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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 분노한 국민연금 개혁안 진정한 구조개혁은 ‘수익률 제고’
입력 : 2025.05.19 17: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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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0일 국회 본회의에서 ‘국민연금법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되고 있다.<사진 연합뉴스> 국회가 지난 3월 20일 국민연금 개혁안을 18년 만에 통과시켰지만, 청년층을 중심으로 ‘연금 개악’이란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보험료율을 9%에서 13%로, 소득대체율을 40%에서 43%로 높이는 ‘더 내고 더 받기’ 개혁안은 국민연금 고갈 시점을 2055년서 2064년으로 고작 ‘9년’밖에 미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의사결정권자인 국회, 그리고 정부도 이를 모르지 않는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현재 인구구조상 소득대체율 40%를 지속할 수 있게 유지하려면, 보험료율을 19.7%까지 올려야 한다. 만일 국회 안대로 보험료율을 13%까지만 올리는 것이 맞다면, 적정 소득대체율은 26%(보험료율 1%는 소득대체율 2% 효과가 있다는 이기일 보건복지부 1차관 발언을 토대로 계산) 수준이다. 국회의원 모두 국회 법안소위서 이 부분을 보건복지부로부터 상세하게 설명을 들었지만, 결국 소득대체율을 낮추기는커녕 되레 높였다.
‘보험료율 인상’에만 방점국회는 왜 이런 결과를 만들었을까? 이번 연금개혁의 방점은 ‘보험료율 인상’에 있었기 때문이다. 보험료율을 인상하면 ‘구조개혁’을 하기 위한 시간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급한 불부터 끄자는 개혁이었던 셈이다. 지난해 기준 국민연금 보험료 수입이 60조 7900억원, 지급액이 45조 2000억원으로 흑자였다. 현재 고령화 추세라면, 앞으로 2년 후인 2027년부터 보험료 지급액이 보험료 수입액을 넘어서게 된다.
아직 기금운용 규모가 1212조원이어서 넉넉하긴 하지만, 지급액이 앞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에 결국엔 기금운용에서 돈을 빼내야하는 ‘불상사’가 발생한다. 이렇게 되면 기금운용본부가 국내외 자산에 투자해 연평균 5~6%대 수익률을 내고 있는데, 수익률이 악화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이번에 보험료를 더 거두면서, 기금운용 수익 부문을 뺀 ‘보험료 수입-보험료 지출’을 2027년에서 2036년으로 ‘9년’ 늦췄다는 것이 이번 개혁의 의의다.
국회는 향후 ‘구조개혁’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구체적인 방법론을 두고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생각을 달리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일본처럼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하자는 입장이다. 국민연금 재정 상황에 따라 소득대체율, 연금액 등을 ‘자동으로 조정’하는 시스템을 도입하자는 것이다.
국민의힘 그리고 윤석열 정부는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하고 기금운용수익률을 현행 목표치(연평균 4.5%) 대비 1%P 더 높일 경우, 연금 고갈 시점을 2088년까지 늦출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야당인 민주당은 국고지원을 더 강조하는 상황이다.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하면, 가뜩이나 현재도 국민연금 월평균 수령액이 약 67만원에 불과해 노후대비 장치로서 부족한데, 물가 상승률도 반영이 안되면서 연금이 삭감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노인들의 월평균 수령액이 낮은 것은 그만큼 보험료를 많이 내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민주당은 자동조정장치가 도입되면, 20~50대가 평균적으로 현행 수령예상액 대비 20%(총액 기준 1억원) 가량 연금을 덜 받게 된다고 말한다.
민주당의 국고지원 안은 다음과 같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이 약 2500조원인 것을 고려하면, 매년 약 30조원(1.25% 적용)의 세금을 국민연금에 투입하면 기금 고갈을 막을 수 있다. 국고지원도 2036년 부터 시작하면 된다.
특히 진보 측에선 ‘공적연금(국민연금 기초연금 직역연금)에 대한 평균 지출액이 한국의 경우 GDP(국내총생산)의 3.3%(2020년 기준)에 불과하며, 이는 OECD 평균(8.9%)에 비해 낮다며 국고재정 투입을 정당화하고 있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보수 측은 ‘지출 관리’를, 진보 측은 ‘보다 더 많은 예산 투입’을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연금지출액 최대한 줄여야현재 국내 경제는 0~1%대 저성장이 고착화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연금복지’에 더 돈을 투입하자는 진보 측보다는, 기존 수급자들의 수급액을 삭감해서(자동조정장치) 조금이라도 저 지속가능한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보수 측 의견이 MZ세대 청년층을 중심으로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 30대 청년은 “어차피 지금 개혁안에 따르면 1970년대생만 평균 수명(85세)까지 수령할 수 있을 뿐,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거의 수령을 못 하는 구조”라며 “더 내고 더 받기라고 연금개혁안을 포장하지만, 실제로는 더 내고 아예 못 받기인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보수 측이 말하는 것처럼 우선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하며 연금지출액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세금이 투입될 것이고 이는 미래세대에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시행해야 할 것이 바로 ‘기금운용 수익률’ 제고다. 기금운용수익률을 1%P 높일 경우, 고갈 시점을 5년 더 늦출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지점서 우리가 벤치마킹해야 할 국가가 바로 캐나다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발전전문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2013~2022년 10년간 캐나다연금(CPPIB)의 연평균 수익률은 10.01%로 국민연금(4.70%)에 비해 2배 이상 높다.
만일 둘이 2013년에 1로 시작했다고 하면, 국민연금은 10년간 자산이 1.5배가 되지만 CPPIB는 2.35배가 되는 셈이다.
이 차이가 20년, 30년이 지속되면 어떻게 될까?
