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artⅡ] 기술력 어디까지, 저가라던 LFP 배터리, 韓 뛰어넘어 자율주행 기술은 中서 사와야 할 판

    입력 : 2025.05.07 16:29:28

  • 최근 개최된 ‘서울모빌리티쇼 2025’의 BYD 부스에서 포착된 장면. 부스 한편에서 상영된 화재 실험 영상에서는 K-배터리가 강점을 지닌 NCM과 BYD의 LFP 기반 블레이드 배터리가 비교됐다. 송곳이 배터리를 관통하자 NCM에서는 불길이 치솟았지만, 블레이드 배터리는 끝내 불이 붙지 않았다. 중국산이 안전하다는 강렬한 메시지를 관람객들에게 각인시키는 장면이었다.

    중국 전기차·배터리 기사마다 빠지지 않는 또 다른 단골 댓글은 “중국산은 내수시장으로만 먹고 산다”다. 하지만 이런 인식에도 이제 변화가 필요하다. 중국 배터리 제조사 CATL이 비(非)중국 시장에서도 K-배터리를 제치고 1위에 오른 것마저 더 이상 새로운 뉴스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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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숫자보다 더 확실한 건 현장의 분위기다. 중국 기업들의 위상은 현장에서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유럽 인터배터리 2024, 오토차이나 2024(베이징 모터쇼), 인터배터리 2025, 2025 서울모빌리티쇼 등 국내외 여러 전시회장에선 중국 기업 부스마다 구름떼처럼 관람객들이 몰려들며 뜨거운 관심을 보인다.

    이처럼 중국 전기차에 주목하는 이유 중 하나는 기술력이다.

    배터리 연구·개발(R&D) 분야에서도 중국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차세대 배터리 기술인 전고체 배터리, 셀투팩(CTP·Cell to Pack)도 한국, 일본 기업보다 빠른 양산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제는 가격 경쟁력뿐 아니라 기술력도 앞선다는 평가다.

    지난해 호주전략정책연구소(ASPI)가 발표한 주요 국가의 ‘지난 20년간 핵심 기술 추적 지표’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배터리 연구 성과를 주도하고 있는 상위 30개 기관 중 27곳이 중국에 있다. 2023년 기준배터리 분야 논문에서 인용 수가 많은 상위 10% 논문 중 약 76%가 중국 연구자의 논문이었다. 이어 미국(5.6%), 한국(3.9%) 순이었다. 2003년 중국 연구의 기여도는 10%였다.

    국내 완성차 업체의 한 관계자는 “삼성SDI, LG에너지솔루션 등 한국 기업의 기술력도 뛰어나다”면서도 “글로벌 시장에서 아직 중국 LFP의 안전성을 더 인정하는 분위기가 있는 게 사실”이라고 평가했다. 국내 배터리 업계 관계자도 “국내에서는 제품 완성도나 안전성을 잘 알지만, 해외 고객사들은 여전히 화재 안전성에 대한 불안을 갖고 있어 이를 설득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충전 기술에서도 중국 기업들은 놀라운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BYD는 최근 5분 충전으로 470㎞를 주행할 수 있는 기술을 공개했고, CATL 역시 1회 충전으로 1000㎞를 달릴 수 있는 배터리를 발표하며 업계를 놀라게 했다. 물론 상용화 여부는 검증이 필요하지만. 중국 기술력이 글로벌 무대에서 충격을 주고 있음은 분명하다. BYD의 새로운 초고속 충전 기술인 ‘슈퍼 e-플랫폼’은 최대 1000㎾(1㎿) 전력을 지원해 배터리를 5분 충전하는 것만으로 전기차가 400㎞(약 249마일)를 주행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이다. BYD 관계자는 “현재 최고 수준의 전기차 전압은 800~900V 수준에 그치지만 BYD의 기술은 이를 능가했다”고 설명했다.

    중국 전기차 제조업체 BYD가 선전 본사에서 새로운 전기차 플랫폼 ‘슈퍼 e-플랫폼’을 공식 발표했다.
    중국 전기차 제조업체 BYD가 선전 본사에서 새로운 전기차 플랫폼 ‘슈퍼 e-플랫폼’을 공식 발표했다.

    BYD의 기술이 상용화할 경우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는 시간이면 충전을 완료할 수 있다. 전기차 보급의 걸림돌 중 하나던 ‘긴 충전 시간’ 문제를 해결한 셈이다. 배터리 업계의 한 관계자는 “만일 이 기술이 안전하고 저렴하게 상용화될 수 있다면 그야말로 전기차시장의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라며 “저가 배터리시장을 장악한 중국업체들이 이제 최첨단 시장까지 치고 들어오고 있다”고 우려했다.

