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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크롬 매각 압박 독점과의 전쟁 나선 美
입력 : 2025.06.09 16: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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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법무부는 인터넷 검색 독점을 깨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연방법원에 구글에 크롬 웹 브라우저 매각을 강제할 것을 요청했다.<사진 연합뉴스> 미국 정부가 구글에 ‘크롬 브라우저 분할’을 요구하며 또 다시 반(反)독점 칼날을 꺼내 들었다. 1990년대 마이크로소프트(MS)와의 전쟁을 떠올리게 하는 이번 조치는 바이든 행정부에서 본격화한 ‘디지털 자본 권력 견제’ 정책의 계승으로 평가받으며 트럼프 행정부의 규제 정책의 방향성을 엿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검색 시장 지배력과 광고 독점 구조를 근본적으로 해체하려는 이번 압박은 단순한 브라우저 매각을 넘어 구글을 비롯한 미국 빅테크 중심 IT 생태계의 균열을 야기할 수 있어 주목된다. 구글·애플·메타·아마존으로 대표되는 미국 테크 자이언트들은 물론, 이들과 연결된 글로벌 산업 생태계 역시 중대한 기로에 섰다.
구글 크롬 분할, 디지털 권력 재편 신호탄미국 법무부 반독점국은 최근 구글이 자사 검색엔진의 시장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해 브라우저인 ‘크롬’을 전략적으로 결합해 사용자 유입 경로를 독점해왔다고 지적했다. 크롬의 기본 검색창이 구글 검색으로 고정되어 있다는 사실은 사용자 선택권을 원천 차단하고 검색 광고 시장에서 경쟁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것이 핵심이다.
현재 구글은 검색 시장에서 미국 기준 90%, 글로벌 기준 85% 이상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이 중 상당수가 크롬을 통해 유입된다. 반독점국은 “검색엔진과 브라우저의 결합을 해체하지 않는 한 시장경쟁은 회복되지 않는다”고 보고, 궁극적으로 크롬 브라우저의 분리 또는 독립 운영을 강제할 가능성까지 제기했다.
이번 사안은 미국 반독점 역사에서 1998년 마이크로소프트(MS) 사건 이후 가장 파급력 있는 조치로 꼽힌다. 당시 MS는 윈도우 운영체제에 자사 브라우저인 인터넷 익스플로러(IE)를 기본 탑재하고, 경쟁 브라우저 넷스케이프의 시장 진입을 봉쇄한 혐의로 제소됐다. 결국 미 법무부는 제품 분할까지 요구했지만, MS는 소프트웨어 설계 수정과 API 공개 등을 통해 가까스로 합의에 도달했다.
이번 구글 사건은 빅테크 기업들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고 나섰다는 데 의미가 크다. 검색, 광고, 데이터 수집, 인공지능 추천 알고리즘 등 모든 영역이 크롬을 ‘전초기지’ 삼아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단순한 소프트웨어 수정이 아닌 생태계 해체에 가까운 구조조정이 예고되는 이유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1982년 벨시스템(AT&T)의 해체 역시 이번 사례와 유사하다. 미국 정부는 당시 장거리전화와 지역전화, 장비 공급까지 수직통합된 AT&T의 독점 구조를 문제 삼고 이를 7개의 지역 벨사로 쪼갰다. 이후 수년간 통신 시장은 급격한 경쟁 체제로 전환되며 모바일 혁신의 초석을 마련했다.
이번 구글 브라우저 분할은 그 자체로 AT&T 해체에 버금가는 산업적 여파를 예고하고 있다. 검색이라는 핵심 플랫폼이 경쟁에 노출되는 순간, 광고 시장과 AI 알고리즘 개발 패권도 재편될 수밖에 없다. 이번 조치는 바이든 행정부의 철학적 기반에서 비롯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이후 “플랫폼 자본이 민주주의의 위협이 되고 있다”는 인식을 공공연히 밝혀왔다.
구글의 크롬 앱 <사진 연합뉴스> 그 핵심에는 리나 칸(Lina Khan) 연방거래위원회(FTC) 위원장이 있었다. 그녀는 아마존 비판 논문으로 주목받은 반독점 이론가 출신으로, 플랫폼 독점이 ‘가격’ 보다 ‘접근성·데이터’ 등 비가격 경쟁을 차단하는 점에 주목해왔다.