CPPIB는 20년 후 자산이 6배가 되는 반면, 국민연금은 2.4배가 된다. 국민연금에 비해 10년 늦게(1997년) 시작한 CPPIB는 현재 약 700조원을 굴리고 있어서 국민연금(지난해 말 기준 1212조원)에 비해 기금운용 규모가 낮지만, 높은 수익률 덕분에 향후 국민연금을 추월하고 3500조원(2050년 예상치)을 굴리는 ‘초대형 연기금’이 될 예정이다.
CPPIB가 높을 수익률을 달성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대체투자’에 있다.
기관투자자인 연금은 주식, 채권, 대체투자 세 분야에 보통 투자한다. 주식과 채권은 보통 이른바 ‘공모시장’서 실시간 가격이 바뀌는 투자상품이고, 대체투자는 ‘사모시장’, 즉 실시간 가격평가가 이뤄지진 않는 시장에 투자하는 것을 말한다.
대체투자엔 기업 인수합병을 위한 사모펀드 출자, 소수 기관투자자가 안정적으로 LTV 70%가량을 회사에 대출해주는 사모대출, 혹은 부동산(오피스·물류센터 등)과 인프라 투자 등이 있다.
평균적으로 대체투자 부문은 주식·채권시장에 비해 유동성이 부족하지만 그만큼 수익률이 높다는 장점이 있다. 이는 연금·보험사에게 유리하다. 왜냐하면 연금 생활자들은 앞으로 살아갈 날들(65세 은퇴 시 향후 약 30년)을 기준으로, 1/N로 연금을 수령하기 때문에 모든 자산을 ‘곧바로’ 현금화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공시에 따르면, 1988~2024년 동안에 대체투자 부문 연평균 수익률이 10.48%에 달했다. 반면 국내채권(3.71%) 해외채권(5.80%) 국내주식(5.40%) 등은 상대적으로 부진했다. CPPIB의 장점은 이 같은 대체투자에 전체 포트폴리오의 60%가량을 투자한다. 국민연금(약 15~20%)에 비해 매우 높은 비중이다.
국민연금 서울남부지역본부앞을 시민들이 지나고 있다. CPPIB는 대체투자 부문을 ‘직접 운용’하고 있다.
CPPIB의 핵심투자 부문인 대체투자를 담당하는 인원을 살펴보면, 2022년 말 기준 CPPIB엔 502명인 반면 국민연금은 96명에 불과하다. 1인당 운용규모가 CPPIB는 5700억원, 국민연금은 1조 5200억원이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전주에 있기도 하고 1인당 맡아야 할 금액이 많아서, 주로 ‘위탁’을 한다. 실제로 국민연금 자산군별 위탁운용수수료 현황 자료를 보면, 국민연금은 대체투자 부문에 2020년~2023년 6조 4591억원에 달하는 위탁수수료를 지급했다.
반면 CPPIB는 전문가가 많이 있다보니, ‘직접 투자’를 주로 하게 된다. 위탁을 하게 되면 출자금액의 약 1~1.5%를 매년 GP(위탁운용사)에 줘야 하는데, CPPIB는 이 부분을 절감하면서 전체 수익률을 끌어올린 것이다.
운용인력에 인센티브 필수CPPIB는 ‘고연봉’을 제시하며 각국의 인재를 영입하고 있다.
일례로, 지난해 말 퇴직한 김수이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B) 글로벌 PE 대표는 2024년 총 연봉으로 318만 캐나다 달러(약 32억원)를 수령했다. 김수이 대표의 기본연봉은 우리 돈으로 약 5억원. 다만 CPPIB는 그간의 성과를 1/N로 나눠서 지급하기 때문에, 해당 성과급까지 합하면 김수이 대표의 총 연봉은 기본급 대비 4배가 뛰게 된다.
반면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소속 CIO(투자총괄자)는 연봉이 2억원대 중반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들어 운용역 중 성과를 낸 사람에게 3억원대 연봉을 줄 수 있게끔 규정을 바꿨지만, 여전히 민간에 비해 낮다.
국내 한 사모펀드 업계 관계자는 “보통은 LP(기관투자자·출자자)는 갑의 위치에 있지만 돈을 못벌고, GP(위탁운용사)는 LP로부터 돈을 받아야 하는 을의 위치에 있지만 돈을 잘 버는 경향이 있다”라며 “그런데 CPPIB는 LP면서도 성과급 비중이 높아서 상당히 선호되는 직장 중 한 곳”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인센티브를 지급하지 못할까? LP측 한 관계자는 “기획재정부의 공공기관 관리지침상 총액인건비 제도가 있어서 특정인에게 인센티브를 많이 지급하면, 반대로 다른 쪽에서 인건비를 깎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총액 인건비 제도가, 국민연금에 좋은 인재를 유치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셈이다.
우리도 CPPIB를 벤치마킹해 국민연금을 ‘공공기관의 틀’에서 벗어나게 하고, 국민연금에 유능한 인재를 대거 영입하면서 수익률을 올려야 기금 고갈시점을 더 늦출 수 있다.
만일 국민연금이 향후 70년간 연평균 수익률을 현행 목표치(4.5%)서 9%까지 올린다면? 수익률 제고만 해도 연금 고갈시점을 20년 늦출 수 있다. 이에 더해 자동조정장치까지 도입되면, 2100년대 이후까지도 국민연금이 고갈되지 않고 지속가능할 수 있다.
국회는 현재 구조개혁의 방점을 ‘자동조정장치 도입(국민의힘)’ 혹은 ‘재정지원(더불어민주당)’으로 한정해서 말하고 있다. 다만 이보다도 더 근본적인 구조개혁은 바로 수익률 제고에 있다. 향후 논의될 구조개혁 방향이 바뀌어야 하는 이유다.
[나현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