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현덕의 한국기업 탈각의 순간들] 오리온 | ① 11년 같은 말 반복한 ‘소방수’ 허인철 “ 품질 좋게 값은 싸게…그게 업의 본질”

    입력 : 2025.10.10 11:39:12

  • ▶ 손현덕의 <한국기업 탈각(脫殼)의 순간들>
    성공한 기업들은 보면 결코 우연이란 건 없습니다. 운이 따랐다 한들 그 운을 기회로 만든 결정적 순간이 있습니다. 마치 뱀이나 매미가 껍질을 벗듯, 탈각(脫殼) 이전의 기업과 이후의 기업은 전혀 다릅니다. 담대한 변신으로 위대한 성공을 이끈 기업가의 여정을 기록합니다.
    허인철 오리온 부회장이 8월 27일 서울 용산구 오리온 본사 5층 부회장실에서 손현덕 매일경제신문 대표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충우 기자.
    허인철 오리온 부회장이 8월 27일 서울 용산구 오리온 본사 5층 부회장실에서 손현덕 매일경제신문 대표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충우 기자.

    2016년 7월 18일.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박남규 교수 앞으로 메일 한 통이 도착한다. 마침 모(某) 기업의 요청으로 서귀포 신라호텔에서 신재생에너지 분야의 전략 워크숍을 주관하고 있을 때였다. 성하(盛夏)의 계절인데도 남쪽 섬 제주도에는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오전 위크숍을 마치고 모처럼 나른하고 여유로운 오후 시간을 즐기던 중 휴대폰 창에 메일 도착 안내문이 떴다. 등록해 놓지 않은 모르는 발신인의 이메일이었다. 보낸 사람은 주식회사 오리온 경영관리팀 신현창 차장. 제목은 경영 자문 의뢰. 간추리면 이런 내용이었다.

    “㈜오리온은 현재 경영 진단 및 조직 개선을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경영학 부문에서 권위 높은 박남규 교수님의 식견을 여쭈면서 오리온의 과거 잘못된 관행과 전략적 오류를 진단하고 향후의 나아갈 방향을 명확히 설정하고자 합니다. 자문 일정은 2개월(2016년 8~9월)이며, 진행 상황에 따라 1개월 정도 연장될 수 있습니다.”

    제주도에서 받은 메일

    오리온은 이런 메일을 주로 전략 분야를 전공하는 국내 유수 대학의 경영학 교수 5명에게 동시에 보냈다. 그러면서 내부 조직 진단을 위해 총 22명의 사내 인사들과 심층 면접을 진행했다. 사업 부문별 담당자와 팀장이 대상이었다.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기 위해 오히려 임원들은 제외했다. 대신 그 당시 퇴직자들과 일부 외부인들의 의견을 받았다.

    이 작업을 실무적으로 진행한 신현창 수석부장(현 직책)은 “오너인 담철곤 회장은 본인이 법적분쟁에 휘말려 회사를 돌보지 못한 시기에 도대체 회사가 어떻게 망가졌는지를 보고 싶어했다”면서 “조직이 가라앉기 시작한 2011년을 시발로 5년간을 조사하라고 지시했다”고 말한다. 2016년 6월 분기마다 열리는 사장단 회의였다. 이 회의에서 담 회장은 이렇게 말한다.

    “이제 긴 터널에서 나가는 시점인 것 같다. 긴 기간 우리는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우리가 뭘 잘못했는지, 아니면 어떤 실수를 했는지 짚고 넘어가야 한다. 허인철 부회장을 영입하고 나서 지금 약간의 빛이라도 보는 것이다. 최근 임원들도 상당수 정리되고 합병이나 구조조정도 대부분 완성됐다. 알게 모르게 변화의 폭이 컸다. 이제 얼마나 운영을 잘하느냐가 문제다. 이번 기회에 우리가 털 것은 왕창 털고 가자.”

    아닌 게 아니라 지난 5년간 오리온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매출이 줄어들었다. 역성장이었다. 2011년 국내 매출이 8004억원, 2015년엔 7478억원. 영업이익도 895억원에서 814억원으로 감소했다. 외형이 줄면서 동시에 이익도 주니 뭔가 심각한 병에 걸린게 분명했다. 직원들도 이탈하기 시작했다. 가장 인원이 많았던 2013년 2129명에서 2015년엔 1980명으로 149명이 빠져나갔다. 직군별로는 주로 마케팅과 영업, 직급별로는 과장과 대리급에서 탈출이 이어졌다. 자발적 퇴사율이 무려 12.1%. 그냥 회사가 마음에 안들고 비전이 없다고 보고 나갔다고 해석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신현창 부장에게 오리온에 대한 대강의 자료를 접한 박 교수는 눈길을 사로잡는 지표 하나를 주목했다. 그게 시장점유율(M/S)이었다. 같은 기간 20.4%에서 17.1%로 줄었다. 3.3%포인트 감소.

    박 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제과시장 전체가 성장률이 낮은 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숫자를 보니 그 기간 중 제과시장은 연평균 3.2% 성장했더군요. 반드시 저성장 추세라고만은 할 수 없는 수치입니다. 전체 볼륨이 5000억원이나 늘었습니다. 그런데 유독 오리온만 줄어들었는데 이는 심각한 경쟁력의 위기입니다.”

