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년 전 2% 고정금리 때 무리한 대출 ‘영끌족’ 변동금리 전환대출 50조원 후폭풍 없나?

    입력 : 2025.03.17 10:2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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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년 전 저금리 시절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 주택을 구입한 이른바 ‘영끌족’에게 고금리와 경기 침체라는 후폭풍이 덮치고 있다. 채무자가 돈을 갚지 못해 담보로 잡아둔 집이 경매로 넘어가는 임의경매가 11년 만에 최다를 기록했다.

    대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해 임의경매 개시 신청 부동산(건물·토지·집합건물)은 13만 9874건이었다. 한 해 전인 2023년 임의경매 건수인 10만 5614건보다 32.4% 늘어났다. 2013년 14만 8701건 이후 11년 만에 최대 규모이기도 하다. 임의경매는 채무자가 돈을 갚지 않을 때 채권자가 담보로 잡아둔 물건을 경매로 넘기는 것이다.

    전국 시군구별로 살펴보면 부산 수영구에서 지난해 임의경매 건수가 전년 대비 227.7% 늘어나 부산의 부동산 경기 침체 상황을 여실히 보여줬다. 부산 중구에서도 임의경매 건수가 전년보다 203.7% 증가했다.

    서울에서는 구로구 임의경매 증가율이 169.3%로 가장 높았고, 그 뒤로 중랑구 89.7%, 관악구 82.4%, 금천구 65% 순이었다.

    올해부터는 ‘영끌’이 집중됐던 2020년 ‘5년 고정 후+변동금리’ 금리혼합형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사람들의 이자 부담이 더 커진다. 교보증권에 따르면 올해부터 6개월마다 20조원 규모의 저금리 고정금리 대출이 변동금리로 전환된다. 금융권 금리혼합형 주담대는 2019~2021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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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남서도 경매 사례 빈번

    최근 들어 강남에서도 빚을 갚지 못해 경매로 넘어가는 사례가 빈번해지고 있다. 최근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4지구 재건축 단지 ‘메이플자이’ 조합원 입주권에 대해 임의경매가 진행됐고,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4차 전용면적 118㎡ 물건도 임의경매에 나왔다.

    지난해 7~9월 강남권 아파트 경매 진행 건수는 월 20~30건에 불과했지만, 당국의 대출규제가 시작되고 집값 상승세가 꺾인 지난해 10~11월에는 50~60건으로 늘어났다.

    이주현 지지옥션 전문위원은 “예전에는 부채 압박을 이기지 못한 물건이 경매로 풀리기 전에 매매 시장에서 대부분 소화됐지만, 최근에는 부동산 시장 침체로 경매 시장에 더 많은 물건이 쏟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노도강(노원·도봉·강북) 지역은 금리가 급격히 오른 2023년부터 경매가 속출하고 있는 지역으로 꼽힌다. 대표적인 예시는 서울 노원구 중계동 아파트를 5년 전 5억 1000만원에 매입한 30대 A씨다. 당시 그는 계속되는 집값 폭등에 서울 외곽에라도 내 집 마련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집값의 60%가량인 3억 1000만원을 대출받아 이른바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로 구매했다. 집을 산 후 1~2년간 저금리가 지속되고 집값이 다소 오르면서 A씨는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2022년부터 전 세계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국내 대출 금리도 같이 올랐다. A씨 자금 사정도 덩달아 악화됐다. 은행에서 더 이상 대출을 받기가 어려워지자 A씨는 집을 담보로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렸다. 금리가 계속 오르면서 A씨가 더 이상 대출이자를 상환하지 못하자 대부업체는 A씨 소유 아파트를 임의경매에 넘겼다. 한 때 A씨 소유였던 아파트는 한 차례 유찰을 거친 뒤 지난해 9월 소유권이 넘어갔다.

    이 같은 사례를 볼 때 저금리 당시 성행했던 ‘영끌’ 부메랑은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과도한 대출로 임의경매로 넘어간 부동산이 13년 만에 최대치를 찍었다. 앞으로 고금리가 더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아 사정이 더욱 나빠질 수 있다.

    정치 리스크와 대외경제 변수로 달러당 원화값이 1450원대를 넘나들고 있다. 한국은행은 경기 침체 우려에도 불구하고 지난 16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미국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경제 정책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가 높아지며 국채 금리가 치솟고 있다. 금리가 내려가기 어려운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 영끌 후폭풍은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서울만 봤을 때 지난해 부동산 경매 진행 건수는 8102건으로 전년 6261건보다 29.4% 늘었다. 2022년 3458건과 비교하면 2배 이상 많아졌다. 임의경매가 늘어나는 지역은 20·30대의 영끌 투자가 성행했던 곳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또 고점 대비 20% 이상 아파트 시세가 하락했다.

    서울에서 임의경매 건수가 가장 많이 늘어난 구로구 신도림역 역세권 단지인 신도림 롯데 전용면적 84㎡는 2021년 최고가 11억 4000만원 대비 25.4% 하락한 8억 500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영끌족의 성지로 불렸던 노원구 상계주공아파트도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상계주공 7단지 전용 79㎡는 고점 대비 25%이상 빠졌다.

    최근 대출 규제로 주택 구입 수요가 꺾이고 탄핵 정국으로 부동산 시장 전반이 얼어붙은 가운데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금리 부담이 커질 전망이어서 영끌 후폭풍도 함께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영끌족 대부분은 4~5년 전 저금리 당시 5년 고정금리 후 변동금리로 전환되는 ‘혼합형 대출 금리’ 상품으로 대출을 받았다.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2019년부터 2%대로 진입한 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 중반에는 2%대 중반까지 떨어졌다. 당시에 받은 대출 금리가 지난해부터 상승하기 시작해 올해 정점에 이르는 셈이다.

