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현덕의 한국기업 탈각의 순간들] 코스맥스 | ④ 일본 제휴선과 결별하다

    입력 : 2025.03.28 17:24:25

  • ▶ 손현덕의 <한국기업 탈각(脫殼)의 순간들>
    성공한 기업들은 보면 결코 우연이란 건 없습니다. 운이 따랐다 한들 그 운을 기회로 만든 결정적 순간이 있습니다. 마치 뱀이나 매미가 껍질을 벗듯, 탈각(脫殼) 이전의 기업과 이후의 기업은 전혀 다릅니다. 담대한 변신으로 위대한 성공을 이끈 기업가의 여정을 기록합니다.
    코스맥스 화성공장에서 쿠션 파운데이션 제품이 생산되고 있는 모습
    코스맥스 화성공장에서 쿠션 파운데이션 제품이 생산되고 있는 모습

    코스맥스는 1992년 당시 대웅제약 임원으로 근무하던 이경수 회장이 만 45세의 늦은 나이에 창업한 회사다. 당시 상호명은 한국미로토. 일본의 화장품회사인 미로토의 기술을 들여와 제품 생산에만 특화하는 OEM(Original Equipment Manufacturing; 단순주문자 생산)으로 출발하려고 했다. 그러다가 지금과 같은 ODM(Original Development & Design Manufacturing) 회사로 업그레이드 된 것이다. OEM과는 달리 주문자의 요구에 따라 제조업체가 주도적으로 제품을 생산하는 방식이다. 한국미로토란 회사는 2년 뒤 이름을 코스맥스로 바꾼다. 일본 브랜드를 버리고 독립을 한 것인데 사연이 있다.

    창업 때부터 기술의 중요성을 인식한 이 회장은 라미화장품 출신 고(故) 이규식 소장을 연구소장으로 뽑았다. 이 회장이 동아제약에 잠시 다닌 적이 있고, 당시 동아제약이 라미화장품이란 계열사를 두고 있었기 때문에 라미 출신 위주로 사업을 시작했다. 연구소장, 공장장이 모두 라미화장품 경력자였다. 그런데 미로토 측에서 항의가 왔다. 연구소장을 해고하지 않으면 기술제휴를 하지 못하겠다는 최후통첩이 왔다. 기술 줬다가 탈취당할지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때 이 회장은 중대 결심을 한다.

    “남의 회사 잘 있는 분 스카웃 해서 데려왔는데 바로 내보내라 하니 그럴 수가 있겠는가. 아무리 미로토가 가진 기술 다 우리한테 준다고 한들 그건 영원한 하청기업을 자초하는 일 아닌가. 그래, 남의 기술에 예속돼서 언제까지 가겠는가. 힘들지만 처음부터 독립하자.”

    연구소장을 해고하지 않자 일본 미로토는 계약 해지 통지서를 보냈고 이 회장은 어쩔 수 없이 회사 이름을 바꾸게 됐다. 그게 창립한 지 2년이 지난 1994년의 일이다. 이 회장은 “그 때의 결별이 없었다면 지금의 글로벌 기업 코스맥스는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 소장은 코스맥스로서는 보배 같은 인재였다. 창업 당시 충남 예산에 공장부지를 마련했는데 그 지역이 농공단지라서 허가가 나지 않아 고전하고 있었다. 이때 이 소장은 지금의 화성 공장으로 이전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화성은 제약단지인데 화장품은 안된다라는 명시적 금지 규정이 없는데다 개발촉진구역이라 가능할 것 같다는 의견을 냈다. 어렵사리 정부와 지자체를 접촉한 결과 입주업체 100% 동의를 받으면 허가를 내주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그래서 그걸 발로 뛰어 전체 동의를 받고 화성에 공장을 세우게 된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아예 사업을 못할 뻔 한 걸 그가 해낸 것이다. 이 회장은 “참 고마운 분”이라고 말한다.

    후일담이지만 동양에서는 넘사벽이라고 할 수 있는 일본의 화장품이 이제 한국의 공습으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미로토는 여전히 일본에서 화장품 OEM/ODM 사업을 하지만 30년 전과 비슷한 수준이다. 한때 미로토라는 이름을 사용했던 코스맥스는 30년 뒤 글로벌1위 기업으로 성장했다.

    일본 화장품 업계에서는 코스맥스의 일본 진출을 두고 ‘흑선’이라 표현한다. 19세기 말 일본에 통상을 압박하기 위해 미국 매슈 페리 제독이 몰고온 함대를 일본에선 흑선이라 불렀는데 코스맥스를 그렇게 본 것이다.

