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익성 둔해진 韓 TV, 그래도 프리미엄 전략?

    입력 : 2025.07.21 11:06:18

  • 삼성전자가 삼성 아트 스토어에 2025년 아트 바젤 인 바젤 컬렉션을 선보였다.
    삼성전자가 삼성 아트 스토어에 2025년 아트 바젤 인 바젤 컬렉션을 선보였다.

    글로벌 TV 시장의 ‘빅2’로 군림해온 삼성전자와 LG전자가 흔들리고 있다. 매출 기준으로는 여전히 1·2위를 지키고 있지만, 수익성 둔화가 본격화되고 있다. 중국 기업의 거센 추격과 고정비 중심의 산업 구조, 프리미엄 전략의 한계가 맞물리면서 전통 강자들의 체질 전환이 본격화되고 있다. 기술 승부에서 플랫폼 경쟁으로, 두 기업의 TV 전략이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있다.

    韓 TV 양강, 수익성 경보 울렸다

    글로벌 TV 시장의 전통 ‘빅2’였던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나란히 수익성 경고등이 켜졌다. 수년간 1·2위 자리를 공고히 해오며 시장을 주도해온 두 기업은 여전히 점유율 면에서는 확고한 우위를 지키고 있지만, 실적 흐름에서는 과거와는 사뭇 다른 양상이 감지된다.

    단순 점유율이 더 이상 수익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구조가 형성되면서, 고정비 중심 산업의 한계가 보다 분명하게 드러나는 모양새다.

    LG전자는 올해 1분기 디스플레이(MS)사업본부에서 매출 4조 9503억원, 영업이익 49억원을 기록했다. 한때 분기 기준 수천억원대에 달했던 영업이익과 비교하면 뚜렷한 하락세다.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 출하량이 증가하며 OLED 시장에서는 세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프리미엄 제품 확대가 이익으로 연결되지는 못했다는 분석이다. 판매 확대와 수익 방어 사이의 괴리가 커지면서 구조적인 과제를 안게 됐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삼성전자 역시 비슷한 흐름이다. TV와 생활가전을 담당하는 VD·DA사업부는 같은 기간 영업이익 약 3000억원을 기록했는데, 이는 전년 동기(약 5000억원) 대비 약 40%가량 줄어든 수준이다. 최근 삼성전자는 최근 VD사업부 내 사실상 비상경영 체제까지 들어간 상황이다. 수익성 저하에 선제 대응하겠다는 전략적 판단이 깔려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업계는 양사의 수익성 둔화 요인으로 ▲글로벌 수요 위축 ▲패널 가격 급등 ▲중국 브랜드의 저가 공세 등 세 가지를 공통으로 꼽는다.

    팬데믹 기간의 교체 수요가 끝나며 미국·유럽 등 주요 시장의 소비 심리가 급격히 둔화했고 여기에 액정표시장치(LCD) 패널 단가가 지난해 대비 오름세를 보이면서 제품당 원가 부담이 증가한 것이 뼈아팠다. 동시에 TCL·하이센스 등 중국 제조사들이 북미·유럽을 중심으로 저가 공세를 강화하면서 시장 점유율 전쟁의 양상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

    무엇보다 프리미엄 전략의 수익성 전이 실패가 본질적 위기로 꼽힌다. 기술력과 브랜드를 앞세워 고부가 제품 비중을 높였지만, 가격 경쟁이 심화된 글로벌 환경에서는 이를 통해 예전만큼의 이익을 거두기 어려워진 것이다. TV 산업 특유의 고정비 중심 구조 속에서, 판매량과 단가를 동시에 지켜야 유지되는 수익 방정식이 흔들리는 시점에 한국 TV 양강도 당면한 셈이다.

    中 저가 공세에 프리미엄 흔들

    한국 TV 업체들의 수익성 방어를 어렵게 만드는 핵심 변수는 중국 기업의 약진이다. TCL과 하이센스는 한때 저가 이미지로 대표되던 브랜드였지만 최근에는 프리미엄 시장까지 빠르게 침투하고 있다. 이들은 가성비를 기반으로 글로벌 출하량을 빠르게 늘리는 한편, 미니(Mini) LED·QLED 등 고급 기술을 접목해 시장의 인식까지 바꾸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지난해 출하량 기준 중국 TV 브랜드인 TCL·하이센스·샤오미의 합산 점유율은 31.3%로 삼성전자·LG전자 시장 점유율 28.4%를 앞질렀다.

    중국 TV 기업들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2020년 24.4%에서 2021년 26.3%, 2022년 28.4%, 2023년 29.6%를 기록한 뒤 지난해 처음 30%대를 돌파한 것이다.

