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art 3 | ① 생존 위기 직면한 中企] 관세 파고에 ‘마진 제로 시대’ 현실화 美 현지 납품·유통채널 이원화 시도

    입력 : 2025.08.27 10:2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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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세에 드러난 숫자보다 무서운 것은 규칙이다.”

    2025년 여름 한가운데를 지나며 이 말을 실감하고 있는 한국 중소기업들이 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복귀와 함께 도입된 상호관세 체계가 정착 국면에 접어들면서, 기업들은 이제 15%라는 숫자보다 그 안에 담긴 구조적 변화와 마주하고 있다.

    7월 31일 발표된 미국 측 행정명령에 따라 한국산 수입품에 대한 기본 관세는 15%로 조정되었지만, 그와 동시에 철강·알루미늄·구리 등 핵심 소재에는 50% 고율관세가 별도로 유지되며, 특정 품목군은 파생상품까지 포함돼 관세의 외연이 확대됐다. 더불어 소액 통관 면세 혜택인 디 미니미스(de minimis)는 8월 29일부터 사실상 폐지되고, 제3국 경유에 대한 우회 수출 판단 시 최대 40%의 징벌적 관세가 부과된다.

    로이터(Reuters)는 이와 관련해 “이번 관세 체계는 단순한 세율 조정이 아니라, 통관·증빙·조달 전략까지 바꾸는 구조적 변화로 기업을 압박하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이제 관세는 단순히 ‘수입비용이 늘어났다’는 차원이 아니라, 조직 전체의 판단 체계를 바꿔야 하는 일이 되었다. 특히 단가 전가력이 약하고, 운전자본 여유가 부족한 중소·중견기업들에겐 ‘총 비용의 상시 상승’이란 말이 결코 비유적 표현이 아니다.

    마진 없는 계약, 납기만 남은 공급망

    2025년 들어 자동차·기계·전기전자 부품을 생산하는 국내 중소 협력사들은 단가 인상 없이 비용이 먼저 증가하는 구조 속에 놓였다. 한국산 자동차와 부품 전체에 15% 관세가 적용되고 있지만, 문제는 많은 부품이 알루미늄·철강·구리 기반 파생제품에 포함되어 50% 관세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데 있다.

    더 복잡한 문제는 어떤 품목이 언제, 어떤 세율로 분류될지조차 사전에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HS코드(국제 통일상품 분류코드)에 따라 분류된 동일 제품이, 미국 측 고시에 따라 다음 달부터는 완전히 다른 세율로 취급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8월 중순 발표된 미국 상무부 고시에 따르면, 기존에 15%로 처리되던 일부 기계 부품과 전장 제품이 232조 관세의 ‘파생품’ 범위로 확대되며 50%가 부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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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변화는 납품 계약 구조에 큰 충격을 준다. 일반적으로 1차 협력업체까지는 대기업과 단가 재협상이 가능하지만, 2·3차 협력업체들은 고정 단가 계약에 묶여 있어 실질 원가 인상분을 떠안게 된다. 그 결과 납품을 하면 할수록 손해가 커지고, 마진이 아니라 생존 그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로이터는 이에 대해 “한국 중소 협력업체 다수는 단가에 관세를 전가할 여지가 거의 없으며, 기존 수주계약을 취소하지 않는 한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라고 보도했다.

    거시적 환경은 이 공급망 리스크를 더 깊이 뿌리내리게 한다. OECD는 지난 6월 경제전망에서 2025~2026년 세계 경제 성장률을 2.9%로 하향 조정하며, 그 핵심 요인 중 하나로 무역장벽과 정책 불확실성을 꼽았다. 그들은 명시적으로 “현재의 정책 불확실성은 무역과 투자를 약화시키고 있으며, 소비자와 기업의 신뢰를 흔들고 있다”라고 경고했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는 이에 한 발 더 나아가, 미국의 관세정책이 “광범위한 경제 영역에서 물가를 자극하고, 공급망의 유연성을 약화시켜, 투자 사이클의 회복을 지연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덧붙여 PIIE는 “관세는 무역에 대한 세금이 아니라 투자에 대한 벌금이 되고 있다”라고 표현했다.

    IMF 역시 한국의 구조적 취약성을 언급하며, “한국처럼 글로벌 밸류체인에 깊숙이 얽혀 있는 수출 의존국일수록 정책 불확실성이 가져오는 충격의 진폭이 크다”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정책 변화의 리스크를 실물 경제에 빠르게 반영하는 한국형 공급망의 속성이 ‘빠른 성장’뿐만 아니라 ‘빠른 후퇴’도 가능하게 한다는 이중성을 경고한다.

