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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4 | 글로벌 반응 ① 미국] 관세수입 늘어난다지만, 경제는 글쎄 “결국 소비자 부담만 늘어날 것” 우려
입력 : 2025.08.27 16:3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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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8월 7일부터 본격적인 상호관세 제도를 시행하면서, 글로벌 무역 질서에 중대한 변곡점이 형성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미국 트럼프 정부의 상호관세가 8월 7일부터 본격화하면서 글로벌 무역질서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국면에 접어들었다. 제이미슨 그리미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뉴욕타임스 기고에서 “우리는 이제 트럼프 라운드를 맞이하게 됐다”며 우루과이 라운드에 따른 30년 역사의 세계무역기구(WTO) 체제가 종언을 구하고 새로운 무역질서가 도래했음을 알렸다. 실제로 천문학적인 대미 투자를 조건으로 관세율을 일부 낮춰주긴 했지만 미국이 각국에 10~50% 상호관세를 부과하면서 기존의 다자무역이나 자유무역협정(FTA)은 휴지조각이 됐다. 각국은 관세율을 반영한 대미수출의 영향은 물론 수출경쟁국과 경합에 따른 파장을 분석하고 저마다 주판알을 튕기느라 분주하다. 미국에도 명암이 나타나고 있다. 관세수입이 급증하며 미국 정부는 이에 따라 막대한 재정적자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관세 우려에도 탄탄한 기업실적이 밑바닥을 받치며 뉴욕시장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시장에선 과열국면을 걱정할 정도다.
반면 관세발 인플레이션에 따른 스태그플레이션(경기위축 속 물가상승) 우려는 여전한 리스크다. 소비자물가와 공급자물가 등 엇갈린 물가지표들도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2분기 경제성장률이 반등했지만 상반기로 보면 지난해의 절반 수준에 불과해 경기위축이 가중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관세 실험을 시작한 지 6개월이 지났지만 경제는 붕괴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머지않아 미국 경제는 무역전쟁의 고통을 더욱 예리하게 느낄 가능성이 크다”며 “지금까지 비용을 떠안아 온 외국 기업들이 영원히 그것을 감당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를 비롯한 경제학자들은 “미니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역대급 관세폭탄, 美시장은 고공비행블룸버그 이코노믹스는 트럼프 관세로 미국의 평균 관세율이 지난해의 2.3%를 훨씬 웃도는 15.9%로 높아질 것으로 추정했다. 이로 인해 2027년 말까지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이 2조달러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처럼 관세 리스크에 기존 수출입 구조가 흔들리면서 미국 기업들로서도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지만 실적이 견인하는 주가는 연일 천장을 뚫고 있다. 대형주 중심의 S&P500지수는 연초만 해도 6000에 못미친 5868.55(1월 2일 기준)이었지만 8월 15일 기준 6449.80으로 상승률이 10%에 육박한다.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종합지수는 상승률이 12.2%에 달한다. 씨티그룹에 따르면 1분기만 해도 미국 기업의 17%만이 향후 실적 목표 기대치를 높였지만 3분기에는 40%에 이르는 기업들이 실적 추정치를 상향했다. 얼라이언스 번스타인의 넬슨 유 책임자는 “이번 실적 시즌으로 기업들의 두려움이 많이 줄었다”며 “관세가 이제 시행되면서 불확실성이 줄었다는 것도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씨티는 물론 뱅크오브아메리카(BOA), 골드만삭스, 도이치뱅크 등 주요 금융기관들은 일제히 올해 주가 전망치를 끌어올렸다. 반면 일각에선 관세 후폭풍을 간과하고 있다며 9월 증시 급락을 경고하고 있다.
트럼프 관세로 가장 큰 변화는 미국의 관세수입이다. 올 들어 7월까지 일부 소비세를 포함한 미국의 관세 수입은 1520억달러(약 211조원)로 1년 전 같은 기간 780억달러에 비해 2배에 달한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현재 관세가 그대로 유지될 경우 향후 10년간 2조달러(약 2780조원)가 넘는 관세 수입이 추가로 발생할 수 있다. 막대한 재정적자에 시달리는 미국으로선 새로운 수입원이 생긴 만큼 앞으로도 관세를 되돌릴 유인이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예일대 예산연구소에 따르면 미국의 평균 실효 관세율은 18.4%로 1930년대 이후 최고 수준으로 올라선 것으로 분석됐다. 이 때문에 소비자물가는 단기적으로 1.8%포인트 오르고 이에 따라 미국 가계는 올해 기준으로 가구당 평균 2400달러의 실질 소득이 감소할 것으로 추산했다. 결국 소비감소와 성장추락으로 이어질 것이란 경고다. 지난 2분기 미국 국내 총 생산(GDP) 성장률은 3.0%로 반등했지만 상반기 기준 1.2%로 지난해(2.5%) 보다 크게 후퇴했다.
1분기 마이너스를 기록했던 성장률이 3.0%로 반등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충격에도 미국 경제가 견조한 성장세를 보였다고 자신했지만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상반기로 보면 1년 전의 절반에 불과하다는 것을 우려했다.
최근 석 달간 평균 비농업 신규 고용이 3만 5000건에 그치면서 1년 전 10만 건을 웃돌던 것에 비하면 크게 줄어든 것이다. 관세발 인플레이션이 본격화하는 상황인 데다 고용과 경기에도 이미 악영향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속 물가상승)을 경고하고 나섰다.
최대 아킬레스건 ‘물가’기업실적도, 주식시장도 상승세를 이어가면서 관세 후폭풍이 우려만큼 크지 않다는 분석도 나오지만 트럼프 관세의 최대 ‘아킬레스건’은 물가다. 7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2.7% 올라 전달과 같은 상승률을 기록한데다 시장 예상치(2.8%)를 밑돌았다. 이 때문에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패드워치는 한때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인하 확률이 100%로 치솟기도 했다. 하지만 7월 지표에는 최근 본격화한 상호관세 영향이 반영되지 않은 데다 7월 CPI에서도 근원CPI는 3.1%로 예상치를 웃돌며 물가 불안감이 여전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사라 하우스 웰스파고 이코노미스트는 “더 많은 관세율이 확고해짐에 따라 향후 3개월에서 6개월이 위기의 시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파월 의장은 관세발 인플레이션 영향을 확인한 뒤에야 금리 인하에 나설 수 있다고 거듭 강조해왔다. 전문가들도 관세가 소비자 가격에 반영되기까지 시간이 좀 더 걸릴 것으로 전망했다. 소매업체가 관세 영향을 늦추고 가격 안정 유지를 위해 재고를 비축해뒀기 때문이다.
실제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코스트코, 월마트, 타깃 등 미국 주요 유통업체가 재고를 모두 소진하면서 본격적으로 소비자가격에 관세 영향이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향후 관세 비용의 67%를 미국 소비자가 부담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임성현 뉴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