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값 고공행진 속, 銀 저평가 부각, ‘부자아빠’ 콕 찍은 실버러시 본격화될까

    입력 : 2025.05.08 14:5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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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값이 다시 오르고 있다. 4월 19일 새벽(한국시간)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서 금 현물가격은 온스당 3315달러를 기록했다. 불과 넉달 전 “3000달러 고지”가 화제였으나 이제는 3300달러도 짧은 숨 고르기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글로벌 금융시장을 통틀어 단일 자산이 이렇게 빠르게 신고가를 갈아치운 전례는 드물다. 씨티그룹은 “금이 드디어 구조적 공급 부족 구간에 진입했다”라며 향후 3개월 목표가를 3500달러로 상향했다.

    현물 시장 체감온도도 뜨겁다. 한국금거래소 종로점 전광판에 순금 한 돈(3.75g) 시세가 처음으로 65만 6000원을 찍은 날, 종각 인근 금은방앞에는 ‘타이밍을 놓쳤다’라며 발걸음을 돌리는 투자자가 줄을 이었다.

    금융권도 들썩 골드뱅킹 가입 열풍

    최근 KB국민·신한·우리은행 세 곳의 골드뱅킹 잔액은 1년 새 4548억원이 늘어 1조원 선을 단숨에 돌파했다. 금을 0.01g 단위로 사고팔 수 있는 ‘통장 속 금’이 실물 금 시장을 압도하는 모양새다. 지난해 봄 대비 75% 성장이라는 숫자는 인플레이션·관세 전쟁·지정학 위험이 복합적으로 분출할 때 금이 가장 먼저 찾는 피난처임을 새삼 증명한다.

    이러한 상승세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는 중국 시장이 꼽힌다. 금 수입 세계 1위 중국의 수요가 다시 불붙었다. 중국 정부가 10개 보험사에 자산의 최대 1%까지 금 편입을 허용하자, 연간 255톤 규모의 추가 수요가 발생할 것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씨티은행은 “실물 적자가 심화하고 있어 가격이 올라야만 시장이 균형을 찾는다”라고 분석했다.

    여기에 미국발 관세 폭탄이 터질 때 마다 위안화 약세가 심화하면서, 중국 개인은 물론 기업 자금까지 금으로 몰린다.

    관세 직격탄 맞은 다이아, 금 엇갈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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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럼프발(發) 관세 전쟁은 귀금속 ‘투톱’의 운명을 갈랐다. 미국은 금·은·구리 같은 산업재 광물엔 면세를, 다이아몬드에는 10% 관세를 매겼다. 여기에 인도산 보석류에 최대 27%까지 추가 관세를 예고하면서 글로벌 다이아몬드 공급망이 사실상 ‘정지’됐다. 벨기에 앤트워프의 일일 선적량은 발표 직후 7분의 1로 급감, “배송이 멈춰 섰다”는 현지 증언이 나올 정도다. 결과는 가격 폭락이다. 국제다이아몬드거래소(IDEX) 지수는 1년 새 107.2에서 95.43으로 11% 빠지며 2001년 기준선(100) 아래로 내려갔다. 천연 가격을 짓누르던 ‘랩그로운’(합성) 다이아의 공세, 중국 혼인 건수 반 토막까지 맞물려 시장은 2024년 전보다 싸진 ‘역주행’ 시세를 목도하고 있다.

    반면 금의 경우 중국인민은행이 5개월 연속 사들이며 보유량을 2290톤으로 늘렸고, 국내 10억원 이상 자산가들도 ‘2025 웰스 리포트’에서 예금 다음으로 금을 선택했다. 골드만삭스는 연말 전망치를 3700달러로 상향하며 “관세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는 한 금의 독주는 이어질 것”이라고 진단한다. 관세 폭탄이 촉발한 이 대비극은 ‘안전자산 vs 사치재’의 체급 차이를 역설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금은비 102’가 던지는 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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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열된 금 시장 뒤에 은 가격은 저평가 국면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4월 19일 기준 국제 은 시세는 온스당 32.48달러였다. 금 가격을 은 가격으로 나눈 ‘금은비’가 102를 찍은 셈이다. 1:16이라는 지질학적 매장 비율, 그리고 60 안팎의 장기 평균 거래 비율을 떠올리면 은이 심각하게 저평가됐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한 시장 전문가는 “현재 금 1온스=은 102온스는 역사적 고점(125) 근처”라고 지적하며 “통계적으로 이런 구간 직후 은이 금 대비 초과수익을 냈다”라고 전했다. 과거 2003년, 2009년, 2020년 세 차례 위기 때 금은비가 80 이상으로 벌어졌고, 이후 2년 이내 은은 평균 40% 이상의 초과수익으로 복원력을 증명했다. 현재 비율 102는 그보다 더 극단적인 상황이다.

    실버뱅킹·ETF, 조용한 질주
    금은 여전히 신뢰 잣대지만,
    제조업 선행지표가 바닥을 찍고 돌아서는 지금은 산업 수요가
    높은 은과 구리에 더 큰 알파가 있다

    금값이 고공비행을 이어가는 동안, 은 투자도 조용히 세를 불렸다. 지난 4월 17일 기준 신한은행 실버뱅킹 잔액은 연초 445억원에서 4개월 만에 576억원으로 131억원 늘었다. 같은 기간 ‘KODEX 은선물(H)’ ETF는 7.3%, ‘TIGER 골드선물(H)’은 6.7% 상승했다. 귀금속 채굴주를 담은 ‘HANARO 글로벌금 채굴기업’ ETF는 단 일주일 만에 25% 폭등해 ETF 수익률 1위를 찍었다.

