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 | Robot] 본격화된 피지컬 AI 경쟁

    입력 : 2025.10.17 17:0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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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는 이제 지각과 생성 단계를 넘어 물리적 세계에서 인지하고 계획하며 행동하는 ‘피지컬 AI’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움직이는 모든 것은 결국 로봇화되고, 그 속에 AI가 내재될 것이다.”

    올 초 세계 최대 가전전시회인 미국의 CES 2025 기조연설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던진 화두다. 그가 정의한 AI의 발전 단계를 살펴보면 우선 1단계는 이미지와 음성을 인식하는 ‘지각 AI’, 2단계는 텍스트와 영상 등을 생성하는 ‘생성 AI’, 3단계는 의미를 이해하고 추론하는 ‘인지 AI’에 해당한다. 피지컬 AI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3차원의 물리적 세계를 인지하고 실제 환경과 상호 작용하며 자율적으로 판단해 행동한다. 쉽게 말해 로봇, 자율주행차, 스마트 공간 등 다양한 자율 시스템에 적용돼 일상에서 활용할 수 있다. 영화 속 아이언맨이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올해 엔비디아는 차세대 로보틱스 칩 모듈을 공개하며 로봇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AI 반도체를 넘어 로봇 생태계 전반을 아우르겠다는 구상이다. 지난 8월 로봇 칩 ‘젯슨 AGX 토르’를 출시한 엔비디아는 이 칩을 ‘로봇 두뇌’라 명명했다. 자사의 최신 GPU 블랙웰을 기반으로 완성된 이 칩은 이전 세대보다 최대 7.5배 향상된 성능에 128GB 메모리가 탑재돼 대규모언어모델(LLM) 같은 AI를 로봇에서 직접 실행할 수 있다. 인터넷에 연결하지 않아도 사전 학습된 모델을 실행할 수 있어 실시간 인식과 반응이 가능하다. 미국의 로봇 스타트업 피겨AI는 현재 이 칩으로 휴머노이드 로봇을 개발중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보스턴다이내믹스와 어질리티로보틱스 등 주요 기업들도 엔비디아 칩으로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테슬라의 옵티머스 2.5
    테슬라의 옵티머스 2.5

    ‘테슬라의 기업 가치 중 약 80%가 옵티머스 로봇에서 나오게 될 것.’ 지난 9월 초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밝힌 내용이다. 업계에선 테슬라가 전기차 기업에서 AI 중심 기업으로 전환하려는 의지를 드러냈다고 평가한다. 실제로 테슬라는 전기차의 글로벌 판매량이 감소하며 주력 사업을 휴머노이드 로봇 사업으로 선회하고 있다. 호라이즌 인베스트먼트의 애널리스트 드미트리 슐랴프니코프는 “테슬라는 성장주인 것처럼 고평가돼 있지만 지난 2년간 실질적인 매출 성장은 거의 없었다”며 “투자자들에게 새로운 성장 스토리를 제시해야 하는 머스크 CEO가 의존하기로 결정한 것이 바로 옵티머스 로봇”이라고 분석했다. 일부 부정적 시각과 달리 지난 9월 4일 마크 베니오프 세일스포스 CEO가 SNS에 공개한 테슬라의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의 영상은 전 세계 누리꾼들의 환호를 이끌었다. 영상에서 베니오프 CEO가 “콜라를 어디서 구할 수 있냐”고 묻자 옵티머스는 잠시 머뭇거리다 대답한 뒤 제 갈길을 간다. 일론 머스크는 “이 로봇은 2.5세대”라며 “다가올 3세대 옵티머스는 숭고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2.5세대 옵티머스는 2세대와 비교해 디자인이 슬림하고 부드러워졌다. 무엇보다 대화형 AI 그록(Grok) 음성 비서 기능이 도입돼 듣고 말하기가 가능해졌다. 영상 속 옵티머스는 프로토타입(시제품)으로 2026년에 생산이 예정돼 있다. 그런가 하면 테슬라는 올 6월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시범 운행한 자율주행 로보택시로도 주목받았다. 최근엔 애리조나주에서 시험 운행 승인을 받기도 했다. 일론 머스크는 “올해 말까지 미국 인구의 절반을 대상으로 자율주행 승차 공유 서비스를 출시하겠다”고 목표를 밝히기도 했다.

    피지컬 AI 잠재력에 美·中 잰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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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로벌 IT 시장 조사 기관 스타티스타(Statista)에 따르면 AI 로보틱스 시장의 규모는 2020년 약 50억달러에서 2025년 225억달러로 350% 성장했다. 향후 5년간 예상되는 연평균 성장률은 23.3%, 2030년에는 약 643억달러(한화 약 85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글로벌 투자은행들의 전망은 좀 더 장밋빛이다. 모건스탠리는 2050년까지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이 5조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측한다. 골드만삭스는 2035년까지 380억달러 규모로 성장을 전망하며 연간 출하량이 140만 대에 이를 것으로 봤다. 씨티은행은 2050년까지 시장 규모가 7조달러에 이를 수 있다며, 제약·의료·물류 등 다양한 산업에서의 도입 확대를 강조했다. 이렇듯 DX(디지털전환)에서 AX(AI전환)으로 진화한 시대적 흐름에 세계 각국도 피지컬 AI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특히 미국과 중국의 막대한 자금 투자가 눈에 띈다. 주어진 임무를 위해 스스로 의사결정과 업무를 수행하는 에이전트 AI가 피지컬 AI와 결합하게 되면 제조, 의료, 국방 등 전산업군에서 시너지가 날 수 있다는 명제가 투자를 이끄는 원동력이다.

