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경은 기자의 미식미담(美食美談)] 로기 | 숯에서 탄생한 한국적 다이닝

    입력 : 2025.06.24 11:12:27

  • ‘로기(Logi)’.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불의 신’이라는 뜻이다. 서울 한남동에 위치한 레스토랑 로기의 오너셰프인 박준승 셰프는 손끝으로 직접 불을 다루며 요리를 완성한다. 지난 2022년 문을 연 로기는 라오스에서 최고급 참나무로 생산되는 비장탄을 사용해 훈연 향을 입혀 음식의 풍미를 끌어올리는, 이른바 ‘우드 파이어’ 식당이다. 초창기엔 완전한 양식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의 로기 음식은 한국의 제철 식재료와 한식 장, 한식 조리법 등을 적극 활용하는 모던 한식에 더 가깝다.

    박 셰프는 “인덕션, 수비드 기계 같은 현대적인 설비를 갖춘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서 일을 많이 했는데 물론 그것도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지만, 뭔가 내 자신이 주방의 부품처럼 굴러가는 듯한 면이 없지 않았다”며 “반면 숯을 다룰 때는 불을 내가 계속 신경 써서 핸들링해줘야 하는데 그게 어려우면서도 너무 재미있고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게 된다. 특히 숯이라는 일차원적인 매개체가 가져다주는 맛은 인덕션 같은 것으로는 낼 수 없는 맛이라서 더 특별하다”고 말했다. 사실 그는 지난해 큰 화제를 모았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에 출연해 ‘흑수저’(무명) 셰프들과 백수저’(스타) 셰프들 간 요리 대결 1라운드에서 가장 먼저 탈락한 인물이다.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안성재 모수 오너셰프는 흑수저 ‘시크릿코스’로 참가한 박 셰프의 방어 세비체에 혹평을 내놨다. 채칼을 쓰다 손을 크게 다쳐 제대로 대결에 임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이런 사정은 ‘통편집’ 됐고 기회는 다시 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아쉬움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다음날 주방으로 돌아와 방어 세비체를 메뉴에서 뺐고, 이후 매달 조금씩 보완·수정 과정을 10여 차례 거듭한 끝에 지금의 ‘광어 타르타르’를 새롭게 내놨다. ‘흑백요리사’에서 선보이려고 했던 ‘시크릿코스’ 역시 리뉴얼을 거쳤다. 그의 피나는 노력 덕분에 로기에 찾아온 손님들을 중심으로 ‘탈락하고 이를 간 것 같다’는 입소문이 났을 정도다. 이제는 당당하게 자신을 ‘흑백요리사 1호 탈락자’라고 소개하는 박 셰프는 “‘1호 탈락자’는 내 마음가짐을 정돈해주는 주문 같은 것”이라며 “누구나 실패하고 탈락할 수 있다. 중요한 건 거기 멈춰 있을 건지, 보완해서 앞으로 나아갈 건지다”라고 밝혔다.

    우드 파이어의 진수를 보여 주다
    훈연 버터를 사용한 오리 가슴살 구이
    훈연 버터를 사용한 오리 가슴살 구이

    로기의 모든 음식은 기본적으로 참숯의 훈연향을 때로는 화려하게, 때로는 은은하게 머금고 있는 게 특징이다. 요리에 따라 뜨거운 불에서 직접적인 불향을 입히는 방식의 ‘핫 스모킹’과 간접적으로 포도나무를 사용해 버터에 훈연향을 입히는 ‘콜드 스모킹’ 방식을 모두 사용하고 있다. 요리에 사용하는 소금 역시 훈연향을 입힌 영국산 스모크 말돈 소금만을 고집한다. 말돈 소금은 부드럽고 벗겨지기 쉬운 피라미드 모양의 결정으로 바다 소금의 일종이다. 다른 소금에 비해 쓴맛이 적을 뿐만 아니라 깔끔하고 아삭아삭한 식감으로도 유명하다.