과거 트럼프 정부 1기는 빅테크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보여왔지만 실질 조치는 미미했다. 하지만 2기 행정부 취임 후 현재 진행중인 규제 방향성은 바이든과 크게 다르다고 보기도 어렵다. 크롬-구글 검색이라는 연결고리가 규제 대상이 된 지금 애플의 사파리-앱스토어, 메타의 인스타그램-광고 네트워크, 아마존의 추천 알고리즘-자체 브랜드 등도 유사한 구조를 지녔다.
애플은 스마트폰 운영체제인 iOS 내 사파리를 기본 브라우저로 설정하고 경쟁 브라우저의 사용자 확보를 어렵게 만든다는 지적을 받는다. 메타 역시 인스타그램·왓츠앱·페이스북을 데이터 통합 기반으로 운영하면서 경쟁 SNS 기업의 성장을 구조적으로 억제해왔다는 비판을 받는다. 아마존은 검색 알고리즘에서 자체 브랜드를 우선 노출시킨다는 혐의로 유럽과 미국에서 동시 제소된 상태다.
미국의 이번 조치는 유럽연합의 디지털시장법(DMA)과 궤를 같이 한다. 유럽은 이미 2024년부터 구글, 애플, 메타 등 대형 플랫폼 기업에 대해 브라우저·검색·앱마켓 등의 기본 설정 강제 금지를 법제화했다. 사용자에게 기본 브라우저 변경 권한을 부여하고, 대체 앱마켓을 의무적으로 허용하도록 했다. 구글이 유럽 시장에서 브라우저 독점 기능을 잃기 시작한 상황에서 미국에서까지 크롬 매각이 이뤄진다면 글로벌 차원의 플랫폼 권력 해체가 현실이 된다.
구글의 브라우저 크롬은 검색뿐 아니라, 광고 타기팅, 위치 정보 수집, 사용자 행동 추적, 유튜브 연동 등 전체 생태계의 데이터 허브 역할을 해왔다. 크롬을 떼어낸다는 것은 단순한 UI 분리가 아니라, 구글의 광고 수익 모델을 뿌리부터 흔드는 조치다. 분할이 현실화될 경우, 구글은 크롬을 제3의 기업에 매각하거나 독립 법인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사용자 동의 기반 데이터 이전이 불가능해지면 광고 정밀도와 검색 결과의 개인화 수준도 급격히 낮아질 수밖에 없다. 이는 구글이 가장 바라지 않는 시나리오 중 가장 최악의 상황이다.
구글 CEO 순다르 피차이가 미국 워싱턴DC 연방법원을 나서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구글 생태계의 축소는 AI 시장에도 충격을 줄 수 있다. 구글은 AI 모델 개발에 있어 ‘실사용 기반의 데이터’를 핵심 경쟁력으로 삼아왔다. 크롬이 제공하는 웹 이용 패턴과 검색 맥락은 AI 학습에 있어 최고의 훈련자료였다. 광고 시장 역시 격변이 예상된다. 구글 광고(Google Ads)의 정밀 타기팅 능력은 검색-크롬-지도-지메일-유튜브의 통합 데이터를 전제로 작동한다. 이 고리가 끊어지면, 중소 광고주를 중심으로 구글 의존도를 낮추고 대안 광고 플랫폼이 부상할 수 있다.
빅테크 기업들도 경쟁적으로 대안 마련에 몰두하고 있다. 구글은 크롬을 독립 법인으로 분할하거나 일부 기능을 제휴사에 개방하는 전략을 검토 중이다. 동시에 ‘검색-브라우저 분리 이후의 광고 수익 모델’을 재설계하고 있다. 애플은 브라우저와 앱스토어의 강제 설정을 유연화하고, iOS 사용자에게 더 많은 기본 설정 권한을 부여할 가능성이 크다. 메타 역시 데이터 통합 대신 플랫폼 간 분리 운영 체제로 전환 가능성을 바라보며 인스타그램, 왓츠앱의 개별 경쟁력 강화 노선을 택했다.
아마존은 추천 알고리즘의 투명화와 제3자 셀러에 대한 공정 접근성 확대를 통해 자체 브랜드 비중을 조절하고 있다. 결국 미국 정부의 이번 ‘구글 크롬 분할 검토’는 단순히 한 기업에 대한 제재가 아니다. 디지털 권력의 구조를 ‘수직통합’에서 ‘수평경쟁’으로 되돌리려는 일대 실험이자 디지털 자본주의의 새로운 질서를 설계하려는 시도다. 이제 플랫폼은 단순히 기술기업이 아니라 규제 대상이자 공공성을 내포한 인프라로 간주되고 있다.