    올해 미국 정부는 오픈AI, 오라클, 소프트뱅크와 협력해 최대 5000억달러(약 690조원) 규모의 ‘스타게이트 프로젝트(Stargate Project)’를 추진하며 대형 데이터센터와 전력 인프라 구축에 나섰다. 피지컬 AI 기술 연구와 상용화를 뒷받침 하기 위한 투자다. 국가기관이 직접 산·학·연 협력에 자금을 지원하기도 했다.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은 ‘지능형 로봇 및 자율시스템(IRAS)’ 연구개발에 2023년 5380만달러, 2024년 6990만달러를 지원했다. 미국 국방부(DOD)는 ‘자율성·로봇 기술 관련 개발·시험·평가(RDT&E)’ 및 조달 부문에 2023년 103억달러, 2024년 102억달러의 예산을 배정했다.

    중국은 중앙정부 주도로 피지컬 AI를 육성하고 있다. 2015년에 발표한 제조업 혁신 전략 ‘중국제조 2025’를 통해 첨단 로봇과 기계 기술을 핵심 우선 과제로 설정하고 ‘로봇산업발전규획’을 마련해 고도화에 나섰다. 2022년부터 진행한 ‘지능형 로봇 중점 특별 프로그램’에는 2022년 3억1600만위안(약 608억원), 2023년과 2024년에는 각각 3억 2900만위안(약 633억원)을 지원했다. 베이징시는 지난해 총 100억위안(2조원) 규모의 피지컬 AI 산업 발전 기금을 조성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일본은 ‘문샷(Moonshot) 연구개발 프로그램’에 4억 4000만달러(약 6404억원)를 투자해 인간과 함께 행동하는 AI 모델 기반 로봇 개발을 추진 중이다.

    전폭 지지 밝힌 한국 정부, 문제는 인재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9월 17일 경기도 성남시 스타트업 스퀘어에서 컵 쌓기 퍼포먼스를 선보인 휴머노이드 로봇과 악수를 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9월 17일 경기도 성남시 스타트업 스퀘어에서 컵 쌓기 퍼포먼스를 선보인 휴머노이드 로봇과 악수를 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이제 막 피지컬 AI에 대한 정책 드라이브가 시작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올 4월 삼성과 LG 등 주요 기업과 기관이 참여한 ‘K-휴머노이드 연합’을 출범해 2030년까지 약 3조원을 투입, 지능형 로봇 개발과 핵심 부품 국산화율 제고를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 8월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새정부 경제성장 전략’에는 AI와 첨단 기술을 핵심 축으로 하반기부터 30대 선도 프로젝트를 본격 가동하는 내용을 담았다. 윤인대 기재부 차관보는 “AI 대전환 시대가 도래하면서 우리 경제가 선도 국가로 도약하기 위한 마지막 골든타임을 맞았다”며 “AI대전환은 인구 충격 등에 따른 성장 하락을 반전시킬 유일한 돌파구”라고 말했다. 정부는 로봇·자동차·조선·가전·반도체 등 주력 제조업에 AI를 결합해 ‘피지컬 AI 1등 국가’로 도약한다는 복안이다. 단순 연구개발(R&D)을 넘어 현장 적용과 산업 생태계 확산까지 초점을 맞췄다. 우선 범용 AI 휴머노이드 로봇을 개발해 오는 2027년 물류 분야에 실증 보급할 방침이다. 여기에 산업 특화 AI 모델을 탑재하고, 현장 데이터를 학습시켜 제조(반도체·자동차·조선·철강·화학), 건설, 돌봄 서비스 등으로 확산시키기로 했다. 지난 9월 12일 경기 의왕시 현대차그룹 로보틱스 랩에서 개최한 ‘AI 대전환 릴레이 현장 간담회’에서 AI 로봇, 자동차 분야 대표 기업인들을 만난 구윤철 경제부 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세계 경제는 1등만 살아남는 승자독식 시대로 가고 있다”며 “세계 1등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 수 있도록 가용한 정책 수단을 총동원해 전폭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각에선 “AI 로봇 관련 인재가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우선”이란 말도 나온다. 실제로 국내 기업 중 LG CNS는 최근 미국 산호세에 AI·로보틱스 연구개발(R&D)센터를 설립했다. 현대차는 실리콘밸리 마운티뷰에 오픈이노베이션센터 ‘현대 크래들’을 두고 있다. 명문대와 빅테크가 몰려 있는 실리콘밸리의 풍부한 인재 풀 때문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로봇은 그 자체만으로도 다른 산업의 경쟁력을 결정하는 미래 제조 시스템의 핵심”이라며 “강력한 보호무역주의로 제조업 재무장에 나선 미국, 24시간 공장을 가동하는 로봇 중심의 무인 자동화 공장(다크팩토리)를 내세운 중국을 따라가려면 결국 인재를 모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안재형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81호 (2025년 10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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