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美정계 도전하는 장준환의 실험 “문화로 지역을 재설계한다”

    입력 : 2025.08.11 16:2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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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여름 어느날, 뉴욕 맨해튼 중심가에서 변호사 장준환의 하루는 그날도 어김없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브라질과 콜롬비아, 뉴저지를 오가며 굵직한 부동산 프로젝트를 검토하던 그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오렌지 카운티에서 부동산 개발을 하고 있던 지인이 “한번 시간 내어 미들타운이라는 곳을 보러 오라”고 권했다. 익숙한 이름도 아니었고, 당장 손에 쥐고 있는 프로젝트들 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했기에 그는 몇 차례 정중하게 거절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 도시 이름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직감 같은 것이었다.

    결국 그는 하루 일정을 비워 차를 몰고 북쪽으로 한 시간을 달렸다. 도착한 도시는 생경하고 낯설었으며, 거리에는 폐허처럼 보이는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는 오래된 건물 사이, 비어 있는 상점들, 다 닳은 아스팔트 위에서 분명한 ‘맥박’을 느꼈다. 그때의 기억을 그는 이렇게 회고한다.

    “시청 앞에 차를 대고 시장, 도시개발국장과 함께 다운타운을 돌았어요. 그 순간 이상하게도 도시가 다시 살아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언뜻 보면 죽어 있는 것 같지만, 가까이서 보면 박동이 살아 있는 도시였죠.”

    그 날 이후 그는 여섯 번 더 미들타운을 찾았다. 그리고 아무도 관심 가지지 않던 다운타운 낡은 건물들을 하나씩 사들이기 시작했다. 1960년대 밤문화의 중심이었으나 이후 방치된 건물은 트렌디한 빨래 라운지로, 역사 등록 건물은 예술과 지역 커뮤니티가 공존하는 스타일 하우스로 재탄생했다. 그는 이 작업을 단순한 리노베이션이 아니라 “문화적 맥락을 복원하는 도시의 큐레이션”이라고 말했다.

    장준환 변호사
    장준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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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욕주에서 활동하는 변호사이자 도시 개발자, 갤러리 디렉터, 그리고 예비 정치인이다. 프라이빗 웰스 로펌을 운영하며 자산 구조와 투자 전략을 설계해온 그는, 도시 재생 프로젝트인 ‘더 뱅크’를 통해 문화와 경제를 결합한 새로운 지역 모델을 실현하고 있다. AI 시대의 인간다움을 지키는 인프라로서 ‘문화경제’를 강조하며, 이를 입법화하고 제도화하려는 실용적 비전을 바탕으로 2028년 뉴욕주 하원의원 선거 출마를 준비 중이다. 정체성 중심 정치에서 벗어나 구조와 기능으로 말하는 차세대 한인 리더로 주목받고 있다.

    변호사, 투자자, 그리고 ‘문화 설계자’로의 변신

    장준환 변호사의 이력은 단선적이지 않다. 보스턴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뒤 바로 로스쿨에 진학해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고, 워싱턴 D.C.의 싱크탱크에서 정치 현안을 다룬 뒤 프라이빗 웰스 전문 로펌을 설립했다. 그의 주고객은 고액 자산가들이며, 주요 업무는 자산 구조 설계와 상속·증여, 글로벌 투자 전략 수립 등이다. 로펌은 각 분야의 전문 변호사들이 팀 단위로 운영하는 ‘멀티부티크’ 구조를 띠고 있으며, 한국계 대형 외식 체인이나 부동산·IP 관련 스타트업에도 초기 투자자로 참여하고 있다.

    이러한 이력을 바탕으로 장 변호사는 미국과 중남미에서 대규모 부동산 프로젝트를 이끌었고, 이를 통해 안정적인 현금흐름과 민간 투자자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었다. 그에게는 자산가들의 신뢰, 현장 감각, 그리고 위험을 정교하게 계산하는 ‘리스크 리터러시’가 있었다. 그는 “변호사는 원래 ‘No’라고 말하는 직업입니다. 그걸 ‘Yes’로 바꾸려면 데이터, 논리, 구조가 뒷받침돼야 하죠. 더 뱅크 같은 덩치 큰 프로젝트도 결국 똑같은 원리로 설계된 것입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를 단순한 변호사나 투자자로 규정하기엔 무언가 부족하다. 오히려 그는 스스로를 ‘문화 인프라 설계자’라 부른다. 법률과 자산의 언어를 통해 기회를 읽고, 도시와 문화의 언어로 그 기회를 실현하는 사람. 지금 장준환은 그 정체성을 한 걸음 더 확장하려 한다. 바로 ‘정치’다.