    특히 프리미엄 TV의 최대 격전지인 미국 시장에서 중국 업체들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미국 TV 시장에서 TCL과 하이센스는 각각 10.9%, 10.8%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삼성전자(21.6%)와 미국 브랜드 비지오(11.9%)에 이어 나란히 3위와 4위에 올랐다.

    두 중국 브랜드의 점유율을 합치면 삼성전자에 근접하는 수준이다. 단일 브랜드로는 아직까진 삼성전자가 1위를 지키고 있지만, 중국 제조사들이 집단으로 시장 주도권을 위협하는 양상이다.

    TCL 역시 북미 지역을 비롯해 유럽과 신흥국에서 급속히 점유율을 높이고 있으며, 100인치 초대형 TV, 게이밍 전용 TV 등 고부가 제품군으로의 확장도 가속화하고 있다. 중국 제조사들의 전략은 단순히 삼성, LG보다 저렴한 가격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두 기업 모두 기술력 확보에 과감하게 투자하고 있다. 예컨대 하이센스는 프리미엄 기술인 미니 LED를 활용한 신제품을 CES 등 글로벌 전시회에 적극 출품하고 있다. TCL도 QLED 패널과 돌비 애트모스·HDR10+ 등을 적용한 상위 모델을 앞세워 ‘보급형=중국’이라는 공식을 허물고 있다.

    이들의 또 다른 무기는 자체 플랫폼과 콘텐츠 생태계 투자다. 하이센스는 VIDAA, TCL은 로쿠 운영체제(OS)·구글 TV 등을 탑재해 사용자 경험 개선에 집중하고 있다. 이들은 스포츠 중계권 확보와 글로벌 콘텐츠 파트너십 확대 등을 통해 브랜드 인지도를 적극 높이고 있다.

    프리미엄 시장을 겨냥한 이 같은 전략은 기존 한국 브랜드와의 경쟁 구도를 전면적으로 재편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수익성을 유지하기 위해 고가 라인업 중심 전략을 강화해 온 삼성과 LG에게는 실질적인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고정비 부담이 큰 TV 산업 특성상 일정 수준 이상의 판매량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고가 전략의 수익성 전이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한국 기업들이 시장 지배력과 브랜드 이미지를 활용해 여전히 ‘기술 리더십’을 유지하고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중국 업체들의 확산 속도가 예상보다 빠르다는 점에서 위기의식이 커지고 있다. 특히 북미·유럽이라는 프리미엄 시장의 핵심 거점에서 점유율 역전은 단기적 매출 하락에 그치지 않고, 중장기적으로 브랜드 포지셔닝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자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과 LG가 OLED·QDOLED·네오QLED 등 고부가 기술에 집중하는 동안, 중국은 가격과 물량 전략을 통해 시장의 중간층을 재편해왔다”며 “지금처럼 시장 전반의 수요가 정체된 상황에서는 프리미엄 전략의 성과 전이 또한 쉽지 않다”고 진단했다.

    RGB LED 등 고부가제품…삼성·LG, 기술로 승부
    사진설명

    중국 TV 브랜드의 저가 공세가 거세지는 상황에서도,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기술 우위에 기반을 둔 프리미엄 TV 전략으로 정면 돌파를 시도하고 있다. 두 회사 모두 QD‑OLED, 미니 LED, RGB LED TV 등 고부가 제품 라인업을 강화하고 수익성과 브랜드 파워를 동시에 끌어올리겠다는 방침이다.

    삼성전자는 올해 하반기 100인치 이상의 RGB 마이크로 LED TV 신제품을 처음으로 출시할 계획이다. RGB 마이크로 LED TV는 자발광 방식은 아니지만 R·G·B LED를 활용해 색 재현력, 명암비, 밝기 모두에서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기존 미니 LED나 퀀텀닷(QD) 기반의 네오(Neo) QLED보다 색 표현이 더 정밀해 ‘프리미엄 LCD의 최종 진화형’으로 주목받고 있다.

    업계는 이를 통해 삼성전자가 글로벌 프리미엄 TV 시장에서 중국 기업과의 질적으로 다른 프리미엄 포지션을 한 번 더 강화할 계기로 삼을 것으로 보고 있다.

    LG전자는 OLED의 원조 기업답게 2025년형 OLED TV 기술 고도화에 집중하고 있다. 2025년형 LG 올레드 에보는 디스플레이 알고리즘과 유기 화합물 적층 구조를 바꾼 새로운 밝기 향상 기술로 최대 밝기가 일반 올레드 TV(B5 모델) 대비 3배에 이른다. 더 밝아진 화면과 함께 조도에 상관없이 ‘완벽한 블랙’을 구현해 극대화된 명암비로 생동감 넘치는 영상을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신제품은 매직 리모컨에 전용 AI 버튼을 탑재해 고객의 공감지능 기능 접근성을 높였다. AI 버튼을 누르면 TV가 자동으로 켜지고, 시청 이력과 환경을 분석해 검색어와 콘텐츠를 추천한다. 버튼을 길게 누르면 음성 인식이 활성화되며, 고객의 질문이나 요청에 따라 생성형 AI 에이전트가 맥락을 이해해 맞춤 화질 설정이나 문제 해결 등 다양한 기능을 실행한다.

