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 | Food & Energy] 글로벌 식량·에너지 전쟁의 한복판 곡물·LNG·희토류… 생존 걸린 핵심변수

    입력 : 2025.10.20 14:28:05

  • 올해 한국의 장바구니와 전기요금은 전 세계 식량·에너지 패권 경쟁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국제 곡물 가격의 요동, 원유·가스 시장의 줄다리기, 희토류 같은 전략 광물의 공급 불안정이 모두 한국의 물가와 산업 경쟁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세계 시장은 지금 ‘식량과 에너지의 무기화’라는 거대한 흐름 위에 있다. 기후변화로 생산이 흔들리고, 전쟁이 교역로를 막으며, 각국은 수출 규제와 장기계약으로 자원을 붙잡아둔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올해 8월 세계 식량가격지수는 130.1로 전월과 큰 차이가 없었지만, 세부 품목에서는 설탕과 식용유가 오르고 곡물과 유제품은 내렸다. 지수의 평온 뒤에 숨은 ‘품목별 롤러코스터’가 바로 세계 식탁의 현실이다.

    이런 흐름은 한국에도 그대로 번진다. 한국은 옥수수의 99%를 수입하고, 전력 생산의 20% 이상을 LNG에 의존하며, 2차전지·자동차·로봇에 필수적인 희토류는 대부분 중국산에 의지한다. 곡물·에너지·광물이라는 세 가지 자원에서 한국은 언제든 외풍을 맞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국의 긴급 현안 ‘사료곡물, 가스, 전력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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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째는 사료곡물이다. 한국의 가축 사육과 식품산업은 옥수수·대두 같은 수입 곡물에 의존한다. 미 농무부는 2025/26년 한국의 옥수수 수입량을 1150만t으로 전망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브라질산이 가격 경쟁력으로 우세했으나, 올해 들어 미국산 점유율이 다시 반등했다. 전문가들은 곡물 조달의 안정성을 확보하려면 원산지를 다변화하고, 선적 시기와 항로를 분산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야말로 “분산이 곧 보험”인 셈이다.

    둘째는 가스다. LNG는 한국 전력과 난방의 ‘숨통’이다. 미국 에너지부가 지난 5월 텍사스 ‘Port Arthur LNG 2단계’ 프로젝트의 수출을 최종 승인하면서, 미국발 물량이 다시 본격적으로 시장에 풀리기 시작했다. 한국가스공사는 발 빠르게 대응했다. 9월 프랑스 토탈에너지와 10년 장기계약을 체결해 2027년 말부터 연 100만t을 도입하기로 했고, 2028년 이후에는 300만t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이는 변동성이 큰 현물 시장 의존도를 줄이고, 가격 안정성을 확보하려는 전형적인 전략이다.

    셋째는 전력 혼합이다. 정부는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2038년 원전 비중을 35.2%까지 높이고, 재생에너지와 수소·암모니아 혼합 연소 발전을 추가해 무탄소 전원을 7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전기요금과 국가 에너지 안보를 동시에 잡겠다는 전략이다. 산업부는 이에 대해 “전력믹스와 장기 조달의 재설계가 체감 안정성을 좌우한다”라고 강조한다.

    에너지 전쟁 판갈이 “원유 증산, LNG 공급”

    국제 원유 시장의 흐름도 만만치 않다. OPEC+는 10월부터 하루 13만 7000배럴을 증산하기로 했다.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감산으로 공급을 조였던 산유국들이, 이제는 수요 둔화와 재고 감소라는 상반된 신호 속에서 증산 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러시아 정유시설이 드론 공격받으며 지정학 위험이 겹쳤고, 유가는 상·하단이 좁아진 채 더 출렁인다. 한국 정유업계와 석유화학 업계는 이런 불확실성 속에서 납사와 휘발유 스프레드 관리에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인천광역시 연수구 송도동 한국가스공사 인천생산기지 내 액화천연가스(LNG) 저장탱크 모습.
    인천광역시 연수구 송도동 한국가스공사 인천생산기지 내 액화천연가스(LNG) 저장탱크 모습.