    정치, 구조를 설계하는 일에 주목하다

    장준환은 2028년과 2030년 두 차례의 미국 뉴욕주 하원 의원 선거(100지구) 중 하나에 출마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의 출마 선언은 이번 인터뷰가 처음이다. 정당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그는 “현실적으로 공화당 공천이 더 유력하다”고 밝혔다. 이 지역은 맨해튼을 제외한 뉴욕 북부에서 공화당이 강세인 곳이며, 100지구는 민주당이 마지막으로 버티는 정치적 스윙 지역이다. 즉 장준환에게는 정책 실험과 캠페인 정치가 동시에 작동할 수 있는 ‘전략지대’인 셈이다. 그가 내세우는 핵심 키워드는 ‘문화경제’다. 그는 문화예술이 단순한 소비재가 아니라, AI 시대에 인간의 정체성을 지키는 기반 산업이며, 이를 통해 새로운 고용과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제가 준비 중인 첫 입법은 ‘문화경제 복합지구 조성법’입니다. 지역별로 AI 리터러시 교육, 로컬 크리에이터 창업 지원, 문화관광 기반시설을 통합 설계하는 모델이죠. 문화는 더 이상 장식품이 아닙니다. 정체성을 기반으로 작동하는 생산적인 인프라입니다.”

    기존 한인 정치인들이 주로 이민, 차별, 커뮤니티 인권 등 정체성 중심 이슈를 다뤄왔다면, 그는 ‘기능’ 중심 정치를 강조한다. “한인 정치 1세대의 헌신은 지금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저는 ‘한국이 콘텐츠 강국이라면, 그 문화 권력을 공공경제 구조로 번역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어요. 미들타운을 중심으로 100지구를 문화경제 실험실로 만들고자 합니다.”

    전문성 앞세워 정치에 도전하는 2세대 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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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준환의 정치 도전이 특별한 이유는 단지 ‘한인 최초’라는 수식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그 수식어에 대해 신중하다. “1세대 한인 정치인들이 싸워온 이민자 권익·차별 극복의 역사는 결코 과소평가 되어선 안 됩니다. 저 역시 그 뿌리 위에 서 있는 사람이에요.” 그러나 동시에 그는 “이제는 기능과 구조로 말할 때”라고 강조한다.

    기존의 한인 정치가 커뮤니티 중심 정체성 의제, 즉 인권·이민·정체성 재현이라는 ‘존재의 증명’에 무게를 두었다면, 장준환은 공공재 설계자, 지역 구조 설계자로서 ‘작동하는 정치’를 지향한다. 다시 말해, 문화경제라는 기능적 언어로 주 예산 항목을 바꾸고, 지역 인프라를 문화 기반 경제로 재편하며, 고용과 세수로 환산가능한 구조적 결과를 만들어내겠다는 것이다. 그가 제안하는 첫 입법 과제는 ‘문화경제 복합지구 조성법’. AI 리터러시 교육과 로컬 창작자 창업 지원, 지역 관광 기반 시설 구축을 하나로 엮는 구조다.

    “AI 시대에는 콘텐츠도, 교육도, 플랫폼도 다 구조 안에서 움직입니다. 문화를 그냥 ‘느끼는 것’이 아니라 ‘작동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해요. 저는 그 구조를 법과 예산의 언어로 번역하려는 겁니다.”

    그가 말하는 ‘정치는 구조’라는 문장은 단지 수사적 표현이 아니다. 그는 이미 뉴욕주 오렌지 카운티에서 ‘더 뱅크’ 프로젝트를 통해 그 구조를 실행 중이며, 민간투자 유치, 지역 소비 증가, 고용 재편이라는 계량 가능한 지표를 설정하고 있다. 그에게 ‘문화’는 감성이나 이상이 아니라, 매우 구체적인 예산 단위이며, 고용이 창출되는 산업이고, 도시 전체를 움직이는 구조물이다.

    “문화는 도시의 DNA입니다. 그리고 그 DNA를 작동시키는 건 정치가 아니라 ‘설계’입니다.”

    그는 이 구조를 한국 지방에도 그대로 이식할 수 있다고 본다. 충북을 포함한 한국 지방도시가 미들타운과 유사한 도시 쇠퇴-공공기금 유입-단기 소비 중심 구조를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형 DRI(Downtown Revitalization Intiativd projects)는 이미 구체적 시뮬레이션에 들어갔고, 지역 대학과 지자체와의 협력도를 토대로 올 하반기 중 1~2곳을 우선 착수할 수 있을 겁니다.”