    로기는 ‘시크릿 코스 From 흑백요리사’로 불리는 셰프 특선 코스와 함께 와인에 곁들이기 좋은 스몰 디쉬, 메인 요리, 파스타, 디저트 등 단품 메뉴도 운영하고 있다. 시크릿 코스는 대광어, 새우 파스타, 숯에 구운 생선, 고흥 유자 소르베, 우대 갈비, 스모크 아이스크림 등 6개 메뉴로 구성돼 있다. 박준승 셰프는 “‘흑백요리사’에서 선보이려고 했던 코스 메뉴에서 방어 세비체를 광어 타르타르로 바꾼 코스”라며 “방송을 보고 오시는 분들은 대부분 이 코스를 주문하신다”고 전했다.

    볏집에서 훈연향을 입힌 대광어 타르타르
    볏집에서 훈연향을 입힌 대광어 타르타르

    이 가운데 탈락의 쓴맛을 딛고 탄생한 광어 타르타르는 로기를 대표하는 시그니처 메뉴가 됐다. 대광어 숙성회를 다이스 형태로 잘라 단면적을 넓힌 뒤 볏짚에서 훈연향을 골고루 입혔고, 피클 대신 한식의 궁채 장아찌를 넣어 아삭아삭한 식감과 한국적인 감칠맛을 살렸다. 한입 떠먹으면 다채로운 향긋함과 상큼함을 느낄 수 있다. 가니쉬(고명)는 계절에 따라 조금씩 변화를 주지만 현재는 전남 나주산 참외를 훈연해 올리고 있다. 박 셰프는 “참외는 ‘코리안 멜론’으로도 불린다. 모든 음식에 이런 한국적인 의미와 맛을 가미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한국적인 맛과 멋은 로기의 차별화 포인트다. 로기의 메뉴 중에는 한식 장과 기름을 베이스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기순도 명인이 담근 고추장으로 만든 고추장 비스크 소스를 곁들인 새우 구이가 대표적이다. 이외에도 광이원 장인이 6년간 숙성한 간장을 베이스로 만든 브라운버터소스, 국내산 참기름과 들기름 등을 사용한다. 음식뿐만이 아니다. 레스토랑에서 사용하는 접시나 도구, 공간을 장식하는 오브제와 조명, 의자 등 가구도 대부분 한국 작가들의 작품이거나 작가들과 협업해 주문 제작한 것들이다. 이런 요소들은 로기에서의 경험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 준다. 새우 파스타 역시 로기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별한 메뉴 중 하나다. 발효시킨 고추·마늘 베이스에 훈연 버터 에멀전을 섞어 소스를 만들었고, 훈연향을 입힌 레지아노 치즈와 숯에 구운 새우를 올리고 새우 머리에서 뽑은 비스크 오일로 마무리를 했다. 박 셰프는 “소스는 고추장 맛은 아니지만 고추장에서 영감을 얻어서 조금 양식적으로 풀어냈다”고 설명했다. 새우 파스타는 맵지 않지만 약간의 자극을 주는 부드러운 소스와 숯향을 머금은 두툼한 새우가 고소하게 입안을 감싸 자꾸 손이 가게 만든다.

    숯에 구운 새우를 올린 파스타
    숯에 구운 새우를 올린 파스타

    메인 메뉴 중 하나로 제공되는 오리 가슴살 구이는 경북 봉화 오리를 볏짚에 훈연해 촉촉하게 구워낸 뒤 제주도 구좌읍 흙당근을 훈연 버터와 같이 넣어 수비드 조리해 만든 당근 퓨레와 함께 낸다. 참기름과 액젓으로 만든 드레싱에 버무린 튀김 미니 양배추, 오리 부속물로 만든 바비큐 소스도 곁들였다. 다른 메뉴에서는 훈연향이 은은하게 났다면 오리 가슴살 구이는 화려한 숯향이 풍부하게 입맛을 돋운다. 곁들인 채소에도 불향이 나는 만큼 처음부터 끝까지 향기롭게 마무리 된다.

