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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3 | ② 中企 관세 미로 돌파 전략] 관세 재편은 숫자 아닌 규칙의 변화, HTS 재분류·중첩관세가 성패 가른다
입력 : 2025.08.27 15: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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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한국 중소기업들의 생존 공식도 새롭게 쓰이고 있다. 특히 미국발 관세 재편은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규칙’의 문제가 됐다. 15% 상호관세 위에 50%의 철강·알루미늄 고율 관세가 겹치고, 디 미니미스 종료로 소량 거래마저 새로운 세율과 통관 절차에 묶인다. 여기에 동남아 경유 출하 물량에 대한 원산지 실사 강화, 그리고 HTS 품목 코드 재분류로 인한 중첩 관세까지 더해지며, 중소기업의 부담은 체계적으로 쌓여가고 있다. 이 네 갈래가 얇은 마진과 빠른 납기를 기반으로 경쟁해온 국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생태계를 전방위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부품·전자·패션까지…확산하는 파장전문가들이 공통으로 지적하는 관세 충격의 약한 고리는 자동차 부품과 전장 부문이다. 완성차에 대한 상호관세는 15%로 비교적 단순하지만, 하위 부품으로 들어가면 상황은 복잡해진다. 하우징, 브래킷, 커넥터처럼 알루미늄·구리 성분이 높은 부품들은 최근 미국 상무부가 발표한 407개 파생 HTS 코드 확장 대상에 포함되며 최대 50%의 고율 관세가 적용될 수 있다. 로이터는 8월 15일 보도에서 “상무부가 철강·알루미늄 파생품에 대한 관세 적용 범위를 크게 확대했다”라고 전했다.
같은 부품이라도 재질이나 가공도에 따라 세율이 달라지는 이중구조는 특히 납품 단가를 고정해 놓은 2·3차 협력사에 먼저, 그리고 더 강하게 충격을 줄 수밖에 없다.
산업기계와 공조설비 같은 기계·중간재 산업도 예외는 아니다. 베어링, 배관재, 감속기 등 주요 중간재가 철강·알루미늄 성분을 포함할 경우, 이 역시 파생 HTS 코드에 따라 중첩된 50% 관세가 부과된다.
실무자들 사이에서는 “232조 관세는 모든 기존 세율에 ‘추가’로 붙으며, 통관 시점 기준 적용되기 때문에 선적 이후의 변수도 통제할 수 없다”라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즉, 제품 자체의 경쟁력보다도 선적 타이밍, 품목 코드 선택 같은 행정적 요인이 손익을 결정짓는 구조다.
전자부품 분야는 관세 부담과 더불어 물류망의 구조적 취약성까지 겹치고 있다. 히트싱크, 코일, 금속 하우징류는 기본적으로 소재 관세 리스크를 안고 있으며, 무엇보다 샘플·스페어 공급을 기반으로 한 고빈도, 소량 수출이 디 미니미스 종료와 함께 완전히 정식 통관체계로 편입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에 대해 “800달러 이하 소액면세가 종료되며, 모든 국제 소포에 일반 관세 혹은 한시적 건당 고정 관세(80~200달러)가 부과될 예정”이라고 전했다. 그동안 D2C나 전자부품 기업들이 활용해 온 빠른 샘플 공급·교체 전략은 관세 부담과 함께 리드타임 불확실성으로 이어지게 된다.
화장품·패션 브랜드와 같은 D2C 분야는 이번 관세 변화의 전면에서 직접 충격을 받고 있다. 백악관은 7월 30일 “8월 29일 00:01(EDT) 이후 입항분부터 모든 소액 상업물품에 관세를 부과한다”라고 발표했다. 그간 글로벌 전자상거래를 지탱해온 소액면세 구조가 사라지며, 최종 소비자 결제금액은 상승하고 플랫폼의 상품 선택지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브로커 비용과 통관 수수료는 셀러에게 고정비로 남게 되며, 중소 브랜드 입장에서는 고객과의 첫 접점에서부터 진입 장벽이 생기는 셈이다.
‘디 미니미스’ 종료가 의미하는 ‘작지만 큰 변화’사실 중소기업 실무에서 디 미니미스는 ‘세금 회피’ 수단이 아니라 ‘속도의 사다리’였다. 샘플, 스페어, 리퍼브와 같은 소량 물량을 빠르게 회수·보완하며 제품력을 개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이러한 흐름이 모두 정식통관 체계로 들어가면서 건당 브로커 수수료, 검사, 서류 보정이 뒤따르게 됐고, 이는 그대로 납기와 리드타임의 불확실성으로 이어진다. 미국 관세국경보호청(CBP)은 8월 15일 국제 가이던스를 통해 “국제우편을 포함한 모든 소액물품에 관세 징수 체계를 전면 적용한다”라고 밝혔다.