한국 플랫폼 규제논의도 재점화구글 크롬 분할 논의가 글로벌 차원으로 확산되면서 한국 역시 그 여파에서 자유롭지 않다. 국내에서도 네이버, 카카오 등 자체 플랫폼을 운영 중인 빅테크 기업들이 유사한 수직 통합 구조를 통해 경쟁우위를 확보해왔다는 점에서, 미국과 유럽의 반독점 전쟁이 한국 플랫폼 생태계의 규제 환경을 변화시킬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정부는 이미 2021년부터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이른바 구글 갑질 방지법)을 통해 구글의 인앱결제 강제 금지를 명문화한 바 있다. 이는 글로벌 규제 흐름과의 보조를 맞춘 대표 사례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그 이후 플랫폼 간 자회사 밀어주기, 검색 알고리즘의 불투명성, 광고 데이터의 집중 등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머물러 있다.
이번 구글 크롬 분할 압박은 국내 정부로 하여금 보다 강력한 디지털 경쟁정책 도입을 재검토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한국의 포털과 메신저 중심 생태계도 미국식 수직 결합 모델과 유사한 경로를 걸어왔다. 네이버는 검색, 쇼핑, 블로그, 뉴스, 웹툰 등을 하나의 포털 내에서 연결하는 구조로 막대한 사용자 데이터를 확보해왔다. 카카오는 메신저인 카카오톡을 기반으로 모빌리티, 페이, 쇼핑, 광고로 확장하는 수직 통합 모델을 발전시켜왔다.
이 구조 자체는 높은 사용자 경험(UX)을 제공한다는 장점도 있으나, 플랫폼 간 경쟁을 차단하고 시장 진입 장벽을 높이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미국의 조치가 실현될 경우, 국내에서도 주요 플랫폼 간 서비스 결합 구조에 대한 ‘분리 논의’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한국 정부가 직면한 과제는 세 가지다.
우선 플랫폼 독점 구조에 대한 근본적 정의와 법적 기준을 세분화해야 한다. 단순히 시장 점유율이 아닌 ‘기능 간 결합’의 경쟁제한 효과를 분석할 수 있는 반독점 기준이 필요하다. 또 개인정보 보호법과 플랫폼 규제법 간의 경계를 정립해야 한다. 사용자의 데이터 주권이 플랫폼 경쟁 구조와 직접 연결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글로벌 반독점 네트워크와의 협업을 강화해야 한다. 특히 미국-유럽연합(EU) 간 반독점 공조 사례처럼, 한국 공정거래위원회도 다국적 기업에 대한 공동조사 또는 정보 공유 체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한국 외에도 아시아 주요국의 규제 기조 역시 변화하고 있다. 일본은 2023년 ‘디지털 플랫폼 투명화법’을 제정해 대형 온라인몰의 입점 조건 공개, 광고 우선노출 기준 투명화 등을 의무화했다. 이는 아마존과 라쿠텐, 야후재팬 등 거대 플랫폼을 겨냥한 것이다.
호주는 ‘뉴스 미디어 협상법’을 통해 구글과 페이스북이 뉴스 콘텐츠 제공 대가를 언론사에 지급하도록 강제했다. 인도는 최근 자국 내 브라우저·검색 시장에 구글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 독점 규제를 본격화하고 있다.
한편 EU는 이미 디지털시장법(DMA)과 디지털서비스법(DSA)을 통해 ‘플랫폼 규제 선도 지역’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들 법은 특정 매출 규모 이상 플랫폼 기업에 대해 검색 알고리즘 공개, 앱마켓 대체 허용, 광고 타기팅 제한 등 일련의 강력한 조치를 요구한다.EU는 특히 ‘게이트키퍼(Gatekeeper)’로 지정된 플랫폼에 대해 구조적 개편을 강제할 수 있는 권한까지 확보하고 있다. 2024년 6개 기업이 게이트키퍼로 지정됐으며, 그중 다수가 미국계 빅테크다.
이번 구글 사안과 결합되면, 향후 플랫폼 기능별 법적 분리 요구가 현실화될 수 있다.
이 싸움은 단기적 소송이 아닌, 향후 10년 디지털 산업의 방향을 결정지을 근본적 투쟁이다. 크롬이 분리된다면, 그 다음은 사파리·인스타그램·프라임일 수 있다. 플랫폼 제국의 시대가 저물고, 개방과 선택의 시대가 열릴 수 있을지 전 세계가 구글의 다음 행보를 주목하고 있다.
[추동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