    LG 올레드 에보가 집 안 공간에 조화롭게 배치된 모습.
    LG 올레드 에보가 집 안 공간에 조화롭게 배치된 모습.

    업계는 이 같은 프리미엄 전략이 단기 수익성 회복보다는 장기적인 브랜드 우위와 기술 리더십 유지를 위한 대응이라고 보고 있다. 한 TV 업체 관계자는 “TCL이나 하이센스가 출하량을 바탕으로 외형을 확대하는 동안 삼성과 LG는 프리미엄 시장의 본질 경쟁에 집중하고 있다”며 “화질·기술·브랜드 신뢰도를 바탕으로 프리미엄 지위를 강화하려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운영체제(OS) 중심의 TV사업 체질 변화도

    TV를 단순히 ‘보는 기기’에서 ‘소통하고 수익을 창출하는 플랫폼’으로 바꾸는 전환점에 선 곳은 결국 운영체제(OS)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하드웨어 경쟁이 수익성 한계에 부딪히자 운영체제(OS)를 중심으로 TV 사업의 체질을 바꾸고 있다. 프리미엄 제품만으로 수익성을 방어하기 어려운 구조에서 소프트웨어와 플랫폼을 접목한 새로운 수익 모델이 ‘생존 전략’으로 부상한 셈이다.

    LG전자는 자체 스마트 TV 플랫폼인 웹(web)OS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한때 LG TV에만 탑재되던 웹(web)OS는 지금은 글로벌 400여 개 TV 브랜드에 공급되고 있다. 이를 통해 콘텐츠 수수료·광고·앱 사용 데이터를 활용한 수익 모델을 본격화하고 있다.

    LG전자는 이를 단순한 기능의 확장이 아닌 ‘웹OS 플랫폼 사업’으로 정의하고 별도 조직도 운영하고 있다. LG는 TV를 더 많이 팔아야 수익이 나는 구조에서 벗어나, 플랫폼 공급만으로도 반복적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구독형 구조로 전환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자체 개발한 운영체제 타이젠(Tizen)을 기반으로 스마트 TV 생태계를 구축해 왔다.

    여기에 더해 최근에는 ‘One UI’를 스마트 TV에 적용해 스마트폰과 동일한 사용 경험을 제공하고 있으며, 2024년형 TV부터는 최대 7년간 운영체제 업데이트를 지원하는 정책도 도입했다. 하드웨어 교체 주기가 길어진 환경에서 장기간 사용자 만족을 유지하고, 고객 락인을 통해 소프트웨어 중심의 수익 구조를 강화하겠다는 전략이다. 타이젠 기반 광고 플랫폼과 삼성 TV 플러스(Samsung TV Plus)를 중심으로 콘텐츠 소비와 수익을 연결하고 있다. 두 회사의 전략 공통점은 명확하다. 하드웨어 중심의 일회성 매출에서 벗어나, OS를 매개로 한 장기 수익 구조 확보다. TV는 여전히 가정 내 가장 큰 스크린이자 시청 시간의 중심에 있는 기기다. 이를 통해 사용자의 콘텐츠 소비 패턴을 분석하고, 음성 검색·AI 추천·맞춤 광고로 연결해 새로운 수익을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삼성의 스마트싱스, LG의 웹OS 연동 서비스도 모두 이 연장선상에 있다. OS를 중심으로 다른 가전과의 연결성을 강화하고, TV를 스마트홈의 허브로 만드는 전략이 본격화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 같은 흐름을 “TV 산업의 탈(脫)하드웨어화”라고 진단한다.

    과거에는 해상도, 밝기, 크기처럼 물리적 스펙이 경쟁력을 좌우했지만, 이제는 어떤 플랫폼을 통해 어떤 경험을 주느냐가 브랜드 가치를 결정짓는다는 점이다.

    글로벌 TV 시장은 이미 OS와 콘텐츠 중심 구조로 빠르게 이동 중이다. 삼성과 LG가 수익성 경고등이 켜진 상황에서도 소프트웨어 투자를 강화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결국 OS는 단순한 부가 기능이 아니라, TV 산업의 생존을 좌우할 핵심 인프라로 격상되고 있다.

    프리미엄 TV만으로는 수익을 방어하기 어려운 구조 속에서, 두 기업 모두 플랫폼 기업으로의 전환을 본격화하고 있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TV 하드웨어보다 오래 남는 가치를 만들기 위한 승부가 지금 TV 속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박소라 기자]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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