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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Ⅱ] 은행 창구마다 한숨 ‘이젠 갭투자도, 갈아타기도…’
입력 : 2025.08.08 17:4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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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다는 건가요, 안 된다는 건가요?”
지난 6월 말부터 은행 창구마다 실수요자들의 항의와 한숨이 잇따르고 있다. 수도권 아파트를 매수하거나 전세를 돌려줘야 하는 상황인데, 대출이 가능하다는 은행 설명이 며칠 새 뒤집히고, 이미 접수한 건도 심사 중단 통보를 받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지난 6월 27일 발표한 ‘가계부채 관리 강화 방안’ 이후, 대출 규제는 말 그대로 급변하고 있다. 주담대는 최대 6억원으로 상한이 생겼고, 전세보증금 반환 목적 대출은 최대 1억원으로 묶였다. 소유권 이전 조건부 전세대출은 전면 금지됐고, 생애최초 대출은 LTV가 80%에서 70%로 낮아졌다.
금융당국이 발표한 대책의 핵심은 ‘6-1-0’이다. ‘6’은 수도권 주담대 한도를 최대 6억원으로 제한한 조치다. 주택 가격이나 대출자의 소득에 관계없이 대출 한도는 6억원을 넘지 못한다. 다주택자는 주담대 자체가 금지되고, 1주택자의 경우 기존 주택을 6개월 안에 처분하는 조건이 붙는다. ‘1’은 전세보증금 반환 목적 대출 한도를 1억원으로 제한한 조치다. 집주인이 기존 세입자에게 전세보증금을 반환하기 위한 주담대(전세퇴거자금대출)는 최대 1억원까지만 허용된다. 수도권 및 규제 지역 대상으로 적용되며, 실거주 목적이어도 원칙적으로 1억원 한도가 적용된다. 단, 예외 규정이 일부 존재해 6월 27일 이전 거래 등에는 조건에 따라 다른 기준이 적용된다. ‘0’은 갭투자 성격의 소유권 이전 조건부 전세대출을 전면 금지한 조치다. 세입자가 전세대출을 받는 날 집주인이 바뀌는 조건(주로 갭투자에 쓰임)의 전세대출이 수도권·규제 지역에서 금지됐다.
정부가 ‘6억원 상한제’를 도입한 배경에는 올 들어 급격히 늘어난 수도권 주담대 수요가 자리한다.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2.5%로 인하된 데다, 일부 지역의 토지거래허가제가 일시 해제되면서 수도권 부동산 매수세가 빠르게 살아났기 때문이다. 특히 서울 강남권과 용산구 등 고가 주택 매매가 집중된 지역에서 대출 수요가 급증했다. 금융당국은 “고소득층의 과도한 레버리지 매수가 시장을 자극하고 있다”며 고강도 규제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런데 이 같은 강도 높은 규제들이 하루만에 시행됐고, 이후에도 금융당국이 FAQ와 참고 자료 등을 통해 해석을 보완하면서, 시장에선 “어제 된다는 게 오늘은 안 된다”는 혼선이 계속되고 있다.
서울 강남구 한 부동산중개업소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첫 기자회견 방송이 나오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특히 은행권에선 “정확한 유권해석이 없다면 보수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며 전세퇴거자금대출, 타행 대환대출, 분양권 잔금대출 등 사실상 대부분의 대출 창구에서 ‘일단 보류’ 방침을 유지 중이다. 금융당국이 시차를 두고 조건을 추가하면서 “경과규정 예외 대상이 맞는지, 역전세 조건은 꼭 충족해야 하는지” 등을 두고도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 지금부터 이 복잡한 대출 규제의 주요 내용을 정리해본다. 다만, 구체적인 조건과 현재 상황을 찾아보는 것은 소비자의 몫이다.
10억짜리 집 사도 대출은 6억까지이번 대책으로 수도권과 규제 지역에서 집을 살 때 받을 수 있는 주담대는 최대 6억원으로 제한됐다. 주택 가격이나 소득과 무관하게 대출 한도가 일률적으로 묶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예컨대 연 소득 2억원 차주가 20억원짜리 아파트를 사려면, 기존엔 최대 13억 9600만원까지 대출이 가능했지만, 이젠 6억원까지만 허용된다.
이 규제는 일반 주담대뿐 아니라 ▲재개발·재건축 이주비대출(이주에 필요한 임시 거주비 대출) ▲분양잔금대출(분양 아파트 최종 입주 시 내는 잔금 대출) ▲경락자금대출(경매 낙찰받은 주택 잔금 마련 대출)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1주택자가 대출을 받을 경우에는 6개월 내 기존 주택을 처분하고 새집으로 전입해야 한다. 위반 시 대출금 즉시 회수 및 향후 3년간 주택 관련 대출 제한이라는 제재가 따른다.