    로기는 주류 페어링에 있어서도 전문성이 높다. 특히 다양한 와인 리스트 덕분에 와인 애호가들이 단골 손님으로 자주 찾는다는 설명이다. 박 셰프가 전문 소믈리에와 함께 직접 세계 곳곳의 와이너리 투어를 다니면서 공수한 갖가지 내추럴 와인도 맛볼 수 있다. 박 셰프는 세계 최대 샴페인 하우스로 꼽히는 프랑스의 ‘모엣 샹동(Moet&Chandon)’ 본사의 ‘타임 키퍼(글로벌 홍보대사)’로 활동 중이기도 하다. 덕분에 로기에서는 모엣 샹동의 모든 올드 빈티지들을 모두 맛볼 수 있다.

    박 셰프는 “모엣 샹동 전 라인을 갖고 있지만, 특히 ‘그랑 빈티지’(모엣 샹동 셀러 마스터가 특정 연도를 자신만의 해석으로 표현한 빈티지 와인) 글라스의 경우 다른 데서는 드실 수 없는 가격에 선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설명

    ESG를 실천하는 다이닝 레스토랑

    박준승 셰프는 마산대 호텔조리학과 재학 시절부터 요리대회 경험을 많이 쌓았다. 15개 이상 대회에서 수상 경력을 갖고 있고, 주니어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발탁된 적도 있다. 워킹 홀리데이 프로그램으로 호주로 건너가 2년 반 동안 거주하면서 여러 스타 레스토랑을 거쳤다. 매트 모란 셰프가 이끄는 호주 시드니의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아리아(Aria)’가 대표적이다. 박 셰프는 “호주에서 작게나마 제 가게도 운영해본 적도 있다”며 “이후 한국에 돌아와서는 서울에서 경험을 쌓았다”고 말했다.

    박 셰프는 미슐랭 2스타 레스토랑인 ‘스와니예’를 비롯해 김호윤 셰프가 운영하는 ‘모퉁이 라이프’ ‘사테’의 수셰프 등을 거쳐 서울 청담동의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인 ‘아스트랄’의 오픈 멤버이자 헤드셰프로 일했다. 그는 “로기는 그동안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내 것을 운영해보자는 생각에 오픈하게 됐다”며 “한국에서 모던 코리안 우드파이어를 선도하는 셰프가 되는 게 꿈이다. 한국에 오는 외국인분들이 생각했을 때 ‘한국’ 하면 바로 떠오르는 레스토랑의 셰프이고 싶다”고 밝혔다.

    현재 박 셰프는 한남동에 로기와는 다른, 새로운 콘셉트의 와인바 오픈을 준비 중이다. 그는 “향후에는 정통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을 운영해보고 싶다. 최종적인 꿈은 아마도 모든 셰프의 꿈인 ‘스타 셰프’가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로기는 친환경 식재료를 사용하고 쓰레기 배출을 최소화해 탄소 배출을 줄이는 등 ESG를 실천하는 다이닝 레스토랑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예컨대 제주도 구좌읍 흙당근의 경우, 상품성은 낮지만 영양이나 식재료로서의 기능은 손색 없는 못난이 당근을 사용한다. 박 셰프는 “직업이 셰프이다 보니 농가와 직접 소통하면서 생각보다 많은 식재료가 버려진다는 것을 일찍이 알게 됐다. 요식업계에서 배출되는 음식물 쓰레기도 어마어마하다”며 “물론 미미해 보일 수 있겠지만 셰프로서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은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사진설명
    로기(LOGI)

    장르 모던 코리안 우드파이어

    위치 서울 용산구 한남대로27가길 32 201호

    오너 셰프 박준승 셰프

    영업시간 화~목 17:00~24:00, 금~일 12:00~24:00(15:00~17:00 브레이크 타임), 월 정기휴무

    가격대 시크릿 코스 13만 5000원, 메인 3만~8만원대

    프라이빗 룸 1개(4인석)

    전화번호 050-71333-4895

    주차 인근 주차장 이용

    [송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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