    결국 관세는 개별 거래 단위에서의 수익성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관세는 수요를 늦추고, 수요는 투자 의지를 꺾는다. 투자 감소는 고용과 연구개발 축소로 이어지고, 이는 경쟁력의 약화를 불러온다. 이 모든 과정은 대기업이 아니라 중소기업에서 가장 먼저 나타나고, 가장 오래 남는다.

    정부 대응 속도전

    한국 정부는 이 같은 상황을 인식하고 비교적 빠르게 대응책을 내놓았다. 산업부는 2025년 5월, 총 4.6조원 규모의 관세 대응 패키지를 발표했다. 이 패키지에는 중소기업을 위한 정책자금 공급 확대, 물류비 보전, 수출 바우처, 인증 컨설팅 강화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중소벤처기업부와 KOTRA도 각각 중소 수출업체 대상의 관세 컨설팅 프로그램과 물류 창고 공동 활용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시장은 여전히 조심스럽다. 이유는 간단하다. 정책은 빠를 수 있지만, 결정은 계약 테이블에서 내려지기 때문이다. 물건을 팔 수 있느냐 없느냐, 단가를 전가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궁극적으로 시장의 반응에 따라 결정된다. 현재처럼 규칙이 자주 바뀌고, 세율뿐만 아니라 증빙서류와 통관 절차까지 복잡해지는 환경에서는 바이어들도 보수적으로 움직인다.

    중소기업 입장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명확한 정보와 예측가능한 절차다. 관세가 얼마인지보다 더 중요한 건, 그 관세가 언제, 어떤 조건에서, 어떻게 적용될지를 미리 알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단순한 자금지원이 아닌, 통관·HS코드·원산지 판정 등 실무형 정보 제공과 민간 자문 인프라의 확충이 병행되어야 한다.

    반도체 밖의 세계: 위기는 조용히 퍼진다
    코퍼 포스트 기술을 활용해 만든 반도체 기판
    코퍼 포스트 기술을 활용해 만든 반도체 기판

    관세와 관련한 많은 뉴스들은 반도체에 집중돼 있다. 미국이 최대 100%까지의 칩 관세를 검토하고 있다는 발언은 실제로 산업 전반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지금 한국 수출 생태계에서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강하게 충격을 받고 있는 곳은 반도체 팹이 아니라, 하단부 부품·소재 생태계다.

    예를 들어 자동차 한 대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배선 하니스, 열교환기, 알루미늄 프레임, 구리 기반 커넥터 등은 대부분 중소기업이 생산하고 있다. 소재 가격 변동과 함께 관세 구조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다. 특히 철강·알루미늄·구리의 50% 고율관세가 현실화되면서, 이들은 미국 수출 시 관세를 피할 수 없고, 비용 전가도 어렵고, 납기 지연 시 페널티까지 감수해야 하는 ‘삼중고’에 빠지게 된다.

    이 때문에 일부 기업은 미국 현지에서 조립·라벨링 등을 통해 관세 회피를 꾀하고 있지만, 이는 미국 내 회계, 인증, 보험, 세무 리스크까지 포함된 고비용 전략이다. 더구나 중소기업의 경우 초기 비용을 선지출하는 데 어려움이 많고, 소량다품종 구조상 재고 리스크도 크다.

    한 소재부품 전문가 이에 대해 “관세는 숫자보다 불확실성이 문제다. 15%보다 더 무서운 건, 그 15%가 다음 달엔 50%가 될 수도 있고, 제3국 경유로 인식되면 40%가 더 얹힐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건 견적에 넣을 수 있는 변수가 아니다.”

    구조가 된 관세, 생존법은 표준화

    결국 이 모든 흐름은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된다. 한국 중소기업은 이 복합적 리스크를 어떻게 버텨낼 것인가?

    현재 중소 수출기업들 사이에서는 ‘관세 전제 견적서’ ‘HS코드 재검토 표준 체크리스트’ ‘원산지·공정 증빙 세트’ ‘FTZ(자유무역지대) 활용 전략’ 등의 문서들이 공유되고 있다고 한다. 이미 많은 기업이 미국 내 3PL(제3자 물류센터) 활용을 본격화하고 있으며, 관세 전가 불가능한 제품군에 대해서는 미국 현지 OEM 납품이나 유통채널 이원화를 시도하고 있다.

    또 다른 해법은 정보의 민첩성이다. 같은 관세 구조 속에서도, 더 빨리 정보를 접하고, 더 정교하게 대응 전략을 수립한 기업이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

    이제 관세는 그저 ‘세금’이 아니다. 그것은 기업의 민첩성과 협상력, 예측능력과 조직 유연성까지 시험하는 시대의 구조적 조건이다. 생존은 비용을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규칙을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해석하고 대응하는 능력에서 시작된다. 마진이 증발한 시대, 한국 중소기업은 지금 그 해답을 스스로 찾아야 하는 길 위에 서 있다.

    [박지훈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80호 (2025년 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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