전세퇴거자금대출, 최대 1억원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갭투자’는 이번 대책에서 사실상 전면 봉쇄됐다. 소유권 이전 조건부 전세대출이 금지되면서, 수분양자(아파트나 상가 등 부동산의 분양계약을 체결한 사람)가 전세보증금으로 분양 잔금을 납입하는 방식이 차단됐다. 세입자가 있는 상태에서 집을 매수해 전세금을 돌려주는 전세퇴거자금대출도 최대 1억원까지만 허용된다. 현장에서는 대출이 중단되거나 보수적으로 운영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추후 자료를 통해 ‘임대인이 자력으로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는 경우’에 해당하는 조건에 1억원 초과 대출을 허용한다고 밝히면서 은행들의 심사 기준이 강화됐기 때문이다. 앞서 대책 발표 당시 금융당국은 6월 27일까지 임대차계약이 완료된 수도권·규제 지역 임대인은 1억원 초과 대출이 가능하다고 안내했다. 그러나 이틀 후인 6월 29일 추가 발표한 세부 지침(FAQ)에서 통상 역전세 조건으로 해석되는 “임차 보증금 반환 목적 생활안정자금 주택담보대출의 세부 취급 요건을 준수해야 한다”는 문구가 추가되면서 혼란이 발생한 것이다. 이에 6월 28일부터 7월 14일까지 4대 은행의 전세퇴거자금대출 승인 건수는 59건(168억원)으로, 시행 전(880건, 2404억원) 대비 93% 급감했다. 실수요자들 사이에선 “된다는 거냐, 안 된다는 거냐”는 항의가 이어지고 있다.
청년·신혼부부 부담실수요자를 위한 정책금융도 축소됐다. 생애최초 주택구입자에 적용되던 LTV는 기존 80%에서 70%로 낮아졌고, 수도권에서 주담대를 받을 경우 6개월 이내 전입 의무가 생겼다. 이 조치는 디딤돌대출, 보금자리론 등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정책대출 한도도 줄었다. 예컨대 신혼부부 디딤돌대출은 기존 4억원에서 3억 2000만원으로, 청년 버팀목대출은 2억원에서 1억 5000만원으로 축소됐다. 대출 만기 역시 수도권에선 최대 30년으로 제한됐다. 기존의 40년 장기 대출은 사실상 막혔다.
갈아타기도 ‘그림의 떡’기존 주담대 이용자가 금리를 낮추기 위해 다른 은행으로 갈아타는 ‘대환대출’도 이번 6·27 규제로 사실상 막혔다. 같은 은행에서 조건만 바꾸는 ‘자행 대환’은 가능하지만, 타행으로 옮기려는 경우에는 ‘생활안정자금 목적’으로 분류돼 한도가 최대 1억원으로 제한된다.
문제는 수도권 주담대 평균 잔액이 1억 5000만원 이상이라는 점이다. 1억원 초과 대출이 막히면 금리가 더 낮은 타행 상품으로의 갈아타기는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실제로 은행들은 6·27 규제 시행 이후 내부 시스템을 변경해, 1억원 초과 대환 신청은 차단하고 있다. 특히 2020년 초저금리 시기에 2%대 혼합형 주담대를 받은 차주들은 최근 4~5%대 금리로 전환되며 부담이 급격히 늘었다. 하지만 더 유리한 조건의 대출로 옮기고 싶어도 길이 막혀 있다.
혼선은 대환대출뿐만이 아니다. 서민금융 대출로 분류돼야 규제를 피해 갈 수 있는 일부 은행 자체 상품( KB국민 ‘희망대출’, 우리 ‘상생올케어’ 등)이 실제로 예외 대상인지 불명확해, 창구에서는 “심사 자체를 미루는 중”이라는 반응도 나왔다.
전세대출 보증 비율도 축소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전망대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아파트 및 빌라단지의 모습. <사진 연합뉴스> 6·27 대책 외에도 전세대출 규제는 계속 강화되는 추세다. 7월 21일부터는 수도권과 규제 지역에서 전세대출 보증 비율이 90%에서 80%로 낮아진다. 이로 인해 은행은 보증기관이 부담하지 않는 20%에 대해 자체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대출 한도를 줄일 가능성이 크다. 세입자 입장에서는 외곽 지역으로 밀려나거나 보증금 일부를 월세로 돌리는 ‘반전세’ 선택을 고민하게 된다.
금융당국은 전세대출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적용 대상으로 포함하는 방안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경우 세입자가 기존 대출이 있거나 소득이 낮을 경우 대출 한도에 제약을 받게 된다.
바뀐 규정, 예외 조항 꼼꼼히 확인해야이번 6·27 대책은 대부분 6월 28일부터 즉시 시행됐지만, 일부 예외 조항이 존재한다. 주담대는 6월 27일까지 매매계약과 계약금 납입이 완료된 경우, 전세대출은 같은 날까지 임대차계약과 계약금 납입이 완료된 경우 기존 규정이 적용된다. 단, 가계약은 예외 인정 대상이 아니다.
6·27 대책에서는 중도금대출이 규제에서 제외됐다. 이에 따라 6월 28일 이후 입주자 모집공고가 난 아파트라도, 중도금은 기존처럼 대출이 가능하다. 하지만 많은 수분양자들이 착각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잔금대출 전환 시점부터는 6억원 상한이 적용된다’는 점이다. 즉, 중도금 단계에선 문제가 없더라도, 최종 입주 시점에 잔금을 치르기 위해 주담대를 일으키면 그때 부터는 새 규제가 적용돼 최대 6억원까지만 받을 수 있다. 또 1주택자라면 기존 주택을 6개월 내 처분하고 전입까지 해야 한다. 분양 계약자라 하더라도 계약일·모집 공고일·전매일 등 정확한 시점을 기준으로 본인의 규제 대상 여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하지만 금융사마다 해석이 엇갈리는 사례가 많아, 소비자 스스로 계약일과 등기일, 전입 예정일 등을 꼼꼼히 따져야 하는 상황이다.
[이소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