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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시크 쇼크] 돈 먹는 하마서 효율화로, AI 전쟁 2라운드 서막
입력 : 2025.03.07 17:2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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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월 20일 전 세계 AI 업계는 딥시크(Deep Seek)라는 중국의 작은 AI 기업 출현에 큰 충격을 받았다. 중국 금융가의 소형 자산운용사의 자회사인 딥시크가 세계 최강인 오픈AI의 개발비의 10분의 1도 안 되는 비용으로 비슷한 성능을 내는 모델을, 그것도 오픈 소스로 발표했기 때문이다.
1월 20일 이후 한 달여 간 서방세계에서는 중국산 AI의 안전성, 프로그램 모방, 개발비용에 대한 숱한 논란이 제기되었지만 최근 한 달 사이 세계 AI 업계에서는 딥시크 오픈소스를 이용한 수천 개의 파생 모델이 등장하고 증시에까지 딥시크의 수혜주식을 매집해 주가를 폭등시키는 ‘딥시크 신드롬’을 만들었다.
“딥시크(DeepSeek) R1은 인공지능(AI) 분야의 ‘스푸트니크 모멘트’다.”
저비용·고효율 AI 모델로 엔비디아를 충격에 빠뜨린 중국 스타트업 딥시크 등장을 두고, 실리콘밸리의 대표 벤처투자가 마크 앤드리슨이 엑스(옛 트위터)에 표현한 말이다.
실제 딥시크는 설립된 지 고작 1년 6개월밖에 안 됐다. 직원도 200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지난 설 연휴에 선보인 ‘AI 추론 대규모언어모델(LLM)’ R1의 성능은 우습게 볼 수준이 아니었다. R1은 미국 수학경시대회 테스트에서 79.8%의 정확도를 기록해 기존 최고인 오픈AI의 o1(79.2%)을 앞섰다.
놀라운 점은 낮은 개발비다. 딥시크 측은 개발 비용으로 총 560만달러(82억원)를 사용했다고 밝혔다. 미국 빅테크들이 AI 모델 훈련에 사용하는 통상 1억달러(1450억원)와 비교하면 10분의 1 수준에도 미치지 않았다. 딥시크의 연구개발(R&D) 인력 180명은 오픈AI 개발 인력의 6분의 1수준이다. 게다가 미국이 2년 전부터 고사양 반도체의 중국 수출을 금지하며 딥시크는 중국산 저사양 제품만 사용했다는 점에서 AI 업계에 큰 충격을 줬다. 딥시크는 2048개의 GPU만으로 R1을 개발했다고 밝혔는데 기존 AI 모델이 수십만 개의 GPU를 활용하는 것과 대조적이었다.
돈을 태워서 AI를 만든다고 할 정도로, 고가의 고성능 칩으로 고성능 AI 모델을 만드는 데만 집중했던 세계 AI 업계는 딥시크 출현을 계기로 저가의 저성능 칩으로 고효율의 AI 모델을 만드는 것이 새로운 경향이 되었다. 이젠 오픈AI를 기준으로 10분의 1이하의 비용으로 AI 모델을 만드는 경쟁이 벌어질 정도다. 딥시크 경쟁을 우려한 기존 대형업체들도 오픈소스로 개발모델을 전환하고 무료 서비스 제공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AI 사업의 방향도 모델개발 중심에서 서비스로 바뀌었다.
‘AI 대장주’ 엔비디아 주가가 하루 만에 시가총액 6000억달러(약 863조원)를 날렸을 만큼, 딥시크는 미국 중심의 AI 시장에 충격을 안겼다.
딥시크 부상에 화들짝 놀란 곳은 미국이다. 지금까지 미국이 중국을 상대로 강도 높은 AI 반도체 수출 제한 조치를 유지했음에도 놀라운 성과를 이뤄내자 실리콘밸리는 물론 미 정부도 충격에 휩싸인 분위기다.
이전 미국 정부는 지난 2022년 8월 중국군이 AI 구현에 쓰이는 반도체 제품을 군사용으로 전용할 위험이 있다며 엔비디아와 AMD에 관련 반도체의 중국 수출을 금지했다. 블룸버그는 “딥시크가 어느 정도의 AI 학습용 첨단칩을 확보했는지는 베일에 가려졌지만, 딥시크 성과는 미국 무역 제재가 중국 발전을 가로막는 데 효과적이지 않음을 시사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수출 통제가 중국이 오픈소스를 기반으로 창의적 해결책을 모색하도록 자극한 결과가 됐다고 지적한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은 “미국 규제가 강해지자 중국이 반도체나 AI 산업을 포기하는 게 아니라 국가의 모든 자원을 총동원해 반도체 자급 체계와 국산화를 더 가속시키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미국의 빅테크 셈법도 복잡해졌다. 딥시크 기술 분석에 돌입하는 한편, 가성비 AI 플랫폼 등장이 어떤 파장을 가져올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과의 관세 전쟁에 돌입한 가운데 미·중 간 AI 패권 전쟁도 뜨거워졌다.
[김병수 기자]