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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미술품 뛰어넘어 이제는 항공기도 조각투자…
입력 : 2025.05.22 11:5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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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시계, 미술품, 부동산, 심지어 가수의 저작권까지… 자산을 ‘조각’ 내어 파는 새로운 투자 방식이 MZ세대를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다. ‘조각투자’는 어떻게 등장했고, 무엇을 주의해야 할까?
“100억짜리 피카소 1만원이면 투자”조각투자란 고가의 실물자산이나 권리를 다수의 투자자가 소액으로 나누어 투자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실물 자산에 대한 지분을 나누어 거래하는 개념으로, 일반적으로 수십억원에 달하는 고가의 자산을 수백, 수천 명의 투자자가 ‘조각’ 내어 일부를 보유하는 형태다.
물론 현금이 충분하다면 서울 강남 빌딩이나 한남더힐을 혼자 매입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에게 강남 빌딩 소유자가 되는 것은 꿈에 가깝다. 그래서 고려할 수 있는 방법이 조각투자다. 아주 비싼 자산들을 비교적 적은 돈으로 투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00억원짜리 서울 강남 빌딩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이 건물의 지분을 1000만원씩 1000개 조각으로 쪼갤 수 있다. 비록 100억은 없지만 1000만원만 있으면 누구나 강남 빌딩 건물주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조각의 수만큼 많은 투자자들이 그만큼 적은 돈으로 투자해 지분을 살 수 있기 때문에 지분을 더 잘게 나눌 수도 있다.
그렇다고 자산을 실제로 조각내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수익을 가질 권한을 나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다. 그렇게 쪼갠 권리를 ‘증권’이라고 한다. 여러 조각투자 플랫폼이 투자자를 모으고, 증권을 발행하는데 이를 ‘토큰증권’이라고 부른다. 조각투자에 참여한 투자자가 그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토큰증권을 통해 증명할 수 있다.
조각투자의 주요 투자 대상은 ▲미술품(피카소, 이우환 작품 등) ▲희소 명품(롤렉스 시계, 슈프림 스니커즈 등) ▲부동산(건물, 호텔 객실 지분) ▲저작권(IP, 음악 수익권) ▲스포츠 선수 연계 수익권 등 다양하다. 특히 유튜브 채널 수익권, SNS 계정 가치로까지 확장되면서 자산의 개념 자체가 변화하고 있다. 2021년 기준 국내 조각투자 시장 규모는 약 400억원 수준이었지만, 지난해에는 2000억원을 넘어섰다. 글로벌 시장은 이미 수조원대 규모에 이르고 있다. 특히 MZ 세대의 유입 비율이 70%를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조각투자 시장에서는 부동산 조각투자 거래가 상대적으로 활성화 돼 있다. 참여자들은 부동산이 수익이 나면 나눠 갖는다. 임대료 수익, 부동산 가격이 오른 뒤 팔고 남는 차익이 대표적이다. 아파트도 할 수 있지만 아무래도 수익성 측면에서 상업용 빌딩이 주요 투자처다.
2022년 4월 카사(Kasa)가 ‘부티크호텔 르릿(Le Lit)’의 공모가를 개시한지 5분만에 물량이 완판된 경우가 대표적 사례다. 또 올해 4월 초 루센트블록의 11호 부동산관리처분신탁 수익증권 대전 하나 스타트업파크(이하 소유 11호)가 공모 청약률 100%를 달성했다. 이번 청약은 9억 9500만원을 공모했는데 9억 9600만원이 모였고 총 1701명의 투자자가 참여한 것으로 집계됐다.
또 부동산, 음악, 와인 등을 넘어 항공기 투자까지도 가능해질 전망이다. 교보생명은 올해 3월 21일 금융위원회로부터 혁신금융서비스 승인 사업인 ‘항공기 엔진 기반 신탁수익 증권 거래유통서비스’의 신탁사업자로 지정됐다.
이번 사업은 항공기 엔진을 기반으로 신탁수익증권을 발행한 후 이를 플랫폼을 통해 유통하는 서비스다. 통합전자결제(PG) 솔루션 기업인 갤럭시아머니트리는 사업총괄 및 발행사로서 실물자산인 항공기 엔진을 구입·신탁하고, 신탁사업자인 교보생명은 실물자산 수탁관리와 수익증권 발행을 담당한다.
교보생명은 실물자산을 위탁받아 전자등록 방식으로 신탁수익증권을 발행한다. 갤럭시아머니트리는 블록체인 분산원장 기술을 활용해 수익증권과 미러링한 토큰증권(STO)을 신한투자증권 등 플랫폼에서 유통해 투자자를 모집한다.
이번 사업으로 교보생명은 항공기 엔진이라는 비금전재산신탁의 수익증권 발행으로 자산을 유동화하고, 신기술과 결합해 기관 투자자만 할 수 있었던 항공 금융 투자 기회를 일반 투자자에까지 확대한 것이다.
혁신과 규제 사이 균형 잡기조각투자는 기존 자산 시장의 폐쇄성을 타파하고, 소액 투자자에게도 고급 자산에 대한 접근을 열어주는 혁신적 금융 모델이다. 하지만 그만큼 ‘규제 회피형 투자’ ‘사기성 상품’이 난립할 수 있는 위험도 높다.
한 금융투자 전문가들은 “조각투자가 지속 가능하려면 ▲자산의 신뢰성 확보(감정평가, 수익성 예측의 투명성 확보) ▲투자자 보호 장치 강화(명확한 리스크 설명, 손실 가능성에 대한 이해도 제고) ▲2차 시장의 유동성 확보(조각을 사고팔 수 있는 거래 인프라 확충)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2월 조각투자 제도화 추진을 위한 자본시장법 시행령·시행규칙과 금융투자업규정, 증권의 발행 및 공시 등에 관한 규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개정안은 오는 6월 16일부터 시행된다. 금융위 혁신금융서비스(샌드박스)로 운영 중인 조각투자 발행플랫폼을 정식 제도화하는 것이다.
이번 법령 개정을 통해 투자중개업이 신설되고 비금전신탁 수익증권 방식의 조각투자 발행플랫폼이 제도화되면 조각투자 사업자들은 스몰 라이센스 인가를 받아 제도권 내에서 공식적으로 비금전신탁 수익증권을 발행할 수 있게 된다.
조각투자 증권 발행을 주선해 투자자에게 판매하려면 10억원의 자기자본 요건을 갖추고 수익증권 투자중개업 인가를 받아야 하며 증권사와 같은 건전성 규제와 투자자보호 규제를 받게 된다. 수익증권 유통플랫폼은 오는 9월 말까지 제도화된다. 현재 조각투자 사업자는 발행업무와 유통업무를 겸영하고 있지만, 향후에는 이해 상충 방지를 위해 발행을 주선한 증권의 유통이 제한된다. 혁신금융 시기를 넘어 제도화에 들어서는 만큼 투자자들은 조각투자가 본인의 미래를 위한 투자상품이 될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도 커질 것이다. 한 금융업권 관계자는 “조각투자는 소액으로 고가 자산에 투자할 수 있는 기회를 넘어, 자산과 투자를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각에선 ‘자산의 민주화’라며 성장성을 높게 보고 있다”면서도 “동시에 그럴듯해 보이는 투자일 뿐인 위험성도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2022년 조각투자에 대한 관심이 시작됐을 때쯤 ‘빌딩 대박’을 꿈꾸며 투자했던 사람들 중에서 수익률이 마이너스임을 인증하는 게시글을 온라인상에서 볼 수 있다.
[채종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