    ‘The Bank’ 프로젝트, 도시 구조의 재설계
    더 뱅크 프로젝트 조감도
    더 뱅크 프로젝트 조감도

    그 비전은 단순한 말이 아니라, 이미 착공된 건축 프로젝트로 구현되고 있다. 장준환은 2021년 미들타운 중심가에 위치한 옛 체이스 뱅크 건물을 인수했다. 건물은 1960년대에는 Bank of New York, 1990년대부터는 체이스 본사급 지점이었으나, 코로나19 이후 유휴화됐다. 텔러창구만 20개, 180대 주차 공간, 4만 평방피트 규모. 그는 이 건물을 문화·예술·식음료·주거가 결합된 리브·워크·플레이 모델로 재탄생시키려 하고 있다. “The Bank는 단순한 리노베이션이 아닙니다. 오렌지 카운티 전체의 문화 경제 구조를 새로 짜는 실험입니다. 단지 한 건물의 매출이 아닌, 지역 전체의 방문객 수·소비 패턴·고용 구조를 변화시키는지 여부가 진짜 성공 지표가 될 겁니다.”

    장 변호사는 이 프로젝트로 연간 방문객 200만 명 유치, 지역 소비 20% 이상 증가, 청년·예술인 중심 고용 구조 확산(전체 200명 중 60% 이상)을 목표로 하고 있다. 더불어 민간투자 3000만달러 이상을 지역에 끌어들이겠다는 구상도 밝혔다. “공공-민간-커뮤니티가 함께 설계하는 Public Private Patnership 기반의 오렌지 카운티형 DRI 모델로 확장할 계획입니다. 속도보다 구조, 외부 자본보다 지역 순환이 우선입니다.”

    갤러리의 눈으로 도시를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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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 변호사가 병행하는 또 다른 축은 갤러리 사업이다. 맨해튼 55가에 위치한 ‘갤러리 장’(Gallery Chang)은 MoMA와 카네기홀 사이에 자리잡고 있으며, 현재 뉴욕 두 곳, 뉴저지 한 곳, 서울 한 곳까지 총 네 지점을 운영 중이다. 갤러리 장은 단순한 전시장이 아니라, 작가와 도시, 예술과 투자, 철학과 소비를 잇는 플랫폼을 지향한다.

    그의 큐레이션 철학은 단호하다. “상업성보다 철학. 단기 수익보다 미술사적 맥락.” 2025~2026 시즌은 미국 서부 ‘Light and Space Movement’와 한국의 K-철학미술을 연결하는 대형 전시로 짜여 있다. 에드 모지스 회고전(8월), 김강용 개인전(10월), 셰인 구포그 전시(11월)가 예정돼 있다. “이 작가들의 공통점은 ‘빛, 시간, 기억’이라는 요소를 물성으로 다룬다는 점입니다. 저는 그 철학적 깊이가 미들타운과 같은 지역 도시의 정체성과 꼭 맞는다고 느꼈습니다.” 더 뱅크 완공 이후에는 미술관과 갤러리가 통합 운영되며, 레지던시·수장고를 통해 한국·미국 작가들의 장기 체류와 작업을 지원할 계획이다. 그는 “작가들이 지역에 정주하며 머물 수 있는 인프라가 갖춰져야 도시도 예술도 함께 자랍니다”라고 말한다.

    다음 무대는 한국 지방 도시

    그는 한국 지방 도시에도 ‘글로컬 문화경제 허브’를 확장할 계획이다. 이미 충북대 컴퓨터공학과 겸임교수로 활동하며 지역 단체·지자체와의 접점을 만들고 있으며, 충북·영남권 몇 곳을 유력 후보지로 검토 중이다. 후보 기준은 지역 대학의 문화교육 인프라, 예술적 자산의 잠재력, 지자체와의 협력도다.

    “미들타운과 한국 지방의 구조는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습니다. 쇠퇴한 도시, 단절된 상권, 공공기금의 단기적 사용. 저는 한국형 DRI 모델을 만들어 지역에 문화경제 기반을 구축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건 서울이 아니라 지방에서부터 시작돼야 합니다.”

    장 변호사는 인터뷰 내내 정치는 말로 끝나서는 안 된다고 수 차례 강조했다.

    “정치는 말이 아니라 구조입니다. 구조 없는 공약은 의미없고, 구조 있는 실험은 곧 정치를 바꿉니다.”

    2028년, ‘더 뱅크’가 완공되는 날, 장준환이 만든 ‘글로컬 문화경제 모델’이 뉴욕주 의사당에서도 작동할 수 있을지 그 실험이 막 시작됐다.

    [박지훈 기자 · 사진 류준희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79호 (2025년 8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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