 기구들이 테마별로 전시돼 있다.(043)855-8304
[글·사진 안재형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82호 (2025년 1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