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에 주방 연 싱가포르 국빈 셰프 저스틴 퀙의 ‘삼발초이 사테클럽’을 가다
입력 : 2025.08.19 17:14:20
-
“한국에 진짜 싱가포르 음식이 없다”.
싱가포르를 대표하는 셰프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저스틴 퀙(Justin Quek, 62)이 서울의 중심, 북창동에 새로운 다이닝 공간을 열었다. 프랑스에서 단련된 기술과 아시아의 대담한 향을 접목한 요리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그는, 이번엔 한국인의 입맛에 아시아의 정수를 전하기 위해 직접 주방에 섰다.
그는 싱가포르 최초의 프렌치 레스토랑 ‘레자미’의 공동 설립자이자 총괄 셰프로 시작해, 국빈 만찬 셰프, 대사관 전속 요리사 등으로도 활동한 바 있다. 이후 아시아 각국과 유럽을 넘나들며 미식가들의 사랑을 받은 그는 최근 몇 년간 싱가포르를 대표하는 모던 아시안 다이닝 레스토랑을 이끌며 다시 한번 주목을 받았다. 한국에 제대로 된 싱가포르 음식이 없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그는 “싱가포르 레스토랑에 방문한 한국 손님들의 반응을 보며, 한국에서도 아시아의 풍미를 더 깊고 정교하게 소개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삼발초이, 한 접시 속에 담긴 작은 여행이곳의 이름은 ‘삼발초이 사테클럽’. 동남아 음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칠리 기반의 삼발 소스와 꼬치 요리 사테를 중심에 둔 이름이다. 공간은 서울의 오래된 상권인 북창동 골목에 조용히 자리를 잡았다. 이국적인 간판이 맞이하는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서면 프렌치와 아시아 정취를 두루 느낄 수 있는 세련된 분위기 속에 작은 오픈 키친이 자리하고 있다. 매장은 약 50석 규모. 바 좌석과 테이블, 프라이빗 룸까지 갖추고 있어 캐주얼한 저녁 식사부터 소규모 모임까지 다양한 목적에 적합하다. 저녁이 되면 삼발소스의 깊은 향과 그릴 위에서 피어오르는 숯불 냄새가 공간을 가득 채운다.
주방에서는 퀙 셰프가 직접 꼬치를 뒤집으며 손님들을 맞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양념된 고기가 숯불 위에서 익어가며 스모키한 향을 내뿜고, 불꽃이 살짝 오를 때면 셰프가 능숙하게 불길을 눌러내며 작은 퍼포먼스를 펼친다.
저스틴 퀙(Justin Quek) 셰프 ▶ 저스틴 퀙(Justin Quek) 셰프
아시아 요리의 정체성을 프렌치 테크닉으로 재해석한 선구적인 셰프로, 싱가포르 미식의 세계화를 이끈 인물로 손꼽힌다. 프랑스와 대만, 상하이 등지에서 경력을 쌓은 그는 루프트한자 ‘스타 셰프’ 프로그램에 아시아인 최초로 선정됐으며, 싱가포르의 리콴유 전 총리 생일 만찬을 수십 년 간 전담했다. 장쩌민 전 중국 국가주석과 빌 게이츠 등 세계적인 리더들도 그의 요리를 경험한 바 있다. 화려한 이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좋은 식사는 기술보다 기억에 남는 경험이어야 한다”고 말한다.동남아의 정수를 한국의 계절에 맞추다삼발초이의 요리들은 동남아의 정통 레시피에 한국의 기후와 식재료를 절묘하게 접목한 것이 특징이다. 예컨대 대표면 요리인 락사는 코코넛 밀크와 새우 머리 육수를 3시간 이상 고아내 깊은 맛을 낸 뒤, 바질 오일로 향을 더한다. 하지만 원래 락사보다 훨씬 부드럽고 담백한 국물이 특징인데, 이는 한국의 사계절 기후에 맞게 코코넛 크림 농도를 조절했기 때문이다. 반숙 달걀, 두부 퍼프, 어묵 슬라이스 등도 국내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재료와 잘 어우러지도록 구성되었다.
사테는 이곳의 시그니처 메뉴다. 양고기, 닭고기, 이베리코 항정살, 프렌치식 염장 돼지고기까지 다양한 조합이 가능하다. 팜슈가와 다크간장을 베이스로 한 소스에 큐민과 청피닙(어린 후추 열매) 등의 향신료를 더해 풍미를 끌어올렸다. 숯불 위에서 적당히 익힌 고기를 하우스 메이드 땅콩소스와 삼발소스에 찍어 먹으면, 고소함과 매콤함이 입안을 감싼다. 또한 제주산 생선을 활용한 ‘크리스피 스케일 옥돔’ 역시 인기 메뉴 중 하나다. 비늘 쪽은 바삭하게 구워 식감을 살리고, 속살은 촉촉하게 익혀 절제된 레몬그라스 버터 소스와 어우러지도록 했다.
퀙 셰프는 “싱가포르보다 수온이 낮은 제주 바다에서 자란 생선은 단맛이 강하고 섬세한 맛이 살아있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피시 커리, 나시고렝, 블랙페퍼 비프 등 다양한 아시안 요리가 프렌치 기술과 만나 고급스럽게 재해석되었다. 특히 블랙페퍼 비프는 고기의 단맛과 향신료의 매운맛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도록 조리 온도와 시간까지 세심하게 조절된다. 간은 과하지 않되, 한식과의 접점을 고려한 구성이다.
접근성 좋은 가격대로 즐기는 국빈셰프의 맛가격대는 합리적이다. 대부분의 메인요리가 1만~2만원 대, 디저트는 9000원 안팎으로 책정되어 있다. 재료의 구성과 조리 방식, 그리고 직수입 향신료까지 고려하면 충분히 납득할 만한 수준이다.
디저트 역시 계절마다 변화를 주며 셰프의 감각을 녹여낸다. ‘따뜻한 프렌치 애플 타르트’는 국산 사과를 활용해 매장에서 갓 구워내며, 바삭한 타르트와 은은한 단맛이 조화를 이룬다. 간결하면서도 여운이 남는 마무리다. 향후에는 삼발소스를 활용한 계절 한정 메뉴와 한국 전통주와의 페어링도 선보일 예정이다. 퀙 셰프는 “한식 재료와 동남아 향신료가 만나면 예상 밖의 훌륭한 결과가 나온다”라며 “한국에서만 가능한 창의적인 조합을 탐구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북창동이라는 오래된 골목에 새롭게 들어선 삼발초이 사테클럽은 단순한 식당을 넘어, 낯선 향과 익숙한 식감이 교차하는 작은 여행지처럼 느껴진다. 낮에는 조용하고 차분한 점심 식사가, 밤이 되면 활기차고 향기로운 디너 서비스가 준비된다. 메뉴 하나하나에 담긴 이야기는 셰프가 건네는 인사처럼 친근하고, 정성스러웠다.
[박지훈 기자 · 사진 류준희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79호 (2025년 8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