이 변화는 네 갈래로 영향을 미친다. 우선, 서비스 품질이 저하 가능성이 커진다. 샘플·AS·리콜에 대한 응답 속도가 느려지고, 서비스 수준 협약(SLA)을 지키는 것이 어려워진다. 두 번째로, 현금흐름에 압박이 온다. 자잘한 관세와 통관비용이 수십 건 단위로 반복되면, 고정비 처럼 쌓인다. 세 번째로는 채널 전환 비용이다. 특송 중심에서 상용 화물로 전환하려면 창고, 재고, 반품 체계를 새로 설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가격 전략을 재설계해야 한다. 소비자에게 관세·배송비 포함가를 제시할지, 별도로 과금할지에 따라 구매 전환율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WSJ는 “관세 적용 초기 6개월간은 한시적으로 특정 관세를 적용할 수 있다”고 전하며 기업들에게 이중 전략을 동시에 운영할 필요성을 지적했다.
뷰티 플랫폼의 한 실무자는 “소액면세가 중단되면 브랜드의 첫인상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배송은 느려지고, 결제금액은 높아진다. ‘한 번 써보려던’ 소비자들이 이탈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디 미니미스 종료는 단순한 세금 문제가 아니라 고객 경험, 브랜드 전략, 수출 채널의 전면 재설계를 요구하는 구조적 변화다.
동남아 경유 제품, 원산지 실사 강화서울 63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중소기업 수출상담회에서 관람객들이 전시된 중소기업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동남아 경유 출하 물량에 대한 검증은 ‘경로 확인’을 넘어 ‘공정 내용’까지 파고들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8월 14일 보도를 통해 “태국은 미국의 우회물품 경고에 대응해 공장 기습점검과 라벨링 실사까지 도입했다”라고 전했다.
또한 말레이시아와 베트남 역시 경로 실사에서 가공 공정 검증으로 점검을 확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는 단순히 서류상 원산지 증명서(C/O)만으로 통관이 끝나던 시기가 지났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지금은 ‘가공도’와 ‘부가가치 비율’이 원산지 입증의 핵심 지표가 되었다. 핵심 부품의 원산지, 완성품의 품목코드 변화, 공정 내 부품 변형 여부 등을 모두 자재명세서(BOM), 공정도, 설비가동 기록 등으로 증명해야 한다. 기업들은 이미 바이어와 계약 시에 ‘서드파티 원산지 검증 보고서’를 첨부하거나, 실사 대응용 가이던스를 자체 작성하고 있다.
한국 기업 처지에선 도전이자 기회다. 동남아 생산을 유지하면서도, 한국산 원재료와 기술을 통해 가공도 기준을 만족시키려는 시도도 늘고 있다. 하지만 그 경계는 매우 얇다. 한 번의 실사 실패, 한 줄의 서류 오류로 우회 판정이 나면 40%의 관세는 물론, 해당 바이어와의 거래 정지까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 시장은 이제 ‘빠른 출하’보다 ‘완벽한 서류’를 요구하고 있다.
관세 자체가 인상된 것이 아니라, ‘품목 코드’가 재정의된 것이 이번 제도의 본질이다. 특히 232조 파생 HTS의 확대는 철강·알루미늄이 일정 비율 포함된 중간재까지 고율 관세 대상으로 포섭하면서, 사실상 원소재 외 부품까지 관세 격차를 발생시키고 있다. 미국 연방관보에 따르면, 이러한 파생 HTS는 기존 모든 관세 외에 중첩 적용되며, 입항일 기준으로 효력이 발생한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SKU(제품단위)–HTS 코드 전수조사다. 재질, 가공도, 조립 위치를 기준으로 각 제품이 어떤 코드에 해당하는지 확인하고, 세율상 불리한 경우 대체 소재나 복합 부품화 등 설계 변경을 검토해야 한다. 이른바 ‘규칙 친화적 설계’다. 이 모든 조치는 국제기관들이 예상한 흐름과 맞닿아 있다. PIIE는 6월 25일 보고서를 통해 “관세 패키지는 미국과 세계의 성장 둔화, 그리고 단기 인플레이션 상승을 일으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OECD도 6월 경제전망에서 “무역장벽과 정책 불확실성이 교역과 투자를 제약하고, 2025~2026년 성장률을 2.9% 수준으로 낮출 것”이라고 전망했다. IMF 역시 “한국은 글로벌 가치사슬(GVC) 밀도가 높아, 관세 충격의 진폭이 더 크다”라며 서비스 수출과 공급망 다변화를 권고했다.
결국 중소기업이 직면한 이 위기는 단순히 버텨야 할 폭풍이 아니라, 설계해야 할 새 항로다. SKU 하나, 라벨 하나, 서류 한 줄이 생존을 좌우하는 시대다. 가격이 아니라 규칙이 경쟁력이 되는 이 국면에서, 기업은 이제 규칙의 설계자가 되어야 한다. 한 통상 전문가는 말한다. “관세는 숫자가 아닙니다. 관세는 제도고, 제도는 습관입니다.”
[박지훈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80호 (2025년 9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