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인들은 내수로 활로 모색 소비자들은 ‘애국소비’로 호응

    입력 : 2025.04.25 17:35:10

  • 中 “끝까지 싸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이 지난 4월 14일 베트남 하노이 공산당 중앙위 청사에서 또럼 서기장과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이 지난 4월 14일 베트남 하노이 공산당 중앙위 청사에서 또럼 서기장과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미·중 무역 전쟁이 파국적인 치킨게임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 2월 미국이 중국산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한 뒤 두 나라가 보복에 보복을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17일 기준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미국의 관세율은 총 145%까지 치솟았다.

    미국산 수입품에 대한 중국의 관세율도 125%에 이른다. 사실상 양국 간 무역이 멈춰선 셈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한치의 양보 없이 팽팽한 대립을 이어가고 있어 세계 경제와 무역에 대한 우려와 불안은 커지고 있다.

    중국 외교부는 지난 4월 17일(현지 시간) 입장문을 내고 “관세 전쟁과 무역 전쟁에는 승자가 없다”며 “중국은 싸움을 원치 않지만 싸움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이 관세를 무기화해 괴롭힘과 협박을 일삼고 있다”며 “만약 미국이 관세 숫자놀음을 계속한다면 중국은 이를 무시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미국이 추후 관세율을 더 인상한다 해도 경제적으로 큰 의미가 없다고 보고 이에 대응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한 것이다.

    중국은 그동안 미국의 관세 부과 조치에 보복으로 일관해왔다. 트럼프 행정부가 펜타닐 유입을 이유로 지난 2월부터 중국산 수입품에 두 차례에 걸쳐 총 20%의 관세를 부과하자 중국은 미국산 석유와 농·축산물 등에 최대 15%의 관세를 연달아 매겼다. 지난 4월 들어 미국이 꺼내든 상호관세에도 보복 관세와 수출 통제 등으로 즉각 맞대응했다. 뉴욕타임스(NYT)는 ‘강대강’으로 대치하는 양국 모습에 “통상 전쟁에서 결코 물러설 의사가 없다는 명확한 신호”라고 분석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 협상에 나설 무역 상대국에 중국과의 무역 억제를 요구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의 우회로를 차단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또 엔비디아의 중국 수출용 저성능 AI 반도체 ‘H20’과 H20과 비슷한 성능을 내는 AMD의 ‘MI308’까지 대중 수출 통제 목록에 포함시켰다. 미국의 압박이 지속되는 가운데 중국은 유럽연합(EU)과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등 주요국과 관계 개선에 나서며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시 주석은 지난 4월 14일부터 베트남·말레이시아·캄보디아 동남아 3개국을 순방하며 ‘운명공동체 구축’을 강조했다. 오는 7월에는 베이징에서 EU와 정상회담도 개최할 예정이다.

    판로 바꾸는 中 상인들

    대미 수출 길이 사실상 끊기다시피하면서 중국의 수출업자들은 잇따라 판로를 변경하고 있다. 세계 최대 도매시 장인 중국 저장성 이우시장의 도매상들은 EU 등으로 수출을 늘리며 거래선을 다변화하거나 수출 물량을 내수로 돌리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중국 경제매체 제일재경에 따르면, 이우시장에서 파티·할로윈 용품을 도매로 판매하는 니에 쯔친 사장은 최근 대EU 수출량을 늘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미국 수출 비중이 전체의 50%에 달했으나 올해 들어 이어진 미국의 대중 관세 부과에 수출 판로를 다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니에 사장은 “미국의 관세 부과 조치로 매출의 30~40% 가량이 영향을 받고 있다”면서도 “유럽 등 다른 시장으로의 수출을 늘리거나 국내 명절에 대비한 상품들을 개발해 내수 판매처를 확대해나갈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이우시장에서 스포츠 용품을 판매하는 장신강 사장은 “미국에 있는 창고에 일정한 재고가 있고, 약 한 달은 버틸 수 있다”며 “높은 관세가 계속 유지된다면 제품 가격은 오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우시장의 핵심 운영사인 샤오샹핀청은 지난 4월 9일 공고를 내고 최대주주인 이우중국샤오샹핀청홀딩스가 5억~10억위안을 투자해 회사 주식을 매입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를 통해 미국의 대중 관세 조치에 대응할 수 있는 체력을 키우겠다는 것이다.

    세계 최대 도매시장으로 불리는 이우시장은 미식 축구장 1000개를 모아놓은 것보다 규모가 크다. 이곳에 입점해 있는 판매상만 7만 5000개에 달한다.

    좁아진 수출 길을 대신해 내수로 눈을 돌리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 중국상업연합회 등 7개 경제인협회는 지난 4월 11일 공동성명을 내고 “미국의 관세 인상에 따라 내수 시장 확대, 내외무역 통합추진, 수출상품의 내수 전환 촉진이 시급한 과제가 됐다”며 “수출기업들이 직면한 긴급 압박을 완화하기 위해 매칭 채널과 판매 플랫폼을 구축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중국 대표 전자상거래 업체인 징둥닷컴은 향후 1년간 총 2000억위안(약 40조원) 규모 수출 상품을 내수용으로 구매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중국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궈차오’(애국 소비) 열풍이 다시 불기 시작했다. 미국의 잇따른 대중 관세 부과에 맞선 보복 관세로 미국산 수입품 가격 인상이 예고된 데다 미국이 연이어 ‘중국 때리기’에 나서면서 소비자들의 반감까지 더해져 ‘가성비’가 우수한 자국 제품 수요가 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중국산 전기차 인기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지난 4월 15일 오후 베이징의 대표 번화가 왕푸징에 있는 화웨이 매장에서 만난 60대 중국인 A씨는 화웨이의 전기차 브랜드 ‘아이토’가 출시한 M8을 둘러본 뒤 “차를 정말 잘 만든 것 같다”며 “할인 여부를 알아본 뒤 구매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반면 베이징 차오양구의 한 테슬라 매장은 한산했다. 매장 안에는 손님을 기다리는 직원들만 보였다. 입구에 들어서자 올해 4월 ‘모델Y’의 ‘3년 무이자’ 프로모션을 알리는 입간판이 눈에 띄었다. 차 가격의 3분의 1을 선납부하면 잔금을 3년간 이자 없이 분할 납부하는 방식이다.

    중국 소셜미디어(SNS)도 애국 소비를 부추기고 있다. 유명 인플루언서들이 “명품들이 중국에서 저가로 제조하면서 브랜드값을 더해 비싸게 판매하고 있다”는 취지로 올린 비판글과 영상이 큰 호응을 얻고 있는 것이다. 주된 내용은 “약 5400만원에 판매하는 에르메스 버킨백의 원가가 190만원에 불과하다” “시중에서 약 14만원에 판매하는 룰루레몬의 레깅스가 중국 공장에서는 5~6달러면 살 수 있다” 등이다.

    [송광섭 특파원]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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