    7월부터 대출규제 본격 시행

    교보증권 리서치센터에 따르면 변동금리로 전환되는 주택담보대출 규모는 지난해 약 40조원, 올해는 약 50조원에 달한다. 5년 전과 비교해 시중 대출 금리 수준이 2%포인트 이상 높아져 빚 부담이 크게 늘어났다. 만약 주택담보대출로 2억원을 빌린 차주의 경우 연간 이자 부담이 400만원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백광제 교보증권 수석연구원은 지난해 발간한 2025년 연간 전망 보고서를 통해 “현재 주택담보대출 혼합형 상품 중 2019년 하반기에 이뤄진 대출의 금리가 전환 중”이라며 “매년 반기마다 20조원 안팎의 저금리 고정 대출이 변동금리로 전환돼 원리금 상환에 압박을 받는 차주가 늘어나게 된다”고 전했다. 올해는 50조원 규모 주택담보대출의 금리가 본격 인상될 것으로 예상된다.

    2020년은 소득에 따라 대출한도가 정해지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시행 전이다. 당시에도 주택담보대출비율(LTV) 규제는 작동하고 있었지만, 차주의 소득까지 고려해 대출을 제한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대출 금리 인상 여파로 한계에 몰리는 차주는 예상보다 더 많을 수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오는 7월부터 금융당국이 스트레스 금리를 100%(3단계) 매겨 대출 규제를 본격 시행한다. DSR 3단계가 시행되면 소비자 입장에서 받을 수 있는 대출금은 지금보다 더 줄어들게 된다. 주택 매수 심리가 더 위축되고 집을 제때 팔지 못해 경매로 내몰리는 한계차주도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편 4~5년 전 성행했던 주택 ‘영끌’ 여파는 주택도시기금 부담으로도 작용하고 있다. 당시 저금리를 바탕으로 부동산 거래가 크게 늘며 만기 5년 짜리 국민주택채권 발행도 덩달아 급증했는데,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만기가 돌아오기 때문이다. 주택도시 기금을 통해 이를 상환해야 하는데, 기금 재원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주택도시기금 고갈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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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이 확보한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올해 국민주택채권 기금 상환액은 18조 6000억원으로 추산됐다. 기금 상환액은 지난해 16조 6000억원, 재작년에 13조 8000억원이었다. 2년 만에 기금으로 갚아야 할 돈이 4조 8000억원 늘어난 것이다.

    국민주택채권은 집을 매매하고 소유권 이전등기를 할 때 반드시 사야 하는 국채로 보통 5년이 만기다. 부동산 거래가 활발할 때 발행이 늘고 얼어붙을 때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 보통 즉시 매도하거나 5년 만기 보유한 뒤 상환받는다. 올해 기금이 상환해야 하는 액수가 늘어난 건 5년 전 부동산 활황 때 발행된 채권들 만기가 줄줄이 돌아오기 때문이다.

    국민주택채권 발행액은 2019년 15조 4000억원에서 2020년 18조 7000억원으로 늘었다. ‘영끌’ 현상이 지속되면서 2021년에도 국민주택채권은 18조 8000억원 발행됐다.

    문제는 2023년부터 부동산 시장이 침체기에 접어들면서 국민주택채권 발행액이 13조3000억원으로 줄었다는 점이다. 올해도 대출 규제와 탄핵 정국 여파로 부동산 거래가 얼어붙으며 발행액이 14조원에 불과할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의 한 시중은행 대출상담을 받기위해 고객이 은행을 찾고 있다.
    서울의 한 시중은행 대출상담을 받기위해 고객이 은행을 찾고 있다.

    다시 말해 주택도시기금에 새로 들어올 돈은 14조원뿐인데, 갚아야 할 돈은 18조 6000억원에 달하는 것이다. 김은혜 의원은 “부동산 수요를 억제하고 공급을 등한시한 정책의 후과가 5년이 지나 기금 부담이란 부메랑으로 돌아온 것”이라며 “주택도시기금이 당초 취지에 맞게 운영되도록 면밀한 점검과 감시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주택도시기금 여유자금이 계속 줄고 있어 이 같은 상황은 큰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국민주택채권과 더불어 주택도시기금의 주요 재원인 청약통장의 인기도 시들하다.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청약통장 가입자는 2648만 5223명이다. 이는 지난해 11월 2660만 9366명보다 약 12만 명, 2023년 12월 2703만 8994명보다 약 55만 명 줄어든 수치다. 분양가 고공 행진이 이어지고 있고, 경기 침체로 급전이 필요한 사람이 늘며 청약통장 해지가 줄을 잇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주택도시기금 재원은 줄고 있지만 사용처는 늘어나며 기금 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작지 않다. 대표적으로 다음달 청년주택드림대출이 출시된다. ‘청년주택드림’ 통장 가입자들이 아파트를 분양받을 때 최저 2%대 저금리로 분양가의 80%까지 대출을 지원하는 정책 모기지다. 재원은 기금에서 마련된다.

    기금을 재원으로 하는 공공분양주택 뉴홈을 겨냥한 전용 모기지 상품도 올해 출시 예정이다. 신생아특례대출을 신청할 수 있는 부부의 연소득 요건이 2억원에서 2억5000만원으로 완화되는데 이 또한 재원을 기금으로 두고 있다.

    [김유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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