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승의 사례로 풀어보는 세금 이야기] 부부재산제와 준거법 ‘남편은 한국, 아내는 미국’ 달라지는 상속세

    입력 : 2025.05.26 17:30:25

  • 관식은 애순과 결혼해 딸을 낳았다. 애순은 자녀 교육을 위해 미국 캘리포니아 어바인으로 이주했다. 애순은 오랜 노력 끝에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다. 관식은 한국에 남아 일을 했다. 관식은 애순이 시민권을 취득한 직후 사업 성공으로 큰돈을 벌어 한국 상가를 매수했다.
    몇 년 뒤 관식은 미국에서 가족과 함께 여생을 보내기로 결심하고 상가를 제외한 한국 재산을 정리하여 미국으로 이주했다. 하지만 미국에 온 관식은 암 말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관식은 애순에게 한국 상가를, 딸에게 나머지 재산을 준다는 유언을 남기고 사망했다.
    애순은 유언에 따라 한국 상가에 대한 상속등기를 마쳤다. 세무서는 애순이 10억원 상당의 한국 상가를 단독으로 상속받았다며 애순에게 상속세를 부과했다. 하지만 애순은 관식이 사망할 당시 부부가 모두 캘리포니아에 거주하고 있었으므로 부부재산에 대해 캘리포니아 주법이 적용되어야 하는데, 캘리포니아 주법에 의하면 부부가 혼인 중 취득한 재산은 부부의 공동재산이므로 자신은 관식으로부터 한국 상가 전부를 상속받은 것이 아니라 2분의 1 지분만 상속받은 것이라며 이의를 제기했다.

    부부 중 한명이 개인 명의로 취득한 재산이 명의자 개인 소유인지, 아니면 부부공동 소유인지는 나라마다 다르다. 우리나라 민법은 부부재산약정이 없으면 혼인 중개인 명의로 취득한 재산은 개인 소유(특유재산)라고 정하고 있다(부부별산제). 반면 혼인 중 취득하는 재산을 부부의 공동재산으로 추정 또는 간주하는 국가도 적지 않다(부부 공동재산제).

    미국은 어떨까? 주마다 다르다. 대부분의 주가 부부별 산제를 택하고 소수의 주가 공동재산제를 택한다. 한인이 많이 거주하는 캘리포니아는 공동재산제이다. 캘리포니아 주법에 의하면, 혼인신고를 마친 부부가 결혼 후 일을 해서 축적한 재산은 공동재산이다. 반면 결혼 후에 취득한 재산이어도 증여나 상속을 받았으면 개인재산이다.

    관식과 애순에게는 어느 나라 법이 적용될까? 외국적 요소가 있는 사건에 어느 나라의 법을 적용할지 정하는 법이 ‘국제사법’이다. 국제사법에 따라 특정 사안에 실제로 적용되는 법을 ‘준거법’이라고 한다. 국제사법 제64조, 제65조는 부부의 국적이 동일하면 그 국적법이(제1호), 국적이 다르지만 생활근거지가 동일하면 그 생활근거지의 법이(제2호), 국적과 생활근거지가 모두 다르면 부부와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곳의 법(제3호)이 부부재산제의 준거법이라고 정하고 있다.

    문제는 언제를 기준으로 준거법을 정할지이다. 사례를 보자. 혼인 당시에 관식과 애순 모두 한국 국적자였으므로 대한민국 민법이 준거법이다. 반면 관식의 사망 당시에는 관식과 애순의 국적이 달랐지만 생활근거지가 모두 미국 캘리포니아였으므로 캘리포니아 주법이 준거법이다. 한편 관식이 돈을 벌어 상가를 매수할 때에는 관식과 애순은 국적과 생활근거지가 모두 달랐다. 이때는 관식 부부와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곳의 법이 준거법이다.

    이와 관련하여 대법원은 부부재산제의 준거법 기준시점은 개별재산을 취득하는 때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보았다. 사례를 바꿔 관식이 애순의 미국 시민권 취득 전에 한국 상가를 취득했다면 우리나라 민법이 적용되기 때문에 관식이 상가의 단독 소유자이다. 캘리포니아로 이주한 후에 한국 상가를 취득했다면 캘리포니아 주법이 적용되기 때문에 관식 부부가 한국 상가의 공동소유자이다.

    사례의 경우에는 관식과 애순의 국적과 생활근거지가 모두 다르므로 관식 부부와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곳의 법이 준거법이다. 대법원은 사례와 유사한 사건에서 관식이 한국 상가를 취득할 당시 관식 부부와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곳의 법을 대한민국 민법이라고 본 원심 판단이 정당하다고 판단했다(대법원 2023. 12. 21. 선고 2021두52143 판결).

    사례를 보자. 우리나라 상증세법에 의하면, 사망한 사람(피상속인)이 거주자인 때에는 국내외 모든 상속재산이, 비거주자인 때에는 국내에 있는 상속재산만 상속세 과세대상이다. 관식은 사망할 당시 국내에 주소가 없었고 183일 이상 국내에 거소를 두지도 않았으므로 비거주자에 해당한다.

    따라서 관식의 미국 재산은 상속세 과세대상이 아니고 한국 상가만 상속세 과세대상이다. 피상속인이 비거주자인 때에는 2억원의 기초공제는 인정되지만 배우자 공제 등은 인정되지 않는다.

    관식이 한국 상가를 취득할 당시를 기준으로 부부재산제 준거법을 판단하므로 대한민국 민법이 적용되고 한국 상가는 관식의 개인 소유이다. 따라서 10억원 상당의 한국 상가 전부가 상속세 과세대상이고 2억원의 기초공제만 인정되므로, 애순은 상속세로 1억 8000만원을 납부해야 한다.

    허승 판사

    세법, 공정거래법에 관심을 갖고 현재 한국세법학회 연구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대전변호사회 우수법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저술로는 <사회, 법정에 서다> <오늘의 법정을 열겠습니다>가 있다.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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