    천연가스 시장은 또 다른 국면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25년 글로벌 LNG 공급이 전년보다 5.5%, 약 300억㎥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과 카타르의 대형 프로젝트가 램프업에 들어가면서 공급 우위의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 그러나 유럽이 겨울철 저장 수요를 늘리면, 아시아는 여전히 스팟 물량을 두고 경쟁해야 한다.

    즉, 한국의 전략은 명확하다. 장기계약으로 기반을 확보하고, 옵션 계약으로 유연성을 더하며, 스팟 시장에선 유럽과의 경쟁을 전제로 대비하는 것이다. LNG는 이제 단순한 연료가 아니라, 국가의 협상력과 전력 안정성을 가르는 ‘패권 자원’이다.

    유럽의 EUDR, 미·중의 희토류 줄다리기

    식량·에너지 못지않게 주목해야 할 것은 규범과 광물이다. 올해 말부터 시행되는 EUDR(유럽 산림벌채규제)은 커피, 카카오, 팜오일, 목재, 고무, 대두, 가축 제품까지 ‘무벌채 증빙’을 요구한다. 위성좌표를 포함해 원산지의 산림 파괴 여부를 증명해야 하는데, 한국 식품·화장품 기업들도 예외가 아니다. 유럽 수출길을 지키려면, 2·3차 협력사까지 추적할 수 있는 공급망을 구축해야 한다는 숙제를 떠안게 되었다. 규제 대응이 곧 수출 경쟁력이 되는 시대다.

    다음으로 희토류와 핵심 광물은 지정학의 그림자가 가장 짙게 드리운 영역이다. 지난 6월 런던 회동 이후 미·중은 희토류·자석 수출 재개에 합의하면서 시장을 일시적으로 안정시켰다. 실제로 8월 중국의 자석 수출은 전월 대비 10.2% 증가했다. 그러나 이는 ‘휴전’일 뿐이다. 중국은 게르마늄, 갈륨, 흑연 등 전략 소재에 대해 언제든 수출 규제를 강화할 수 있다. 반대로 미국은 핵심 광물 리스트를 54개로 확대해 방어선을 넓히고 있다.

    로이터 등 외신들은 “희토류 공급은 언제든 다시 통제 수단으로 쓰일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한국의 자동차, 배터리, 전자 산업은 이 줄다리기 속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공급처 다변화, 재활용, 합금 단계의 국내화 없이는 언제든 충격을 받을 수 있다.

    한국의 생존 방정식 “다원화·장기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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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가들이 제언하는 한국의 답은 무엇일까.

    첫째, 식량은 다원화와 레시피 혁신이다. 옥수수·밀은 미국·캐나다·호주로 수입선을 분산하고, 선적 시기와 항로를 나눠 리스크를 줄인다. 코코아·설탕처럼 기후에 취약한 품목은 대체 원료나 새로운 레시피를 준비해 가격 충격을 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에너지는 장기계약과 옵션 병행이다. 미국·카타르의 증설 시점에 맞춰 장기계약을 늘리고, 단기 변동성에 대비해 옵션 계약을 병행한다. 전력믹스에서는 원전을 기둥으로 삼되, LNG와 수소·암모니아 혼소를 과도기적 수단으로 활용해야 한다.

    셋째, 규범은 선제 대응이다. EUDR 대응을 앞서 준비하면, 단순히 규제를 피하는 차원을 넘어 ‘안전한 공급망’이라는 브랜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지리좌표 검증과 위성 데이터는 비용이 아니라, 미래 시장의 필수 티켓이다.

    넷째, 광물은 듀얼 트랙 전략이다. 미국·호주와의 공급망을 강화하면서, 중국산 의존도를 점진적으로 줄이고, 국내 재활용·스크랩 회수·합금 기술을 키워야 한다. ‘두 줄의 안전 로프’ 없이는 희토류라는 절벽을 오르기 어렵다.

    2025년의 글로벌 식량·에너지 전쟁은 한국의 식탁과 전기계, 그리고 산업 현장을 동시에 흔들고 있다. 곡물은 다원화, 가스는 장기계약, 전력은 믹스 재설계, 규범은 선제 대응, 광물은 듀얼 트랙—이 다섯 문장이 곧 한국의 생존 방정식이 되고 있다.

    [박지훈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81호 (2025년 10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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