    OEM/ODM 회사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브랜드로 제품을 내놓지 않는다. 1차 고객은 화장품 기업이지 소비자가 아니다. 그러다 보니 거기서 무엇을 만드는지 일반인들은 잘 모른다. 어떤 중요한 기술이 있는지 역시 일반인들의 관심사는 아니다. 그래서 착안한 것이 기술브랜딩. 소위 기술의 소비자 언어화이다.

    이 회장은 고어텍스의 예를 든다. 코스맥스가 25주년 맞은 2017년 11월12일 기념일에 새로운 로고를 발표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고어텍스는 미국 화학회사인 듀퐁의 연구원 빌 고어가 발명한 것이다. 기술의 내용인 즉, 열이나 약품에 강한 테플론계 수지를 늘려서 가열하고 작은 구멍을 무수히 뚫은 아주 엷은 막이다. 방수가공을 통해 더운 습기가 차는 문제를 해결한 기술로 이제는 등산복 시장에서 그냥 ‘고어텍스’란 카테고리를 생성했다. 그 브랜딩이 큰 부가가치를 창출했다. 코스맥스도 우리 만의 대표기술을 브랜딩 했을 때 코스맥스에서 만든 건 비싸게 팔아도 된다는 인식이 생길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언급된 피부전달체 ‘플러스좀’을 비롯해 균일하고 가벼운 메이크업 효과를 주는 미세파우더 기술인 엑스파인(Xfine), 쿠션감 있는 촉촉한 젤리타입의 메이크업제형기술인 젤텍스(Jelltex) 등 무수한 기술 브랜딩이 있다.

    코스맥스에 찾아온 세 번의 기회
    사진설명

    이제 와 코스맥스의 30년 넘는 기업사를 돌아보면 참 놀랍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 그룹 매출은 3조원을 웃돈다. 코스맥스란 이름을 단 게 1994년인데 이때 매출은 13억원. 무려 2,300배다. 30년 동안 연평균 성장률이 30%. 초기 10년간은 100억원, 그 뒤 두번째 10년 간은 1000억원 단위로, 마지막 세 번째 10년간은 조원 단위로 어림잡아 10년 단위로 10배씩 성장했으니 말 그대로 폭풍 질주다.

    이경수 회장은 겸손하게 “운이 좋았다”고 말한다. 10년마다 총 세 번의 기회가 찾아왔는데 그걸 용케도 성장의 모멘텀으로 잡았다고 한다.

    첫 번째 기회는 브랜드숍의 출현이었다. 1980년대 우리나라 화장품 사업은 기본적으로 방문판매가 기본이었다. 태평양화학(현 아모레퍼시픽)이 주도했다. 그러다가 90년대 들어서면서 LG생활건강이 화장품 전문점이란 개념을 들고 나와 이 두가지 형태가 양립하게 된다. 생산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는 OEM 형태로 사업을 했다.

    그러다가 2000년대 들어 브랜드숍, 정확히는 원브랜드숍, 즉 하나의 브랜드 제품으로 영업을 하는 기업이 탄생했다. 2003년 ‘미샤’가 나오더니 곧 이어 ‘더페이스샵’이 등장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거품을 뺀 가격정책으로 승부한다는 것. 가성비를 무기로 젊은 층을 집중 공략했다. 당연히 생산은 중소업체에 의뢰했다.

    “시장 상황을 보기 위해 자주 명동을 나가는데 분위기가 달라진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부산, 대구를 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가성비 높은 화장품이 먹히는 것이었습니다. 원브랜드숍, 이거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소 더페이스샵 사장을 알고 지냈는데 한번 보자고 했지요. 그에게 당신이 파는 화장품 우리가 다 만들어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그리고 약속을 했습니다. 우리가 부자재 등은 절약하더라도 내용물 품질 만은 양보하지 않겠다고. 3개월 만에 250개 제품을 만들어 줬습니다. 연구소와 생산 역량을 키웠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일본 미로토와 같이 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두 번째 기회는 중국에서 찾아왔다.

    외환위기를 전후로 한국에서만 사업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던 이경수 회장. 그는 지금은 200억원 매출의 규모의 작은 회사지만 향후 성장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중국진출을 결심한다. ‘아직 화장품 시장이 열리지 않았지만 물꼬가 터지기만 하면 어마어마한 시장 아니겠는가’라는 생각을 실천에 옮긴다. 해외기업의 합작 진출 제안이 있었지만 거절했다. 우리 힘으로 뚫어보겠다고 작정한 그는 중국 로컬회사와 동반 성장하자는 목표를 세우고 상하이에 터를 잡았다.

