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art 5] 노동환경개선 언제 드라이브 걸까 시간문제인 노란봉투법, 李 일단 속도조절

    입력 : 2025.06.27 17:07:20

  • 이재명 대통령이 6월 1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6경제단체·기업인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6월 1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6경제단체·기업인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9일 만인 지난 6월 13일 5대 그룹 회장 및 6개 경제단체장들을 만났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취임 후 재계와 78일 만에 회동한 것을 감안하면, 이 대통령의 이 같은 행보는 상당히 이례적인 것이다. 특히 대선 기간에 친 노동 정책을 펴겠다고 공언한 것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이는 현 경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기업들의 협조가 필수인 만큼 이 대통령이 천명한 ‘실용주의’적인 관점에서 재계를 대하고 있는 것이라는 평가다.

    이 대통령은 재계 인사들을 만난 자리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결국 국민들이 먹고사는 문제며 그 핵심이 경제이고, 경제의 핵심이 바로 기업이라고 생각한다”고 한 것에서도 이런 기류를 읽을 수 있다.

    이날 자리를 함께한 구광모 LG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주요 참석자들은 이 대통령의 이 같은 생각에 공감을 나타내며 새 정부의 정책에 대해 보조를 맞추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날 만남 전 최대 관심은 이 대통령과 재계가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 등 노동 관련 현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가 여부였다. 집권 여당이 국회를 장악하고 있는 현실에서 노란봉투법이 입법화 되는 것은 시간문제인데, 기업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최대 당면 과제인 이 문제에 대한 의견을 이 대통령에 직접 전달할 수 있는 것은 흔치 않은 기회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 역시 노란봉투법과 관련한 의지가 상당히 강하다.

    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위협하는 것은 결코 허용하지 않겠다”고 했고, 대선과정에서 열린 정책 토론회에서는 노란봉투법에 대해 “대법원 판례가 이미 인정하는 법”이며 “당연히 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소년공 출신이란 그의 삶의 궤적이 노동 환경 개선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가져왔음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일단 이날 만남에서는 일단 관련 논의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대통령은 아예 관련 언급 자체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는데, 취임 초부터 급박하게 이를 밀어붙이지는 않겠다는 신호를 보낸 것으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상황은 언제 급변할지 모르는 모양새다. 새 정부 출범과 동시에 노동 이슈가 계속 불거지면서 노동계가 현 정권을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란봉투법과 직접 연관된 이슈는 아니지만 지난 6월 2일 한국서부발전이 운영하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가 선반 작업 중 기계에 끼어 사망하는가하면, 지난 5월 19일에는 SPC삼립 시화공장에서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업 중 상반신이 기계에 끼여 숨지는 사고도 발생했다. 태안화력발전소의 경우 7년 전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정 논의를 촉발한 김용군 군의 사망 사고 사고가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태안화력발전소 사고는 변하지 않는 노동환경을 여실히 보여주는데, 이 대통령이 문제 해결의 의지를 다시 한 번 굳건히 하는 계기가 될 가능성도 다분해 보인다.

    대선 당시 선거 캠프 공동선거대책위원회에 참여해 현 정권 출범에 지분이 있는 한국노동조합총연맹 등 노동계는 이재명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노란봉투법을 포함해 포괄임금제 등 여러 노동 이슈들의 조속한 입법 추진을 압박하고 있다.

    현재 재계는 노란봉투법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노란봉투법은 하청 업체 노조도 원청 기업과 교섭할 수 있도록 ‘사용자’ 범위를 넓히고, 파업 등 쟁의 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하청 근로자에 대한 원청 경영진의 책임을 강화하겠다는 것인데, 재계는 이 법이 통과되면 파업이 상시화될 수 있고, 특히 불법 파업까지 사실상 면죄부를 줄 수 있다고 우려한다. 노란봉투법이란 이름은 2014년 쌍용자동차 파업 노동자들에게 법원이 47억원의 배상 판결을 내리자 시민들이 노란 봉투에 4만 700원을 담아 보내며 관련 입법에 붙여졌다.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21대와 22대 국회에서 두 차례나 통과됐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폐기된 바 있다.

    노란봉투법은 올 3월 당시 재발의된 상태다. 노란봉투법은 다시 발의가 될 때마다 재계 입장에서는 강도 높은 내용들이 담기고 있다. 세 번째로 발의된 노란봉투법은 특수형태근로종사자, 플랫폼 노동자 등에 대한 노동3권을 더욱 강화했다. 또 손해배상으로 인해 노동조합의 존립이 불가능하게 될 경우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고, 사용자가 노동조합을 위축 시키거나 근로자를 괴롭히기 위해 소권을 남용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도 신설됐다. 물론 향후 관련 논의과정에서 법안 내용이 다소 달라질 수 있는 있지만 노란봉투법이 지향하는 바는 명확하기 때문에 이재명 정부하에서 새로운 노동운동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은 필연적 현실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집권 여당이 노란봉투법을 야당 시절만큼 거세게 밀어 붙이진 못할 것이란 시각도 있다. 국정 전반을 챙겨야 하는 입장에서 노조 등 특정 집단의 요구 사항만을 들어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특히 지금과 같은 불황에 빠진 경제 상황을 감안하면 노사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는 노란봉투법을 무작정 입법화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기업들이 이를 이유로 투자 등을 보류하고, 기업의 거점을 옮기는 등의 행동을 한다면 새 정부로서도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 대통령이 재계 인사들을 만난 자리에서 노동 개혁과 관련한 언급을 하지 않은 것도 지금은 경제를 살리는 것이 급선무고, 이를 위해서는 재계와의 협업이 더 우선이라는 판단이 작용한 것이다. ‘민관이 원팀’이라는 이야기가 괜히 나온 것이 아닌 것이다.

    노란봉투법 못지않게 포괄임금제 폐지도 재계가 걱정하는 부분이다. 노동계는 공짜 노동은 없다며 포괄임금제 폐지를 주장하고 있고, 이 대통령은 이를 대선 공약에 담았다.

    포괄임금제란 연장근로수당·야간근로수당·휴일근로수당 등을 미리 포함하여 정해진 임금을 지급하는 제도를 말한다. 실제 근로시간과 관계없이 “월급에 수당이 포함돼 있으니 따로 계산하지 않고 그냥 이 금액을 준다”는 방식이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근로시간과 수당은 원칙적으로 실제 근로에 따라 지급돼야 하는데 포괄임금제는 예외적으로 허용이 되고 있다. 근로계약서에 명시가 되고, 실제 근로와 괴리가 없어야 한다.

    근로기준법을 5인 미만 사업장으로 확대 적용될지 여부도 관심이다. 이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기 때문에 추진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소규모 영세업체에 직결되는 제도적 변화지만, 이 역시 현 경제 상황과 맞물려 이른 시일 내 추진은 쉽지 않아 보인다는 지적이 많다.

    [문수인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78호 (2025년 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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