    세계 최저 수준의 생산 원가 역시 빅테크 기업 등 중국 자동차 업체가 우후죽순 자동차 산업에 뛰어드는 배경이 되고 있다. 삼성증권에 따르면, 지난해 비야디의 차량 1대당 매출 원가는 1만 7400달러로, 테슬라의 절반 수준이다. 매출 원가는 생산과 판매에 드는 각종 비용을 뜻한다. 수년 전 테슬라가 주조 기계(기가 프레스)로 특수 알루미늄 합금 소재로 제작된 차체를 찍어내는 ‘기가 캐스팅’을 도입하며 제조 공정을 단순화하고 비용 혁신을 이뤘고, 중국 자동차 기업들이 이를 잇따라 도입하고 있다. 여기에 중국의 낮은 임금과 탄탄한 공급망도 원가를 낮추는 데 기여하고 있다. 또한 내수 시장을 바탕으로 급성장한 중국 전기차·배터리 기업과 대학·연구 기관이 손잡고 자체 생태계를 활용해 캐즘 극복은 물론 차세대 기술뿐 아니라 미래 전기차 생태계까지 주도하고 있는 셈이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중국 전기차시장이 워낙 크고 정책적 지원도 잘되다 보니 특정 기술은 한국보다 앞서기 시작했다”며 “한국도 정부 차원의 정책적 지원과 규제 완화 등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세계 최저 수준 생산단가 강점

    자동차 업계의 최대 화두인 자율주행 분야에서도 중국의 기술력은 도드라진다. 중국에서는 이미 자율주행차가 일상이 됐다. 상하이, 충칭, 우한 등 중국 주요 도시 여러 곳이 자율주행택시의 운전석에 안전 요원이 탑승하지 않는 레벨 4단계의 운행을 승인했다. 자율주행택시의 목적지였던 베이징경제기술개발구에서는 지난해부터 정해진 구간 안에서는 완전 무인 자율주행 택시가 운영되고 있다.

    바이두가 운영하는 ‘아폴로 고’는 중국에서 가장 앞서 있는 자율주행차 서비스 업체 중 하나다. 이 회사는 현재 베이징과 우한 등 중국 10여 개 도시에서 무인 자율주행택시를 운영 중이다. 2013년부터 자율주행 기술을 개발해온 바이두는 올해 3월 기준 누적 주행거리가 1억 5000만km이며, 서비스 제공 건수도 1000만 건을 넘어섰다.

    세계 유수의 인공지능 기업 중 하나인 바이두는 자율주행 택시 ‘아폴로 고’ 차량 호출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세계 유수의 인공지능 기업 중 하나인 바이두는 자율주행 택시 ‘아폴로 고’ 차량 호출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다만 중국에서도 자율주행차법 제정 작업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사람이 운전하는 자동차를 기준으로 만들어진 기존 도로교통법은 물론이고 자율주행을 위해 필수적인 각종 데이터 수집과 관련 개인정보보호법, 그리고 사고 시 탑승자의 책임 소지를 정할 보험업 법도 함께 들여다봐야 하기 때문이다.

    자율주행차에 대한 불신과 우려가 적지 않은 것도 극복해야 할 부분으로 꼽힌다. 특히 최근 자율주행 보조 기능을 켠 채 운전하던 여대생 3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중국 내에서 자율주행 서비스의 안전성에 대한 논란이 커지는 분위기다.

    차량용 반도체 장악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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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율주행의 핵심 부품인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도 적극 도전하고 있다. 중국은 10여 년 전부터 관련 산업을 육성했지만, 해외 기술에 의존하다 최근 들어서야 국산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 중국 전기차 업체들이 잇따라 반도체 개발에 성공하면서, 미래차 기술과 시너지가 확대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반도체 기술을 바탕으로 미래 기술이 탑재된 자동차를 자체 생산하고, 그 차를 자국 내에서 실험하면서 ‘미래차 생태계’를 확고히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 전기차 업체 니오는 자율 주행차에 적용될 AI 반도체 ‘NX9031’을 지난해 개발, 올해 출시하는 세단 ‘ET9’에 탑재한다. 중국 샤오펑은 특정 구간에서 무인으로 달리는 ‘레벨4’ 수준의 자율 주행차에 적용하기 위해, 지난해 AI 반도체 ‘튜링’을 개발했다. 데이터 처리 속도가 기존 샤오펑 차에 탑재되는 반도체 대비 3배에 가깝다. 로봇과 플라잉카 등에도 향후 적용하겠단 계획이다.

    중국 1위 업체 BYD는 운전석 주변 구동에 쓰이는 ‘BYD 9000 스마트 콕핏 칩’을 개발, 산하 브랜드 팡청바오의 대형 SUV ‘레오파드8’에 장착했다. 지난해 초 자율 주행기술 개발에 1000억위안(약 2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고, 상당 부분은 자율 주행에 필요한 반도체 개발에 투입될 전망이다. 중국 정부는 반도체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 유럽 업체들의 러브콜을 적극 수용하고 있다. 유럽 2위 반도체 기업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가 차량용 반도체 생산을 위해 중국 현지에 세운 공장은 올해 말 가동에 들어갈 예정이다. 네덜란드 기업 NXP도 최근 중국 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기업과 반도체 생산 계약을 맺었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속 중국 내수와 기업들의 나 홀로 성장이 이어지고 있어, 반도체 분야에서 중국의 부품 국산화에 속도가 점점 붙을 거란 전망이다.

    [김병수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76호 (2025년 5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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