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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주 투자, 고가보다 가성비 브랜드 UP
입력 : 2025.08.04 10:2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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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가방 대신 명품주를 사라’는 투자 격언이 무색하게 고가 명품 기업의 주가가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중저가 명품 브랜드는 상승세를 타며 업종 내 양극화가 뚜렷해지고 있다.
프랑스 명품 대기업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주가는 7월 15일(현지시간) 기준 477.35유로를 기록하며 올 들어 24.87% 하락했다. LVMH는 루이비통, 디올, 셀린느, 티파니의 모기업이다. 주가 급락의 여파로 2024년 5월 세계 1위 부호였던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은 이날 기준 세계 7위로 순위가 밀렸다. 구찌와 생로랑, 보테가베네타, 발렌시아가 등을 거느린 프랑스의 케링그룹은 같은 기간 주가가 16.62% 내렸다. 프라다(-20.75%), 살바토레 페라가모(-24.82%), 몽클레르(-0.94%) 등 주요 명품 기업들도 부진한 실적을 기록했다. 반면 중저가 명품 브랜드의성과는 두드러졌다. 코치의 모회사 태피스트리는 54.81%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영국 버버리도 27.15% 오르며 선방했다. 산드로, 마쥬 등의 브랜드를 보유한 프랑스의 SMCP그룹은 같은 기간 36.76% 상승했다.
글로벌 경기 둔화와 소비 위축이 명품업계 전반의 주가를 내린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명품 산업의 핵심 소비처인 중국의 수요 둔화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베인앤컴퍼니에 따르면 중국 시장 내 명품 판매액은 지난해 말 기준 전년 대비 20% 급감했다. 베인은 올해 중국 본토 내 명품 판매가 정체될 것으로 예상했다. 베인은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시장 전반에서 명품 소비 피로감이 확산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억눌렸던 소비 욕구가 폭발하며 한동안 고가 명품 판매가 급증했지만, 이후 가격 인상으로 보복 소비의 피로감이 명품 업계 전반을 덮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까르띠에 매장 <출처 게티이미지> 베인은 지난해와 올해 MZ(밀레니얼+Z)세대 소비자들이 명품 브랜드의 가치에 의문을 품고 이탈하는 경향이 커졌다고 밝혔다. 최근 1년 동안 명품 구매 고객이 5000만명 가까이 감소한 가운데, 젊은 세대에서의 이탈이 두드러졌다고 분석했다. 명품 브랜드들의 가격 인상이 젊은 고객들과의 거리를 벌렸다는 해석이다. 베인은 “가격 인상에 따른 피로감과 브랜드에 대한 환멸이 MZ세대를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주요 기업의 실적도 주가 하락을 뒷받침하고 있다. 케링의 올 1분기 매출은 1년 전보다 14% 감소했다. 특히 케링이 보유한 구찌와 생로랑 매출은 각각 24%, 8% 줄었다. 미국 투자은행TD코웬은 올해 구찌의 매출 전망을 15% 하향 조정하며 연간 기준으로 전년 대비 20%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다. 또 생로랑이 관세 영향을 상쇄하기 위해 경쟁사보다 늦게 가격 인상을 단행할 것으로 전망했다.
LVMH는 같은 기간 매출이 2% 감소했으며, 매출 비중이 가장 큰 패션·가죽 부문이 특히 부진했다. 모건스탠리는 최근 LVMH의 목표주가를 560유로에서 510유로로 하향 조정하며 “수익 기대치가 계속 낮아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탈리아 명품 그룹 살바토레 페라가모는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절반 이상 급감한 가운데, 올 1분기에도 반등에 실패했다. 1분기 매출은 2억 2100만 유로로 전년 동기 대비 2.6% 감소했고, 영업이익은 681만유로로 1년 전과 비슷한 수준을 기록했다. 특히 아시아 태평양 지역 매출이 13.7% 감소하며 매출 급감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트럼프의 관세정책도 부담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고율 관세 정책도 명품주에 부담을 더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6월부터 모든 유럽산 제품에 5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가 이를 7월 9일까지 유예한 바 있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조치를 8월 1일까지 한 번 더 유예하며 유럽연합(EU)에 30% 상호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했다.