    2004년이었다.

    “이 때부터 글로벌 회사들을 공략하기 시작했습니다. 박람회를 돌아다니며 바이어들을 만났습니다. 로레알과의 인연도 그렇게 시작된 것입니다. 3년을 감사하는데 까다롭게 꼬치꼬치 따지고는 발주할 생각은 안하는 것이었습니다. 오기 발동. 그래, 공짜 컨설팅 받는다고 생각하자. 그러면서 견뎠습니다.”

    그는 이 당시 직원들 앞에 새로운 경영방침을 밝힌다. 첫째, 국내 일류 회사의 주력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 둘째, 글로벌 회사의 제품을 만들고 싶다. 셋째, 10년, 20년 동반 성장하는 고객을 만나고 싶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건 연구와 혁신. 스피드와 유연성을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이때 코스맥스는 OEM의 때를 벗고 완전한 ODM 회사로 탈바꿈한다.

    현재 중국 시장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국제정치적 역학 관계도 있고, 성장의 한계에 직면했다는 전망도 있다. 그러나 이경수 회장은 숱한 비관론 속에서도 희망을 본다.

    “중국은 14억명 이상의 인구를 보유한 인구 대국입니다. 2004년 코스맥스가 중국 시장에 최초 진출할 당시 중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는 1400~1500달러 수준이었습니다. 2023년 기준 중국의 1인당 GDP는 약1만3천달러까지 성장했습니다. 20년 만에 약 10배 가까이 증가한 셈이죠. 베이징, 상하이 등 대도시만 놓고 보면 훨씬 더 높은 수준입니다. 대도시 외에 3선, 4선급 지방도시 등이 성장하면 중국 내에서 ‘화장하는 인구’는 더욱 증가할 것이 확실합니다. 지금은 중국 시장이 잠시 숨고르기를 하고 있지만 언젠가 성장 모멘텀이 올 것이라고 봅니다. 이에 대비해 코스맥스는 2026년 코스맥스차이나 신사옥 건립을 추진 중입니다. 한 공간에서 연구, 생산, 마케팅까지 화장품 ODM 사업의 모든 것이 가능한 공간으로 조성할 예정입니다.”

    세 번째 기회는 인디브랜드의 급부상이다. 대형 화장품 회사에 속하지 않고 말 그대로 독립적으로(independent) 운영되는 소규모 브랜드들인데 개성있는 콘셉트로 발 빠르게 트렌드를 쫓아가면서 시장을 잠식하는 화장품. 이 인디브랜드가 K컬처를 등에 업고 급신장했다.

    “사실 인디브랜드의 부상을 예상했다고 하면 거짓말일 겁니다. 그러나 뭔가 낌새는 감지했죠. 온라인이 확장되면서 신규 브랜드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늘어날 것이란 예상을 하고 5년전부터 온라인 전담팀을 만들었습니다. 그게 인디브랜드의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하게 된 것입니다.”

    과거 한국에는 여러 화장품 회사들이 있었다. 그러나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을 제외하면 두각을 나타낸 기업은 거의 없었다. 매출 1000억원을 대부분 찍지 못하고 사그라졌다. 그런데 코스맥스가 거래하는 인디 브랜드 중 매출 1000억원을 올리는 곳은 무려 24개. 그야말로 격세지감, 천지개벽이다. 현재 미국 화장품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하는 나라는 당연하게도 한국이다. 종주국 프랑스를 작년에 제쳤다. 미국 아마존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파운데이션은? 물론 한국제품. 티르티르다.

    인디브랜드 화장품을 하는 기업가 중 록커 출신의 김태욱씨가 있다. 한때는 부인 채시라씨가 훨씬 유명했으나 지금은 김태욱씨가 압도적으로 유명하다. 그가 론칭한 색조화장품 롬앤. 별도의 오프라인 매장 없이 올리브영이나 면세점, 자사몰에서 제품을 팔다가 일본 시장에서 대박이 났다. 일본 편의점 대표주자인 로손이 롬앤과 손을 잡았다. 로손이 그때까지는 론칭한 브랜드는 단 하나, 시세이도였다. 그런 일본이 한국의 인디브랜드 롬앤의 화장품을 파니 일본시장에서 K뷰티의 위력을 짐작할 만하다. 그 롬앤을 만드는 회사, 바로 코스맥스다.

    (다음 회차에서 이어집니다.)

    [손현덕 대표]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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