    한편, 재테크 베스트셀러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의 저자 로버트 기요사키는 SNS에 “은 가격 조작 시대가 끝났고 올해 안에 70달러를 본다”고 밝혔다. 음모론 같지만, 시장은 반응했다. 기요사키는 “1970년대 헌트 형제 독점 사태, 1997년 워런 버핏의 1억1120만 온스 매집, 2000년대 JP모건 스푸핑 사건, 2021년 ‘실버 스퀴즈’까지 익히 알려진 가격 왜곡 사건을 겪은 투자자들에겐 ‘언젠가 올 시간’이란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라고 주장했다.

    실버러시 가능성을 제기한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 저자 ‘로버트 기요사키’
    실버러시 가능성을 제기한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 저자 ‘로버트 기요사키’

    한편, 실버 연구소(The Silver Institute)는 2024년 산업용은 수요가 사상 처음 12억온스를 넘어섰다고 추산한다. 태양광 1GW 증설에 은 80톤이 소요되고, 전기차 한 대에는 평균 25~30g의 은이 들어간다. AI(인공지능) 시대 데이터센터용 전력케이블에도 은 도금이 필수다. 은이 ‘금의 레버리지’이면서 동시에 ‘산업의 쌀’이 된 이유다.

    최진영 대신증권 연구원은 “중장기적으로 금은 여전히 신뢰 잣대지만, 제조업 선행지표가 바닥을 찍고 돌아서는 지금은 산업 수요가 높은 은과 구리에 더 큰 알파가 있다”라고 진단했다. 그는 “OECD 경기확산지수가 반등했고 글로벌 금리 인하 순환도 최소 11월까지 이어질 전망”이라며 “금 대비 은 비중 확대를 검토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일례로 은 시장을 뒤흔든 헌트 형제 사건은 1980년 ‘은의 목요일’로 끝났지만, ‘금은비 16’이 이상적 가치라는 기억을 남겼다. JP모건은 2010년대 최소 8년간 스푸핑으로 9억 2000만 달러의 과징금을 물기도 했다. 다만 시장이 성숙해지면서 예전 만큼 노골적인 조작은 어려워졌지만, 공급량이 금의 500분의 1에 불과해 작은 매수세에도 가격이 출렁거린다는 특성은 여전하다.

    투자 방법별 수익률 차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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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버뱅킹은 저축통장처럼 편하지만, 실물 인출이 막혀 있다. 반대로 실버바는 현물 프리미엄과 VAT라는 높은 벽이 존재한다. 국내외 ETF는 매매가 쉽지만, 환차 손실과 세금 체계가 복잡하다. 고수들은 선물·CFD로 레버리지를 걸지만, 변동성은 ‘양날의 칼’이다. 결과적으로 초심자는 통장과 ETF를, 장기 보유자는 실물과 혼합 전략을 고려하는 쪽이 무난하다.

    투자자로서 약간의 딜레마가 존재한다. 금은 역사적 신고가, 은은 역사적 저평가 국면임에도 은은 변동성이 큰 자산으로 꼽힌다. 달러 강세 국면에선 은 선물 ETF의 가파른 만기 연장 비용이 부담이고, 실버바는 10% 부가세와 보관료가 상수다. 실버뱅킹은 3.5% 내외의 매매수수료가 녹아 있다. 그런데도 브로커 창구에는 ‘실버 통장 문의’가 하루에도 수 십 건씩 이어진다고 한다.

    최 연구원은 “비관적 물가 지표가 튀어나오는 달엔 금·은이 동반 조정받을 수 있다”라며 “여기에 비트코인 같은 대체 자산이 존재한다는 점도 예전과 다른 변수지만 그러나 실물 수요가 뒷받침되는 은의 경우 조정은 매수 기회로 전환될 가능성이 크다”라고 분석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세계 태양광 설치량은 올해 600GW로 전년 대비 30% 증가할 전망이다. 여기 들어갈 은만 4만 8000톤, 전체 광산공급의 두 배가 넘는다. 실버 인스티튜트는 “2025년까지도 구조적 적자가 이어진다”라고 본다. 산업 수요가 견인하는 공급 공백은 결국 가격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이영훈 삼성증권 연구원은 “미 국채 금리가 급등하면서 ‘논이자 자산’인금이 주목받는 역설적 상황”이라며 “실질금리가 다시 마이너스로 진입하면 금뿐 아니라 은에도 강력한 랠리 불씨가 남아 있다”라고 말했다. 금값은 사상 최고치에 올라섰지만, 시장은 여전히 금을 사고 있다. 그만큼 불안이 깊다는 방증이다. 역설적으로 그 불안은 금의 그림자인 은을 조명하기 시작했다. 안전자산이면서 산업재인 은의 복합 속성이, 한쪽 날개만으로 날아온 금 랠리를 이어받을 준비를 끝낸 셈이다. 금은비 102라는 숫자는 투자 교과서가 열어 둔 가장 넓은 스프레드인 것이 사실이다. ‘부자 아빠’의 과격한 예언처럼 70달러까지 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태양광과 전기차, AI라는 실물 수요 엔진이 과포화된 투자심리를 끓이고 있는 만큼, 이번 실버러시가 단순한 구호에 그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박지훈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76호 (2025년 5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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