LVMH는 관세 이슈가 불거진 후 일부 생산시설을 미국으로 이전하는 방안까지 검토 중이다. 미국은 LVMH 전체 매출의 25%를 차지하는 최대 시장 중 하나다. 심지현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고율 관세 이슈로 소비재 섹터 전반의 주가가 눌려 있는 상황”이라며 “특히 명품주는 소비 심리의 영향을 크게 받는 만큼, 미국의 상호 관세 관련 조치를 확인하고 투자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고가 제품에 대한 소비 부진은 명품 리셀(재판매) 플랫폼 주가에서도 드러난다. 미국 리셀 플랫폼 기업인 더리얼리얼은 올 들어 48.17% 급락했다. 소비자들의 명품 소비 심리가 약화되면서 리셀 시장도 함께 침체를 겪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더리얼리얼의 사용자당 평균 매출(ARPU)이 최근 2년간 연평균 5.5%씩 감소한 점도 향후 실적에 대한 우려를 키우고 있다. 반대로 가격 접근성이 높은 브랜드들은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다. 태피스트리는 지난 1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7% 증가했고, 주당순이익(EPS)은 27% 늘었다. 자회사인 코치가 고가 유럽 명품 브랜드 대비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브랜드로 주목받으며 젊은 소비자층을 성공적으로 유입시켰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심 연구원은 “코치가 노후화된 이미지를 벗고 리브랜딩을 통해 10대들로부터 호응을 얻고 있다”며 “태피스트리가 카프리홀딩스를 무리한 가격에 인수하려다가 철회한 점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고 평가했다. 버버리도 올 1분기 예상치를 상회하는 실적을 발표하며 주가가 올랐다. 회사가 비용 절감을 위해 2027년까지 전 세계 직원의 18%에 해당하는 1700명을 감원할 계획을 내놓은 점도 주가 상승에 영향을 미쳤다. 산드로, 마쥬 등의 브랜드를 보유한 SMCP그룹은 지난 1분기 유럽과 미국 등 핵심 시장에서 매출이 성장하며 중국 시장 부진의 영향을 제한적으로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명품주 전반이 부진한 가운데, 초고가 전략을 펼치는 브랜드는 상대적으로 견조한 흐름을 보였다. 스위스 주얼리·시계 기업 리치몬트그룹은 올 들어 주가가 10.32% 상승했다. 리치몬트는 까르띠에, 반클리프 아펠, 피아제, 바쉐론 콘스탄틴, IWC 등의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고가 보석을 찾는 자산가 수요에 힘입어 주가가 상승한 것으로 분석된다. 고가 시계나 하이주얼리는 투자형 소비재로 분류되며, 경기 변동성에 덜 민감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에르메스는 초고가 이미지와 한정판 전략에 힘입어 4.17% 상승하며 선방했다. 가격 인상에도 불구하고 고정 수요층을 기반으로 견조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다만 코스피 지수가 7월 15일 기준 연초 대비 34% 상승하고, 유로스톡스50 지수가 9.39% 오른 점을 고려하면 초고가 브랜드들의 수익률이 높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급등한 크루즈, 부진한 호텔·슈퍼카7만톤급 로얄캐리비안 크루즈 앤썸호 여행 관련 럭셔리 서비스 업종의 주가는 희비가 갈렸다. 크루즈 업종은주가가 급등한 반면, 호텔 업종은 부진한 흐름을 보였다. 로얄캐리비안크루즈 주가는 올 들어 49.02% 급등했다. 로얄캐리비안크루즈는 지난 1분기 전년 동기 대비 7.3% 오른 매출 40억달러를 기록했으며, 순이익은 102% 증가한 7억 3600만달러를 거뒀다. 주당순이익도 2.71달러로 컨센서스(2.54달러)를 크게 상회했다. 반면 하얏트 호텔스는 올 들어 5.10% 내렸고, 인터컨티넨탈 호텔 그룹은 4.91% 하락했다. 리츠칼튼 등을 운영하는 메리어트 인터내셔널은0.16% 오르며 보합세를 나타냈다. 슈퍼카 업종도 부진한 흐름을 보였다. 이탈리아의 페라리는 올 들어 2.54% 상승하는 데 그쳤고, 영국의 스포츠카 업체 애스턴마틴라곤다는 25.81% 급락했다. 마이바흐 등을 생산하는 메르세데스 벤츠 그룹은 0.55% 내리며 보합세를 나타냈다. 포르쉐, 벤틀리, 부가티 등을 보유한 폭스바겐그룹은 같은 기간 7.85% 상승했지만 이는 초고가 브랜드가 아니라 폭스바겐의 ID.시리즈와 전기차 판매 호조 영향으로 해석된다.
[정유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