    박 교수는 “경영학에서 기업 위기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전략적 위기고 다른 하나는 관리적 위기”라면서 “오리온은 전략적 위기를 지나치고 관리적 위기 단계에 진입한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박 교수에 따르면 전략적 관점에서의 위기는 미래의 중요한 변화를 예상하고 대처할 수 있는 시점으로 경영학적으로는 회사가 잘 굴러가는 듯하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불안 요인이 불거진다는 것.

    그는 오리온에게 이런 조언을 전달한다.

    “오리온의 시장점유율이 3%포인트 떨어졌다는 건 경쟁 업체에 비하면 6%포인트 떨어졌다는 걸 의미한다. 이런 정도면 기업 내부에서 뭔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얘기고 그런 신호음은 아마도 곳곳에서 감지됐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기업 오너나 최고경영자(CEO)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이런 전략적 위기의 징후를 감지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위기를 지나칠 경우 반드시 관리적 위기가 오게 돼있다. 관리적 위기 상황이 되면 종업원 대다수가 큰일 났다고 인식하고 종업원의 사기는 급전직하로 떨어진다. 환자로 치면 외과적 수술을 단행해야 살릴 수 있는 단계가 된다.”

    그러나 오리온은 박 교수 표현대로라면 이미 관리적 위기에 진입한 상태였다.

    사진설명

    철저하게 자아비판 하라

    보고서 나오기 5년 전, 그러니까 2011년이었다. 창업자인 서남 이양구 회장의 둘째 사위인 담 회장은 회사 자산으로 취득한 그림을 자택에 전시 보관했다는 이유로 업무상 배임 횡령 혐의로 기소돼 1심 판결을 받고 구속됐다. 리더십 부재로 위기에 직면한 오리온. 직원들을 하나로 묶는 비전이 필요했다. 오리온 한국 법인을 맡았던 강원기 사장이 2015년, 그러니까 5년 내로 매출 1조원 기업(한국 법인)이 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전 직원을 독려했는데 결과는 참담한 실패였다. 매출 1조원이라는 게 사실 불가능한 목표도 아니었다. 2000억원 정도만 더 올리면 됐다. 그러나 웬걸. 5년 후 받은 성적표는 오히려 뒷걸음질이었으니 완벽한 실패였다. 달성률로 치면 60%가 안됐다.

    그렇게 해서 독한 반성문이 만들어진다. 총 31페이지로 요약한 소위 ‘오리온 징비록’이다. 제목은 <5개년 리뷰(REVIEW) 및 해야 할 일>이라고 밋밋하게 달았지만 그 내용은 류성룡이 임진왜란 당시의 경험과 반성을 담아 쓴 <징비록>처럼 오리온의 지난 잘못을 경계하여 앞으로의 일을 미리 대비하고 준비해야 한다는 보고서였다. 이 작업은 현재 베트남 법인장으로 있는 박세열 당시 경영지원팀장이 주도해 그해 10월 19일 중국 법인 베이징 사무실에서 열린 사장단 회의에서 직접 발표한다. 당시 참석자는 담 회장, 창업주 둘째 딸이자 담 회장 부인인 이화경 부회장, 허 부회장 그리고 5명의 법인장이었다.

    반성들이 쏟아졌다. 몇 가지 열거하면 이렇다.

    첫째, 근거 없는 낙관론 팽배.

    “초콜릿시장이 성장하고 있다. 출시만 하면 매출이 오를 것이다. 작년에 좀 덜 팔렸다고 올해도 그러겠는가. 광고는 안 할거냐? 매출 목표를 올려 잡고 그에 맞는 광고를 가져와라. 우리가 공격적으로 가지 않으면 남 좋은 일만 시킨다.” (전략기획 부서)

    둘째, 협업과 소통의 부재.

    “공장에 있는 사람들이면 누구나 창고에 재고가 쌓여있는 걸 안다. 어차피 시즌에 다 나갈 제품이라고 생각했다. 그때만 하더라도 우리는 만들기만 했지, 재고 걱정은 안 했다. 파는 건 영업 쪽 일이라 생각했다.” (생산 부서)

    셋째, 실패 숨기기.

    “우리 제품이 경쟁사보다 떨어진다는 걸 안다. 그러니 매장에 팔더라도 반품 걱정부터 한다. 어차피 어느 정도 시일이 지나 안 팔리면 거래처에서 빼기로 계약했다.” (영업 부서)

    오리온의 경영지표를 보면 확연하게 눈에 띄는 게 있는데 그게 반품률이다. 물건을 팔려고 했는데 경기가 안 좋거나 갑자기 경쟁사 히트 제품이 출시돼 자사 제품이 안 팔리고 남는 거라면 그건 일시적인 문제다. 다음 기회를 노릴 수 있다. 그러나 오리온은 달랐다. 영업 직원들이 매출을 올리라니까 거래처에 제품을 넘기긴 하는데 거래처는 “안 팔릴 게 뻔한데 왜 우리한테 안기느냐”고 하니 그럼 때가 되면 반품 받아줄게, 해서 벌어지는 일이다. 2011년에는 반품률이 1.1%였고 급기야 2015년에는 3.4%까지 오른다. 현재 반품률의 17배.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다음 회차에서 이어집니다.)

    [손현덕 대표]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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